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87)
387화 몰려드는 마염(魔焰)
오대 검파는 오늘의 일전을 위해 오랫동안 철저히 준비해 온 터라 마도인들이 덤벼드는 게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나타나지 않을까를 더 걱정했었다. 그만큼 오대 검파의 고수 중에는 독고이와 같은 무게감을 가진 고수가 어느 정도 있었다. 독고이가 앞으로 나서자 두 명의 사내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수수한 유삼(儒衫)을 입은 사내는 잘생기고 학식 있어 보이는 중년인이었는데 왼쪽 허리에는 죽적(竹笛)을, 오른쪽 허리에는 푸른색 단검을 차고 있었다. 마치 주변 공기와 혼연일체로 움직이는 듯한 그의 몸짓은 기이하지만 자연스럽기 짝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가 누군지 즉시 알아차렸다. 깊이 생각할 것도 없었다. 그는 풍운방 오 위에 등록된 좌망검려(坐忘劍廬)의 장문 ‘소상검우(瀟湘劍雨)’ 심포진(沈抱塵)이었다!
강호인들이 흠모해 마지않는 그는 천재적인 고수였다. 소문에 따르면 열 살에 이미 검을 익혀 수준급의 경지에 이르렀고, 자신보다 높은 수준의 고수에게만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한다.
천인합일에 이르기 전까지 그의 상대는 좌망검려 내의 고수들이었다. 그러나 천인합일의 경지에 오르자 강호에서 오랫동안 이름을 날린 한 검도종사(劍道宗師)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당시 심포진보다 한 차원 높은 경지였던 그 고수는 심포진에게 패배했을 뿐만 아니라 무기까지 파괴당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검도에서만큼은 자신보다 심포진이 한 수 위라고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무사로서 심포진의 인생을 설명하는 단어는 딱 두 개였다. 수련과 도전!
심포진은 출수하는 경우가 드물었으나 일단 검을 뺐으면 패배하는 법이 없었다. 그에게 진 적이 있는 한 무사는 심포진의 검은 사람을 절망케 하는 검이라고 말한 바 있다.
널리 알려진 심포진과 달리, 그 옆의 무사는 생소한 얼굴이라 사람들의 반응이 미미했다. 남루하고 지저분한 차림의 노인이었는데, 그가 입은 장포는 온통 먼지에 뒤덮여 본연의 색을 알아보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과 수염 역시 엉망으로 뒤엉켜 지저분했고, 허리는 구부정했으며 한쪽 눈은 보이지 않는 듯했다. 손에는 군데군데 오염되어 원래의 형체를 모를 지경인 더러운 장검을 쥐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봤다면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을 더러운 늙은이였다. 하지만 독고이와 심포진과 나란히 서니 위화감이 전혀 없어 보였고, 오히려 심연처럼 묵직하고 무시무시한 기세까지 느껴졌다. 하후진과 같은 무도종사도 그가 누군지 알아채지 못하고 있을 때, 내내 마음이 내키지 않는 듯 잠잠히 있던 허도가 숙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 노인은 풍운검총의 무덤을 지키는 사람 중 하나요. 노인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소. 의미를 잃은 지 오래니까. 저들은 대대로 장검(藏劍)의 땅을 지키며 그 자리를 벗어난 적이 없지. 과거 그가 딱 한 번 풍운검총을 떠났던 일이 있지. 마도의 거두 ‘구음마존(九陰魔尊)’ 윤조양(尹朝陽)이 때문이었소. 그자가 피바람을 일으키며 강호를 휩쓸고 다니는 바람에 우리 대광명사와 풍운검총의 몇몇 고수들까지 목숨을 잃었지. 그때 저 노인은 허운 사형과 함께 그를 처단하러 갔었지. 당시 허운 사형이 돌아와서 내게 말했소. 저 노인 혼자서 시신도 남지 않을 만큼 참혹하게 윤조양을 죽이는 바람에 자신은 나설 필요도 없었다고 말이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숨이 멎을 듯 놀랐다. 초라한 행색의 늙은이가 새삼스럽게 다시 보였다. 풍운검총의 무덤 수호자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구음마존’ 윤조양은 잘 알고 있었다.
윤조양은 백여 년 전쯤 강호를 누볐던 마도의 거두로, 진화련신(真火煉神)까지 오른 절정의 고수였다. 하지만 말년에 무공을 수련하다가 탈이 난 이후, 강호의 최정상 고수들을 미친 듯이 도륙하고 그들의 심두혈(心頭血, 심장의 피)을 졸여서 단약을 만들었다고 한다. 자신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수명을 연장하는 게 그리 쉬울 리가 있겠는가. 심장의 피로 만든 단약이 수명을 연장해 준다는 것도 근거 없는 낭설에 불과했다.
하지만 머리가 완전히 돌아버린 윤조양은 효과는 따지지도 않고 그저 미친 듯이 강호를 휘저으며 광기를 발산했다. 그러나 그렇게 광기를 내뿜으며 날뛰던 윤조양이 언제부턴가 강호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윤조양 실종의 전말이 지금에서야 드러난 것이다. 그는 놀랍게도 눈앞의 저 초라한 행색을 한 노인의 손에 죽은 것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저 노인이 진화련신에 도달한 고수란 말인가?
오대 검파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에 미세한 변화가 일었다. 오대 검파가 이번에는 정말 큰물에서 노는 거물들을 동원하지 않았는가. ‘검남왕’ 독고이와 좌망검려의 장문 심포진, 그리고 이름 모를 풍운검총의 무덤 수호자까지······. 이들 셋은 모두 진화련신의 고수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초절정 고수였으니, 이번에는 마도 무리가 정말 뼈를 추리기 어려울 터였다.
하지만 사뭇 놀랍다는 사람들의 반응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위서애(魏書涯)가 차가운 목소리로 분위기를 깼다.
“모두 머뭇거리지 말고 준비되는 즉시 나와라!”
위서애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부옥산(浮玉山) 전체에 널리 퍼진 듯,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산 아래에서 ‘죽여라!’라고 외치는 함성이 울렸다. 그러자 부옥산 전체가 순식간에 흉악한 마기와 살기로 뒤덮였다. 그와 동시에 산 아래에서 문을 지키던 수십 명의 제자가 다급히 달려오며 외쳤다.
“큰일입니다! 부옥산 전체가 마도인들에게 포위되었습니다!”
그들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많은 마도인들이 사방팔방에서 쏟아져나왔다. 배월교(拜月敎)와 사극종(邪極宗), 오독교(五毒教) 등 마도의 다양한 종문 제자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모두 명교에서 갈라져 나온 종문이었다. 그중에서도 배월교의 수가 가장 많았다. 현재 마도에서 가장 큰 세력을 이루는 종문이 배월교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때 배월교의 무사 무리에서 새까만 장포를 두른 남자가 한 걸음 한 걸음 허공을 밟으며 앞으로 걸어 나와 위서애의 옆에 섰다.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뿜는 이 사내는 머리에는 금색 옥룡관을 쓰고 있었고, 몸에 걸친 검은 장포에는 기이한 금색 무늬가 섬세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뒷짐을 지고 선 그에게서 고풍스럽고 서늘한 기운이 물씬 느껴졌다.
“배월교 구대 신무제(神巫祭) 중 한 사람인 동황태일이다!”
누군가가 외치자 사람들의 안색이 변했다. 배월교의 동황태일이라면 배월교에서도 상위 삼 위권에 드는 고위 인사였다. 배월교의 가장 꼭대기에는 교주가 있고 그다음이 대제사(大祭司)와 성녀였는데 구대 신무제의 서열은 그들의 밑이었지만, 현재의 성녀는 아직 나이가 어렸다.
그 때문에 동황태일은 대제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였는데, 간혹 대제사와 대립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나서 역대 가장 강력한 지위를 누리는 동황태일로 꼽혔다.
배월교 쪽에서 한 여인이 서서히 춤사위를 벌였다. 전신이 검은 망사에 가려져 있었지만 요염한 몸매와 아름다운 얼굴은 하늘하늘한 천에 다 가려지지 못하고 밖으로 자태를 드러냈다. 하염없이 아름다운 춤사위에 사람들이 취해갈 무렵, 그녀의 발밑을 바라본 사람들은 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수를 세지도 못할 정도로 엄청난 숫자의 고충(蠱蟲)들이 운율에 맞춰 꿈틀거리고 있었다.
“배월교의 성녀다!”
사람들은 순식간에 그녀의 정체를 눈치챘다.
현존하는 무림의 사대 미녀 중에서 정파의 대표가 운검선녀 안비연이라면 마도의 대표는 배월교의 성녀였다. 그러나 강호인들은 정작 배월교 성녀의 외모를 실제로 본 적이 없었고, 그녀의 나이가 몇 살인지도 몰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녀의 얼굴을 본 사람들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강호인들이 배월교 성녀의 외모가 눈부시게 아름답다고 확신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배월교의 성녀라는 자리는 눈부신 미모와 재능이 없다면 감당할 수 없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지금 배월교의 구대 신무제 중 무려 여섯 명이 서 있었다. 모두 무도종사의 경지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배월교의 고위 서열 사 위권의 인사 중 두 명이나 여기 모였으니, 배월교가 이번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만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갑자기 한쪽에서 기이한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불음(佛音)과 흡사했으나 일반적인 불음과는 달랐다. 인간의 내면에 숨어있는 어두운 욕망을 자극하는 사악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이윽고 기이한 소리와 함께 허공에 검은색 가사를 입은 중년 사내가 떠올랐다. 승려들이 입는 가사를 몸에 걸쳤으나 머리카락은 밀지 않았고, 가면을 벗고 쓰는 것처럼 얼굴에 기쁨과 분노, 탐욕 등의 여섯 가지 표정이 수시로 바뀌며 떠올랐다 사라지는 모습이 몹시도 괴이했다.
괴이한 사내가 허공에 떠오르자 대광명사의 허도와 허언의 얼굴이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는 바로 제육천마종(第六天魔宗)의 종주인 ‘마라(魔羅, 승려의 수행을 교란하는 마귀)’ 이파순(伊波旬)이었다.
명성만으로 따지면 제육천마종의 명성은 해남고도(海南孤島)에서 그리 크지 않았고, 이파순의 명성 역시 위서애와 동황태일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몰라도 대광명사의 화상들은 제육천마종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대광명사의 천적이었기 때문이다.
강력한 고수들 외에도 마도의 거의 모든 종문이 총출동했다. 나찰교, 오독교, 사극종 등 종문의 오대 강자들은 자신의 제자들을 파견했는데, 무도종사급의 초절정 고수가 포함되지 않은 종문이 하나도 없었다.
양측의 무도종사 고수 수십 명과 몇 명의 진화련신 고수들까지 한자리에 모였으니, 부옥산은 불씨 한 점만 떨어져도 폭발할 화약고나 다름이 없었다.
심포진은 동황태일의 무리를 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마도 무리가 모조리 여기 나온 걸 보니 우리 오대 검파가 많이도 두려웠나 보군. 그나저나 이렇게 많은 이들이 몰려들었는데 왜 야소남(夜韶南)은 보이지 않는 건가? 이참에 그 친구에게 보천심경(補天心經)이나 한 수 배울까 했는데 말이지.”
동황태일이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너 따위가 우리 교주님을 만날 자격이 있느냐? 교주님께 보천심경을 한 수 배우고 싶다면 네 목숨을 대가로 내놔야 할 것이다! 심포진, 내가 오늘 여기에 온 건 너에게 물을 것이 있어서다. 너희 오대 검파는 조화천마기(造化天魔旗)를 넘길 생각이 있느냐, 없느냐?”
동황태일의 기이한 목소리는 북 안에서 천둥이 울리는 듯한 강한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심포진은 입꼬리를 올려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넘겨? 네놈이 뭔데 그것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냐? 조화천마기는 과거 우리 오대 검파가 실력으로 당당히 곤륜마교를 누르고 빼앗은 전리품이다. 원한다면 어디 한번 가져가 보는 게 어떤가?”
동황태일은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디디며 얼음장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 마도는 대놓고 나서서 일을 벌인 전례가 없다. 이번에는 너희 오대 검파가 먼저 우리를 도발한 것이다. 부옥산에 피가 강이 되어 흘러내려도 우리 마도를 탓하지는 말아라. 모든 것은 너희가 자초한 일이니!”
심포진은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그 말처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어떻게 너희 마도 놈들을 뿌리 뽑겠느냐? 그러나 이것 하나는 분명히 해야겠군. 부옥산에 강처럼 흐를 피는 우리 오대 검파의 피가 아니라 너희 마도 괴수들의 피다!”
심포진은 말을 마치기가 크게 외쳤다.
“검진(劍陣) 개시!”
그가 말을 내뱉는 순간, 부옥산 전체가 요란하게 진동하더니 붉은 노을빛 검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맹렬하게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