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89)
389화 흉병(兇兵)
천하 검종 대회는 이렇듯 너무나도 순식간에 부옥산 정마대전(正魔大戰)으로 변해버렸다. 오대 검파 이외의 정파 종문마저 싸움에 가세하자 부옥산은 참혹하게 도륙된 시신과 피로 뒤엉킨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숨 쉴 틈도 없이 사람들이 잔인하게 죽어 나갔으나 오대 검파는 서서히 패색을 뒤집기 시작했다.
정파 무인들이 모두 힘을 합치자 오대 검파는 서서히 승기를 잡기 시작했지만, 진화련신 고수들은 사정이 달랐다. 독고이는 동황태일에게 계속 밀려 숨을 돌릴 틈도 없었다. ‘검남왕’ 독고이는 과거 강호를 주름잡던 강력한 실력자로, 시시비비를 따지던 북연의 광인을 단신으로 죽인 전력이 있었다. 먼 옛날 이름을 날리던 인물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타고난 재능과 실력이 입증된 셈이리라.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지금 상대하는 동황태일은 재능이나 실력 모두 독고이를 압도하고 있었다. 동황태일의 눈동자는 마치 악마의 눈동자 같았다. 세상을 멸망시킬 수도 있을 듯한 사악한 악마의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번쩍 빛날 때마다 독고이가 전력을 쏟아부은 공세가 번번이 효력을 잃었다.
동황태일이 가뿐하게 한 걸음씩 거리를 좁히며 검은색 장포의 넓은 소매를 휘두르자 그의 몸이 허공으로 둥둥 떠올랐다. 거세게 나부끼는 소맷자락은 부옥산 전체를 빨아 당기는 듯한 폭발적인 힘을 발산하고 있었다. 하늘이 갑자기 어둠에 휩싸이자 독고이는 무지막지한 압력이 사방에서 자신을 내리누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본능적으로 장검을 휘둘러 검기를 내질렀다. 그러자 황금빛으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꽃 형상의 검기가 공중에서 화려한 꽃을 피웠다.
분천검결(焚天劍訣)!
그러나 분천검결이 본격적으로 시전되기도 전에 독고이의 온몸에서 폭음이 울렸다. 마치 허공에서 생성되는 듯한 마기가 거세게 휘몰아치며 지면으로 직행하자 부옥산 전체가 강렬하게 진동했다. 산상의 지면에는 그 충격으로 거대한 균열이 일어났다. 무도종사라면 일검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강을 끊어 버릴 수 있고 권법 한 방으로 산을 가루로 만들 수도 있다. 산이라고 해도 규모가 작은 민둥산 정도겠지만, 그것만으로도 무도종사가 얼마나 가공할만한 위력을 지닌 존재인지를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부옥산은 동네 뒷동산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산이었다. 무도종사 십여 명이 달려들어 공격하더라도 쉽게 파괴될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 부옥산의 지면이 동황태일이 소맷자락을 한 번 휘둘렀다고 갈라졌다. 이 정도라면 그가 부옥산을 가루로 만들어 버린다고 해도 놀랄 게 없지 않겠는가.
매서운 한 방을 맞은 독고이는 입에서 왈칵 피를 토했다. 지금 벌어진 일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동자에 경악한 기색이 역력했다. 과거 북연에서 중상을 입은 이후로 출수한 적이 거의 없었기에, 참으로 오랜만에 맛보는 부상의 고통이었다. 동황태일이 마무리하기 위해 독고이에게 달려들려는 찰나 저쪽에서 치열하게 싸우던 풍운검총의 노인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절연검(絕淵劍)을 내어라!”
노인의 음성이 울리자 제육천마종의 무사와 전투 중이던 연지(燕支)가 민첩하게 뒤로 물러서며 손가락을 깨물어 이마에 피를 찍었다. 그러자 황금빛 광망이 눈부시게 피어오르며 연무대가 세워진 지면을 내리쳤고, 지면이 갈라지자 그 틈에서 칠흑같이 검은 장검 한 자루가 지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말이 장검이지 아직 검의 형태를 완전하게 갖추지 않은 검배(劍胚)의 형상이었다.
검신과 자루 모두 도금을 거치지 않은 듯 빛깔이 탁했으며, 검신은 삐뚤빼뚤 휘어져 날이라고는 전혀 서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검신에서 흐르는 살벌하고도 엄숙한 기운은 얼마나 무수히 많은 목숨이, 이 검날 아래에서 피를 흘리며 스러져 갔는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풍운검총이 보유한 절세의 검, 흉병(兇兵) 절연(絕淵)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절연검은 사람이 주조한 검이 아니라 북해 어느 섬의 심연 속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사실 검이라기보다는 재질의 정체도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쇠막대기에 가까웠으나 대단히 견고했다. 그리고 모든 속성의 진기를 수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천지의 힘을 자유롭게 흡수할 수 있어, 진기한 보물을 뜻하는 이보(異寶)라고 불릴 만했다.
이 쇠막대기에는 흉악한 액운이라도 깃들어 있었는지, 이것을 소유했던 모든 사람이 비명횡사했다고 한다. 무수히 많은 사람의 피로 물든 물건이란 말이다.
쇠막대기는 훗날 유명한 주검대종사(鑄劍大宗師, 검 주조의 대가)의 손으로 들어갔다. 그는 손에 넣은 더없이 귀한 보물을 검으로 제련하려고 했으나, 쇠막대기의 견고함이 어찌나 대단했는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다. 오랜 시간 안간힘을 써서 간신히 쇠막대기를 검의 형태에 가까운 검배로 제련해 내기는 했다. 그러나 그 주검대종사가 미처 날을 날카롭게 벼리기도 전에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물론 검배의 형태라고는 해도 검이라고 하기에는 손색이 없었고 오랜 세월 무수히 많은 사람의 피를 빨아들인 탓인지, 검신 전체에서 짙은 살기가 강렬하게 뿜어져 나왔다. 그래서 이 검을 손에 넣은 주인들은 검에 스민 살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피를 갈구하는 살인광으로 돌변했다. 이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알아차린 절연검의 특성이었다.
절연검은 천지의 힘을 빨아들이는 것 외에도 무사들의 기혈을 자신의 양분으로 삼으며, 주인의 살육이 충분하지 않으면 자신이 만족할 만한 대량 살상을 저지르도록 주인을 조종했다. 이런 연유로 절연검은 흉병 중의 흉병으로 악명을 날렸다.
절연검의 마지막 주인은 풍운검총의 손에 목숨을 잃었고, 이후로 풍운검총의 무사들은 검이 묻힌 땅에 깃든 강력한 검의(劍意)로 절연검의 사악한 기운을 억눌렀다. 절연검이 풍운검총의 소유가 된 이후, 풍운검총이 절연검을 사용한 횟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들은 정말로 위급한 순간 외에는 이 검을 꺼내고 싶어 하지 않아 했다.
흉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절연검을 뽑아 들면 다치는 건 상대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절연검은 검을 쥔 당사자의 기혈도 빨아들였기 때문에 검을 손에 댄다는 것 자체가 본인에게 좋을 게 없었다. 게다가 만에 하나 절연검이 사용자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다면 그때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상황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거사일 전에 풍운검총의 절연검을 미리 부옥산으로 가져와 배치해 둔 것만 봐도, 오대 검파가 마도와의 일전을 얼마나 철저히 대비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풍운검총의 노인은 절연검을 꺼내는 상황이 오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돌아가는 형국을 보니 절연검 없이는 오대 검파가 도저히 버티지 못하겠다 싶었던 것이다.
연지가 피를 내어 인을 찍자 절연검이 활성화되며, 혼이 빨려들 듯한 사악한 힘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그리고 절연검은 붉은 기운에 휩싸여 피에 절은 듯 새빨갛게 물들었다. 이윽고 절연검은 허공으로 날아올라 자취를 감추는가 싶더니, 순간 이동이라도 한 듯 동황태일의 앞에 번쩍하고 나타났다. 동황태일은 넓은 소매를 휘날리듯 떨치며 검은 안개의 형상이 되어 몸을 피했다. 절연검이 동황태일의 몸에 상처는 입히지 못했지만, 동황태일의 등 뒤를 지키던 거대한 마신의 형상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동황태일의 눈동자에 놀란 기색이 비쳤다.
“흉병 절연검? 풍운검총에서 준비깨나 했나 보군. 하지만 아무리 강한 무기라도 생명이 없는 쇳덩어리에 불과하다. 고작 무기 하나로 기울어진 전세를 뒤집을 수 있을 거 같은가? 꿈 깨시지!”
말을 마친 그는 끝이 보이지도 않을 만큼 무한대로 펼쳐진 마기 속으로 사라졌다. 하늘을 뒤덮은 광풍과도 같은 사나운 마기에 부옥산 전체가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진화련신 고수들 간의 전투는 이토록 파급력이 무시무시했다. 부옥산은 이 거대한 전투가 끝날 때쯤이면 완전히 가루가 되어 흔적을 찾지 못할지도 모를 터였다.
정파와 마도의 격렬한 전투가 한창일 때, 초휴도 무리에 섞여 적당히 싸우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초휴는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신분을 대놓고 드러낼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그에게는 마도의 신예라는 신분과 정파의 일원이라는 신분이 모두 필요했다.
조금 전 육 선생은 혼란한 틈을 타서 한 사람을 제거해 달라고 전음으로 부탁했고 초휴는 승낙했다. 그는 초휴에게도 눈엣가시 같은 인물이었는데. 오독교의 ‘산양공자’ 구상자가 그 자였다.
보아하니 오독교와 무상마종은 원체 사이가 좋지 않은 듯했다. 구상자는 육 선생의 오랜 숙적으로, 온 마도가 모여 맹약을 맺는 회맹(會盟)에서도 한 차례 충돌했다. 다만 당시 초휴는 신분을 위장한 상태였고, 아무리 초휴라도 수많은 마도 종문 고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를 죽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온 마도가 힘을 합쳐 정파와 싸우는 이때 ‘같은 편’을 죽이는 건 개운치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육 선생도 초휴도 죄책감은 전혀 느끼지 않았다.
초휴는 자신이 현재 행세하고 있는 마도의 신예라는 신분이 상당히 편리해서 당분간은 들키지 않으며 행세하고 싶었고 육 선생으로 말할 것 같으면 구상자를 제거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지 오래였다.
오독교는 그간 배월교라는 거대한 세력을 등에 업고 배월교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무상마종의 비위를 거슬러 왔다. 지금 여기서 구상자를 제거한다면 눈엣가시 같은 오독교에 대한 분풀이로 부족함이 없을 터였다. 거기에 육 선생의 신뢰 또한 얻을 수 있을 테고 말이다.
초휴는 혼란스러운 싸움판에서 엎치락뒤치락 휩쓸려 다니다가 마침내 구상자를 발견했다. 초휴가 구상자를 발견했을 때, 그는 한창 시원하게 적을 죽여 없애는 중이었다. 오독교의 무공은 이런 혼전에서 특히 눈부신 활약을 보였다. 그가 오독진기를 내뿜기만 하면 주변에 있는 모든 적이 독에 맞았는데, 그는 그중에서 가장 심하게 중독된 자부터 골라 죽였다.
구상자가 체내에서 기르는 독충의 먹이는 인간의 기혈이었다. 그는 모처럼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게 정파 무사들을 죽여 독충의 먹이로 주었다. 평소라면 감히 저지르지도 못할 살상이었다.
구상자는 파산검파의 오기조원 무사 하나를 신나게 쫓기 시작했다. 그 파산검파 무사의 정신은 이미 한참 전에 무너져 내렸다. 검 실력을 겨루려고 참석한 천하검종대회가 순식간에 살육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으로 돌변했으니, 어찌 제정신이 유지되겠는가. 사태 파악을 못 한 그 무사는 죽기 살기로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오기조원도 사실 그리 낮은 경지는 아니었으나 이곳에서는 무도종사급의 고수들조차 목숨을 걸고 도망치는 판이었다. 구상자가 파산검파의 무사를 거의 따라잡았을 때, 갑자기 한 줄기의 금색 수인이 휙 하고 나타났다. 황금빛 빛줄기가 번쩍하고 폭발하자 구상자의 주변에 득실거리던 독충인지 사고(蛇蠱)인지 하는 것들이 모조리 궤멸하였다.
이어서 초휴가 등장하여 구상자의 앞을 가로막자, 구상자도 죽어라 도망치던 오기조원 무사도 모두 얼이 빠져서 멍청히 서 있었다. 파산검파의 무사는 더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초휴는 파산검파의 철천지원수가 아닌가. 대체 초휴가 무슨 이유로 자신을 구한단 말인가? 혹시 그사이에 개과천선이라도 한 걸까? 어쩌면 사부들이 했던 말과는 달리, 이 자가 그렇게 흉악한 인간은 아닐지도 몰랐다.
구상자는 초휴에게서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조금 전 연무대에서 여러 번 출수하는 초휴의 모습을 보기는 했다. 하지만 거리가 멀었기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서 자신을 가로막은 초휴는 왠지 모르게 익숙한 숨결을 내뿜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