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92)
392화 절경
섭동류도 하후무강과 마찬가지로 초휴에게 패했다. 그것도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처참하게 무릎을 꿇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섭동류에게 정마대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절호의 기회였다.
강한 자의 뒤에 숨어서, 싸우는 시늉을 하는 것은 하후무강이나 섭동류나 마찬가지긴 했다. 하지만 매가리 없이 대충대충 싸우는 하후무강과 달리 섭동류는 열정적인 자세를 과시하며 싸웠고, 가끔은 위기에 빠진 정파 사람들을 앞장서서 구해주며 칭찬을 받았다. 과거 하후무강에게 미치지 못하는 실력이었던 섭동류가 용호방 순위에서 그를 제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명문 세가의 후계자인 하후무강이 호의호식하며 자신의 재능만 믿고 설렁설렁 수련할 때, 섭동류는 적은 기회라도 소중히 여기며 치열하게 자신의 명성을 쌓는데 노력했던 것이다.
하후무강이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고 있을 때, 아버지 하후진이 마인에게 공격당하는 광경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실력을 굳건히 믿었으므로 걱정하지 않고 도리어 무의식적으로 그들과 거리를 벌렸다. 괜히 무도종사들의 충돌에 말려들어 타격을 입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슬금슬금 위험을 피하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뒤에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엄습하는 바람에 하후무강은 급격히 낯빛을 바꾸며 서둘러 양손에 결인을 맺었다. 자신의 몸 주위를 감싸고 있던 정신력을 결인 맺은 손으로 폭발하듯 내뿜은 그는 가까스로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뒤에서 몰아치는 공격을 막아낸 그는 몸을 돌리며 적이 누군지 확인했다. 그곳엔 시커먼 장포와 시커먼 흑철 가면을 쓴 사내가 적홍색으로 물들어 살기 가득한 눈동자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후무강은 눈살을 잔뜩 찌푸리며 생각했다.
‘이 자식은 또 누구야?’
아버지 하후진과 마찬가지로 하후무강 역시 정파로서 구색을 갖추는 차원에서 천하검종대회에 참석한 것이지, 이 대회를 통해 무슨 이득을 본다거나 새로운 원한을 맺으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마음이 그와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때로는 지금처럼 뜻하지 않게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자도 생기는 법이다.
하후무강은 눈앞의 사내가 오기조원의 실력에 불과하다고 단정하고는 안심했다. 이것은 하후무강의 오만이었다. 누가 뭐래도 자신은 용호방 상위 십 위권 안에 드는 고수가 아닌가. 동급 무인 중에서는 적수가 거의 없으니, 눈앞의 상대도 별거 아닐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후무강이 조롱하는 말을 던지려고 입을 열려는 순간, 초휴는 틈을 주지 않고 바로 두 번째 공격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천절지멸망아살권(天絶地滅忘我殺拳)을 최극강 수준으로 끌어올려 적홍색 살기를 주먹에 가득 모아 내질렀다.
하후무강은 상대가 전력을 다해 공격해오자 속으로 미친놈이라며 구시렁거렸다. 누가 부자 아니랄까 봐 하후진과 동일한 반응이었다. 그가 뒤로 물러서며 양손에 결인을 맺자 손에 황금빛 원신이 구슬처럼 찬란하게 맺히며 발사됐다. 아직 아버지처럼 원신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어신술을 강력하게 구사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게 발사된 정신력과 진기의 융합체는 화살처럼 맹렬하게 초휴에게 달려들었다.
쾅!
무시무시하고 거대한 굉음과 함께 원신 화살이 초휴의 천절지멸망아살권에 산산조각이 나자 하후무강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천절지멸망아살권의 위력은 하후무강도 잘 알고 있었다. 이 무공을 구사하는 사람은 적지 않아서 동제 군부의 많은 고수도 익히고 있었으니까. 하후무강은 이들이 망아살권을 시전하는 것을 직접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동제 무인들의 천절지멸망아살권은 눈앞의 사내만큼 위력적이지는 않았다. 대체 이자는 누구길래 자신에게 이토록 지독한 살의를 내뿜는 것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기가 죽을 하후무강은 아니었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빈틈은 있다. 그리고 저자의 무공이 공포스러울 정도로 강력한 건 사실이지만 하후씨의 어신술이 어디 망아살권 따위에 뒤처지는 무공이던가!
원신으로 만들어진 화살이 파괴되는 순간, 파열된 강기 속에서 강렬한 금색 빛줄기가 솟구쳐 나오더니 초휴의 미간을 향했다. 그것은 하후무강이 응집한 원신의 가장 순수한 결정체로, 상대의 몸에 침투하는 즉시 정신력을 제압해 꼭두각시처럼 부릴 수 있었다.
그러나 금색 빛줄기가 초휴의 몸에 닿으려는 순간, 초휴의 두 눈에서 무한한 심연이 펼쳐지며 천절지멸이혼대법이 시전됐다. 원신의 정신력 공격에 역시 정신력으로 맞대응한 것이다. 웅장하고 거대한 초휴의 정신력이 폭발하며 하후무강이 발사한 빛줄기를 처참하게 파괴하자 하후무강은 휘청거렸다. 빛줄기가 그의 정신력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타격을 입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후무강은 신음을 내뱉으며 뒷걸음질 쳤다. 눈동자에 당황하고 놀란 기색을 가득 담은 채로.
원신의 힘을 무효화 하는 실력이라면, 자신과 충분히 대등하게 겨룰 정도로 정신력이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는 뜻이었다. 하후무강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상대가 구사하는 망아살권의 위력을 보고 근접전에만 능한 인물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나 인제 보니 놀랍게도 정신력 계통의 무공까지 구사하는 고수가 아닌가.
하후무강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자기도 모르게 슬슬 뒷걸음질했다. 과거에는 자만이 하늘을 찔렀지만, 초휴에게 몇 번이나 처참하게 패한 뒤로는 비교적 유연해져서 위험한 상황에서는 결코 허세를 부리지 않았다.
하후세가의 어신술은 원신비법(元神秘法)에 익숙하지 않은 고수들에게 효과적인 것은 물론, 원신비법에 정통한 고수들에게도 나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었다. 해서 하후씨들은 자신들의 어신술이 어떤 상황에서도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그런 하후씨들이 까다롭게 여기는 상대가 있었다. 가령 지금 하후무강 앞에 있는 저 검은 장포의 사내 같은 존재가 그랬다. 상대의 정신력이 강해도, 어신술을 막아도 그런 거야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저 사내처럼 근접해서 살초를 쓰는데 능한 자들은, 일단 거리를 허용하면 하후씨에게는 악몽이 되는 것이다.
그 악몽이 하후무강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초휴는 사사건건 자신의 길을 가로막으며 성가시게 구는 하후무강을 절대로 살려줄 생각이 없었다. 초휴는 매 걸음을 수 장씩 성큼성큼 내디디며 거리를 좁혔다. 불광의 성결함과 마염의 사악한 힘이 동시에 치솟으며 초휴의 온몸을 감돌고 있었다. 상극의 힘이 뒤엉켰지만 기이하게도 그 조화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초휴가 인결을 짓자 그의 몸을 감돌던 불광과 마기가 하나로 뭉쳐지며 신비로운 형상이 탄생했다. 불상처럼 장엄했지만, 주위에는 흉악한 마염이 맹렬한 불길처럼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대금강신력(大金剛神力)· 마라금강상(魔羅金剛相)!
불광과 마기의 협공에 하후무강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뒤로 밀렸다. 어신술을 시전하고 싶었지만, 상대가 워낙 인정사정없이 몰아붙이는 바람에 펼칠 틈이 없었다. 하후무강은 금색 광망으로 자신의 온몸을 감쌌다. 공격이 아니라 방어를 위한 것이었다.
침투력이 매우 강한 어신술을 구사하는 그가 초휴와 맞붙자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방어에만 급급하게 되었으니, 그의 압박감이 얼마나 강력한지는 말할 필요가 없을 터였다. 사내가 자신을 압박하며 거리를 좁혀 오자 하후무강은 이를 악물며 증오심이 가득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마도와 불문의 무공을 동시에 연마하는 사람은 많지는 않아도 희귀할 정도는 아니었다. 특히 제육천마종이 그런 부류였다. 제육천마종의 거의 모든 제자는 마도와 불문의 무공을 동시에 연마했다.
해서 하후무강은 눈앞의 사내가 제육천마종의 제자일 거라고 단정했다. 저자가 낯설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제육천마종이 중원까지 나오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지금 눈앞의 사내가 어디 출신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 기세로 계속 당하다가는 아버지가 자신을 구하러 오기도 전에 큰 위험에 빠질지도 모르지 않는가.
하후무강은 가까스로 원신을 운용하며 초휴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힘이 워낙 미약했던 탓에 허공으로 튕겨 나가며 입에서 피를 뿜었다. 그러나 마치 일부러 그랬다는 듯, 하후무강은 거리가 벌어지자 두 손으로 신속하게 강기를 모아 거문고 형상을 만들었다. 그의 모든 정신력이 손으로 몰려 응집된 순간, 거문고의 현 소리가 폭발하듯 초휴의 귓전을 때렸다.
어혼금음(禦魂琴音)!
어혼금음은 강기로 거문고를 만드는 무공인데 거문고를 연주하는 힘은 정신력이었다. 거문고가 울리는 소리에는 흉악한 살기가 가득했다. 안타까운 것은 이 무공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무공이라는 사실이었다.
초휴는 즉시 인결을 변경해 마라법상을 호법금강(護法金剛)으로 전환했다. 그러자 강기로 만들어진 항마 공이가 번쩍하고 내리치며 하후무강의 거문고를 송두리째 파괴했다. 하후무강은 미처 막을 틈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입에서 피를 토했다. 깊은 내상 때문인지 울분으로 인한 것인지는 알 방법이 없었다.
그때 한쪽에서 사도려와 싸우던 하후진은 아들이 피를 토하는 광경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버지인 하후진은 아들의 실력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연배에서 용호방 상위 십 위권 내의 고수가 아니라면 아들을 쉽게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해서 마음을 푹 놓고 있었는데, 지금 자신의 예상과 달리 아들이 처참한 몰골로 생사의 갈림길에 선 상황이었다.
하후진은 아들을 돕기 위해 허겁지겁 사도려에게서 벗어나려고 했으나, 상대가 워낙 끈질기게 달라붙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후진은 시간이 흐를수록 애가 끓었다. 하후세가의 가주인 하후진은 자식 중에서 하후무강을 일찌감치 차기 후계자로 지목해놓은 상태였다. 물론 하후무강에게 그 지위를 감당할 만한 깜냥이 있고, 자리를 이어받을 때까지 목숨이 붙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아들이 생사의 갈림길에 섰으니 이보다 더 다급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후계자를 구해야 한다! 하후무강은 하후진의 남은 삶에 있어 가장 크고 소중한 희망이 아닌가. 자식이 하후무강 하나만 있는 건 아니었지만, 가주 자리를 이어받을 재능을 타고난 아들은 하후무강이 유일했다.
아들이 위험에 처하자 하후진은 두 눈을 부릅뜨고 사도려를 힐난했다.
“빌어먹을 무상마종! 이렇게 우리 하후씨에게 죽기 살기로 달려들어야겠는가?”
사도려는 가늘게 실눈을 뜨며 냉소했다.
“무상마종이 죽기 살기로 달려든다니? 애초에 마도와의 싸움에 끼어든 건 너희 하후씨가 아닌가? 아들이 죽는 꼴만은 도저히 못 보겠다는 건가? 그렇다면 좋아. 지금 당장 모든 하후씨들을 데리고 부옥산을 떠나겠다면 너를 놓아주지. 그렇게 하겠나?”
하후진은 침통한 얼굴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건 절대 안 될 일이었다. 오대 검파와 마도간의 충돌은 이미 정마대전으로 비화한 상황이다. 그리고 정마대전에 뛰어든 정파 쪽 세력은 모두 정파의 대표적인 종문들이다. 수수방관하는 건 천하맹(天下盟)과 같은 극히 일부 종문뿐이었다. 지금 멋대로 싸움을 멈추고 철수해 버리면 하후세가의 행동은 무슨 꼴이 될까? 정파를 저버린다는 선언이 될 게 뻔하지 않은가. 그런 결정을 내린다면 하후세가의 위상이 크게 흔들릴 것은 명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