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393)
393화 한스러운 죽음
가주라고는 해도 하후세가는 하후진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가주인 하후진은 최대한 가문 전체에 이익이 되는 쪽으로 결정을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었다. 가주가 자기 아들을 구하겠다고 하후세가의 명성을 땅에 떨어트리는 결정을 내리면 가문으로 복귀한 후에도 계속 가주 자리에 앉아 있는 불가능해질 터였다. 가문 전체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이 우선인 자는 가주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아들이 이대로 죽게 놔둘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 좋은 수가 있지!
하후진은 갑자기 아들 하후무강을 향해 크게 외쳤다.
“도망가라! 어서 부옥산을 떠나라!”
하후씨 일행은 철수할 수 없지만, 하후무강 한 사람은 가능하다. 하후무강은 아직 새파랗게 어린 신예일 뿐이니 하후씨 전체를 대표하지도 않았다. 싸우다가 도망치면 당장의 체면이야 구겨지겠지만, 아직 살날이 더 많은 청년이니 만회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터였다.
그러나 상대의 위력에 바짝 움츠린 하후무강은 아버지가 외치기도 전에 이미 내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눈앞의 사내는 힘과 정신력 등, 모든 면에서 하후무강을 압도하고 있었다. 하후무강이 백치가 아닌 이상 이런 자와 끝까지 싸우면 죽음뿐이라는 사실을 왜 모르겠는가. 하후무강은 추호도 망설이지 않고 등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초휴는 그의 등을 바라보며 ‘흥!’하고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우주의 행운이 깃들지 않는 한, 하후무강이 이곳을 살아서 빠져 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하후무강의 경지는 빠르게 향상되고 있긴 했으나 그것만으로 정확한 실력을 판단할 수는 없었다. 그의 실제 전투력은 섭동류에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고 깨달음의 깊이와 기본기 역시 형편없었다.
하후씨가 주로 연마하는 정신력을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려면 오랫동안 공들여 힘든 수련을 해야 한다. 하후무강은 육신을 강화하는 수련으로 빠르게 오기조원에 오를 수는 있었으나 정신력까지 오기조원에 걸맞은 수준으로 연마하지는 못했다. 지금 초휴는 신분을 감추느라 천마무와 쾌만구자결을 쓸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하후무강을 처리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이 없었다.
온몸을 둘러싼 거센 마기가 맹렬하게 휘몰아치며 초휴의 전신을 뒤덮자 두 눈도 적홍색으로 물들었다. 순식간에 망아살경에 진입한 초휴는 아까보다 더욱더 빨라진 몸놀림으로 하후무강에게 마구 공격을 퍼부었다. 초휴의 몸에 응집된 거친 마기와 살기가 쉬지 않고 하후무강을 타격하자 그는 입에서 왈칵왈칵 피를 토했다.
하지만 삶에 대한 하후무강의 집념은 대단했다. 그가 이를 악물며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자 기혈이 섞인 금색 빛살이 퍼지기 시작했다. 하후씨의 정혈 태우기는 다른 종문의 공법과는 달랐다. 정혈만 태우는 기존 공법과 달리, 하후씨는 정혈과 원기를 함께 태웠는데 소모가 크기는 했지만 위력은 훨씬 강력했다.
하후무강의 몸에서 퍼져 오른 빛살이 순식간에 일곱 줄기로 번지며 흩어지자, 어느 것이 하후무강의 실체인지 분간할 수가 없게 되었다. 심지어는 일곱 빛살이 내뿜는 숨결까지 모두 똑같지 않은가.
초휴는 급할 게 없었다. 그의 눈동자에서 잠시 살기가 사그라지더니 일월성신의 기이한 형상이 번갈아 가며 나타났다. 천자망기술을 최고 수준으로 시전한 것이다. 일곱 빛살의 실체가 세세한 부분 하나하나까지 낱낱이 초휴의 망막에 포착되었다.
하후무강이 시전한 무공의 이름은 화신술(化神術)로, 공격력이 전혀 없는 도주만을 위한 무공이었다. 무도종사의 고수라고 해도 이 무공에 걸리면 빛줄기의 안의 실체를 알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진짜를 찾을 때까지 광속 같은 속도로 하나하나 따라잡아 파괴하거나, 운에 맡기고 하나만 골라잡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하후무강의 상대는 천자망기술로 모든 걸 꿰뚫어 보는 초휴였다. 초휴는 천자망기술로 하후무강의 본체를 확인하고 무지막지한 살권을 날렸다. 초휴가 날린 살권이 채 도달하기도 전에 먼저 닿은 강력한 살기가 하후무강의 체내 경맥을 끊어 버리자, 그의 입에서는 또다시 피가 흘러나왔다.
도망치느라 정혈과 원신을 함께 태워 체력을 소비한 하후무강은 그러잖아도 대적하기 벅찬 상대와 근접전까지 치르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너무도 기가 막혔다. 자신의 마지막 속임수를 대체 저자가 어떻게 간파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기이했다. 운이 좋은 놈이라고 생각하기에 너무도 이상하지 않은가······.
‘아무리 운이 좋다고 해도 칠분의 일의 확률을 단번에 적중시키다니······.’
정말 하늘도 이 하후무강을 버리는 것일까?
그때 아들의 도주가 실패하는 걸 목격한 하후진이 절박한 표정으로 사도려를 향해 외쳤다.
“그만하자! 하후세가 전원을 데리고 이 정마대전에서 철수하겠다!”
하후진에게 아들이 하후무강 하나뿐인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하후무강은 어릴 때부터 자신이 직접 지도하며 키운 아들이었다. 지금 숨이 끊어질 판인 게 하후무강이 아니고 다른 아들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하후진은 자신의 가주 자리와 아들의 목숨 중, 어느 것을 택할지 좀 더 쉽게 저울질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후무강은 어릴 때부터 곁에 가까이 두고 키워 그 누구보다 정이 깊게 든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이 죽음의 위기에 몰리니, 저울질이고 나발이고 당장 아들이 죽을까 봐 애가 끓었다. 가문에서 자신에게 책임을 추궁한들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기껏해야 가주 자리에서 밀려나 한직으로 떨어지는 것이 고작 아니겠는가. 게다가 하후무강의 나이와 실력이면 장차 새로운 가주 자리에 오를 수 있을 터였다. 하후 가문의 동년배 중에서 하후무강을 능가하는 청년은 거의 없었으니까. 하후무강이 지금 목숨을 부지한다면 희망은 있다.
그러나 사도려는 하후진의 뒤늦은 요청에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이죽거렸다.
“지금 철수한다고? 에이, 너무 늦었어!”
하후진은 격렬하게 분노하며 고함을 질렀다.
“네 이놈! 무상마종 놈들을 모조리 다 죽여버릴 테다!”
사도려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대꾸했다.
“천하에 우리 무상마종을 죽이려는 놈이 한둘인 줄 아는가? 수많은 원수 중에 하후씨 하나가 더 추가되는 것뿐이야.”
사도려의 말은 진심이었다. 무상마종은 하후세가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무상마종의 목표는 곤륜마교를 재현하는 것이다. 그건 온 강호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목표였지만, 어쨌든 이들의 목표는 강호의 모든 이들을 적으로 돌리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첫 시작부터 강호 전체를 적으로 삼아야 하는 무상마종인데, 거기에 하후씨 하나 더 추가된다고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게다가 하후씨가 아무리 복수를 원한들, 정체를 감춘 채 여기저기 숨어다니는 무상마종을 찾아내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닐 터였다.
그들이 다투는 사이 하후무강은 한층 더 위급한 상황에 몰리고 있었다. 생사의 기로에 선 하후무강이 이를 악물며 복잡한 형태의 인결을 취했다. 그러자 그의 미간에 기이한 형태의 부호가 떠올랐고, 부호를 향해 몰려든 황금빛 원신이 응집되자 눈부신 광채가 피어나며 초휴를 뒤덮었다. 남은 원신을 모두 쥐어짠 최후의 일격으로 초휴의 정신력을 꺾으려는 시도였다. 설령 죽더라도 나 혼자만 죽지는 않겠다. 네놈의 정신을 철저히 파괴해주고 저승으로 가겠다!
하후무강이 온전할 때 이 공격을 썼다면 초휴도 어쩔 수 없이 물러서며 후일을 기약했을 것이다. 하후무강이 동귀어진(同歸於盡)하려는데 휘말릴 초휴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의 하후무강은 정혈을 태우고 원신의 힘을 바닥까지 소모한 상태였다. 이 상태에서 자폭한들 본전도 건지기 어려웠다.
초휴는 연못처럼 깊어진 눈동자로 천절지멸이혼대법을 극강의 상태로 끌어올려, 황금빛 원신의 빛살 속에서 하후무강의 정신력과 치열하게 맞붙었다. 두 사람의 정신력이 부딪치는 순간 하후무강은 ‘헉’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는 눈동자에 경악의 빛이 가득한 채로, 상대방의 정체를 드디어 깨달은 것이다.
정신력은 형태도 없고 질감도 없지만, 진기에 비해서는 고유의 특성이 있었다. 하후씨처럼 정신력을 중점적으로 수련하는 무인은 그 특성의 차이를 민감하게 포착했다. 하후무강은 예전에 신병대회에서 초휴와 정신력을 겨룬 경험이 있었다. 지금 다시 그의 정신력과 치열하게 맞붙는 순간 상대가 초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마인인 척 가장한 이놈의 정체는 초휴가 아닌가!
하후무강은 크게 소리 질러 초휴의 정체를 까발리고 싶었다. 정마대전이 한창인 이곳에서 초휴의 정체가 폭로되면, 그는 두 번 다시 정파의 편에 서지 못할 터였다.
초휴의 눈동자에서 칠흑 같은 어둠이 점점 더 깊어졌다. 이윽고 그는 천절지멸이혼대법의 정신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하후무강의 마지막 남은 정신력마저 처참하게 말살해버렸다. 은은한 폭음이 울리더니 하후무강은 외마디 신음을 내뱉으며 땅에 털썩 쓰러졌다. 전신의 일곱 구멍으로 피를 쏟으며, 영원히 숨을 멈춘 그의 눈동자에는 원통한 빛이 가득했다.
초휴의 지위도 명예도 한꺼번에 실추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한마디를 소리 높여 외치지 못한 원통함이리라.
하후무강은 그토록 하고 싶은 말을 삼킨 채, 초휴에게 살해당했다. 아들의 죽음을 지켜본 하후진은 광분하고 있었다. 청년기의 무명 시절을 거쳐 중년이 되어서야 빛을 보며 가주 자리에 오른 하후진은 욕망의 화신이었다.
원래 하후세가는 실력이 출중하고 하후씨의 혈통인 자라면 누구나 경쟁을 통해 가주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게 규칙이었다. 경쟁을 통해 최고의 실력자를 가문의 수장으로 뽑을 수 있는 매우 실용적인 승계 제도인 것이다. 그러나 하후진은 자신의 길에 방해가 되는 말 많은 장로들을 모두 제거하고, 오로지 자신의 핏줄로만 대통을 잇겠다는 거대한 야망을 품고 있었다, 하후무강의 죽음은 그 야망이 삽시간에 물거품이 됨을 의미했다.
물론 하후무강에게도 결점은 많았다. 하지만 이를 가릴 만큼 재능만은 출중했다. 하후세가의 모든 젊은 층을 압도하고도 남을 만큼의 대단한 재능이었다. 하후진의 다른 아들들이 하후무강보다 인품이 더 훌륭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무공 실력으로 모든 것이 판가름 나는 강호에서 실력 없는 인격이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폭주하기 시작한 하후진은 사도려에게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부었다. 어서 사도려를 해치우고 아들을 죽인 원수를 없애버리겠다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목적을 달성한 사도려는 깐죽거리며 그의 공격을 교묘하게 피했다. 기묘하기 이를 데 없는 무상마종의 무공은 이런 순간에 그 진가를 발휘했다.
살인 목표를 성공적으로 제거한 초휴는 자신의 정체를 여전히 숨긴 채, 두 번째 목표인 섭동류에게 시선을 옮겼다. 관중형당 소속인 초휴가 반드시 정파의 편에 서서 싸울 필요는 없었다. 설령 사소루 등이 속한 천하맹처럼 중립을 유지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조금 전, 이미 초휴의 신분으로 파산검파의 제자를 구하고 구상자를 죽였다. 여기서 더 신분을 노출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닐 것이다.
다만 섭동류를 죽이는 건 여전히 어려워 보였다. 그는 하후무강과 달리 매우 신중했고, 북연의 무도종사들 뒤에 바짝 붙어 있어서 좀처럼 죽일 기회를 잡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