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04)
404화 섭인룡의 등장
초휴는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한방을 차가운 시선으로 쏘아보며 손짓했다. 그러자 당아 등의 부하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사나운 살기를 온몸으로 내뿜었다. 인원은 수십 명에 불과했지만, 그들이 발하는 살기와 기세는 취의장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이들은 청룡회에 몸담았던 살수들이라 절대 평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런 자들이 초휴의 밑으로 들어오자 청룡회에 있을 때처럼 매일매일 살인을 하러 돌아다닐 필요가 없어 자신의 실력을 더욱 갈고닦을 수 있었다. 충분히 시간을 들여 수련한 탓에 이들의 경지는 전보다 한 단계씩 상승한 상태였다. 초휴가 이번에 데리고 나온 수하 중에서 가장 약한 사람의 경지가 내강경이었다.
“너희 취의장은 날이 갈수록 파렴치해지는군. 무고한 사람에게 악질적인 죄를 뒤집어씌우는 게 취의장이 말하는 정의인가? 정의는커녕 추잡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 아닌가.”
한방은 초휴와 관중형당의 무인들을 힐끗 보더니,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관중형당이 언제부터 우리 취의장의 일에 참견했느냐! 자신이 뭐라도 된 줄 아나 보지?”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범하게 대꾸했지만, 그는 내심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리 천인합일의 고수라도 초휴와 같은 무시무시한 실력자 앞에서는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초휴의 손에 죽은 천인합일의 고수가 한둘이 아닌 데다 방금 부딪혀본 것만으로도 마기가 몸에 흘러들어와 경상을 입었다. 제대로 맞붙으면 몇 초식이라도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한방은 일단은 철수할 마음을 먹었지만, 여봉선을 그냥 놓칠 수는 없어 섭인룡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끌 속셈이었다. 하지만 꾸물거릴 마음이 추호도 없었던 초휴는 즉시 손을 들어 올리며 수하들에게 명령했다.
“죽여라!”
과거 초휴는 취의장에 쫓기다가 북연을 떠났고, 지금은 섭동류와의 악연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막다른 골목인 바에야 이러쿵저러쿵 따질 거 없이 다 죽이는 게 나았다.
명령과 함께 당아 등의 부하들이 공격을 개시하자 초휴 역시 흉악한 마기를 거세게 일으키며 아비도삼도를 꺼내 들었다. 온갖 사악한 기운이 가득한 칼끝으로 맹렬히 내리치자 한방도 참수도를 들어 초휴의 칼을 막았다. 첫 번째 일격에 피를 토했고, 두 번째 일격에는 뒷걸음질을 쳤으며, 세 번째 일격에는 참수도가 산산이 조각났다. 초휴와 맞붙은 지 삼초식 만에 결판이 났으니 한방의 불안했던 기분이 사실이 된 것이다.
한방이 이토록 고전하는데 다른 취의장 무인들이라고 무사할 리가 없었다. 이들도 취의장에 정식으로 입단한 자들이라 실력이 약한 편이라고 할 수 없었다. 대부분 낭인 출신이었지만, 그래도 그중에서 추려진 정예들이었다. 하지만 청룡회의 살수 출신인 초휴의 부하들은 그들이 지금껏 상대했던 부류와는 차원이 달랐다. 살인 기술만을 전문적으로 연마한 이들을 취의장의 무인들이 어떻게 제대로 상대해내겠는가.
취의장이 위급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멀리서 위엄있는 고함이 들려왔다.
“멈춰라!”
초휴에게 사정없이 몰려 피를 토하던 한방의 얼굴에 희색이 스쳤다. 그러나 초휴는 공격을 멈추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뜨며 한 손으로 결인을 맺었다. 그러자 흉악한 마기가 휘몰아치며 한방의 몸 안에 흘러들어 그의 내상을 자극했다. 이어서 한방의 내장에서 돌연 피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초휴는 마기를 이용해 한방의 피를 뽑아내고 있었다. 한방은 공포에 떨며 자기 몸의 피가 초휴의 몸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그것은 바로 곤륜마교의 마공, 마혈대법이었다.
지난날 곤륜마교가 위세가 절정이었던 시기를 상기하면, 직계 대대로 전승된 무공의 위력이 대단할 것은 분명했다. 더욱이 좌망검려에서 마혈대법을 봉인하려고까지 했음을 생각하면, 이게 얼마나 두렵고 위력적인 마공인지를 가늠하고도 남을 터였다.
강력한 마기로 상대 몸속의 기혈을 빨아낸다는 것! 말로만 들어도 사악함의 극치가 아닌가. 상대가 상처라도 입은 상태라면 상세를 더욱 악화시키는 효과마저 가진 셈이다. 애당초 한정일이 이 마공을 초휴에게 주는 걸 망설일만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이 정도의 사악함이라면 마도 무공 전체를 통틀어도 손에 꼽힐 만했다.
아직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지만 분명히 들었을 텐데도 초휴가 공세를 멈추지 않자, 소리의 당사자는 다시금 노호성을 내질렀다. 동시에 강력한 강기가 덮쳐오니, 마치 광풍이 몰아치는 듯한 포효성을 일으키며 사방에 울려 퍼졌다. 이때, 초휴가 마혈대법으로 끌어낸 상대의 기혈이 그의 체내로 유입되는 게 아니라, 선혈이 응집되며 핏빛 장도(長刀)의 형상을 갖추더니 한방을 공격했다.
이에 한방이 일갈하며, 일신의 강기를 다시 한 곳에 응집시켜 방어막을 만들어 장도의 공격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핏빛 장도는 방어막에 가로막히기는커녕, 거침없이 한방의 심장을 관통하고 말았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선혈로 변해서 후드득 떨어지며 한방의 몸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머릿속으로만 가늠해왔던 화혈신도(化血神刀)의 가공할 위력이 현실에서 입증된 순간이었다.
만약 이 무공을 자신의 기혈로 시전한다면 그건 목숨을 내건 살초(殺招)가 된다. 자신의 기혈이 강할수록 화혈신도의 위력이 강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상대의 기혈로 시전할 경우, 화혈신도는 상대의 강기 방어를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신묘함을 발휘하게 된다. 마혈대법으로 끌어낸 기혈이 상대의 강기와 근원이 같은지라, 화혈신도로 응집된 후에도 역시 상대 신체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화혈신도와 강기는 아무런 이질감 없이 섞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한방이 자신의 기혈로 만들어진 화혈신도를 막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공격을 강행하여 직접 혈기 도세를 파괴하는 것 외에는 방어할 방법이 없었다는 얘기다. 이처럼 한방이 속절없이 죽자, 조금 전 포효성을 터뜨린 자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의 분노를 대변하는 것처럼 태산을 방불케 할 기세로 장인(掌印)이 덮쳐오니, 그 막강한 강기의 위력에 주위의 천지 원기가 찢겨 갈라질 정도였다.
이에 상대가 누구인지를 눈치챈 초휴는 즉시 퇴각할 태세를 갖췄다. 일단은 피하고 봐야 했다. 지금 천인합일 무사를 죽이긴 했지만, 무도종사는 이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이다. 두 경지의 간극은 천양지차라고 봐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장이 뒤덮은 영향권은 실로 광대했다. 마치 건곤을 한 손에 움켜쥐기라도 한 듯 일대의 공간을 봉쇄함으로써, 순식간에 천지 원기의 농도가 조밀해지며 진득하게 변한 것이다.
이건 섭인룡이 건곤능운수를 시전한 때문임이 분명했다.
‘한 손만으로 건곤을 장악하여 판세를 뒤집다니!’
피하려 해도 피할 수가 없자 초휴는 망아살경으로 응수했다. 두 눈이 벌겋게 물든 그의 주위로 마기가 섞인 강기가 응집되더니, 살기의 힘까지 가세하며 아비도삼도가 발휘되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구중천을 뚫을 기세로 솟구친 마기에는 찬란한 위엄과 신성함마저 깃들어 있었다.
이번 일도에는 웬만한 천인합일 무사에게 치명상을 입히고도 남을 위력이 실려 있었다. 하지만 무도종사인 섭인룡이 시전한 건곤능운수 앞에서 도세는 맥도 못 추고 흩어졌다. 초휴는 위축되는 대신 지권인으로 방어망을 구축함으로써, 전혀 기세를 늦추지 않고 덮쳐오는 상대의 일장을 막아내려 했다. 하지만 사방 천지를 망라한 지권인의 영역도 한순간에 무너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초휴는 여전히 결연한 표정으로 독고인을 출수했다. 그의 기세가 철옹성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대금강신력 특유의 내력이 극한까지 강도를 더하며, 그의 일신에서 금빛 광채가 번쩍하며 터져 나왔다. 하지만 ‘콰광’하는 굉음과 함께 건곤능운수에 직격당한 독고인의 방어막은 순식간에 파괴되었다. 초휴는 십여 장도 넘게 튕겨 나가 땅속에 메다 꽂히고 나서야 몸을 멈출 수 있었다.
깊게 팬 구덩이에서 솟구쳐 오른 초휴의 안색은 다소 창백해 보였다. 부상은 면했으나, 빼도 박도 못하는 이 난감한 상황을 어찌 수습하면 좋은가. 초휴는 지금 처음으로 무도종사급 막강 고수와 대결을 하는 것이다. 본인이 가진 모든 패를 총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상대의 일장을 가까스로 막는 결과에 그쳤다. 이로써 무도종사, 아니 더 나아가 섭인룡의 막강함을 여실히 경험한 셈이었다.
이윽고 취의장 무리 속에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섭인룡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뒤에는 섭동류를 비롯한 취의장 고수 여러 명이 따르고 있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한방의 시신을 본 순간, 섭인룡의 낯빛은 먹물이 떨어질 것처럼 어둡게 가라앉았다. 사실 섭인룡은 웬만해서는 희로애락을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취의장이 막대한 타격을 입은 걸 생각하니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맹원룡은 그의 의형제일 뿐 아니라 취의장의 문객 관리를 책임진 객경 총관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의형제 하나 죽었기로 딱히 대수로울 건 없었다. 의형제가 그 하나뿐인 것도 아니고, 산 자이건 죽은 자이건 간에 널린 게 의형제였으니까. 그리고 의형제가 구름처럼 많아도, 그중 자신에게 실질적인 이득을 가져다줄 자들만 챙기면 된다는 게 섭인룡의 생각이었다. 그들 모두에게 애정을 가진 게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맹인룡은 쓸 만한 인물이었다. 실력이 고강한 건 물론이지만, 무엇보다도 객경 총관으로서의 소임을 훌륭히 잘 해왔다. 그런 맹원룡이 죽었으니, 어디서 그만한 인재를 또 찾아 일을 맡긴단 말인가. 한방만 해도 그렇다. 취의장의 손꼽히던 고수가 비명횡사했으니, 졸지에 천인합일 무사를 둘씩이나 잃은 게 아닌가. 취의장으로서는 손실이 막대한 판이었다.
한동안 초휴를 위아래로 훑어본 섭동류는 결국 이런 한마디를 내뱉었다.
“초휴, 이 간덩이가 부은 새끼 같으니!”
자기 아들 섭동류가 어느 정도의 실력과 심계를 가졌는지 아비로서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 아들을 초휴는 수차례 물 먹였다. 그것도 배가 불러서 터질 정도로 말이다. 순순히 인정하는 게 분하긴 해도, 초휴 저 자식이 지금 강호의 젊은 연배 중, 출중한 재목인 건 분명했다. 이처럼 섭인룡이 초휴에 대해 가늠하는 동안, 초휴 역시 당돌하다 싶을 정도로 무도종사인 섭인룡을 빤히 쳐다보며 나름대로 파악하기에 바빴다.
일단 외양으로 보자면 반듯하고 강직한 용모에다 금색 도포 차림, 그리고 턱 아래 짧은 수염을 기른 모습에서 기품 있는 위엄이 느껴졌다. 한마디로 어디다 세워놓아도 명망 높고 기세 당당한 무림의 대선배로 보이기에 부족함이 없는 외모였다. 하지만 겉모습이 그 사람의 모든 걸 말해 주진 않는다. 한 사람의 외모는 그가 어떤 마음을 가졌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옛말도 있다. 물론 이런 이론이 전혀 터무니없는 건 아니지만, 더러는 맞지 않는 때도 있는 법이다. 이 넓은 강호에 초광가 같은 진정한 협객은 극소수지만, 위군자(僞君子)들은 넘쳐났으니까.
섭인룡도 그중 하나였다. 심지어 자신이 진정한 협의지사(俠義之士)인 줄 착각하는 중증의 위군자였다. 애초에 다섯 사람이 의기투합해 결성했던 취의장이 아닌가. 그러나 지금은 섭인룡 홀로 남아 모든 걸 독식하는 중이다. 앞서간 동지들의 후손이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근래 들어 북연에서 취의장의 명성은 하루가 다르게 상승하는 중이다. 길 가던 낭인 무사들한테도 대가 없이 도움의 손길을 뻗치면서, 정작 동지들의 후예는 나 몰라라 한다니······. 섭인룡이 군자의 가면을 쓴 채, 벌여온 짓거리들을 누가 다 속속들이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