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05)
405화 지원군의 등장
눈에 힘을 주며 섭인룡 부자를 번갈아 쳐다본 초휴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
“간덩이가 어떻다고요? 내가 이리된 건, 내 간덩이 탓이 아니고 내가 편하게 지내는 꼴을 보지 못하는 자들 때문입니다. 섭동류, 천하검종대회 때 나는 분명 너에게 나를 쓰러뜨릴 기회를 주었다. 너한테 그럴 능력이 없어 실패했으면 그만이지, 왜 애먼 남 탓이냐? 나한테도 그렇지만, 여 형과도 정면승부로는 승산이 안 보이니 쥐새끼처럼 뒤에서 구린 수작을 꾸미다니, 참으로 싹수가 노랗구나!”
그러나 섭동류는 초휴의 비아냥에 위축될 인물이 아닌지라 웃으며 받아쳤다.
“초휴, 이번에 취의장이 여봉선을 잡으려는 건 공분(公憤)에 의한 것일 뿐, 내 사사로운 원한 때문이 아니다. 여봉선, 저자가 제대로 미쳤는지 유가(劉家)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아놓고도 은혜를 원수로 갚았단 말이다. 이런 참극이 북연 땅에서 벌어졌는데, 어찌 우리 취의장이 구경만 할 수 있겠는가.”
“흥! 여 형이 유가를 어쨌다고? 웃기지 마라. 대체 뭘 근거로 취의장이 그런 황당한 소리를 떠들어대는 것이냐? 사건조사로 치면 관중형당이 최고이니, 차라리 우리한테 맡기지 그랬나?”
“착각하지 마라. 관중형당은 사건을 조사할 뿐 판결까지 내릴 권한은 없다. 당신들은 일을 맡을 때나 관중형당 강호 포두일 뿐, 그렇지 않을 시는 아무것도 아니야. 북연의 일은 북연 자체에서 알아서 한다. 그러니 관중형당이 개입할 생각은 접으란 말이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섭인룡이 아들을 만류하고 나섰다.
“그만하면 되었다. 더 말을 섞을 가치도 없으니 곧장 본때를 보여주는 게 낫겠다.”
이에 초휴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섭 장주님, 당당한 무도종사께서 저 같은 새카만 후배한테 공공연히 손을 대려 하십니까? 이건 지나친 처사가 아닌지요? 선배가 후배를 괴롭힌다고 강호인들이 흉볼까 봐 염려됩니다만. 게다가 저한테 손을 대신 순간, 관중형당의 문책을 감당하셔야 할 텐데요?”
초휴의 항변에 섭인룡이 가슴을 쭉 펴더니 초연히 답했다.
“선배가 후배를 괴롭혀? 내가 출수한 건 취의장 제자를 죽인 미친놈을 때려잡고자 함이다. 누가 감히 그것을 두고 괴롭힌다고 말한다는 것이냐? 관중형당도 그렇지. 초광가라도 있다면야 거협의 체면을 한 번쯤은 봐줄 수도 있겠지. 그러나 관사우는 그런 배려를 받을 자격이 없다! 네놈이 얌전히 관중 땅에 틀어박혀 있었으면 좋았을 거 아니냐. 이렇게 멋대로 제 발로 뛰쳐나와 취의장의 제자를 죽였으니 살아 돌아갈 생각은 말아야 할 것이다! 오늘 내가 네놈을 혼내준 것에 대해 관사우가 어찌 반응할지는 두고 보겠다. 흥, 감히 취의장에 따지러 올 용기나 있을지 모르겠군.”
아무 배경이 없는 섭인룡이 수십년에 걸쳐 취의장의 근간을 다지는 데 있어 그의 수완이 주효했겠지만, 실력 또한 큰 역할을 했다. 심포진, 독고이 등과 같은 진화련신급 고수들이 초휴 뒤에 버티고 있다면야 섭인룡도 그들의 체면을 당연히 생각했을 터였다. 하지만 관중형당의 체면 정도라면 너끈히 밟아줄 수 있을 터. 관사우가 인정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그는 그런 배려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게 지금 섭인룡의 생각이었다.
이를 지켜만 보던 여봉선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초 형, 아무래도 내가 초 형까지 난처하게 만든 듯싶네.”
여봉선이 초휴에게 도움을 청하겠다고 생각할 때만 해도, 섭인룡과 같은 무도종사까지 나설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일이 이리될 줄 알았더라면 여봉선의 성격상 자기 혼자 맞서다 죽지, 절대 초휴한테까지 구조 요청을 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강호 무사 대부분에게 있어서 무도종사는 감히 범접하기조차 어려운 존재다. 여봉선이 천인합일 무사를 상대할 때야 과감히 승부수를 던질 용기가 있었다. 그러나 무도종사급 고수와 대적하려니, 호기롭기로 유명한 그로서도 절망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초휴는 평온한 모습을 보이며 전혀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어째서일까? 물론 그에게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다.
섭인룡이 막 출수에 들어가려는 찰라, 어디선가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관사우가 배려받을 자격이 없다면 이 노부는 어떤가?”
좌중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쏠렸다. 몸에 걸친 장포도, 허리에 찬 검도 하나같이 먹색 일색인 노인이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거리를 십여 장씩 좁히고 있는 게 아닌가. 그 놀라운 기세로 봐서 전형적인 무도종사급 고수임이 분명했다. 그 뒤로는 약관의 청년 한 사람이 따르고 있었다. 청년은 외강경에 불과했지만, 그 비범한 기세로 보건대 결코 쉬이 다룰 만한 상대가 아님이 분명했다.
여봉선이 어리둥절해서 초휴에게 전음으로 물었다.
“초 형, 혹시 자네가 데려온 고수인가?”
“맞아. 내가 말했었지. 제발 자네의 적을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말이네. 강호에서 흔히들 말하는 선배가 후배를 괴롭히면 안 된다는 건 죄다 입에 발린 소리야. 실력이 모든 걸 좌우하는 험난한 강호에서 이런 금기사항을 착실히 지키는 사람이 얼마나 될 거 같나? 매번 누가 옆에서 대기하다가 도와줄 것도 아닌데, 짓밟히기 싫으면 내 살길은 직접 궁리를 해둬야지. 아무래도 이번에 섭인룡이 나설 것 같아서 나도 미리 준비해두었네. 아니나 다를까. 내 예상이 맞았군.”
여봉선이 초휴의 말을 얼마나 알아들었는지는 몰라도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초휴와 여봉선이 절친한 벗으로 보일지 몰라도, 사실 두 사람의 성격은 판이하였다. 이처럼 기질적으로 다른 두 사람이 어쩌다 이리 친하게 되었는지는 하늘만이 알 일이다.
여봉선의 성격은 좋게 말해서 유유자적 소탈한 것이고 대놓고 말하자면 충동적이고 단순하다고 봐야 했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도주하면서도 그에게는 별다른 계획이 없었다. 순전히 자신의 실력에만 의지해서 돌파할 뿐, 딱히 어디로 어떻게 도주하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혹자는 이것을 대범하고 용감하다고 말할지 몰라도, 매사에 그의 처사가 두서없이 이루어지는 게 사실이었다.
반면에 초휴는 언제나 먼저 생각한 후, 행동에 옮기는 게 철칙이었다. 머리 굴리는 쪽으로는 단연 초휴가 여봉선보다 우위인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관점으로는 이마저도 두 사람이 환상의 조합을 이루는 듯 보였다. 초휴가 큰 그림을 그린 후,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면 여봉선이 이를 과감히 실행하는 상호보완적 방식이 나름 효과적이었으니 말이다.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인물이 출현하자 섭인룡이 불쾌감을 드러냈다.
“혹시 ‘구리검(九離劍)’ 성천요(盛天堯)? 당신이 여기 와서 뭘 하겠다는 거요? 불난 데 부채질이라도 할 셈인가? 내가 알기로 당신은 관중형당이나 초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으로 아는데?”
이 천군만마와도 같은 초휴의 지원군은 작금의 북연에서 명성이 자자한 ‘구리검’ 성천요라는 인물이었다. 그 위명은 섭인룡도 일찍이 알고 있었지만 이렇다 할 교분은 없었다. 만약 성천요가 흔하디흔한 낭인 무사 중 하나일 뿐이라면 섭인룡이 그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자그마치 인화육방의 일원인 취의장의 장주가 일개 낭인 출신을 염두엔들 두겠는가. 관사우의 체면 따위도 밟아 뭉개버리겠다고 장담하는 판국에 성천요가 대수겠는가.
그러나 문제의 관건은 성천요의 배경이 간단하지 않다는 데 있었다. 그는 북연 황실의 초빙으로 봉직 중인 공봉(供奉)의 신분이기 때문이다. 오직 북연 황족에게만 충성을 다하는 신분, 다시 말해 북연 황실이 들고 있는 칼자루의 칼날과도 같은 인물로, 자그마치 북연 조정 전체를 등에 업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섭인룡의 입장에서 관중형당이라는 단일 조직은 무시할 수 있을지 몰라도 북연 조정이라면 얘기는 또 달라지는 것이다.
자고로 무림과 조정은 대립적 관계일 수밖에 없다. 무림세력은 조정의 속박 아래 놓이길 거부하고, 조정은 무림세력의 그런 태도를 용납할 마음이 없으니, 양측은 계속 긴장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느 쪽도 상대방을 완전히 굴복시키긴 어려우니, 어느샌가 양측 간에는 힘의 균형을 바탕으로 한 암묵적 계약이 성립되었다. 즉, 무림세력이 과도한 팽창을 시도해서 조정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는 한, 조정도 무림세력 간의 출수를 눈감아주는 것이다.
같은 이치로, 조정이 불가와 도가의 전승을 인정하고 무림세력을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무림세력도 조정이 제시하는 기본적인 규칙들을 지키려고 했다. 따라서 무림세력이 조정의 관할권 아래 출수를 감행할 때는 수위를 조절하는데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물건이야 맘껏 때려 부수어도 괜찮을 수 있다. 그러나 조정이 다스리는 백성들에게까지 위해를 가한다면, 이는 곧 규칙 위반에 해당하고 조정의 개입을 부를 테니 어쩔 수가 없었다.
물론 조정과 무림이 늘 대립각만 세우는 건 아니다. 더러는 손을 잡기도 했는데, 일례로 지난날 동제에 맞설 때가 그랬다. 동제의 세력이 절정에 달했던 당시, 거침없이 중원의 풍요로운 땅을 독식하고 만천하로 세력을 확장해나가면서, 심지어 북연 및 서초와 동시에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북연이 승승장구하던 동제를 제압한 데 이어서, 동제의 속국이었던 위나라를 빼앗아 위군으로 복속시킬 수 있었던 데에는 무림의 힘이 컸다. 당시 연무제(燕武帝) 항륭(項隆)이 호기롭게도 북연 무림세력과 연합하여 동제를 협공해서 대승을 거둔 것이다.
그 일을 계기로 북연은 작금의 천하를 나눠 가진 삼국 중 무림세력과의 관계가 가장 긴밀한 나라가 되었다. 무림에서 객경 및 공봉 등을 초빙하는 것도 진작 명문화된 거나 다름없었다. 성천요가 황실을 위해 봉직해온 지도 어언 십년이 넘었다. 인맥도 매우 넓어서 북연 땅에서라면 성천요의 이름 석 자를 들이밀어 안 되는 일이 없었으니, 관사우보다 더 대단한 존재임은 분명했다.
물론, 이는 성천요가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신분일 뿐이었다. 매경령이 초휴에게 귀띔해 준 바에 따르면 성천요는 은마권의 무도종사로서, 왕년의 마도 대파였던 구마검종(九魔劍宗)의 유일한 후계자라고 했다. 다시 말해 ‘구리검’ 성천요는 구마검종 후예라는 신분을 감추기 위한 가림막인 셈이다.
섭인룡의 연이은 질문에 성천요는 냉랭히 답했다.
“내가 초휴와는 무관하나 관중형당과는 인연이 있소. 지난날 내가 넘치는 혈기를 어쩌지 못하고 감히 손댈 수 없는 자를 건드린 적이 있었지. 당시 초광가 거협께서 구해주지 않으셨더라면 오늘의 나도, 내 실력도 존재하지 않았을 거요. 당연히 보은하려고 마음먹었으나, 관중형당이 이미 입지를 굳건히 다진 뒤라서 딱히 거협의 은혜에 보답할 길을 찾지 못했었소. 그러다가 오늘 비로소 기회를 잡은 셈이오. 관중형당에서 귀하게 여기는 젊은 인재가 곤경에 빠졌는데, 어찌 좌시할 수 있겠소? 섭인룡, 당신이 어떤 위인인지는 나도 잘 알지. 지난날 당신이 저질렀던 그 더럽고 냄새나는 짓거리들을 내가 모를 것 같은가 말이오? 그러나 지금도 그 버릇 개 못 주고 이처럼 선배가 돼서 후배를 괴롭히는 치졸한 짓을 저지를 줄은 몰랐구려. 나이를 먹어갈수록 가관이니 딱하오. 내가 장담하지. 당신은 오늘 여기서 관중형당 사람의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못할 거요.”
섭인룡의 표정이 떫은 감이라도 씹은 듯이 변했다. 이 일에 성천요, 저 망할 늙은이가 끼어들 줄을 어찌 알았으랴. 성천요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야 할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초광가가 한창 강호에서 활약하던 시절, 그에게 신세 진 이가 이 넓은 강호에 셀 수조차 없을 만큼 차고도 넘쳤던 건 사실이다. 그중 고작 십 분지 일만 초광가의 온정을 기억한다 해도 이건 보통 일이 아닌 거다. 생각지도 못했던 성천요가 뜬금없이 은혜를 갚겠다며 바로 지금 끼어들고 있는 게 아닌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