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07)
407화 제안을 받다
“성천요, 이처럼 꽉 막히게 구니 난들 어쩔 도리가 없구려. 오늘 그대의 구리검(九離劍)이 얼마나 위력적인지, 과연 황실의 초빙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 한번 알아보겠소!”
말을 끝맺기도 전에 그가 일장을 내지르니, 허공으로 발출된 강기가 족히 수십 장 크기의 거대한 장인(掌印)으로 응집되어 건곤(乾坤)을 장악했다. 그 장인에 하늘도 뒤덮을 위력이 실려 있었으나, 성천요는 침착하게 수중의 먹색 장검을 빼 들었다. 검집만 먹색이 아니라, 검신도 먹처럼 새까만 건 매한가지였다.
그의 일검이 칠흑 같은 허공을 가르자 주위 밤하늘이 검 속으로 녹아들기라도 한 양, 검의 궤적을 따라 검은빛을 잃었다. 이 강력한 검기와 정면으로 충돌하자, 한 차례 굉음과 함께 건곤능운수는 무력화되었다. 이에 개의치 않고 섭인룡이 연이어 양손을 휘두르자 일신에 어린 천지의 힘이 끊임없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응집되더니, 성천요를 그 한가운데로 몰아넣고 숨통을 죄어왔다.
이에 성천요의 검신에서 악귀의 울부짖음과 함께 무수한 검기를 동반한 검은 연무가 터져 나왔다. 그 서슬 퍼런 연무는 휘몰아치는 상대의 강기를 파괴하더니, 거대한 검강으로 응집되어 섭인룡을 향해 덮쳐갔다. 성천요는 왕년의 마도 대파였던 구마검종(九魔劍宗)의 후예인 동시에 여러 종류의 상고 검법을 의도치 않게 손에 넣은 행운아이기도 했다.
이를 통달해서, 한데 융합시킨 끝에 아홉 개의 강력한 검초로 재탄생시켰으니, 그 변화무쌍함이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게 바로 그가 ‘구리검(九離劍)’이라는 별호를 얻게 된 연유이기도 했다. 해서 성천요는 굳이 비장의 무기인 마검(魔劍)까지 동원하지 않고서도 본연의 실력을 구할 가까이 발휘하는 중이었다.
섭인룡도 이에 질세라 건곤능운수를 취하더니 막강한 힘으로 성천요의 검강을 움켜잡았다. 그 힘이 검강을 파괴한 데 이어서 종잡을 수 없이 기이하게 변하더니 검강의 궤적을 타고 성천요를 공격했다. 성천요가 즉시 뒤로 몸을 빼며 장검을 휘두르자, 검기가 무수한 변환을 일으키며 발출되어 사방팔방에서 섭인룡을 옥죄어왔다.
이 두 무도종사의 싸움은 갈수록 점입가경이 되어 승부를 가늠하기가 힘들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섭인룡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해갔다. 강호에 당당히 이름 석 자를 떨친 거물로서, 섭인룡은 자기 실력을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 비장의 패까지 꺼내서 전력을 다하면 성천요를 이길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승패를 떠나서, 광기마저 내보이며 기를 쓰고 초휴를 보호하려 드는 성천요의 태도였다.
이처럼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상대라면 싸움이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갈 소지가 다분했다. 섭인룡은 취의장의 장주이자, 취의장 내 유일한 무도종사가 아닌가. 만에 하나 그가 무리한 싸움을 하다가 부상해 한동안 폐관을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취의장에 심각한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 그 소식이 퍼져나간 순간, 취의장을 적대시해왔던 자들이 발호해서 어떤 짓을 벌일지 모를 일이니까.
이에 섭인룡의 머릿속은 복잡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부상의 위험까지 감수하며 전력을 다해 성천요를 꺾은 후 초휴를 죽일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작파하고 후일을 기약할 것인가. 그런 와중에도 격렬한 교전은 일각 동안을 더 이어졌다. 마침내 섭인룡은 출수를 멈추고 성큼 뒤로 물러나더니 침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성천요, 아무리 초광가에게 입은 은혜가 가볍지 않아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죽을힘을 다해 저 관중형당 애송이를 보호할 만큼 무겁단 말이오?”
섭인룡은 스스로 물러남으로써 태도 표명을 분명히 한 셈이었다. 섭인룡의 질문에 성천요가 무표정하게 답했다.
“섭인룡, 당신은 워낙 생각이 많은 사람이니 내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지도 모르지. 계속 싸우겠다면 노부는 얼마든지 상대해주겠소!”
결국, 섭인룡은 초휴와 여봉선을 째려보더니 신경질적인 손짓과 함께 명령을 내렸다.
“가자!”
하지만 취의장 무사들의 표정에는 불복 의사가 역력했다. 취의장의 귀한 자산인 천인합일의 고수를 둘씩이나 잃었는데 이대로 물러난다니······. 그리고 참담한 심경으로 말하자면 섭동류는 이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았다.
‘하늘 같은 부친이 친히 나섰음에도 초휴를 놓아줄 수밖에 없다니, 이런 엿 같은 상황이 어디 또 있단 말인가!’
하지만 섭동류가 다른 취의장 무사들보다는 이성적이었다. 작금의 취의장이 부친 한 사람의 역량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뚜렷이 알고 있었다. 막말로 맹원룡과 한방은 죽어도 상관없지만, 부친의 신상에 탈이 나는 일만은 결단코 피해야 했다. 두고두고 위협이 될 초휴를 당장 죽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그렇다고 부친이 위험한 대가를 치르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이윽고 섭인룡 일행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항려가 항충에게 코웃음을 쳐 보였다. 그러고는 굳은 표정으로 성천요에게 눈길을 돌리며 으름장을 놨다.
“성 선배, 황실 암투에 휘말린 사람치고 줄 잘못 서고도 평안한 종말을 맞은 자는 없었소이다. 찬찬히 숙고해보시고 신중한 결정 내리길 바라오.”
“그 점에 대해서라면 이황자께서 심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성천요의 담담한 반응에 항려는 코웃음을 쳤다. 적어도 지금 자기 눈에 비친 성천요의 모습은 이미 항충 편에 선 거나 다름없어 보였다. 잠시 후 항려의 무리가 완전히 사라진 걸 확인한 초휴가 성천요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성 선배님, 구명지은(救命之恩)에 감사드립니다. 이 하해와 같은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요.”
그러자 성천요는 초휴에게 의미심장한 눈짓을 보내더니 웃으며 말했다.
“지난날 초 거협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에 보답했을 뿐이니, 그리 고마워할 것까진 없다네.”
“관중형당으로 복귀하고 나면 이 일을 당주께 꼭 말씀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두 사람은 얼핏 상투적인 인사말을 주고받는 듯했으나, 실제로 상대가 하려는 말의 의미를 뻔히 알 수 있었다. 성천요가 한 말에는 ‘나는 매경령의 부탁으로 자네를 구하러 온 것이니, 다 같은 은마권 동료끼리 고마워할 필요 없다’라는 뜻이 있었다. 그리고 초휴의 말인즉슨, 관중형당으로 복귀한 후 오늘 일의 전말을 꼭 매경령에게 보고할 것이며, 훗날, 이 구명지은(救命之恩)은 반드시 갚겠다는 소리였다.
초휴는 다음으로 황자 항충에게 인사를 올렸다.
“아까 소인을 위해 의롭게 나서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물론 항충이 초휴를 도운 것은 성천요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임을 누가 모를까. 하지만 그가 초휴를 위해 나서준 건 사실이니, 일단 이에 대한 감사는 표하고 봐야 했다. 그러자 항충이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초 대인, 겸손도 하시오. 사실 나도 취의장의 작태를 더는 보고 있기가 역겹던 참이었소. 다만 내가 황자의 신분인 탓에, 강호의 일에 소신 있게 견해를 밝힐 수 없는 것이 문제였지.”
여기서 잠시 뜸을 들이는가 싶더니 항충이 돌연 초휴와 여봉선을 번갈아 쳐다보며 뜻밖의 말을 꺼냈다.
“초 대인, 그리고 여 소협! 두 분 다 지금 강호의 보기 드문 인재임을 알고 있소. 하지만 이쯤 해서 노는 물을 바꿔볼 의향은 없으시오? 물론 지금 초 대인은 당당한 관서 장형관이고 훗날 당주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겠지. 그러나 관중형당 현임 당주의 나이가 아직 그리 많지 않다고 알고 있소. 그러니 그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그대가 치고 올라갈 날도 그만큼 요원한 것 아니겠소? 내 휘하로 들어온다면 그대의 위상에 걸맞은 자리를 조정에 마련해줄 수 있는데 그대 생각은 어떠시오? 그리고 여 소협, 대놓고 말하는 걸 용서해 주시구려. 요행히도 이번 난관은 넘겼지만, 북연에서 취의장의 인맥은 실로 대단하오. 그러니 그대가 북연에 있는 한, 내내 위험이 뒤따를 거외다. 장담하건대, 지금 내 밑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취의장이 다시는 그대를 건드리지 못하게 막아줄 수 있소. 아니, 내 휘하의 모든 무사와 객경의 관리를 죄다 그대에게 맡기겠소! 내 비록 황실 출신이긴 하나, 늘 초 대인이나 여 소협과 같이 강호를 주유하며 활약하는 젊은 준걸들을 흠모해왔소. 내가 워낙 허물없이 소탈한 성격이다 보니 섭동류가 나와 잘해보려고 질척대기도 했었소만, 내가 그자를 밀어냈지. 뱃속에 간계가 가득한 소인배를 감당하려니 너무 피곤해서 말이오. 각설하고, 내 터놓고 말하리다. 내가 황위에 오르는 데 두 분이 힘을 보태주기만 한다면, 훗날 북연 강산에 그대들의 몫도 섭섭잖게 있게 될 것이오! 물론 내 제안을 잠꼬대로 치부하고 거절해도 아무 상관 없소. 절대 개의치 않을 거요. 부황의 그 많은 자손 중 나는 총애나 좀 받을 뿐, 세력 면에서 최약체인 건 사실이니까.”
항충은 초휴와 여봉선을 떠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영입 의사를 밝혔다. 초휴의 현 신분과 지위로 볼 때, 자기 밑에 들어와 명령을 받들라고 말하기엔 뭣하니, 북연 조정에 관직을 마련해주마고 한 것이다. 여봉선의 경우, 강호의 명성은 초휴만 못해도 맹원룡을 참살한 전적만으로도 용호방 십 위권에 오를 만한 능력을 입증해 보인 인물이 아닌가.
그에게 자신의 모든 수하를 내맡기겠다고 한 것은 그만큼 여봉선을 깊이 신뢰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간 여봉선이 추격에 쫓기며 대처한 과정만 봐도 그 소임을 능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여봉선이 자기 밑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절대 배신 따위는 하지 않으리라는 믿음도 있었다. 해서 지금 이 두 사람을 대하는 항충의 태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고 절실했다.
사실 초휴의 눈에도 항충이 여느 황자들과는 다른 면모가 있음이 보였다. 황족임에도 호방하고 꾸밈없는 성격에다, 심지어 말끝마다 자기를 ‘본왕(本王)’이 아닌 ‘나’로 칭하는 소탈함마저 보였다. 항충이 태어난 당시 받은 봉호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게 무난한 축에 드는 헌왕(獻王)이었다. 그런데 열 살이 넘더니 갈수록 외양이 부황 항륭의 젊은 시절 모습과 판박이로 닮아가며 총애도 깊어졌고, 급기야 봉호가 연왕(燕王)으로 바뀌기에 이르렀다. 하사받은 영지도 북연 도성 옆의 연산군(燕山君) 한가운데 있으니, 그 총애의 깊이를 알 만했다.
필시 지금 항충의 성격은 어린 시절 성장 환경과도 관련 있을 터였다. 사실 항륭과 닮은 외양이 나타나기 전까지의 그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었다. 서열 열세 번째 황자에게 황위가 돌아갈 가능성이 희박하니, 다들 이 어린 왕야를 한량처럼 술렁술렁 키워냈다. 임기응변이나 권모술수 등 제왕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처세술도 거의 가르치지 않은 건 물론이었다.
초휴와 여봉선이 눈짓을 교환하더니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초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지난날 청룡회를 배반하여 살수들에게 상갓집 개처럼 쫓겨 다닌 적이 있었더랬지요. 당시 벼랑 끝까지 내몰린 저를 고맙게도 관중형당에서 받아주었습니다. 해서 전하의 호의를 받아들이기 어려움을 용서해 주십시오.”
여봉선이 그다음 말을 받았다.
“전하, 제 자유분방한 성격은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 어디 한 군데 매이는 걸 견디지를 못합니다. 초 형이야 이처럼 오래도록 관중형당에 몸담고 있지만 저는 여태 한 번도 초 형에게 의탁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일전에 천하맹 진 맹주께서도 천하맹에 들어오라 하셨지만, 그 제안 역시 거절했고요. 전하의 제안이 싫어서가 아니라, 이 여봉선이라는 인물 자체가 원래 그러합니다. 저는 어디든 좀처럼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