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12)
412화 추살의 위협
물론 장초범이 아닌 초휴였더라면 왕년의 원수를 상대하는 데 있어 이처럼 번거로운 절차는 마다했을 것이다.
복수를 아예 안 했으면 모를까, 하기로 한 이상은 불필요하게 말 섞을 것도 없이 최단 시간 내 최대 효과가 보장되는 방법을 택했을 테니까. 절대 실력 앞에서는 군말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원수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그 재산을 차지하면 그만 아니겠는가.
따라서 장초범이 임가에 쳐들어온 목적은 단순히 복수를 위한 게 아니라, 한마디로 지난날 자기를 핍박했던 자들 앞에서 새로 장만한 비단옷을 자랑하고자 함이었다. 자고로 금의환향(錦衣還鄕)이라 했다. 기껏 값진 비단옷을 갖춰 입고 남들 다 자는 야밤에 귀향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임가 가주는 분한 기색이 얼굴에 가득했지만, 감히 일언반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그런 가주를 바라보는 장초범은 더없는 쾌감을 느꼈다. 소싯적부터 낭인 출신 중 걸출한 모습을 보인 끝에 안락왕부의 문객까지 지낸 장초범은 자기가 비범한 사람임을 확신해왔다. 강호 밑바닥이나 핥고 다니는 족속들과는 차원이 다른 만큼, 언젠간 두각을 나타낼 날이 오고야 말리라고 믿었다는 이야기다.
그 기대가 이제서야 이루어진 것이다. 이처럼 엄청난 대운이 트일 줄 누가 알았으랴! 하지만 초휴가 판단한 바와 같이 장초범은 그런 대운을 감당할 만한 그릇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곤륜마교와 관련된 세간의 전설을 접해봤을 뿐, 지난날 강호를 덮쳤던 정마(正魔) 간 전쟁의 내막이나 곤륜마교와 관련한 여러 가지 금기사항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해서 지금 그는 자기가 곤륜마교의 현신이라 여기며 강호 전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져 있었다. 예컨대 적의 추격에 내몰리다 절벽에서 떨어졌더니 뜻밖에도 그곳에서 가공할 신공을 획득하고, 절치부심 수련 끝에 다시 강호로 돌아와 복수도 하고 절세 미녀도 차지한 후, 종국에는 무림 지존의 자리에 오르는 그런 극적인 인생의 주인공 말이다.
이처럼 한껏 부풀어 오른 간덩이 덕분에 그는 구름을 밟고 표표히 나는 듯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맘껏 즐기려고 낙평군에서 위세를 떨고 패악질을 부리며 사극종에서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릴 참이었다. 제원례의 정보에 의하면 그와 사극종이 연계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장초범이 사극종의 문을 두드린 게 아니라, 사극종이 먼저 그에게 연락하여 영입 의사를 밝힌 것이었다.
장초범은 지금 자신의 신분이라면 일단 사극종에서 소주(少主)로 모셔간 후, 전력을 다해 밀어주리라 기대했다. 그리고 이것이 근거 없는 착각만은 아니었다. 강호 전설에 의하면 지난날 곤륜마교가 천하를 발밑에 두었던 시절, 사극종과 같은 하위 종문들이 곤륜마교를 주인으로 모셨다고 하지 않았던가. 다만 그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으니, 정도 세력이 곤륜마교와 벌였던 최후의 일전에서 사극종은 그 ‘주인’을 배신했다.
게다가 사극종에는 이미 엽천사라는 불세출의 귀재가 버티고 있다. 인간의 몸으로 혈교심경을 성공리에 수련한 그를 놔두고 사극종이 장초범에게 왜 전력을 쏟아 지원해 주겠는가. 장초범이 마심당의 후예가 아니라 설령 독고유아의 후예라 해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이때 갑자기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열 명도 넘는 정체 모를 무사들이 임가에 거칠게 난입한 것이다. 그 막강한 실력에 임가 무사들은 속수무책으로 길을 열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등 뒤에 중검을 맨 채, 앞장서서 들어오는 젊은 무사의 모습이 장초범의 시야에 들어왔다. 냉랭하기 그지없는 표정에다 초점이 모호한 눈빛, 탄탄한 삼화취정의 실력이 순식간에 장초범을 압박해왔다.
그 청년은 다름 아닌 안불귀였다. 초휴와 그의 수하들은 몇 개 조로 나뉘어 낙평군을 포위 수색해왔다. 그중 안불귀 무리에게 따른 행운이 장초범이 있는 임가 쪽 방향으로 그들을 안내한 것이다. 게다가 장초범이 굳이 자신의 행적을 숨기지도 않은 터라, 안불귀는 어렵지 않게 그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낙평군이 동제에서는 큰 도시 축에 못 드는지라, 지역적 한계로 인해 삼화취정 정도면 이곳에서는 충분히 고수로 통했다. 그렇지 않다면 장초범이 이처럼 여기서 기고만장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이 낯선 자와는 초면이었다. 낙평군에 저런 삼화취정이 있다는 소리조차 들어본 적 없었으니까. 해서 장초범은 자신의 궁금증부터 해결하려 했다.
“네놈은 누구냐? 감히 임가에 이런 실례를 저지르다니!”
안불귀가 무리 지어 난입한 것만 봐도 좋은 의도로 임가에 온 게 아님은 짐작하고도 남았다. 물론 자기를 노리고 온 줄은 생각지도 못하고 던진 질문이었다. 그러자 안불귀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장초범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가 장초범인가?”
장초범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내가 장초범이다. 나를 찾아온 것이냐?”
하지만 장초범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안불귀의 손은 이미 중검의 검병을 잡고 있었다. 그가 검을 빼든 순간, 삽시간에 광폭한 강기의 포효성이 몰아치며 태산과도 같은 위력이 실린 일검이 장초범을 덮쳐왔다. 그 지독한 압박감에 장초범은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직감한 그가 노호성과 함께 양손을 휘두르자 음산한 마기가 무수한 실선들로 응집되더니, 그의 몸 앞에 거문고 현처럼 펼쳐졌다. 그가 양손으로 현을 튕길 때마다 칠흑처럼 검은 마기의 파동이 터져 나오며 안불귀의 검세를 흔들었다. 재빠른 대응은 안불귀의 일검을 절반은 무력화시켰으나, 장초범 본인도 그 충격으로 몇 발짝을 뒷걸음질 치며 피까지 뿜어냈다.
무사에게 무공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가 지닌 실력이다. 형편없는 몸뚱이로 신공을 차지한다면 제대로 수련하기도 어려울 테니 말이다. 애초에 내강경이었던 장초범의 실력은 마심당 마공을 익힌 후, 비약적인 향상을 거듭한 끝에 삼화취정으로 뛰어올랐다. 외강경을 건너뛴 놀라운 성취임에는 분명하나, 성실히 단계를 밟아가며 내실을 다지지 못했다는 약점 또한 안게 되었다.
같은 삼화취정이어도 안불귀의 탄탄한 기본기와는 비할 바가 못 되니, 제아무리 곤륜마교의 전승마공이라 해도 안불귀를 당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처음과는 달리, 안불귀를 바라보는 장초범의 눈빛에 놀라움과 당혹감이 가득했다.
“너는 대체 누구냐!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냔 말이다?”
장초범의 외침에 안불귀는 막강한 괴력이 실린 일검을 내지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정통으로 상대의 명줄을 노린 공격이었다. 초휴가 분부하길 가급적 생포하되, 여의치 않으면 죽여도 무방하다고 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초휴가 했던 앞의 말은 안불귀의 뇌리에서 하얗게 잊히고 뒤에 말만 남았다. 천성적으로 살인을 즐기는 위인인지라 내지르는 족족 살초만 난무하니, 장초범은 이제 죽을 일만 남은 것이다.
안불귀의 무지막지한 일검이 다시 덮쳐오자 장초범이 악을 썼다.
“튀어!”
사실 그가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그의 수하들은 너무 놀라 공포에 떨며 도주할 태세를 이미 갖추고 있었다. 지금까지 혈혈단신 외롭게 지낸 장초범은 기연을 얻은 후, 왕년에 알고 지냈던 부랑배들을 끌어들여 부하들로 삼았다. 하지만 그들은 장초범의 위세를 빌려 호가호위(狐假虎威)나 할 줄 알 뿐,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려는 의리 따위는 털끝만큼도 없었다.
장초범이 인법을 취하자 양손에서 마기가 솟구치며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도 잠시. 안불귀의 일검에 속절없이 와해되고 말았다. 이때 고막을 찢는 듯한 악귀의 날카로운 비명이 안불귀의 귓전을 때려 그의 후속 공격을 저지했다. 충격을 견디지 못한 안불귀의 몸이 경직되며 그의 검이 장초범의 몸을 비켜 갔다. 장초범 일당은 안불귀의 정신이 혼미한 틈을 타서 재빨리 후문을 통해 도주했다. 잠시 멍해 있던 안불귀가 다시금 서슬 퍼런 눈빛을 되찾으며 소리쳤다.
“뒤쫓아!”
허겁지겁 백산부 외곽의 야산으로 몸을 피한 장초범은 혼이 다 빠져나간 표정이었다. 방금 안불귀가 퍼부은 두 차례 공격이 그의 심리를 극도로 위축시킨 탓이었다. 이는 기연을 얻은 후 한껏 부풀어 오론 그의 간덩이에 얼음물 한 통을 끼얹은 격이었다. 덕분에 자신이 어느 정도의 실력인지를 여실히 깨닫게 되었다.
“너희들은 저자에 대해 들은 바가 없나? 왜 나를 죽이려 했을까?”
장초범이 수하들을 붙잡고 물었지만, 그들이 뭘 알겠는가. 그나마 그중 한 명이 나름 분석한 것을 말했다.
“막강한 실력자인 데다, 그 중검은 눈에 안 띄기가 어려울 물건입니다. 그자가 낙평군 사람이라면 우리가 모를 수가 없어요. 그러니 타지역 사람이 분명합니다. 누군가에게 형님을 해치우라는 사주를 받고 온 게 아닐까요?”
그럼 누가 자신을 죽이라고 지시했단 말인가?
장초범이 머리를 굴려봤으나, 낙평군에서 하도 지독하게 인심을 잃은 끝인지라, 누가 했어도 살인 청탁을 하고도 남을 것 같긴 했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 중 과연 누가 그랬을지를 특정하기는 어려웠다. 울화가 치민 그는 주먹을 불끈 쥐며 악을 썼다.
“젠장, 어떤 자식인지 알아내기만 해봐라. 당장 모가지를 분질러 버릴 테다!”
“형님, 이제 우린 어쩌면 좋습니까?”
한 수하의 질문에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
“일단 은밀히 개평부(開平府)로 가서 형제들을 더 불러모으자. 우리 머릿수가 많으면 그 중검 휘두르던 놈도 감히 날 어쩌지는 못하겠지. 또 만나기만 해봐라. 아주 가루를 내버릴 테다.”
장초범이 개천 출신의 비루한 용이긴 해도 지난날 함께했던 길거리 친구들에게는 그나마 후덕한 편이었다. 그가 일약 용이 된 덕에 그의 벗들도 덩달아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게 되었다. 개평부는 장초범의 고향으로, 그의 수하들 및 요즘 갈취해낸 온갖 재물과 자원이 죄다 그곳에 있었다. 이윽고 무리와 함께 개평부에 들어선 장초범은 뭔가 이상한 느낌에 휩싸였다. 자신이 돌아왔는데도 족히 백 명은 될 그의 수하들이 단 한 명도 모습을 나타내질 않다니 웬일일까? 그리고 이곳의 무사들도 그를 발견하자 무슨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들이 되어서는 너나없이 피하려 들었다.
장초범은 경계의 고삐를 바짝 조이며 자신의 저택에 이르렀다. 그 저택은 본디 개평부 세족인 왕가(王家)의 소유였으나, 저들이 어린 시절 자기를 핍박했던 죄를 물어 집이고 재산이고 모조리 빼앗아 버린 것도 모자라, 지금은 아예 개평부에서 몰아내기까지 한 상태였다. 대문 앞에 다다른 그는 내내 떨치기 어려웠던 심상찮은 예감이 부쩍 짙어지는 걸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문을 밀고 들어선 순간, 역한 피비린내가 ‘훅’하고 면상을 덮쳐왔다. 뒤이어 몰살당한 수하들의 시신이 마당 바닥을 붉게 물들인 채, 가지런히 ‘입구 자(口)’ 형상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열 명 남짓의 낯선 흑의 무사들이 한 옆에 도열해 있었다. 그중 금색 장포 차림의 청년이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채, 정교한 용미추혼표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장초범과 눈이 마주친 그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이제 돌아오셨소?”
당아의 말투는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에게 건네는 인사처럼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눈 앞에 펼쳐진 끔찍한 광경은, 그 부드러운 표정과 말투가 그의 본 모습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당아는 확실히 안불귀보다 한 수 위였다. 무작정 장초범의 유동적인 행적을 뒤쫓기보다는 차라리 그의 본거지를 찾아내어 확보한 후, 주인이 제 발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수주대토(守株待兎). 한 농부가 우연히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혀 죽은 토끼를 잡은 후, 또 그런 방식으로 토끼를 잡을까 하는 요행을 바라며 그루터기만 지키고 있었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사자성어.
보통은 융통성 없이 옛 관습과 사례만을 고집하는 행태를 비꼬는 말로 쓰였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이 얼핏 답답해 보일지 몰라도, 몸만 바쁘게 움직이다가 헛물켜는 것에 비해 큰 효과를 보기도 하는 법이다.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이었다. 물론 당아 수하들의 눈에는 자기들의 상관이 사람 찾으러 다니기 귀찮아 게으름을 피우는 것으로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웬 낯선 사내들이 들이닥쳐 벌건 대낮에 백 명에 가까운 장초범의 수하들을 난도질했으니, 개평부 사람들이 이를 눈치 못 챌 리 만무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장초범에게 이 사실을 알려준 자는 없었다. 이것만 봐도 그간 장초범이 이곳에서 얼마나 인심을 잃었는지 알 만했다. 물론 당아의 잔악한 수완에 겁을 먹은 나머지, 감히 알리겠다는 생각을 못 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