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13)
413화 도주하다
자신의 수하들이 죄다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 모습에 장초범은 분노가 치미는 동시에 짙은 공포와 당혹감을 느꼈다. 한마디로 온갖 감정이 복합적으로 끓어올라 어찌 대처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섰다. 하지만 대체 저자가 누군지, 왜 자기를 죽이려 드는지부터 알아야 판단을 하고 자시고 할 게 아닌가.
“대체 누가 보낸 거냐? 왜 나를 죽이려 들어?”
장초범이 분노의 일갈을 퍼붓자 당아가 태연히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살다 보면 차라리 모르는 게 이로울 때도 있지. 굳이 구구절절 다 알아서 뭣 하려고? 뻗대지 말고 그냥 나와 거래하는 게 어떻겠나? 순순히 잡혀준다면 당신 수하들도 살려줄 거고, 당신이 겪게 될 고초도 줄여줄 수 있는데 말이지. 나쁘지 않은 제안 아닌가?”
다짜고짜 죽이려 들었던 벽창호 안불귀와는 달리, 당아는 제법 유연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었다. 평소 당아가 게으른 것처럼 보이기도 하나, 그는 초휴가 내린 명령을 철두철미하게 완수해내곤 했다. 이번만 해도 초휴가 죽여도 좋다는 명령을 내리긴 했지만, 생포하는 데 방점을 두었기에 그쪽에 초점을 맞춰 일을 처리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장초범은 이를 악물더니 쏜살같이 밖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본 당아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애석하구나. 권주는 싫고 벌주가 취향이란 말이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당아의 수중에서 폭우에 흩날리는 배꽃처럼 무수한 암기가 쏟아져 나와 장초범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당아가 강기로 조종하는 암기들은 장초범의 급소를 노리기보다는 그를 위협하는 선에서 제어되고 있었다. 어쨌거나 당아로서는 그를 생포해야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초범은 굳이 고개를 돌려 뒤를 보지 않아도 엄청난 기세와 분량의 암기가 덮쳐옴을 감지할 수 있었다. 공포감에 휩싸인 나머지 반사적으로 결인하자 ‘펑’하는 굉음과 함께 그의 몸이 순식간에 짙은 마기로 뒤덮였다. 하지만 마기가 무진장 짙다고는 하나, 힘의 축적량에 있어 당아의 적수가 못 되는지라, 철옹성인 줄만 알았던 마기 방어막도 금세 와해되고 말았다.
곧이어 당아 수중의 굽은 칼 두 자루가 하나로 합체되더니 수레바퀴처럼 빙빙 돌다가 강기에 휩싸여 격발되었다. 이것이 윙윙 공기를 가르며 곧장 장초범을 향해 날아드는 모습은 공포스럽기 그지없었다. 이에 장초범이 이를 악물더니 몸을 날리며 연속해서 장법을 내질렀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건 당아가 아니라, 자기 곁에 있던 수하들을 향해 발출한 것이었다!
그들은 장초범이 자기들한테 출수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간 섭섭지 않게 자기들을 대우해주던 그가 왜 이런단 말인가? 하지만 서로 밀치며 뒤로 피하기만도 급급한 순간, 어느샌가 날아든 당아의 굽은 칼이 그들의 허리를 사정없이 동강 내고 말았다. 한마디로 장초범이 그들을 방패막이로 삼은 것이었다.
이런 파렴치한 짓을 저지르고도 장초범은 동공 한번 흔들리지 않았다. 원래 그는 철저히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위급한 순간이 닥치자 형제처럼 지내왔던 수족들을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희생시켜 본인의 안전만을 꾀하다니! 이 막장 같은 광경에 당아마저도 몸서리가 쳐 쳤다.
“이런, 이런! 신던 헌신짝을 내버려도 저것보단 낫겠구먼. 어디 마도 놈이 아니랄까 봐서 하는 짓 하고는······! 그러나 죄다 부질없다. 네놈이 발버둥 쳐봤자 내 손바닥 안이란 말이지.”
당아의 몸이 버들가지처럼 흐느적거리는가 싶더니 바람을 타며 가볍게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 신법의 속도가 어찌나 전광석화 같던지, 도주하는 장초범을 바짝 따라잡고 있었다. 이처럼 당아의 공세가 연속해서 현란한 변환을 일으키자 장초범도 적잖이 당황했다. 그는 길게 생각하지 않고 양손을 결인했다. 그리고 마기 섞인 기혈의 힘을 체내에서 태워 속도를 최고치로 높였다. 결국, 그의 신형은 핏빛 무지개처럼 허공을 수놓으며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닭 쫓다 놓친 개꼴이 된 당아가 우뚝 멈춰 섰다. 그의 얼굴엔 매우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당아가 줄곧 자신해왔던 분야가 바로 신법의 속도였다. 해서 그는 생포할 궁리를 했을 뿐, 속도에서 뒤처져 상대를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니 상대가 이처럼 비장의 패까지 동원해가며 도주하는 상황에 대한 대책이 있었을 리 만무했다.
이건 물론 당아의 실책이었으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장초범이 저 무공을 시전하자면 기혈을 태우거나 그 외 모종의 대가를 치러야만 가능할 터. 결국, 시전 후에는 필연적으로 몸이 중상을 입은 상태가 되지 않겠는가. 게다가 초휴가 낙평군 전역에 빠져나갈 수 없는 포위망을 촘촘히 쳐놓은 끝인지라 어차피 장초범은 얼마 못 가 잡힐 운명이었다.
이 무렵 장초범은 벌써 십 리 밖까지 벗어난 상태였다. 안색은 백지장처럼 하얗고 입과 코에서 피까지 흐르는 모양새가 영락없이 중상이 의심되는 처참한 몰골이었다. 지난날 그가 손에 넣은 마도 공법은 많고 다양했다. 다만 당시의 그는 신중한 편이어서 제일 먼저 내공부터 익혔다. 두 번째로 익힌 게 이 혈둔지법(血遁之法), 즉 피를 이용해 도주하는 마공이었으니, 이번에 그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다.
물론 만만찮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기혈의 힘을 연료로 삼는 혈둔지법의 특성상, 이 마공을 이용해 멀리 도주할수록 기혈의 손상 정도도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당아의 매서운 공세에 기겁해서 단숨에 십 리 밖까지 달아난 장초범은 그제야 혈둔지법을 거둬들였다. 하지만 이미 내상이 깊어진 뒤였다. 단약 몇 알을 삼켜 체화시키자 미약하게나마 얼굴에 핏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 단약 역시 마도 전승물 중에서 찾아낸 극상품으로 효과가 기가 막힌 물건이었다.
잠시 여유를 찾은 그의 머리가 다시금 복잡해졌다. 도대체 누가 자기를 죽이려 한단 말인가. 그가 머저리가 아닌 이상, 중검을 사용한 인물과 암기를 날린 자가 한패가 분명하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둘 다 자신을 노리고 온 게 분명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자기한테 앙심을 품은 어느 세력이 청부살인이라도 사주한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갈수록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지 않은가.
지금까지 그가 짓밟아온 세력들은 당연히 실력이 그보다 못했다. 겁 한번 준 것만으로도 쉽사리 승복을 받아낼 정도였으니 말이다. 저들에게 애초에 강한 힘이 있었다면, 그래서 아까와 같은 무지막지한 살수들을 동원할 정도의 능력을 갖췄다면, 그리 쉽게 자기한테 무릎 꿇었을 리가 없었을 테니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찌 된 일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좌우간 단 한 가지 분명한 건 어떻게든 도망쳐서 목숨을 부지해야 한다는 사실 뿐! 지금 벌써 두 무리의 추격대가 뒤쫓는 중인 데다, 자기는 중상까지 입은 몸이다. 안전하게 피해있을 만한 곳을 시급히 찾아야 했다. 한참 머리를 굴린 그는 낙평군의 중심부에 있는 안태부(安泰府)로 가서 양가(楊家)에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안태부 최대 일족인 양가는 문중에 천인합일만도 한둘이 아니었다. 다행히도 양가와는 묵은 원한이 없던지라, 기연을 얻은 후에도 그들한테는 함부로 굴지 않았다. 요즘 그의 간덩이가 부풀어 오른 건 사실이지만, 머릿속 뇌까지 불어 터진 건 아니었으니까. 정신이 똑바로 박힌 이상, 천인합일 무사들이 버젓이 지키고 있는 양가에 어찌 감히 시비를 걸 수 있었겠는가. 게다가 양가와는 특별한 인연도 있었다.
양가가 비록 마도 계통은 아니지만, 문중의 한 사람이 사극종의 내문 제자로 있었다. 사극종이 제일 처음 그에게 영입 의사를 밝혀왔을 때, 중간에서 연락을 도맡았던 자가 바로 그 양가의 인물이었다. 양가와 사극종, 양쪽에 모두 속하는 신분인지라 자연히 연락책을 맡게 된 것이다. 장초범이 판단하기로 자기는 이미 사극종에 가입하기로 한 몸이니, 양가에서도 나 몰라라 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양가의 천인합일 무사들이 설마 그의 목숨 하나 못 지켜주겠는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장초범은 즉시 행적을 숨겨가며 안태부 쪽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그가 안평군에서 워낙 소란을 피워댄 뒤인지라, 가는 내내 그를 알아보는 눈들이 적지 않았다. 이때 초휴의 수하들은 십여 개로 조를 나뉘어 수색 중이었고, 이들 중 족히 절반은 장초범의 행적을 발견했다. 이에 이들이 빠르게 뒤를 쫓았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장초범이 그리 순순히 잡힐 인물은 아니었다. 랑왕과 화노 등이 그의 행적을 따라 뒤쫓긴 했으나, 그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기 일쑤였다. 여기에는 그가 손에 넣은 마도 전승물의 공이 컸다. 자그마치 곤륜마교의 당주가 남긴 전승물인지라, 그중에는 온갖 진귀한 물건들이 많았다. 여러 비장의 무기들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다. 이 덕을 보지 않았더라면 그는 절대로 살아서 안태부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을 것이다.
안태부로부터 십여 리 떨어진 촌 동네에 나타난 장초범은 검은 두건과 복면을 쓴 채였다. 천 조각 아래 숨겨진 그의 얼굴에서 핏기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잠시 후면 안태부에 도착한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비로소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요 며칠 한순간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는 그는 비록 안태부가 목전에 있어도 경계를 늦출 수가 없었다. 건량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자 이내 서둘러 길을 떠났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 추살이 그에게 나쁜 일만 안긴 건 아니었다. 비록 낭인 출신이지만, 그간의 인생 역정은 그런대로 순탄한 편이었다. 소싯적엔 동년배들 사이에서 출중한 자질로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명문 세가 출신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그래도 순조롭게 안락왕부로 들어가 문객 노릇도 했다. 후에 안락왕부가 망하는 바람에 황망히 도망쳐야 했지만, 그 덕분에 기연을 만나 곤륜마교의 전승물을 차치할 수 있었다. 그러니 도중에 죽지만 않는다면, 훗날 강호에 자신이 차지할만한 괜찮은 자리 하나는 있을 거라고 자신해왔다.
하지만 소속 없이 지내면서 보고 들은 게 적은 탓에 그의 안목은 확실히 좁았다. 해서 실력이 향상되는 기미가 보이자 이성이 흐려져서는 감히 자기가 곤륜마교의 전승자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우를 범했다. 고작 하룻강아지 주제에 범 무서운 줄을 모르고 말이다. 하지만 요 며칠 일련의 추살을 겪는 과정에서 연거푸 냉수 세례를 받은 기분이 되었다. 자기가 어느 정도 실력인지를 똑똑히 자각하게 되면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게 무슨 말인지도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어찌나 철이 단단히 들었던지 내심 이렇게 되뇌었을 정도였다.
‘안태부에 도착하면 우선 양가의 보호를 받으며 사극종부터 들어가고 봐야지. 거기서 당분간 죽은 듯이 폐관 수련에만 전념하는 거야. 곤륜마교 전승마공을 완전히 터득하기 전까진 절대 나오지 않을 테다. 다 터득하고 나서도 절대 예전처럼 막 나가며 설치지 않을 것이다. 늘 매사에 조심조심 살얼음판 걷듯이 살아야겠다.’
이 생각을 계속 되씹다 보니 어느덧 만두를 벌여놓은 가판대 앞을 지나게 되었다. 그 일대에 만두 파는 가게라곤 여기밖에 없었다. 시장기를 느낀 그는 쉬어 터진 목소리로 말했다.
“만두 열 개만 주시오.”
젊은 만두 장수는 웃으며 물었다.
“손님, 야채만두를 드릴까요, 아니면 고기만두를 드릴까요?”
“고기만두로 주게.”
만두 장수가 고기만두 열 개를 종이에 싸서 건네자 장초범이 은전 한 닢을 던지며 말했다.
“남는 돈은 가지게. 거스름돈은 필요 없으니까.”
“공자님, 감사합니다.”
만두 장사의 인사를 뒤로한 장초범은 길을 가며 만두를 먹으려 했다. 그러나 무심결에 하나를 집어 든 순간, 아뿔싸 하는 느낌이 엄습해왔다. 며칠째 추살의 위협에 쫓기면서 그는 어느 때보다도 경계의 날을 바짝 세운 상태였다. 매사에 의심부터 하며 신중하게 처신했음은 물론이다.
저 만두 가게의 만두는 개당 고작 세 푼짜리다. 자기가 건넨 은전이면 가게에 있던 고기만두 전부를 사고도 남을 금액이 아닌가. 그런데도 만두 장수는 거액을 받고도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상자 안에 돌을 던지듯 던져 넣었다. 고맙다고는 했지만 정말로 고마워 보이지가 않는 인사였다. 게다가 빤히 자기를 주시하고 있기까지 했다.
정신이 번쩍 든 그는 입가에 가져갔던 만두를 자기도 모르게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러자 계속 주시하고 있던 그 만두 장수의 얼굴에서 점차 미소가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괴이쩍은 표정으로 이렇게 물었다.
“장 공자님, 왜 안 드십니까? 제 고기만두가 맛이 없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