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17)
417화 가짜가 진짜가 될 때 진짜는 가짜가 된다
현재의 초휴는 말할 것도 없고 정신력만 전문적으로 연마한 무도종사급의 고수라고 해도 이처럼 섬세하게 수혼(搜魂)을 행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초휴가 장초범의 기억을 약탈해서 알아낸 건 마심당을 전승하게 된 경위와 무공이 놓인 위치가 고작이었다. 그의 기억을 헤집어 보니 장초범은 그야말로 운이 좋은 행운의 사나이였고, 마심당을 전승한 방식도 기이하기 그지없었다. 게임 원작 시나리오에서 마심당을 전승한 인물은 어찌나 조심스러웠는지 죽을 때까지도 자신이 어디서 마심당을 얻었는지를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초휴는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놀랍게도 마심당은 바닷속에 감춰져 있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게 이해가 되었다.
과거 마심당의 당주 남궁무명(南宮無明)은 정파에 쫓기다가 중상을 입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에게는 사실상 막다른 골목이었다. 해서 남궁무명은 바다 밑에 동굴을 파서 진법으로 봉인했다. 진법은 바닷물을 막는 동시에 그의 숨결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도 막아 주었다.
남궁무명은 외부에 곤륜마교의 표식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곤륜마교의 누군가가 자신을 발견해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허망하게도 곤륜마교는 백년 후 세상에서 자취를 감췄고, 그가 남긴 표식 역시 세월의 풍파에 씻겨 소멸하고 말았다.
장초범은 과거 자신이 문객으로 있었던 안락왕부가 멸망하자 조정에 발각될까 두려워 꽁무니가 빠져라 도주했다. 목숨을 걸고 도망치던 장초범은 흉악한 강도 일당을 만났는데, 격전 중 발을 헛디뎌 절벽에서 추락해 바다에 빠지는 바람에 남궁무명의 전승을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남궁무명이 남긴 것은 무공뿐만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그가 애용하던 보물과 단약도 감춰져 있었다. 물론 이미 장초범이 전부 다 사용해버려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그중 곤륜마교가 제작한 일부 단약은 특수한 방식으로 정제를 하여 사용해야 하는데도 장초범은 무식하게 그냥 통째로 삼켜 버렸다. 덕분에 실력이 순식간에 삼화취정으로 뛰어올랐지만 단약이 온전한 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했으니 낭비도 그런 낭비가 없었다.
초휴는 장초범의 품을 뒤져 전공옥간을 하나 찾아냈다. 남궁무명이 생전에 익힌 모든 무공이 기록된 옥간이었다. 사실 원래 전공옥간 같은 물건은 무공을 보전해 후대에 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만약 자신의 무공이 전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자신의 머릿속에 저장한 뒤, 옥간을 파괴하는 게 안전한 방법이었다.
초휴는 주위에 사람이 많은 탓에 옥간을 머릿속에 저장하고 적힌 내용을 대충 들춰 보다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훌륭한 마도의 전승을 그딴 식으로 사용하다니, 장초범은 참으로 변변치 못한 놈이 아닌가.
남궁무명은 과거 마심당의 당주로 곤륜마교에서도 비중이 작지 않은 자였다. 얼마 전 초휴는 육 선생과 잡담을 하다가 곤륜마교의 조직 구성을 알게 되었다. 교주인 독고유아 밑에는 사대 마존(四大魔尊)이라는 우두머리가 있었고, 각 마존은 휘하에 극강의 고수들을 거느렸다.
또한, 사대마존 외에도 수십 명의 마사(魔使)가 있었는데 이 마사는 곤륜마교가 내린 봉호(封號)였다. 그들은 수하를 거느릴 수도 있고 홀로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도 있었다. 확실한 건 그들은 곤륜마교의 이익과 위상을 상징했고, 곤륜마교 내에서도 중견급의 비중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무상마종(無相魔宗)의 사도려(司徒厲)가 바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곤륜마교 음마사의 후손이었다. 무상마종은 곤륜마교의 적통은 아니었지만 곤륜마교에 충성을 다했다. 마사는 그에 대한 포상으로 곤륜마교가 무상마종에 내린 봉호였다.
곤륜마교의 당주는 마사와 비교하면 훨씬 더 복잡했다. 곤륜마교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에는 휘하에 지회라고 할 수 있는 당구(堂口) 수십 개를 거느렸고, 각 당구의 역할은 모두 달랐다. 전투를 책임지는 당구가 있었는가 하면, 단약 제조를 책임지는 당구가 있었고, 그밖에 잡다한 일을 맡은 당구도 있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당주도 마사와 동등한 지위라고 할 수 있었지만, 전투력은 동등하다고 보기 힘들었다. 어떤 당구의 당주는 전투를 전문으로 담당하여 마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었지만, 전투를 특기로 삼지 않는 당구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궁무명의 마심당은 전투를 책임지는 당구 중 하나였고, 그 무공 역시 정신력 연마에 집중된 편이었다. 그들은 불교와 도교, 마교의 세 가지 맥을 융합하여 심마륜전대법(心魔輪轉大法)이라는 기공을 창시했고, 정신력과 마공을 융합한 기이한 무공인 섭혼구대식(攝魂九大式)을 창시했다. 초휴가 보기에 마심당이 남긴 이 기이하고도 신비로운 전승은 하후씨의 어신술과 비교해도 결코 손색이 없는 수준으로 보였다.
그러나 덜떨어진 장초범은 익히기 어렵다는 이유로 남궁무명의 정수가 담긴 두 권의 비급은 저만치 미룬 채, 곤륜마교의 내공이나 잡기 몇 개만 익히고 말았다. 장초범이 익힌 내공과 무공 역시 약한 것은 아니었지만, 남궁무명이 남긴 비장의 절기와 비교하면 애들 장난 수준이었다.
초휴가 한창 남궁무명의 절기를 음미하고 있는데 당아가 다가와 턱짓으로 바깥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인, 안태부의 다른 세력들이 모두 왔습니다.”
초휴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아귀에 힘을 줘서 전공옥간을 파괴했다. 장초범은 죽었고 마공을 손에 넣었으니 앞으로는 초휴가 마심당의 계승자다. 세상에 다시 나타난 곤륜마교의 적통 계승자라는 거짓 신분도 이로써 계속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초휴는 이제 진짜가 된 것이다. 가짜가 있다는 건 진짜가 존재한다는 말인데, 가짜가 세상에서 사라졌으니 이제는 초휴가 유일한 진짜인 것이다.
초휴가 대문을 나서자 적지 않은 수의 무인들이 건물을 포위하고 있었다. 수백 명은 족히 되어 보였는데 우두머리로 보이는 몇 명은 대략 오기조원과 삼화취정으로 약해 빠진 수준은 아니었다. 그들은 안태부의 중진 무림 세력으로, 양가의 요청을 받고 급히 달려왔는데 이미 양가가 멸망한 것을 보고 경악했다. 그 위풍당당한 양가가 이 짧은 시간에 벌써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그들은 이미 양가에서 탈출해 급보를 전한 무인으로부터 초휴의 신분과 이번 일을 전해 들었는데, 어찌해야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치대로라면 외부인인 초휴가 무례하게 안태부에서 횡포를 부렸으니 모두가 단결하여 대항하는 게 옳을 것이다. 그러나 양가는 이미 멸문당했고 그 속도 역시 그들이 양가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보다 더 빨랐다. 이대로 초휴에게 대항하는 건 다 같이 죽자는 소리밖에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찍소리도 못하고 물러나려니 너무 한심한 거 같아 망설여졌다.
그들이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초휴가 부하들을 거느리고 나와 차분하게 말했다.
“마교 잔당 장초범은 다시 세상에 나타난 곤륜마교의 계승자를 자처한지라 내 손으로 주살했소. 양가는 무림의 세가로서 공공연히 마교 잔당인 장초범을 비호하며 음모를 꾸몄기에 역시 내 손으로 전부 없애버렸소.”
선언하듯 내뱉은 초휴는 수하들과 함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안태부의 무림 세력에게 통보하는 듯한 말투였고, 실제로도 그랬다. 너희가 내 말을 믿든 말든 내가 여기서 볼일은 끝났으니 너희는 알아서 처신하라는 의미였다.
안태부의 무림 세력들은 초휴의 건방지고 오만한 태도에 분개했지만, 아무도 나서서 초휴에게 대들지는 못했다. 그들 중 일부는 심지어 길을 비켜주기까지 했다.
순간 초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한 손으로 칼을 휘둘러 강기와 도망을 내뿜었다. 무리 중에 양가의 생존자 두 명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안태부의 세력에게 급보를 전했던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허리가 댕강 잘려 처참한 몰골로 죽었다. 그들은 무사히 초휴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왔다고 안도하고 있었지만, 사실 지옥문으로 가는 길을 잠시 늦춘 것에 불과했다.
그 두 명의 주위에 있던 무인들은 미처 피할 틈도 없이 피를 뒤집어썼다. 그들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초휴를 노려봤다. 그들 중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입을 움찔거리는 사람도 있었으나 이성적이고 침착한 자들이 그를 제지했다. 지금까지 애써 참았는데 인제 와서 초휴에게 대드는 건 현명한 처사가 아니었다. 초휴의 무리가 눈앞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누군가가 분개하며 입을 열었다.
“정말 지나치게 오만하고 무례한 자가 아닌가! 이곳은 관중형당도 아니고 동제(東齊)의 안태부인데 나서서 정의를 세우겠다는 사람이 어째서 한 명도 없는가!”
그 말에 누군가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정의? 웃기지 마시오. 마도의 잔당을 주살했다는데 무슨 정의를 바로잡는다며 대든단 말이오? 대의명분은 초휴에게 있소. 양가야 이미 멸문했으니 이 소란에 대해서는 더는 생각할 필요가 없소. 안태부는 여전히 안태부고 앞으로도 달라질 것은 없으니 그전처럼 살면 그만이오. 양가는 사극종과 관계를 맺었다고 하니 이번 일로 인한 근심은 사극종에게 넘겨 줍시다. 우리는 그냥 아무것도 못 본 척, 두 눈 질끈 감고 있으면 되는 거요.”
그곳에 있던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평소에 양가를 존경하며 양가의 지시를 충실하게 따랐지만, 그건 양가의 세력이 온전할 때의 이야기였다. 양가가 완전히 사라진 지금의 처신이 옛날과 같을 수는 없다. 다소 비겁해도 못 본 척 눈과 입을 가리고 있으면 최악의 위험은 면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들이 이렇게 갈팡질팡하는 사이 그들이 두려워하는 사극종은 벌써 안태부의 문전에 도착해 있었다. 게다가 여기 온 자들 모두가 하나같이 굵직굵직한 중견급 인물이었다. 그중에 한 사람이 엽천사였다. 그는 안태부의 성문 밖에서 등에 장창 혈교를 매고 서 있었다. 검은색 도포 사이로 활짝 드러난 탄탄한 가슴 근육과 꿈틀거리는 듯한 핏빛 뱀 문신은, 그의 남자답고 준수한 용모와 어우러져 퇴폐적이고 사악한 매력을 한껏 내뿜었다.
엽천사의 뒤에는 사극종의 무인 여러 명이 서 있었지만, 그들보다 눈에 띄는 것은 옆에서 흑표범을 타고 있는 여인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은 망사를 둘러 가렸는데 희미한 망사 사이로 은근히 드러나는 매혹적이고 고혹적인 자태가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앗아갔다. 그녀가 올라타고 있는 우아하고 신비로운 자태의 흑표범 역시 시선을 끄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바로 과거 부옥산에서 잠시 모습을 드러냈던 배월교의 성녀였다.
안태부의 성문 앞에서 엽천사는 머리카락을 찰랑 넘기며 배월교의 성녀에게 말했다.
“제 입으로 마심당의 계승자라고 떠들고 다니는 놈을 왜 우리가 굳이 가서 만나야 합니까? 제가 보기엔 유명해지고 싶어서 안달 난 애송이 같은데요. 반면 음마종(陰魔宗)의 임엽(林燁)이라는 자는 좀 재수 없기는 하지만 실력이 출중합니다. 일창불패(壹槍不敗)로 불리는 내 창을 받을 수 있는 자는 동급의 무인 중에서는 몇 명 없거든요. 임엽이 곤륜마교의 후예라고 하면 믿겠습니다만 이 장초범이라는 놈은 아무리 생각해도 가짜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