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18)
418화 배월교의 성녀
배월교의 성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물이 흐르듯 부드럽고 맑은 목소리임에도 경멸의 기색이 가득 묻어났다.
“네가 뭘 알아? 너희 사극종은 곤륜마교로부터 아무런 칭호도 얻지 못했잖아. 솔직히 말하면 곤륜마교가 가장 강성한 시기에 사극종은 앞장서서 곤륜마교의 개 노릇을 했는데도 자격이 턱없이 부족했지. 해서 무상마종이 음마사라는 칭호를 얻었지만 사극종은 아무것도 얻은 게 없었어. 우리 배월교의 선조께서는 마심당과 교류를 하신 적이 있지. 해서 마심당의 마공에 관하여 자세히 알고 있어. 장초범이라는 자는 남궁무명이 대표적으로 사용했던 마공인 심마륜전대법과 섭혼구대식은 시전한 적이 없지만, 지금까지 사용한 마공들은 마심당의 비급이 확실해. 그런데도 장초범이 마심당과 관련이 없다고? 아주 미미한 관련이라도 틀림없이 있을 거야. 변변치 않은 확률일지언정 그를 통해 마심당의 전승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만 있다면 결코 밑지는 장사가 아니지.”
다행히 초휴는 마도회맹에 참석했을 당시, 자신이 곤륜마교의 정통 계승자라고만 했지 마심당의 사람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배월교가 만약 이 사실을 알았다면 매경령처럼 초휴의 신분에 의혹을 품었을 터였다.
물론 이번 일에서 가장 딱한 인물은 장초범이었다. 그는 사극종이 자신의 후원자가 될 것임을 단단히 믿었고, 양개태마저도 사극종이 장초범을 키워 줄 것을 확신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그건 그들의 착각에 불과했다. 사극종은 처음부터 장초범을 키울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세력이 강하다고 할 수 없는 사극종은 이미 엽천사를 양성하는 데 모든 역량을 쏟아부은지라 장초범까지 밀어줄 힘은 남아 있지 않았다.
사극종이 장초범과 연락을 유지한 이유는 오로지 배월교 성녀의 지시 때문이었다. 부옥산 정마대전 이후로 다시 무대의 배경 뒤에 몸을 숨긴 음마종과 달리, 배월교는 마도의 제일 지파를 방불케 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시작했다. 원래 배월교에 크게 의지해 왔던 오독교나 실력이 약한 사극종은 자연히 배월교의 세력에 더 기대게 되었고, 내실이 튼튼한 제육천마종 등은 배월교와 별도로 독립적인 위치를 유지했다.
성녀는 배월교의 지도층으로서 부하들을 이끌고 친히 북연까지 행차했다. 북연 지역의 유능한 인재를 제자로 영입하는 게 일차적인 목적이었다. 사극종은 당연히 배월교의 성녀를 극진한 예의로 맞았다. 그러던 중 사극종으로부터 장초범의 이야기를 들은 성녀가 뜻밖에도 사극종의 이름으로 그를 영입하라는 지시를 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노리는 건 장초범이 아니라 장초범이 가진 마심당 전승 마공이었다.
성녀가 사극종을 무시하는 말을 하자 엽천사의 얼굴에 잠시 노기가 스쳤다. 하지만 그는 이내 표정을 바꾸고 헤헤거리며 사람 좋은 웃음을 흘렸다.
“지금도 배월교의 위세는 충분히 강한데 굳이 마공을 찾아다니십니까?”
성녀는 담담히 대답했다.
“공법이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이니까. 설령 다 연마할 수 없어도 그 안의 이치와 원리를 깨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득이 된다. 교주님의 보천심경(補天心經)과 동황태일의 분천보감(焚天寶鑒)이 어떻게 창시됐는지는 알고 있나?”
엽천사는 갑자기 성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희롱하는 듯한 끈적끈적한 말투로 속삭였다.
“그렇다면 나의 혈교심경(血蛟心經)에도 관심이 있으시겠군요? 인간의 몸으로 흉수의 공법을 연마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강호에서 오직 저 하나뿐입니다. 성녀 대인께서 관심만 있으시다면 이 엽천사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가르쳐 드릴 수 있습니다만······.”
엽천사는 틀림없이 여자를 매료시킬 거라고 자부하는 미소를 배월교의 성녀를 향해 지어 보였다. 그러나 그런 자만도 잠시뿐, 그의 표정은 순식간에 딱딱하게 돌변했다. 순수한 마염이 응집되어 만들어진 채찍이 그의 머리를 매섭게 향했기 때문이다. 그 어떠한 힘이라도 단번에 삼켜 버릴 기세의 마염은 놀랍게도 동황태일의 분천보감과 상당히 닮아 있었다. 다만 그 위력만은 아직 동황태일에 미치지 못한 듯했다.
엽천사는 경악하며 몸을 피했지만, 온몸이 얼음 결정처럼 생긴 고충 두 마리가 어느 틈엔가 그의 허벅지에 달라붙어 있었다. 고충에게 다리를 물리자 육신의 경맥이 꽁꽁 얼어서 영혼까지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쨍!
맑디맑은 파열음과 함께 흉수처럼 건장한 엽천사의 몸이 채찍에 맞아 공중에 떠올랐다. 그의 얼굴은 이미 하얗게 질려 있었다.
배월교의 성녀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감히 나에게 역겨운 마음을 품다니! 그 더러운 행실로 나를 유혹해 보겠다고? 내가 네놈한테 열광하는 그 천박한 사극종의 여제자들처럼 보이는 거냐? 미천하기 짝이 없는 신분으로 감히 나에게 불손한 말을 했으니, 여기서 너를 죽여없애도 사극종 종주가 할 말은 없을 것이다.”
엽천사는 얼굴을 가린 채, 살기 짙은 눈으로 배월교의 성녀를 노려봤다. 눈동자에는 뱀과도 같이 세로로 선 황금빛 동공이 떠올라 있었다. 엽천사가 가까운 이들은 잘 알고 있었다. 엽천사가 이런 상태로 변했다는 것은 자제하기 어려울 만큼 분노가 극에 달했다는 의미임을.
엽천사와 함께 온 사극종 무인들이 허겁지겁 엽천사를 부축하며 전음으로 충고했다. 사극종 전체를 생각한다면 허튼짓을 당장 중지해야 한다고 말이다. 배월교의 성녀에게 채찍을 맞은 엽천사는 원한 어린 눈빛으로 성녀를 바라봤지만, 그도 감히 성녀에게 대들 배짱은 없었다.
사실 사극종 내에서의 엽천사는 그야말로 손꼽는 미남이었다. 남자답고 잘생긴 얼굴에 가슴에 새겨진 붉은 뱀 문신이 더해져 치명적인 매력을 풀풀 풍겼는데, 덕분에 가만히 있어도 사극종의 여제자들은 알아서 그의 품에 뛰어들었다. 제 발로 오지 않는 여제자라도 엽천사가 살짝 추파를 던져 침대에 올라오게 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색을 밝히는 용성(龍性)의 특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혈교내단(血蛟內丹)을 흡수하고 혈교심경을 연마한 이후로 엽천사의 그 방면의 욕구는 대단히 왕성해졌다. 욕구 해소를 위해, 달려드는 여제자나 그렇지 않은 여제자나 가리지 않고 품었다. 그러나 엽천사와 기꺼이 잠자리를 가지는 여자들은 대부분 천박한 속물에 불과했다. 쉬운 여자들만 상대하던 그는 배월교의 성녀와 마주하자 자신이 어떤 유형의 여자를 원하는지를 비로소 깨달았다.
사실 그로선 자신만만할 만도 했다. 마도 일맥의 젊은 남성 중, 그와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상대가 몇이나 되겠는가. 임엽이라는 자의 실력이 출중하기는 하지만, 그는 음마종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배월교의 성녀는 뜻밖에도 자기 뜻에 따라 주기는커녕,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창피를 안겨 주는 게 아닌가.
하지만 배월교 성녀로서는 그의 희롱은 얼토당토않은 개수작이었다. 엽천사의 신분이 아무리 상승했어도 그렇지, 배월교의 성녀라는 신분에 비하면 발톱의 때만도 못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마도인이 보기에는 배월교 성녀가 엽천사에게 분개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했다. 배월교의 성녀는 아직 다 성장하기 전이긴 했지만, 장차 배월교의 상위 서열 사 위에 오를 귀한 몸이었다. 엽천사가 잠재력이 높은 준걸이라지만 어디 감히 배월교의 성녀에게 들이댄다는 말인가.
심지어 무도종사인 사극종의 종주조차도 배월교의 성녀 앞에서는 굽신거리며 예우를 다하는 게 현실이다. 상황이 그러니 아무리 엽천사라도 무안을 당한 분노를 이 자리에서 당장 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기서 발끈한다면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인데 엽천사가 그걸 모를 정도로 분별이 없지는 않았다.
그때 마침 부하들을 이끌고 안태부에서 나오던 초휴 일행이 엽천사와 마주쳤다. 양쪽 모두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엽천사가 어리둥절한 이유는 초휴의 등장이 뜻밖이었기 때문이었지만, 초휴가 놀란 건 엽천사와 마주쳐서가 아니라 배월교의 성녀가 나타났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배월교의 성녀는 부옥산 정마대전에서 무도종사 호위들에게 둘러싸여 고술(蠱術)을 펼쳤었다. 그녀가 조종하는 고충에 의해 얼마나 많은 정파 무인들이 참혹하게 목숨을 잃었던가. 그녀의 인상적인 실력을 초휴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엽천사는 초휴를 보자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말했다.
“초휴로군. 관중형당 놈들이 이곳에는 무슨 볼일이 있어서 온 건가?”
엽천사는 초휴와는 만난 적이 없었다. 아니 ‘임엽’은 만났지만, 그의 진짜 신분인 ‘초휴’와는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초휴와 만난 적이 없는 엽천사라도 초휴가 누군지는 알고 있었다.
과거 사극종은 용호방에 이름을 올린 마도의 신예 동개태(童開泰)를 영입하고자 했다. 엽천사가 폐관 수련을 할 때 내세울 인재가 필요해서였다. 그러나 동개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초휴의 손에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다. 당시 사극종은 대놓고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인지라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그냥 넘겼다. 하지만 여기서 이렇게 초휴와 마주치는 것은 예상 밖의 상황이었다.
초휴는 무심히 대답했다.
“시끄럽군. 내가 여기 오는 것까지 마도에게 보고하고 다녀야 하나?”
엽천사는 눈살을 찌푸리다가 초휴의 몸에 묻은 혈흔을 발견했다. 게다가 초휴의 몸에서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살기가 느껴지는 게 아닌가. 엽천사는 정색하며 음산한 목소리로 추궁했다.
“장초범을 어떻게 한 거지?”
최근 낙안군에서는 장초범 말고는 크게 움직이는 인물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초휴가 방금 살인을 한듯한 모습으로 여기 나타났으니, 결국 장초범을 죽였을 거라는 추론이 도출되는 건 무리가 아니었다.
“어쨌냐고?”
초휴가 차갑게 코웃음을 친 뒤 대답했다.
“자기가 곤륜마교의 잔당이라고 설치고 다니는 놈을 내가 어떻게 했을 거 같은가? 당연히 죽여 없애버렸네.”
초휴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엽천사는 등에 메고 있던 장창 혈교를 전광석화와도 같은 속도로 빼 들었다. 세로로 선 황금빛 뱀의 눈동자를 번뜩이며 그는 득달같이 초휴에게 달려들었다.
“감히 사극종이 영입하려던 자에게 손을 대다니. 죽어라, 초휴!”
엽천사가 앞뒤 안 가리고 출수하자 사극종의 무인들은 깜짝 놀랐다. 겉보기에는 오만하고 충동적인 엽천사가 사실은 이성적이고 명석한 사람이라는 걸 사극종 사람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자가 다짜고짜 출수했으니 그의 분노가 얼마나 극에 달했는지 알만했다. 물론 그의 분노는 사실 초휴가 아니라 배월교의 성녀를 향한 것이라고 해야 할 터였다.
엽천사는 무공을 연마하기 시작한 날부터 사극종의 차세대 계승자로서 모두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아 왔다. 그는 사극종을 중흥시킬 미래의 희망이었다. 그런 그가 난생처음 여자에게 거절을 당했다. 배월교의 성녀 덕분에 말이다. 굴욕적인 거절을, 그것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모욕이나 다름없는 매몰찬 거절을 당한 것이다. 어찌나 화가 났던지 하마터면 이성을 잃고 성녀를 공격할 뻔했다. 다행히 사극종의 무인들이 진정시키는 바람에 간신히 이성의 끈을 다잡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분노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초휴와 마주친 엽천사는, 자신을 안중에 두지 않는 초휴의 말투에 폭발하여 혈교를 빼 들고 달려든 것이다. 지금 그는 한바탕 시원하게 분풀이할 대상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엽천사가 자신을 죽일 기세로 달려들자 초휴도 미간을 찌푸렸다. 관중형당 장형관 신분으로는 초면인 엽천사가 다짜고짜 출수하자 초휴는 슬쩍 부아가 치밀었다.
‘장초범이라는 애송이 하나 없앤 것뿐인데 어째서 친부모라도 죽인 것처럼 불같이 화를 내며 날뛰지?’
혈마심경이 아니라 노목금강심경(怒目金剛心經)을 연마한 자처럼 이성을 잃고 날뛰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엽천사가 먼저 공격을 해왔으니 이유 불문하고 상대해 주는 게 도리일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