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20)
420화 모든 게 결정된
초휴는 고개를 돌려 당아를 힐끔 노려보며 말했다.
“그게 길이 남을 사랑 이야기가 아니고 막장극이 될 거라는 걸 모르는 모양이군. 만약 정말로 배월교의 성녀가 어떤 남자와 함께 도망간다면 다음날 당장 배월교는 물론이고 명마권 전체가 강호 전체를 샅샅이 뒤져서 그 남자를 잡아 족칠 거야. 그자는 야소남의 보천심경(補天心經)과 동황태일의 분천보감(焚天寶鑒)을 동시에 상대하게 되겠지. 애초에 가난뱅이 남자와 거대 종문의 아가씨가 사랑에 빠지는 얘기 자체가 사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야. 끼리끼리 만난다는 게 괜히 나온 말인 줄 아나? 명문 세가의 사람들은 자신의 딸을 하찮은 출신의 가난뱅이에게 시집보내느니 평생 처녀로 썩히는 게 낫다고 생각할걸세. 귀수왕이 자네를 가리켜서 하는 말을 들어보니 요즘 너무 한가해서 빈둥빈둥 놀고먹는다던데, 지금 보니 종일 시답지도 않은 강호 풍문에만 몰두하고 있었군. 그렇게 한가하면 내가 일거리를 만들어 주지. 넓은 관서 땅에서 정신이 빠지도록 몰두해야 할 일 하나 찾는 게 뭐가 어렵겠나.”
‘뒤에서 내 일을 일러바치다니, 귀수왕 이 작자가!’
당아는 속으로 귀수왕을 욕하며 허겁지겁 손을 내저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지금 제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바빠서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초휴는 손짓으로 당아 등을 물러나게 했다. 그는 당아와 실랑이를 벌일 생각은 전혀 없었다. 요즘 당아의 상황을 모르지는 않았으나 굳이 그의 일에 관여하고 싶지도 않았다. 초휴가 부하에게 원하는 건 단 두 가지, 능력과 복종이었다. 능력이 출중하고 자신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만 한다면 남는 시간에 무슨 취미를 즐기든, 무엇을 하든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임무가 끝났으니 초휴는 동제에 더 머무를 생각이 없었다. 이곳은 초휴의 관할 구역도 아니고 낙안군에는 큰 인물이 없으니 힘을 과시하며 누구를 없애는 건 간단했다. 하지만 혹여 그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큰 세력과 마주친다면 또다시 충돌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밤에 길을 떠나기로 하고 그들이 객잔에서 쉬고 있을 때, 갑자기 창밖에서 익숙한 기척이 전해졌다. 초휴는 눈썹을 찡긋 치켜세우더니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호흡을 숨긴 채 밖으로 향했다.
객잔에서 멀지 않은 어느 숲 외곽에서 그를 기다리는 사람은 육 선생이었다. 여전히 흐트러짐 없는 기세가 느껴지는 그는 인상을 잔뜩 쓴 채, 초휴를 바라보고 있었다. 초휴는 육 선생의 강고한 기세를 느끼자 그가 무도종사에 도달할 날이 머지않았음을 감지했다.
육 선생이 찾아온 건 장초범 때문이었다. 장초범이 동제에서 워낙 요란하게 설치고 다닌 탓에 무상마종의 귀에까지 소식이 들어간 것이다. 다만 소문을 접한 게 매경령보다는 한발 늦었다. 사실 무상마종 내에서 초휴가 마심당의 계승자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으니, 장초범이 자신이 마심당의 후예라고 떠들고 다녀도 이상하게 여긴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급기야 육 선생의 귀에까지 소문이 들어가자, 그제야 그는 폐관 수련을 중단하고 초휴를 찾아 나선 것이다. 장초범이 마심당의 후예라면 초휴는 대체 뭐란 말인가?
곤륜마교가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고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강호에서 그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곤륜마교의 이름을 아는 이들에게 곤륜마교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구할은 바보같이 멍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곤륜마교에 사대 지존이 있었는지 팔대 지존이 있었는지도 잘 몰랐다. 게다가 마심당은 곤륜마교 휘하의 한 당구에 불과하다. 약하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명성을 떨칠 정도로 막강한 조직은 아니었기 때문에 과거 곤륜마교와 관계가 있었던 종문이나 세력을 제외하고는 그 존재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고 해야 할 터였다.
하지만 이 장초범이라는 자는 곤륜마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낭인 출신의 무인으로 평생 동제 밖을 벗어난 적이 없는 자다. 그런 인물이 마심당의 이름을 아는 것은 물론 몸소 마공을 시전까지 했으니 육 선생이 의혹을 품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가 급히 안태부로 달려왔을 때, 장초범은 이미 죽어 시신의 흔적조차도 찾을 수가 없었다. 초휴의 부하들이 시신까지 이미 깨끗하게 처리 한 뒤였기 때문이다.
이쯤 되니 육 선생도 더는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관중에 있던 초휴가 이 먼 동제까지 직접 출동해 자기 휘하의 역량을 총동원해서 장초범을 죽였다? 그것만으로 모든 사실은 명백하지 않은가.
두 사람은 오랫동안 침묵했다. 육 선생도 초휴도 말이 없었다. 분위기가 한껏 무겁게 가라앉자 육 선생이 침묵을 깨고 초휴에게 물었다.
“장초범이 죽었나?”
초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죽었습니다. 머리카락 한 올 남기지 않고 철저하게 세상에서 사라졌죠.”
육 선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불쑥 물었다.
“성녀 대인은 이 일을 아시는가?”
초휴가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자의 소문을 알려준 사람이 성녀 대인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제가 어떻게 동제의 일까지 알았겠습니까.”
또다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육 선생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지만, 눈빛은 종잡을 수 없이 요동치고 있었다. 한참 후 또 육 선생이 침묵을 깼다.
“오늘 사극종의 엽천사와 대결을 했다고 들었는데 어땠는가?”
초휴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실력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높이 평가해 봐야 평범한 수준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무공의 구할을 외력에 의존하고 있으니까요. 혈교내단과 혈교심경 덕분으로 강력한 힘을 가진 건 확실하지만, 아직 자신만의 무도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용호방의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자들은 모두 자신만의 무도를 찾은 사람들이죠. 장승정은 뇌법(雷法), 종현은 인법(印法), 방칠소는 검법이라고 할 수 있죠. 오늘 저는 엽천사를 압도하는 데 그쳤지만, 다음번에 또 붙는다면 반드시 죽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로 까다로운 건 엽천사가 아니라 배월교의 성녀더군요. 그 여자는 절대로 간단한 상대가 아닙니다.”
육 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배월교의 역대 성녀 중에 만만한 사람은 없었지. 그 여자를 안 건드린 건 참으로 잘한 일이네. 어쨌든 일은 깨끗이 처리했군그래. 위서애 선배 등은 이번 일을 알 필요도 없고 아마 계속 모를 걸세. 난 다만 자네가 우리 은마권을 실망시키는 일은 없기를 바랄 뿐일세.”
육 선생은 초휴가 진짜 마심당의 후예인지 아닌지에 관하여는 추궁하지 않았다. 이번 일의 결과는 입에 올릴 필요도 없었고, 아마 그가 매경령이었어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그저 잡담처럼 들리는 대화였지만 그런 육 선생과 초휴의 의중이 분명하게 담겨있었다.
장초범은 죽었고 시신은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처리했으니 누가 뭐라고 해도 진짜는 초휴인 것이다. 가짜든 진짜든 살아남은 단 한 사람이 진짜가 되는 것이다. 육 선생은 초휴를 여전히 은마 계통의 마도 신예로 여겼으며 배월교의 성녀와 정파의 준걸들에 대항할 수 있는 비장의 패라고 생각했다. 만약 지금 초휴를 잃는다면 배월교와 정파에 대항하기는커녕 엽천사를 상대하는 것조차 버거울 터였다.
이런 상황에서 초휴가 진짜든 아니든 그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초휴가 은마권에 이득이 되는 인물인 이상, 그들에게 초휴는 진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이 사실을 초휴에게 알린 사람이 매경령이라면 그녀 역시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육 선생과 같은 생각을 했다는 말이 아닌가. 세상에는 끝까지 파고들 필요가 없는 일도 있다. 그것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면 말이다.
육 선생이 다녀간 후에야 초휴는 진정한 의미의 위기를 벗어났다. 육 선생과 매경령의 선택은 초휴를 대하는 은마권의 자세, 즉 방향성을 의미했다. 그를 적으로 볼 것인가, 아군으로 볼 것인가. 애초에 초휴의 진짜 신분을 아는 사람도 그들뿐이니 그들이 초휴를 선택했다면 모든 게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관중형당으로 복귀하는 길에 초휴는 부하들을 먼저 돌려보내고 자신은 보고하려고 본부로 갔다. 사실 관사우를 만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매경령을 만나는 일이었다. 매경령은 초휴가 그녀를 찾아가기도 전에 먼저 초휴가 있는 방으로 왔다. 초휴는 느닷없이 매경령이 나타나자 눈썹을 찡끗 올리며 놀랍다는 듯 말했다.
“대낮에 불쑥 찾아오시다니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도 안 쓰십니까?”
매경령은 무심하게 대답했다.
“안심해요. 이 관중형당 본부의 뒤채에서 겁도 없이 함부로 입을 놀리는 사람은 없으니까. 당신 일이나 말해 봐요. 어떻게 됐어요? 뒤처리는 깔끔하게 했겠죠?”
초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머리카락 한 올 찾지 못하게 깨끗이 처리했습니다. 육 선생도 만났으니 모든 게 순조롭게 처리된 셈입니다.”
매경령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초휴의 편에 서기로 선택한 마당에 모든 것이 틀어져 초휴의 정체가 은마권에 드러났다면 자신 또한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매경령은 안도하면서도 못마땅하다는 듯 말했다.
“당신처럼 간덩이가 배 밖으로 튀어나온 사람은 처음 봐요. 감히 은마의 수많은 선배 고수들 앞에서 그런 대담한 장난을 치다니 겁이 없어도 너무 없군요.”
초휴는 당당했다.
“진위 여부보다 결과가 더 중요한 일도 있는 법입니다. 결과적으로 잘 해결됐으니 좋은 게 아니겠습니까? 동제의 소식을 들었으니 장초범이라는 작자가 어떤 놈인지는 성녀 대인도 잘 아실 테고요? 만약 그런 놈이 곤륜마교의 계승자가 된다면 은마권에게는 그것이 훨씬 더 큰 재앙일 테지요.”
매경령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초범을 직접 본 적은 없어도 초휴와 어깨를 견줄만한 젊은 준걸이 강호에 몇 명 안된다는 사실 만큼은 인정하고 있었다. 음마종은 본래 세력이 아주 미약했다. 초휴를 잃는다면 은마의 위신을 세워 줄 용호방 상위권의 젊은 무인을 어디서 또 찾을 수 있겠는가.
그때 초휴가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참, 이번에 사극종도 장초범을 찾으러 나섰더군요. 다행히 그들이 한발 늦어 무사히 일을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사극종의 엽천사와 결투를 했는데 이상한 건 배월교의 성녀가 사극종의 편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배월교와 사극종의 관계가 벌써 이렇게까지 발전한 겁니까? 게다가 엽천사의 실력이야 내가 한 수 위라는 걸 단번에 알았지만, 배월교 성녀의 실력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습니다. 모르면 몰라도 용호방 상위 십 위권이나 오 위권에는 충분히 들 만큼 실력이 뛰어난 고수일 겁니다. 우리 세대 중에서도 단연 월등한 듯합니다.”
매경령은 하찮아서 이야기할 가치도 없다는 듯 대답했다.
“사극종이 배월교와 대등한 관계를 맺을 깜냥이 될 것 같나요? 철저한 주종 관계라면 모를까. 사극종은 배월교 성녀가 아니라 배월교의 평범한 사절이 와도 굽실거리며 비굴하게 고개를 숙일 거예요. 물론 배월교의 성녀가 만만치 않은 상대임은 분명해요. 성녀가 괜히 성녀가 아니거든요. 성녀는 배월교의 교주도 섣불리 볼 수 없는 배월교의 특급 비전(秘傳)을 연마할 자격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죠. 하지만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어요. 배월교의 성녀는 지금이니까 명성이 높은 거지, 과거엔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곤륜마교가 강성할 때는 숱한 마도 종문에서 성녀니 성자니 하는 사람들을 세웠죠. 모두 곤륜마교를 보고 배운 관습이에요. 곤륜마교가 성교(聖教)로 불렸으니 그를 추종하는 마도 종문들이 성자나 성녀를 세우는 건 지극히 평범한 일이었지요. 다만 배월교의 성녀는 워낙 특이한 직위에 속해요. 선발 과정도 엄격하고 대대로 고귀한 지위를 누리죠. 대신 수명이 짧아요. 역대 성녀들은 무도종사의 경지에 올라도 수명이 오십을 넘기지 못했으니까요. 내 생각엔 배월교의 성녀가 대대로 익히는 마공에 결함이 있는 듯해요. 아마 단시간 안에 무도종사급의 강자로 만들어 주지만 수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마공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