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27)
427화 시합 방식
비무초친, 즉 사윗감 선발 무예 시합이라는 건 사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겉치레에 불과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낙비홍이 응전자의 위치에 서고 그녀를 꺾는 사람이 신랑으로 낙점될 될 터였다.
하지만 심기가 극도로 불편한 낙비홍을 응전자로 세울 수는 없었다. 애초에 낙비홍을 실력으로 이길 수 있는 남자가 몇 없기도 하거니와, 설사 있다고 해도 그녀와 대결하려고 비무대에 오른다면 낙비홍이 극악한 수단을 쓸 것은 뻔한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비무초친은 시합이 아닌 살인의 장으로 변질될 것이다.
그러한 연유로 낙가가 채택한 시합 방식은 응전자를 한 명 비무대에 세우고 참가자들이 그에게 도전해, 최후의 승자가 낙비홍의 신랑이 될 자격을 쟁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승 내정자인 영백록이 비무대에 선다면 감히 누가 그에게 도전장을 내밀겠는가.
그러나 영백록은 뜻밖의 발언을 했다.
“오늘 비무대에는 제가 아닌 동생 영백호(贏白虎)가 오를 겁니다. 강호 경험은 짧지만 실력은 비무대에서 강호 준걸들과 경쟁하기에 충분할 겁니다.”
영백록이 이렇게 말하자 중인들은 놀라서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말이 비무초친이지 상수 영가의 영백록을 사위로 공표하려는 낙가의 숨은 목적을 강호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판이다. 그런데 혼사의 대상이 영백록에서 동생인 영백호로 난데없이 뒤바뀌다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물론 영가의 제자 중 강하지 않은 자가 없었고, 영백호라면 영백록의 친동생이니 보통 신분은 아니다. 하지만 영백호가 아무리 귀한 몸이라고 해도 영백록과 같은 지위는 아니지 않은가. 갑자기 상황이 이리되자 낙가는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낙구년은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영 공자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구려. 비무대에 직접 오를 준비가 안 되었다는 뜻이오?”
영백록이 반문했다.
“제가 비무대에 오른다고 누가 그러던가요? 낙가도 우리 상수 영가에게 사돈을 맺자고 했지, 반드시 제가 신랑이 되어야 한다고 한 적은 없지 않습니까? 왜 그러시죠? 설마 제 동생은 낙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보시는 겁니까? 설마 제 동생을 무시하는 건 아니겠지요?”
낙구년은 목이 막힌 것처럼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영백호를 무시한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 비슷한 발언이라도 했다가는 상수 영가 전체를 적으로 돌리게 될 텐데.
하지만 낙가에게 이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영백록을 사위로 삼는 것과 영백호를 사위로 삼는 것의 격차는 컸기 때문이다. 영백록은 용호방 오 위의 준걸이며 영가의 계승자이지만 영백호는 영씨 가문의 평범한 제자에 불과하지 않은가.
아래에서 사소루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낙가가 머리를 얍삽하게 굴리다가 영씨에게 뒤통수를 맞았군.”
초휴 역시 비웃음을 흘리며 맞장구를 쳤다.
“원래 강호엔 공짜라는 게 없는 법이지. 낙가는 딸 하나로 상수 영가의 비호를 등에 업는다지만 상수 영가는 얻는 게 낙비홍 말고는 뭐가 있나? 다 기울어가는 낙가? 하지만 영백호나 그다지 비중이 없는 영가의 제자를 내세워 용호방 십 위의 낙비홍을 얻는다면 상수 영가로서는 남는 장사인 거지. 참, 영백호가 어떤 인물인지는 아는가? 실력은 영백록에 비해서 어느 정도지?”
막천림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상수 영가에 영백록이라는 걸출한 인재가 있는데 다른 제자들이 빛을 볼 수나 있겠어? 영백호도 상수 영가 중에서는 비교적 알려진 인물이지만 영백록의 광채에 가려져서 맥을 못추고 있지. 저 어두침침한 안색 좀 보라고. 분명 형에게 불만이 많을 거야. 영백호라는 이름의 유래도 유감스럽지. 형은 상서로운 백록이 나타나서 백록이라고 이름 지어졌지만, 백호는 태어날 때 백호가 나타나서 백호가 된 게 아니라 형이 백록이니 돌림자를 써서 백호가 된 것뿐이니까. 자기 이름조차 형의 그늘에 가려져서 지어졌는데 형에게 아무 불만이 없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그나저나 사람이 영백록에서 영백호로 바뀌었는데 우리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 건가?”
초휴가 실눈을 뜨며 대답했다.
“당연히 원래 계획대로 해야지. 낙비홍의 마음이 확실한 이상 우리는 계획에 협조하면 그만이야. 영백록이든, 영백호든 우리의 역할은 낙비홍에게 최대한 시간을 벌어 주는 게 아닌가.”
막천림이 고개를 끄덕이며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영백록이 영백호에게 이 자리를 떠넘긴 이유는 사실 따로 있어. 영가가 낙가의 뒤퉁수를 치려던 것이라기보다는 영백록이 낙비홍과의 혼인을 원하지 않아서 일거야, 내가 알기론 영백록은 월녀궁의 ‘운검선자(雲劍仙子)’ 안비연(顏非煙)에게 마음이 있거든. 영백록이 고백을 했지만, 남자와 연애를 할 수 없는 월녀궁의 규칙 때문에 안비연이 완곡하게 거절했다고 하네. 물론 그래도 영백록은 마음을 접지 않았지. 다 강호에 떠도는 소문이고 여자들의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라 나도 이 소문이 확실한 사실인지까지는 모르지만.”
사소루는 막천림의 이야기를 듣다가 못 견디겠다는 듯 타박했다.
“자넨, 요즘에도 온종일 강호 풍문에만 몰두하나 보군그래.”
사소루가 놀리듯 말하자 막천림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강호 풍문이 뭐 어때서 그러나?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도 몰라? 잠시 후면 영백록과 붙을 수도 있는데 정보가 빠삭해야 우리 쪽이 유리할 거 아니야?”
그 말에 사소루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입을 삐죽거렸다. 당최 그런 소문이 영백록과의 싸움에 무슨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사소루와 막천림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낙구년은 결심한 듯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영 공자의 뜻이 그렇다면 따라야지. 그럼 시합을 시작하겠소.”
낙가에게는 영씨와 사돈을 맺는 게 우선순위이지 누구를 사위로 들이느냐는 둘째 문제였다. 비록 영백록과 영백호의 격차가 크기는 했지만, 영백호를 사위로 맞아도 상수 영가와 연을 맺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가 아닌가. 게다가 영백호 역시 상수 영가의 적통이니 영백록을 사위로 맞았을 때만큼은 아니어도 적지 않은 특혜를 누리게 될 터였다. 그러니 낙구년은 꺼림칙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낙구년이 떠나자 영백록은 영백호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형이 준비한 이 혼사 마음에 들어? 오군의 낙가는 가세가 기울고 있긴 하지만 낙비홍은 정말 괜찮은 여자야. 낙가가 안목이 없어 귀중한 보석인 줄을 모르고 팔아 치우려는 것뿐이지. 내가 이 보석을 네게 주마. 너의 신분과 우리 영씨에게 큰 보탬이 될 여자야.”
영백록의 말에 영백호의 얼굴에 싸늘한 미소가 떠올랐다. 안 그래도 어두웠던 낯빛이 냉소로 인해 한층 더 음험하게 일그러졌다.
“어릴 때부터 집안의 좋은 물건은 다 형 차지였지. 자기가 갖기 싫은 것만 적선을 베풀 듯이 나에게 던져 주면서 좋은 형인 척했었고 말이지. 이러는 게 재미있어? 누가 봐도 낙가가 원하는 건 내가 아닌 형이잖아? 다른 건 말할 것도 없지만 혼사까지도 이런 식으로 해야겠어? 정말 좋은 형이 되고 싶다면 낙비홍이 아니라 안비연을 양보하는 게 어때?”
짝!
뺨 때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지만 영백록의 움직임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물론 옆에 있던 상수 영가의 노복은 영백록의 움직임을 보았을 것이다.
영백호는 뺨을 움켜쥔 채 영백록을 무섭게 노려봤지만 더는 대들지 못했다. 영백록은 여전히 화사한 미소를 얼굴에 가득 띤 채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그동안 네게 적선을 베푼 게 아니야. 챙겨준 거지. 넌 내 동생이니까. 하지만 네가 내 동생이기 때문에 감히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것들도 있어. 만약에 그런 것들을 네가 건드린다면 난 당연히 화를 내게 될 거다. 정신 차리라고 때린 것이니 앞으로는 절대 내 화를 돋우지 마라. 낙가와의 혼인은 아버지와 상의해서 승낙을 받은 일이다. 너를 위한 비무대가 눈앞에 있지 않으냐. 오르건 말건 네가 결정할 일이니 알아서 해라.”
영백록이 온화한 말투로 꾸짖자 영백호는 여전히 뺨을 움켜쥐고 차갑게 쏘아붙였다.
“오를 거야! 누가 안 오른대? 언젠가는 반드시 후회하는 날이 올 거야!”
영백록은 자신이 원하는 상대를 마음대로 고를 수 있었고 원치 않으면 혼인을 꼭 강행할 필요도 없었다. 아마 영백록이 평범한 여자를 아내를 맞겠다 한들, 영씨세가는 그의 결정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영백호는 영백록과 처지가 달랐다. 영씨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면 낙비홍과 혼인해 낙가의 힘이라도 손에 넣어야 했다. 영백호는 결심했다. 영백록이 하찮게 여겼던 낙가의 힘을 이용해, 자신의 것이 되어야 했을 것들을 훗날 하나하나 손에 넣겠다고.
그는 내력으로 얼굴의 손바닥 자국을 지우고는 성큼성큼 비무대로 올라갔다. 오기조원의 실력이 만천하에 드러나자 모두가 놀라 숨을 죽였다. 많이 어려 보이는데도 벌써 오기조원이라니 놀랍지 않은가.
영백호는 강호에서 정식으로 출수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무공 실력이 형의 반이라도 따라간다면 금세 용호방의 상위 십 위권에 오를 터였다. 한 가문의 두 형제가 나란히 용호방에 이름을 올린다? 상상만으로도 엄청난 일이었다.
영백호가 비무대에 오르자 모두가 경악했다. 꼭꼭 숨겨 두었던 무명의 제자가 이 정도 실력이라면 상수 영가의 힘은 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 제자 중 아무나 무작위로 내세워도 오기조원은 당연하다는 뜻일까?
그때 영백록의 옆을 묵묵히 지키던 노복이 조용한 목소리로 탄식했다.
“대공자님, 이공자님이 아직 철이 없고, 어릴 때부터 가주님께 혹독한 가르침을 받아서 성품이 과격합니다. 너무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영백록은 화사하게 웃는 얼굴로 비무대를 바라보며 여전히 온화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복백(福伯), 나도 모르지 않아요. 설마 내가 그걸 모르겠습니까. 영씨세가의 힘의 원천은 한 개인이 아니라 영씨세가 일원 전체에서 나오죠. 난 아직 백호가 그 점을 모르는 게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어요. 선만 넘지 않는다면 나를 미워하는 마음은 백호에게는 성장하고자 하는 강력한 동력이 될 테니까요. 백호가 강해지면 그만큼 상수 영가의 힘이 강해지는 것이니 결국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복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공자의 배포가 대공자처럼 크다면 영씨세가는 앞으로 더 눈부시게 번창할 겁니다.”
영백록의 배포는 복백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그 자신감의 근원은 물론 실력이었다. 영백호가 자신을 미워한들, 질투한들 뭐가 문제란 말인가? 그가 아무리 자신을 원망한들, 동생은 현생에서도 다음 생에서도 자신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할 터였다. 자신의 실력에 대헤서 이처럼 강한 확신이 있었기에 영백록은 마음을 크게 먹을 수 있었다. 사실 다른 수많은 가문에서 벌어지는 형제간의 내분은 그들의 실력 차이가 미미해서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내분도 후계자 자리를 원하는 대상과 그 자리를 빼앗길까 봐 두려워하는 자의 힘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어야 성립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상수 영가는 달랐다. 영백록이 어디 후계자 자리를 빼앗길 인물인가? 천하에 둘도 없는 무쌍공자의 지위를 상수 영가의 그 누가 대체할 수 있겠는가. 해서 영백록은 자신을 원망하는 영백호의 마음을 과감하게 방치했다. 그의 눈에 영백호의 치기는 장난감을 갖지 못해 떼쓰는 어린아이의 행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조금 전처럼 영백호가 그의 민감한 영역을 건드릴 때는 선을 넘지 못하도록 따끔하게 혼을 내며 훈계했다.
비무대에 올라간 영백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기세가 경기장 전체를 가득 메웠다. 영백록의 그늘에 가려지지만 않았다면 영백호도 진즉에 강호를 누비며 무림 전체에 명성을 드날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형인 영백록의 상대는 되지 못해도 설마 이 자리에 모인 머저리들을 못 이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