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3)
초휴가 유리 금사고(琉璃金絲蠱)를 집어 들자 녀석은 그의 손바닥 위에서 천천히 꿈틀댔다. 불문 고승의 유리 불사리에서 생겨난 녀석이라 그런지 다른 독충들처럼 성질이 사납지는 않은 듯했다. 녀석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초휴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조소가 감돌았다.
아마 지난 세월 동안 초종광은 진기를 써서 유리 금사고를 체내에 흡수해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을 터. 그러나 그건 정말 얼토당토않은 바보짓인 셈이었다. 이런 고급 수련자원은 그것만의 용법이 따로 있기 마련이다. 초종광은 그렇게 오랜 세월을 저급한 방법으로만 유리 금사고를 흡수하려 했으니, 앞으로 백 년을 더 그런 식으로 노력했어도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초종광도 다른 방법을 시도해보긴 했을 터. 그게 모조리 실패로 돌아가서 문제였겠지만 말이다.
이 유리 금사고는 초종광이 자신의 목숨과 맞바꾸다시피 가져온 보물인 만큼, 그의 집념이 되어 자신의 반평생을 걸다시피 했을 것이다. 성공하기 전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겠노라 굳게 다짐을 했겠지만. 결국, 목적을 이루기는커녕 그 집념이 집착으로 변하며 목숨을 잃고 말았다.
초휴는 자신의 옷섶을 풀어헤쳐 가슴의 맨살을 드러냈다. 홍수도의 칼끝을 자신의 명치에 겨누고 천천히 살점을 갈랐다. 생살이 찢기는 고통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지만, 칼을 든 손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가슴살을 갈라낸 그는 그 상처 위에 유리 금사고를 올려놓았다. 녀석은 피비린내를 맡기라도 했는지 투명한 유리표면이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미친 듯이 상처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극심한 고통을 견디며 초휴의 온몸이 온통 땀으로 젖었고 절로 신음 소리를 참을 수 없었다. 그의 살 속을 내리 파고든 녀석은 심장을 한입 깨물더니 피를 빨기 시작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금색을 띤 유리 불광(佛光, 세상을 비추는 부처님의 광명)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초휴의 경맥을 따라 흐르는가 싶더니, 어느샌가 칼에 찢긴 가슴의 상처가 눈에 띄게 아물기 시작했다. 어느샌가 상처를 따라 흐르던 선혈도 멈추었고 심묵의 공격에 구멍까지 났던 어깨도 빠르게 복구되고 있었다. 유리 금사가 어깨의 골절 부위를 연신 휘감으니, 부러졌던 뼈도 조금씩 다시 붙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있던 초휴는 통증이 사라지자 자신의 몸을 한바탕 씻어내는 강력한 힘을 느꼈다. 무수한 유리 금사가 심장에서부터 폭발하듯 뻗어 나오더니, 마치 처음부터 혈맥 내에 존재했던 힘인 것처럼 초휴의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번쩍 눈을 뜬 초휴는 누가 들을세라 소리 죽여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몸에 난 상처를 빠르게 회복시키는 건 유리 금사고의 작은 재주에 불과했다. 무사의 환골탈태도 가능케 하는 유리 금사고는 심지어 불구자일지라도 무도의 천재로 만들어 주는 능력이 있었다.
배월교에서 키우는 독충들이 거칠고 포악한 성질을 가져 엄청난 살상력을 보이는 데 반해, 유리 금사고는 공격성 없이 사람의 심장에 흐르는 피를 먹고 자랄 뿐이었다. 초종광이 제아무리 갖은 방법을 동원해 녀석을 흡수하려 해도 뜻을 이루지 못했던 것은 유리 금사고가 사람의 몸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공생하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방금 전 초휴가 유리 금사고를 자신의 심장에 들여보내 피를 흡수해 생존할 수 있게 하자, 유리 금사고도 자신의 힘을 발산해 숙주의 수련 속도를 향상시켜 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 향상 효과가 얼마만큼 세질 수 있는지는 유리 금사고와 공생 관계에 있는 숙주의 실력이 어떤지에 달린 문제였다. 실력이 강한 무사일수록 기혈도 강하기 때문에, 유리 금사고의 성장 속도도 그만큼 빨라져 숙주에게 제공하는 힘도 더불어 강해지게 된다.
초휴는 유리 금사고를 품고 단번에 하늘로 올라서는 환상을 꿈꿨지만 그건 그야말로 환상일 뿐, 현실은 이제 겨우 유리 금사고 덕분에 하늘로 올라설 수 있는 지름길을 찾은 데 불과했다.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다시금 옷섶을 잘 여몄다. 이 녀석의 존재를 그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 된다. 유리 금사고는 체내로 흡수할 수 없고 그저 인간과 공생할 뿐이다. 바로 이런 특성 때문에 누군가가 초휴를 죽이고 가슴을 열어 유리 금사고를 빼내면, 그자도 유리 금사고의 주인이 되어 같은 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초휴는 유리 금사고를 품은 뒤로 부쩍 자신의 실력이 증강되어 어느샌가 응혈경의 최고봉에 이른 것을 깨달았다. 초휴의 심장에 기생하는 유리 금사고가 초휴의 혈액을 통해 자신의 힘을 온몸의 경맥으로 흘려보내어 힘을 응축시킨 덕에, 그는 거의 순식간에 응혈경의 최고봉에 올랐으며 이제 곧 선천경도 노려볼만하게 되었다.
그러나 초휴는 수련을 서두르는 대신 용기금군이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들 셋은 오랜 세월 타지를 떠돌면서 동제 이황자를 위해 보물을 모아왔다. 그런 그들이 몸에 지니고 있을 정도라면 허접한 물건은 아닐 게 분명했다. 이는 홍수도만 봐도 명백했다.
무릇 병기는 일급부터 구급까지 있다. 앞의 세 개 급수는 보통의 병기이고 중간 세 개 급수는 되어야 비로소 보검이라 칭할 수 있으며 병기 자체의 이름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 홍수도는 오급에 속하니 보검 중에서도 중간 등급인 셈이었다. 초휴가 다른 함도 열어보았더니 뜻밖에도 거기서 무공비급 두 권이 나왔다.
“세우황혼홍수도(細雨黃昏紅袖刀)와 대기자금나수(大弃子擒拿手)?”
초휴는 검법비급을 몇 번 들쳐보다가 곁에 둔 홍수도를 한번 쳐다보았다. 대충만 봤는데도 비급에 쓰여 있는 검법이 절묘할 정도로 홍수도와 딱 맞아떨어졌다. 게다가 초휴의 눈에 비친 세우황혼홍수도는 아무리 점수를 박하게 줘도 사급과 오급 사이는 족히 될 만한, 결코 낮은 급수가 아닌 검법이 분명해 보였다.
그는 대기자금나수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런데 그 무공은 볼수록 신기했다. 본디 ‘금나수’는 평범한 강호 무사도 손쉽게 익힐 수 있는 낮은 급수의 무공이었다. 그런데 대기자금나수를 두고 신기하다고 표현했던 이유는 그것의 오묘함 때문이었다. 즉, 이 무공을 익힌 사람의 손에 몸의 한 부분이라도 잡히는 날엔, 그게 한낱 귀걸이이건 옷자락이건 간에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그 손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사지가 파열되고 관절이 으스러지니, 이 또한 적어도 사급은 될 만한 무공이었다.
이 무공의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기자(弃子)’는 버린다는 의미를 가졌다. 그런데 대기자금나수는 그 명칭과는 완전히 상반되게 한번 손으로 잡은 상대는 놔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되레 찰싹 들러붙어 상대가 뿌리치거나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든다. 처음부터 칼을 병기로 사용한지라 다른 무공에 대한 조예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초휴는 대기자금나수가 자신의 결함을 메꿔줄 천군만마처럼 느껴졌다.
초휴가 마지막 남은 함을 열자 거기에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금속 비전함이 들어 있었다. 그 비전함을 열어보니 뜻밖에도 속이 텅 비어 있어 실망감이 들었다.
“근데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설마 아까 나온 두 권의 무공비급 중 한 권이 여기에 들어있었던 걸까. 하지만 그렇게만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무공비급을 꺼냈으면 텅 빈 비전함을 뭐에 쓰려고 남겨두었단 말인가.
초휴는 영문을 몰라 요리조리 비전함을 만져보다가 뭔가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바보짓 같긴 해도 곁에 있던 홍수도를 들어 비전함에 쑤셔 넣으려 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 손바닥 정도의 크기밖에 안 되는 비전함에 홍수도가 쑤욱하고 빨려 들어가더니 이내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로 변해버렸다. 드디어 비전함의 비밀을 알게 된 초휴는 홍수도를 도로 꺼내 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바로 이거였어. 집어넣는 물건의 크기를 줄여서 보관할 수 있는 공간 비전함!”
공간 비전함도 물론 비전함의 한 종류이다. 그런데 비전함에 ‘개자수미진(芥子須彌陣)’이라는 비전 진법이 걸려있는 게 달랐다. 이 진법의 명칭은 불교 용어인 ‘개자납수미(芥子納須彌)’를 본떠서 지은 것이다. 개자납수미는 ‘미세한 겨자씨가 거대한 수미산을 담는다.’는 의미로 모든 만물은 허상이라 결국 미세함과 거대함도 하나로 통한다는 비유에서 따온 말이다. 즉, 극소의 공간에 극대의 물건도 넣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개자수미진이 아직 실전(失傳)되지 않고 남아 있어서 수많은 대형 종문들의 진법대사(陣法大師)마다 시전할 줄 알긴 했다. 그러나 정작 진법을 담을 용기를 만드는 데 쓸 자재를 구하기 쉽지 않은 탓에, 만들기가 대단히 힘들었다. 그러니 이 또한 진귀한 보물이 분명했다.
초휴가 초씨 가문에서 벌어졌던 아비규환 속에서, 실력이 가장 약한 일개 응혈경 무사가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운이었다. 초휴가 살아남은 것은 온전히 내강경과 선천경 무사들이 서로 전력을 다해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싸우다가 동귀어진(同歸於盡)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지옥과도 같은 끔찍한 싸움을 치렀지만, 거기서 거둔 놀라운 수확에 당시의 고통이 사라지는 듯했다.
홍수도도 그렇지만, 유리 금사고(琉璃金絲蠱) 덕분에 평범한 자질밖에 갖추지 못했던 자신이 한계를 극복하고 큰 걸음을 내딛는 게 가능해졌다. 물론 유리 금사고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었다. 숙주와 공생 관계에 있는 유리 금사고에게 충분한 기혈을 제공해 줘야만 비로소 녀석도 숙주에게 그만큼의 힘을 돌려줄 수가 있다. 그러니 숙주가 시원치 않으면 녀석에게 기대할 것도 별로 없는 셈이었다.
초휴는 두 권의 무공비급과 본가에서 긁어온 재물들을 모두 공간 비전함 속에 집어넣고 한동안 폐관 수련을 하기로 했다. 일단 심한 부상을 입은 몸은 요양이 필요했고, 선천경도 뚫어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으니, 초휴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을 피하고 싶었다.
초씨 가문이 멸문 당하고 심씨 가주도 초씨의 집에서 죽었으니, 지금 통주부 전체가 벌집 쑤셔놓은 듯 발칵 뒤집혔을 게 뻔했다. 통주부의 양대 세력이 하룻밤 사이에 몰락했는데 통주부가 조용하다면 그게 되레 이상할 일이다.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닌 만큼 창란검종 제자로 있는 심묵의 형 심백도 분명히 돌아올 터였다. 이 일의 전모가 드러날지와 관계없이, 초휴는 더 이상 위군에 머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창란검종은 위군에서 가장 큰 문파로 현지에서의 영향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고, 강호 전체를 놓고 봐도 정상급에 속하는 대형 종문이다. 강호에 무수히 많은 종파와 무림세가가 있다지만 막상 자신의 이름을 내세울 만한 세력은 많지 않다.
강호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정보조직으로 풍만루(風滿樓)를 들 수 있다. 풍만루는 산우욕래풍만루(山雨欲来风滿樓)라는 어구에서 따온 명칭으로, 산비가 오려 하니 바람이 누각에 가득하다. 즉, 무슨 일이 발생하기 전에 그 조짐이 보인다는 의미이다. 크건 작건 강호의 모든 풍문과 정보는 이들의 눈과 귀를 피할 수가 없었다. 그 풍만루가 강호의 진정한 정상급 종파들을 소재로 노랫말을 지었는데, 현재 강호를 운영하는 강력한 무림세력들이 그 안에 죄다 언급되어 있다.
동서로 양중천(兩重天), 남북으로 이불종(二佛宗)
도문은 삼청(三淸)이 되고, 사령(四靈)은 신통력을 합치네
오검(五劍)은 천지를 가르고, 육방(六幇)은 사람을 모으네
칠종(七宗)은 천하를 움직이고, 팔파(八派)는 음양을 움직이네
구가(九家)는 천년에 이르고, 강호(江湖)는 만고에 흐르네
위의 노랫말 가운데 칠종팔파가 거느린 인원수가 가장 많은 만큼, 강호의 최정상에 위치한 종문은 아니어도 그 영향력만큼은 독보적이었다. 따라서 칠종에 속하는 창란검종은 명실상부한 ‘위군의 황제’로 불릴 만했다.
지금 초휴의 실력으로, 그것도 혈혈단신 혼자서 창란검종에 맞서는 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아무래도 위군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하는 편이 나았고, 머지않아 북연 쪽에 엄청난 기회가 나타날 것이니 일단은 그곳으로 향할 작정이었다. 그러려면 당장 폐관 수련으로 실력을 키우는 게 급선무였다. 실력이 없으며 제아무리 좋은 기회가 눈앞에 있어도 그 기회를 살리는 것은 불가능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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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삼청 – 도교에서 최고로 높은 세 신 (옥청, 상청, 태청)
사령 – 전설상의 신령한 네 동물 (현무, 백호, 청룡, 주작)
구가- 전국시대 아홉 개 학파 (유儒, 도道, 음양陰陽, 법法, 명名, 묵墨, 종횡縱橫, 잡雜, 농農)
끝
ⓒ 봉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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