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35)
435화 내가 바로 ‘초휴’니까
‘누구의 힘을 빌릴 것이냐가 문제인데······.’
동제 황실에 아는 사람이라고 해봤자 이황자 여륭광, 한 명밖에 더 있겠는가. 여륭광이 뜻대로 움직여줄지에 대해서라면 의심할 나위도 없었다. 초휴가 직접 얼굴을 들이민다면야 여륭광이 응하지 않고는 못 배길 테니까.
그리고 이왕이면 영광된 미래가 보장된 이원의 운명도 바꿔놓으면 어떨까 싶었다. 지금이야 이원이 동제 조정에서 눈에 띄지도 않는 미관말직에 불과하다. 태자를 모시는 심복이라지만 실제 위상은 여륭기를 측근에서 보필하는 태감 진두보다도 한참 아래였으니까. 지금은 기껏해야 실력이 괜찮고 능력도 쓸만하다는 평가나 받을 뿐, 별다른 두각을 못 내는 게 그의 현주소였다.
그랬던 이원이 하루아침에 일비충천(一飛沖天)하여 동제 진북왕이 될 수 있었던 건 그가 손에 넣은 기연의 공이 컸다. 이원이 언제 그 기연을 확보하게 될지 그 정확한 시점은 초휴도 몰랐다. 원본 줄거리에 기반해 대략적인 시간대와 장소 정도나 가늠할 뿐이었다. 만약 그를 해치우고 자신이 그곳으로 가서 기연을 만난다면 이원의 행운을 대신 차지하게 되지 않을까?
물론 일이 어찌 진행될지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그러려면 먼저 이원을 해치워야 한다는 건 분명했다. 그다음 자기 행운을 시험해볼 수밖에.
이처럼 계획이 서자 초휴는 보름간 요양에 전념했다. 그렇게 본연의 실력을 완전히 회복한 다음, 그는 이황자 여륭광을 만나러 동제 대량성으로 향했다.
삼국 가운데 동제는 단연 땅이 비옥하고 산물이 풍부했다. 따라서 가장 번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동제의 최중심부인 대량성은 오죽하겠는가. 화려한 거리마다 인파가 북적이고 오가는 강호 고수들이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감히 함부로 행동하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대량성은 동제의 도성인 만큼 물 샐 틈 없는 방어력을 자랑했다. 일단 군영 및 황실 소속 고수만 해도 하늘의 별처럼 많았다. 해서 여기서 큰 사고를 쳤다가는 뼈도 못 추릴 확률이 대단히 높았다.
초휴는 이황자 여륭광을 만나려고 했지만, 그 인물이 만나고 싶다 해서 간단히 대면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해서 다리를 놓아줄 수 있는 이황자의 수하부터 만나야 할 터였다. 그는 바로 파봉영 참장, 방진기였다. 용기군은 군영마다 독립적인 운영체제를 갖고 있다. 한마디로 군영마다, 담당하는 일에서부터 충성을 다하는 대상이 제각각이라는 말이다.
파봉영 군영은 성 밖이 아닌, 대량성 동성(東城) 내의 저택 하나를 통째로 쓰고 있었다. 겉모습은 소박하고 평범해 보이는 검은 건축물로, 금색으로 크게 ‘파봉영’ 세 글자를 써 놓은 것 말고는 용기군을 상징하는 용 문양 표식이 장식의 전부였다.
하지만 파봉영 부근에는 동네 똥개 한 마리 오가지 않는 게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하긴 이곳이 동제 황실 휘하인 용기금군의 본거지임을 바보가 아닌 이상 다 알 텐데 누가 감히 얼쩡대겠는가. 자칫 잘못 걸렸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 나갈 수도 있는데 말이다.
초휴가 대문을 두드리자 검은 갑옷 차림의 용기금군 두 명이 경계의 눈빛을 띠며 나타났다. 그들은 고압적인 어조로 물었다.
“뭐 하는 자냐?”
“참장 방 대인께 초휴가 뵙고자 한다고 전해주시게. 그러면 내가 누구인지 금방 아실 테니.”
용기금군이 서로 곁눈질을 하더니 그중 한 명이 보고하러 안으로 들어갔다. 나머지 한 명은 쌍심지를 켠 채 초휴를 감시했다. 다행히 이때 초휴가 오기조원의 절대 약하지 않은 기세를 뿜어내고 있어서 그나마 대접을 받은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진작 구금부터 당하고 심문에 응해야 했을 터였다. 아무래도 황실 소속인 용기금군을 찾아온 외부인이라면 좋은 일로 방문하는 게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잠시 후 방진기가 나와 초휴를 보자 어리둥절하며 물었다.
“아니, 당신이 여기는 어쩐 일이오?”
지난번 비마목장 추진성 사건 당시 두 사람은 자주 얼굴을 맞댔었다. 게다가 이황자가 태자를 물 먹이는 계략에 초휴가 크게 한몫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당시는 각자 챙길 것만 챙기고 협력 관계를 끝냈던지라, 방진기에게 있어 초휴는 그저 관중형당 순찰사로만 기억에 남아있는 상태였다. 그런 초휴가 갑자기 나타났으니 방진기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좀 곤란하니 들어가서 얘기를 했으면 합니다.”
방진기가 약간 언짢은 표정을 짓긴 했으나 결국 초휴를 접객실로 안내했다.
“자 이제 말해보시구려. 대체 무슨 일입니까?”
“이황자 전하를 뵙고 싶소이다.”
방진기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뭔가 부정적인 말을 하려 하자 초휴가 이내 말을 이었다.
“방 대인, 내 부탁을 거절하지 마시지요. 내가 왜 전하를 뵈려는 건지 그 이유도 묻지 마시고요. 이 일은 오직 전하하고만 긴히 의논해야 해서 그럽니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전하께 득이 되면 됐지, 절대 해가 될 일은 아니라는 거요. 한번 생각해 보시지요. 내가 이 동제 도성 한복판에서 감히 무슨 꼼수를 부릴 수 있겠소? 여기는 내 편이 되어줄 이가 아무도 없건만, 참장께서 뭘 그리 꺼리시는 건지 모르겠군요.”
초휴의 말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었다. 게다가 그는 오기조원에 불과한 자다. 자기들의 영역인 동제 도성에서 설령 음모를 꾸민다 한들 실행에 옮기는 건 불가할 터였다. 해서 생각 끝에 방진기는 초휴를 이황자 여륭광에게 데려갔다. 이때 여륭광은 양왕(梁王)으로 봉해져 있었다. 영지도 동제에서 가장 부유한 땅인 양군(梁郡)을 하사받았다.
하지만 그는 심복들에게나 영지 관리를 맡겼을 뿐, 정작 본인은 별로 가 보지도 않고 주로 대량성이나 인근 군영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런 그를 태자 여륭기가 이를 갈며 경계하고 있음은 물론이였다. 그리고 황제 여호창도 여륭광에게 영지에 가 있을 것을 강요하지 않았다. 이로써 황제의 심중에 태자와 이황자의 무게가 별반 차이가 없음이 증명된 것이다. 그저 여륭기에게 태자라는 꼬리표 하나만 더 달아주었을 뿐, 그 자체로 큰 의미를 부여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었다.
다시 초휴를 만난 여륭광의 반응도 방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번 초휴와의 첫 만남에서는 그의 대범함과 탐욕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당시 그는 관중형당의 순찰사에 지나지 않았다. 젊은 연배 가운데 상대적으로 튀어 보였을 뿐, 관중형당의 고위층 요직 인물조차도 아니었다. 그런 자가 간 크게도 동제의 이황자와 거래를 하려 들었고, 은근슬쩍 비급마저 내놓게 만들었다. 이런 배짱을 가진 자를 어찌 쉽게 잊겠는가.
그런 인물이 돌연 재방문했으니 여륭광은 그 저의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초휴, 본왕을 왜 다시 만나자고 하였느냐? 설마 내 밑으로 들어올 생각이라도 있는가?”
솔직히 말해서 초휴가 자기 밑에 들어오겠다고 하면 여륭광은 쌍수 들고 환영할 생각이었다. 이미 증명된 실력과 앞으로 예상되는 잠재력, 어느 면으로 보나 반가이 맞을 만한 인재가 아니겠는가. 하긴 지금 여륭광으로서는 실력과 잠재력보다 그의 명성이 더 요긴할 테지만 말이다. 자그마치 용호방 육 위의 준걸을 자기편으로 영입한다면 남들 보기에 얼마나 근사해 보일까. 이런 인재마저 흔쾌히 자신을 주군으로 선택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엄청난 홍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초휴는 태연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하, 농담이 과하십니다. 관 당주께서 저를 귀하게 여겨 주시니 관중형당을 배반할 수야 없지요. 제가 딱히 좋은 인간은 못 되지만 충의(忠義)가 뭔지는 잘 압니다.”
보기 좋게 딱지 맞은 여륭광은 금세 흥이 식었다. 해서 심드렁하니 의자에 눕다시피 하며 쏘아붙였다.
“그럼 무슨 일러 왔단 말이냐? 헛소리나 지껄일 생각이면 경을 치기 전에 썩 꺼지는 게 나을 것이다.”
“방 참장까지 대동하여 전하를 뵈러 왔건만 설마 제가 맨손으로 왔겠습니까? 당연히 가져온 게 있지요.”
“그게 뭐냐?”
“태자의 평판에 타격을 입혀 그의 세력을 약화시킨다면 전하께 득이 되지 않을지요? 제가 그 일을 해서 전하께 도움을 드린다면 어떻겠습니까? 이 정도면 만족하실는지요?”
그 말에 여륭기가 벌떡 몸을 일으키며 관심을 보였다.
“말인즉슨 나를 도와 태자를 치겠다? 그렇다면 너는 그 대가로 무얼 바라느냐?”
자신에게 돌아올 실리가 없는 한 움직일 리가 없는 초휴의 성격이 여륭광의 뇌리에 떠올랐다. 지난번에도 증거를 제공하는 대가로 망아살권을 요구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지금은 또 무얼 달라고 할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초휴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저는 달리 원하는 게 없습니다. 다만 지난번 전하를 도왔던 일로 태자의 미움을 사게 된 건 좀 해결해 주십시오. 얼마 전에도 태자의 수하가 저를 공격했습니다. 제가 뒤끝이 좀 길어서 말입니다. 제게 서운한 짓을 한 자에 대해서는 응분의 대가를 돌려주는 편이라서 말이지요.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니니 확인해 보시면 금방 아실 수 있을 겁니다.”
확실히 여륭광은 낙가에서의 일을 모르는 눈치였다. 해서 뒤에 시립해 있던 수염 없는 희멀건 얼굴의 태감에게 물었다.
“이 공공, 어찌 된 일인지 그대는 아는가?”
이 태감은 낙가에서 있었던 일의 전말에 대해 전음으로 고했다. 특히 태자 휘하의 진 공공과 이원이 초휴에게 출수했던 대목을 중점적으로 아뢰었음은 물론이다. 보고를 다 들은 여륭광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초휴를 향해 예리한 눈빛을 발했다.
“그랬었군. 그렇다면 내가 태자와 맞서는 데 있어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거지? 그대는 오기조원에 불과하다. 그 정도 실력으로 태자 측에 큰 타격을 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인데?”
“전하의 말씀 중 한 가지 지적할 사항이 있습니다. 저는 전하를 돕겠다고 했지, 저 혼자 뭘 어찌하겠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애당초 저 혼자 일을 다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진작에 복수하고 유유히 떠났지, 굳이 여기까지 찾아올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당연히 이곳 동제에서는 저 혼자 어찌해보기가 어려우니, 전하의 힘을 빌려 태자를 치겠다는 것이지요.”
여륭광이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짓더니 노기를 띠며 차갑게 내뱉었다.
“초휴, 본왕을 바보로 아는 게야? 일전에야 네놈에게 태자를 칠 만한 빌미와 계략이라도 있어서 봐줬다지만 지금은 그저 날로 먹겠다는 심산이 아니냐? 정작 네놈은 아무것도 내놓을 게 없고 그저 나를 이용해 태자를 엿 먹이겠다? 그럴 거면 애초에 내가 뭣 하러 네놈과 손을 잡을까. 어차피 나 혼자 하면 될 일을 굳이 왜 네놈에게 힘을 빌려줘야 하느냔 말이다. 대체 네놈을 뭘 믿고?”
이에 초휴가 한바탕 웃어 젖히더니 자기 얼굴을 가리키며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제가 바로 ‘초휴’니까요. 송구스러운 말씀을 좀 드려야겠군요. 전하 밑에 실력이 강한 고수야 차고도 넘치지요. 방 참장이나 이 공공과 같은 분들이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하지만 막상 태자를 옥죌 큰 그림을 짜낼 만한 유능한 참모진은 없는 게 분명합니다. 아니라면 여태껏 태자와 힘겨루기 중이실 리가 없으니까요. 진작에 이 싸움을 끝내셨겠지요. 그리고 이 초휴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서 이년도 안 걸려 초임 순찰사에서 한 지역을 다스리는 장형관으로 올라선 인물입니다. 선임 관서 장형관 재임 시절에야 기강도 엉망으로 흐트러진 채 강호 세력이 맘껏 득세했더랬지요. 그러나 제가 부임한 후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관서 전역에 이 초휴의 말 한마디로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말인즉슨 같은 힘이라도 각기 다른 사람의 수중에서는 다르게 발현된다는 뜻입니다. 해서 절 믿고 이번 도박판에 승부수를 던져보시면 어떨까 하는 것이죠. 저를 신뢰하신다면 전하 수중의 힘을 일부만 빌려주십시오. 물론 믿지 못하시겠다면 더는 전하께 질척대지 않고 이대로 저 문을 나가겠습니다. 까짓것 복수야 차차 해도 될 일이니까요. 어떤 선택을 하실지는 전하께 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