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39)
439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다
만약 누군가가 자기 여자를 건드린다면 죽느니만 못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야 말 터였다. 태자라고 해서 다를 리가 있겠는가. 이제 정성영은 자기가 어떤 종말을 맞게 될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순간 어떤 생각이 전광석화처럼 그의 뇌리를 스쳐 갔다. 다짜고짜 초휴의 발밑에 꿇어앉은 그는 우는 소리로 애걸복걸 매달리기 시작했다.
“부처님, 보살님, 제발 좀 살려주십시오. 뭐든지 시키시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이미 한 말이지만 정성영은 쓰레기이긴 해도 머저리나 백치는 아니었다. 중간에 기억의 흐름이 끊기긴 했어도 자기가 저지른 짓이, 눈앞의 이 야차 같은 자와 관련이 있음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상대가 심심풀이로, 자신이 태자의 여인을 범하게 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이처럼 지독한 덫을 놓았을 때는 분명 원하는 게 있을 터였다. 이미 생살여탈권이 상대의 수중으로 넘어간 이상, 살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다 할 각오를 해야 할 판이다.
그의 부친은 자기 세력을 구축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남서지대의 수장으로 우뚝 선 불세출의 영웅이다. 그런 인물을 아비로 둔 철검문의 대공자로서 어찌 일찍 죽고 싶겠는가. 하물며 똥 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단 낫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앞으로 누리게 될 그 많은 걸 다 포기하고 저승길을 밟으라고? 절대 안 될 일이었다. 그의 간절함을 확인한 초휴가 손가락 하나를 쑥 내밀며 흔들어 보였다.
“첫째, 나는 부처님도 보살님도 아니다. 둘째, 너의 생사는 내가 아닌 네 부친 손에 달렸다. 길게 설명해봤자 이해하기 어려울 테니 이것 한 가지만 명심해라. 나는 이황자의 사람이다. 철검문으로 돌아가면 지금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부친에게 고해라. 그러면 네 부친은 앞으로 어찌해야 좋을지를 잘 알게 될 테니까. 이쯤 했으면 됐다. 속히 이곳을 정리해라. 당분간 이 여자는 자신이 당한 일을 기억하지 못할 테니 염려 말고. 물론그녀가 영원히 이 일을 잊을지의 여부는 네 부친의 결정에 달렸다고 봐야겠지. 충고 하나 할까? 때로는 너무 일찍 줄을 섰다가는 되레 큰 손해를 보게 되는 법이다.”
말을 마친 초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뒤에 남겨진 정성영은 초점 잃은 눈동자로 초휴가 사라진 방향을 망연자실 바라만 볼 뿐이었다. 이윽고 초휴가 돌아오자 이 공공과 방진기가 입이 떡 벌어져서는 초휴를 뚫어질 듯 쳐다봤다. 하고픈 말이 있는 눈치였으나, 정작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방금 벌어진 일에 자신들이 가담하진 않았지만 죄다 지켜는 보았다. 그런데 초휴의 수완은 실로 더럽고 추악하지 않은가.
물론 이 방법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는 것은 확실했다. 자기가 영입하려던 자가 자신의 여인을 범했으니, 이 일을 태자가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이런 일을 태자가 묵인한다면 남자도 아니라고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게 되지 않겠는가. 반면 태자가 이를 용납하지 못하고 불벼락을 내린다면 오랜 세월 기껏 공들여왔던 철검문 영입은 완전히 수포가 될 터였다. 해서 태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지게 될 것이다. 초휴는 바로 이점을 노렸고, 독하디독한 방법을 서슴지 않고 동원한 것이다.
초휴를 바라보는 이 공공의 눈빛에서 경계심이 엿보였다. 그는 초휴와의 첫 대면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그는 이황자 앞에 떡하니 증거를 디밀며 망아살권 비급을 당당히 요구했었다. 초휴에 대한 인상이 어떻냐는 이황자의 질문에 이 공공은 그를 대범하고 과감하며 탐욕스러운 자로, 자기가 손해 볼 짓은 절대 하지 않을 인물이라고 답한 바 있었다. 그 말에 덧붙여 초휴에게는 지금 평가 하나가 더 추가되어야 했다. 바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였다!
이 공공은 확실히 초휴를 정확하게 평가했다. 초휴에게 있어 중요한 건 결과일 뿐, 과정은 중요치 않았다. 해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 수만 있다면 어떤 짓이라도 결행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비정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한계를 두지 않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두려운 존재가 아닌가.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존재가 지금 이황자 편이라는 사실이다.
해서 이 공공은 초휴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동시에, 이번 일로 태자가 입을 타격에 기분이 좋아졌다. 낙가에서의 일은 확실히 그간의 태자답지 않은 처사였다. 이제 와 새삼스레 초휴에게 시비를 거는 자충수를 두었으니 말이다. 줄곧 어질고 너그러운 군자 행세를 해온 태자는 그간의 평판을 고수하기 위해서라도 쓸데없는 마찰을 피하며 몸을 사려오지 않았던가.
하긴 낙가에서의 일은 태자와 무관한 측면도 있긴 했다. 그는 아직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모를 수도 있으니까. 만약 낙가에서 이원과 진 공공이 정말로 초휴를 죽였거나 중상을 입혔더라면 본인들의 공로를 내세우기 위해서라도 이 사실을 태자에게 고했을 것이다. 하지만 둘은 실패했다. 실패한 일을 굳이 보고해서 자신의 점수가 깎일 짓을 왜 하겠는가.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던 이 공공은 머리를 비운 후 초휴에게 물었다.
“초 대인, 지금 당장 태자한테 가서 이 일을 일러바칠 셈이오?”
이에 초휴가 단호히 고개를 저어 보였다.
“뭣 하러 태자한테 일러바칩니까? 철검문을 너무 대단하게 여기면 안 됩니다. 설령 태자가 이 일을 알게 되어도 기껏해야 욱해서 철검문을 영입하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말겠지요. 하지만 그걸로 끝입니다. 남서지대의 그 많고 많은 세력 중 철검문을 대체할 만한 곳이 전혀 없겠습니까. 그중에서 새로 하나 고르면 그만인걸요. 철검문은 그저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 공공, 방 대인!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두 분의 수하들을 저에게 보여주시지요.”
초휴의 요구에 이 공공은 군말 않고 당장 자기와 방진기의 수하들을 데려왔다. 이번 일을 계기로 초휴가 얼마나 두려운 인간인지 여실히 체감한 이상, 의혹을 품으며 가타부타 따질 거 없이 전권을 그에게 위임할 생각이었다. 일단 방진기의 수하는 용기금군의 한 개 군영으로, 편제 인원이 삼백여 명에 달했다. 인원수가 많은 건 아니지만 그중 최약체가 선천경일 만큼 정예실력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물론 단순히 경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용기금군 개개의 전투력이 높다는 것을 봐야 했다. 일단 그들이 받은 군사훈련만도 무수한 실전을 치른 것과 맞먹을 정도다. 훈련이 끝나고 여륭광 휘하로 배치되어 온갖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더더욱 실력이 일취월장하여 종국에는 하나같이 막강한 실전 경험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이들을 바라보는 초휴의 심경이 복잡해졌다. 지난날 자신의 그 아비 같지도 않은 아비도 용기금군의 일원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간부급도 아니고 일개 평범한 병졸에 불과했다. 그 정도로 별것 아닌 존재가 용기금군을 탈영해서는 촌구석에서나마 세도를 부리며 한 가문의 가주를 해 먹었다. 그것만 봐도 용기금군 개개의 저력이 얼마나 대단할지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용기금군 외에도 이 공공이 데려온 이황자 휘하의 정예 요원들이 있었다. 개개의 역량이 비교적 고른 용기금군에 비하면 이들의 실력은 들쭉날쭉 편차가 컸다. 정말 입이 떡 벌어질 만한 고수들도 있었지만, 실력이 허접한 자들도 더러 섞여 있었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강점이 있었으니, 머릿수가 무려 육백 명에 달한다는 것이었다. 용기금군의 두 배에 달하는 숫자인 데다 최약체도 기본이 선천경이었다. 잠시 이들을 바라보던 초휴가 근엄히 입을 열었다.
“두 분, 수고스럽지만 이들을 남서지대로 데려가 주셔야겠습니다. 명심해야 할 점은 어떤 경우에도 눈에 띄지 않게 움직여야 한다는 겁니다. 이 수칙을 어기고 경솔히 굴다가 태자에게 발각되더라도 저를 원망할 생각은 절대 하면 안 됩니다.”
방진기와 이 공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바보라도 알아먹을 주의사항이니 당연히 수긍했다. 지금 그들은 태자의 눈을 피해 작전 중인 만큼, 당연히 태자의 눈에 띄지 않게 움직여야 했다. 그들보다 한발 앞서 출발한 초휴는 남서지대로 향하는 정성영의 뒤를 밟으며 빠르게 이동했다. 번화한 동제 복판을 벗어나 남서쪽으로 갈수록 인적도 드물어지고 울창한 야산이 늘어갔다.
정식으로 남서지대에 들어서니 백 리 반경 내로 주부(州府)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조정에서 주둔시킨 병력조차 없는지라, 일만 명에 달하는 백성들은 이곳에 방치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행정적으로야 동제의 통치를 받는다지만 실제로는 그저 지도 그릴 때나 기억될 만한 구색갖추기용인 의미 없는 땅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이것은 동제 조정의 업무 태만 때문이 아니었다. 워낙 황폐한 땅인지라 적군이 굳이 이런 곳까지 탐내어 치고 들어올 리가 없었고, 그러니 굳이 병력을 두어 지킬 필요도 없는 것이다. 우람한 산맥을 낀 울창한 숲속 오솔길은 한 사람, 혹은 끽해야 적은 인원이 한 줄로 지나는 것만이 가능했다.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이곳을 통과하려면 숲속에서 어떤 횡액을 당할지 모를 일이었다. 이런 길로 적국의 군대가 대거 침입한다는 건 애초에가능성이 없는 일이었다.
이곳만 해도 벌써 서초가 몇 차례나 정벌했었고 번번이 자기 땅으로 복속시킬 기회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마지못해 지키는 흉내나 내고는 손을 뗐다. 먼저 다른 국가로 진격하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 했음은 물론이다. 게다가 동제는 서초의 침략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천하 삼국 중 가장 야심이 없고 국력이 약하다는 평을 가진 나라가 바로 서초였다. 서초가 침략에 나서지 않는 건 그럴 마음이 없어서라기보다는 그럴 능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는 서초의 무력 수준 자체가 약해서가 아니었다. 워낙 인구수 자체가 적은 데다, 국토 대부분이 개발 안 된 야산 지대인 탓이 컸다. 번화한 정도가 동제에 비할 바가 못 되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는 북연의 수준에도 못 미쳤으니 말 다 한 셈이었다.
땅은 넓으나 척박하기 그지없고, 이곳에 터전을 둔 인구도 적은 데다 그나마도 먹고살기에 급급했다. 그러니 서초가 천하를 제패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했다.
해서 역대 서초 황제들은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양면 작전을 써 왔다. 북연과 동제 중 어느 한 나라가 커질 기미를 보이면 열세에 처한 쪽을 도와 강자에 대항함으로써 구차하게나마 연명해온 것이다. 이런 서초 쪽에 남서지대가 붙어있긴 하나 분위기는 확연히 달랐다. 사람들의 흉포한 기질이 무림세력의 난립으로 발현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오문 팔가 십일파 및 이십삼채는 이곳 무림세력 중에서 비교적 한가락 한다는 주요 세력들만 추린 것이다. 이들은 개개 세력의 강한 정도를 떠나서, 웬만하면 다른 세력을 뿌리째 짓밟아 본 경험이 한두 번은 있을 정도로 사납기 그지없었다. 이곳은 확실히 피를 부르는 잔혹한 땅이었다.
남서지대 창양부(蒼陽府)의 철검문은 이 일대 주요 종문들 가운데서는 단연 큰 세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창양부는 남서지대의 몇 안 되는 큰 주부이다. 철검문이 창양부에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 실력이 막강함을 증명하는 셈이었다. 게다가 철검문의 문주도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이처럼 황량한 땅에서 무도종사가 나온다는 게 얼마나 희귀한 일이겠는가. 그런데도 철검문 문주인 정천도는 무도종사의 경지를 지척에 앞둔 귀하신 몸이었다.
남서지대에 무도종사가 드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가까스로 무도종사가 배출된들, 곧 이곳을 떠나 드넓은 중원에서 활약하거나 아니면 종문 자체를 아예 중원으로 옮기는 선택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들도 사람이니 이왕이면 이런 촌구석의 낙후된 땅보다는 중앙의 좀 더 큰 무대에서 활동하고 싶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