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41)
441화 극단적인 수법
정천도는 수중의 철검을 내려놓으며 마지못해 물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꼬인 마당에 내게 선택의 여지는 없겠지? 다만 궁금한 게 하나 있소. 대체 이황자께선 뭘 하려고 하시는 게요?”
“그야 말씀드리기 쉽지요. 이황자 본인께서 무엇을 적극적으로 하시려는 것보다도, 태자가 뭘 하는 게 싫어서 그걸 막고 싶으신 겁니다. 이곳 오문 팔가 십일파 및 이십삼채 세력 모두가 이미 태자 편에 서기로 했습니까?”
“그렇진 않소. 아직 관망 중인 세력들이 더 많으니까. 다만 우리 철검문과 같은 상위 세력들은 이미 태자 측과 접촉을 마친 뒤라, 그들 대부분이 태자와 손잡을 의사인 것으로 알고 있소. 한 달 후 태자 측에서 남서 신녀봉(神女峯) 망천동(望天洞)으로 사람을 보내오기로 되어있소. 거기서 열리는 회합에 오문 팔가 십일파 및 이십삼채 세력의 수장들이 참가할 거고, 그러면 태자 편에 설 자와 중립을 지킬 자가 분명히 가려질 거요”
여기까지 일사천리로 설명을 한 정천도가 더는 못 참겠다는 듯이 초휴를 힐끗 보며 물었다.
“그런데 태자가 우리 쪽에 손을 뻗치기 시작한 건 수개월도 더 된 일인데, 왜 지금에야 훼방을 놓으면서 나서는 거요? 이미 늦어도 한참 늦었소. 지금쯤이면 이미 태자 편에 서기로 결정한 상위 세력이 한둘이 아닐 텐데, 대세가 기운 지금 손을 써봤자 무슨 소용이 있다고. 설령 우리 철검문이 태자와 결별한다 해도 오십여 개에 달하는 세력들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소. 남서지대는 여전히 태자의 텃밭이나 다름없다는 얘기요.”
솔직히 초휴가 놓은 덫에 걸려들지만 않았어도 정천도가 이황자 편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태자 측에서는 이미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왔고, 협상 조건도 논의가 거의 끝난 상태였다. 한 달 후로 예정된 회합에서 공식적으로 태자와 손잡겠노라고 선언하는 일만 남은 셈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그는 태자와 함께할 기회를 잃게 된 것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별수 없이 이황자 편에 설 수밖에.
정천도의 지적에 초휴가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늦었다고요? 아니요, 절대 늦지 않았소이다. 딱 알맞게 되었소. 귀하의 철검문은 남서 땅을 대표하는 종문인 만큼, 다른 세력들에 대한 상세한 정보도 많이 알고 계실 테지. 아는 대로 죄다 내게 알려주시구려. 그 후의 일은 상관치 마시고. 귀하는 그저 회합에서 어느 편에 설 것인지를 잘 숙지하고 계시면 됩니다.”
이에 정천도가 참다못해 물었다.
“도대체 뭘 어쩔 셈이오?”
이에 초휴가 계획을 설명했다.
초휴의 계획을 다 듣고 난 정천도가 경악하여 외쳤다.
“단단히 미쳤군! 그러다가 자칫 일이 커지면 이곳 사람들이 무수히 죽어 나갈 게 뻔한데도 그런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는가? 이처럼 잔혹한 수법으로 저들을 짓밟으면 어느 세력이 진심으로 이황자한테 충성을 바치려 들겠소?”
“나는 분명 말씀드렸소. 회합까지 한 달밖에 남지 않았으니 이렇게라도 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소이까. 소소한 일에 얽매이면 대사를 그르치기에 십상이오. 이황자께서 가지실 수 없다면 태자 손에도 들어가게 둘 수 없다는 말이오. 어쨌든 될 수 있으면 일을 키우지 않고 원만히 해결하려고 정보를 달라는 것 아니겠소!”
초휴의 으름장에 정천도는 별수 없이 세력들에 관한 정보를 넘겨주었다. 초휴는 이를 손에 넣기가 무섭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사실 그는 엄밀히 따지면 이황자의 사람이 아니다. 막말로 남서지대 종문들이 진심으로 이황자에게 충성을 다하든 말든 그와는 큰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초휴의 목적은 태자에게 타격을 입히는 김에 이원을 죽이고자 함이었다. 그 외 다른 일이야 돌아가는 상황에 따라 대처하면 될 터였다.
* * *
이 공공과 방진기는 수하들을 대거 거느린 데다 태자의 이목도 피해야 했기에 초휴보다 이동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해서 그로부터 사흘이 지나서야 남서지대에 당도할 수 있었다. 그동안 초휴는 유유자적 한가한 시간을 보내며 기다렸다. 이 지역이 야산과 벌판뿐이긴 하지만 맛난 것들이 적지 않아서 지루하진 않았다.
초휴는 창양부의 한 주루에서 이곳 특산물인 백과주와 여러 산해진미를 맛보는 중이었다. 외지인이 보기엔 이곳의 음식에 하나같이 ‘흉측한’ 면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예컨대 바깥세상에서는 심하게 꺼려지는 맹수와 기괴한 곤충들, 뱀 종류 등이 이곳에서는 식자재로 쓰여 일품요리 대접을 받고 있었다.
이윽고 이 공공과 방진기가 먼지를 덮어쓴 채 나타내자 초휴가 그들에게 반갑게 손짓했다.
“이 공공, 방대인! 어서들 오셔서 이 진수성찬의 맛 좀 보시오. 보기에는 좀 꺼림칙해도 그런대로 먹을 만합니다.”
하지만 이 공공은 뭘 먹고 자시고 할 심적 여유가 없었다. 초휴를 본 그는 앉지도 않고 대뜸 질문부터 던졌다.
“초 대인, 일은 어찌 되었소? 철검문이 전하 편에 서기로 하였소?”
이에 초휴가 느긋이 두 사람에게 술을 따라주며 되물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무얼 먼저 들으시겠소?”
이 공공이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
“좋은 소식!”
“좋은 소식이라면 철검문이 이미 태도 결정을 마쳤다는 거요. 확고부동한 이황자님 편이 되기로 했소. 그게 아니라면 죽음뿐임을 아니까.”
“그럼 나쁜 소식은 뭐요?”
“태자 측에서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일찍 이곳에 마수를 뻗치기 시작했다는 거요. 이곳 강호의 상위 세력 모두가 이미 태자와 접촉했더군요. 한 달 후 태자가 보낸 사람이 이곳 회합에 참석하기로 되어있소. 오문 팔가 십일파 및 이십삼채 세력 모두가 참석하게 될 그 회합은, 남서 세력 전체가 태자 휘하에 들어가겠다는 최종 결정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 거요. 태자가 자신만만한 것도 철검문 같은 규모를 갖춘 세력들이 죄다 자기 밑에 들어오는 걸 알기 때문이겠지요. 군중심리라는 게 있으니, 그렇게 되면 나머지 세력들도 맹목적으로 이 결정을 따르게 될 것 같소.”
이에 이 공공이 안절부절못하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아니, 그런 판국에 여기서 먹고 마시면서 기분을 내고 있으면 어떡하오? 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느냔 말이오.”
“공공, 뭐가 그리 급하십니까. 대책이야 진작에 다 세워놓았으니 이러고 있는 게지요. 다만 좀 독한 대책이라는 게 문제요. 아마 일이 다 끝나고 나면 이황자 전하의 명성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 같소만······.”
“그 대책이 어떤 내용인데 그러시오?”
“각개격파! 아주 간단하지요. 그래서 남서 세력들 간에 불꽃 튀는 내분이 일면 우리는 거기다 기름을 부어준 후 잔불 정리만 하면 되는 거요. 이로써 태자의 계획은 철저히 분쇄될 겁니다.”
초휴가 백과주로 목을 축이고는 말을 이었다.
문제는 시간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는 건데, 한 달 내로 철검문급의 종문을 하나쯤은 더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 이상은 무리입니다. 물론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말이지요. 한마디로 우리에겐 시간이 없으니 극단적인 수법을 써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극단적인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으니 지레 겁먹을 건 없습니다. 웬만한 방법으로는 마지못해 우리 편이 될 세력들이 이황자님께 진심으로 충성을 다한다는 보장이 어려우니 말입니다. 철검문만 봐도 효과 만점 아닙니까. 하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할지는 공공과 방 대인 두 분이 최종결정하시지요.”
방진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이황자 밑에서 몸을 써서 사람 죽이는 일이나 해봤지, 그 외 일에 대해서는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러니 이황자를 측근에서 보필하며 여러 경험을 쌓은 이 공공이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는 한참 생각 끝에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초 대인에게 자신만 있다면 그대로 결행합시다. 나와 방 참장은 그저 옆에서 도울 테니까.”
초휴의 얼굴에 미소가 스쳤다. 원하던 대답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이로써 전권은 초휴에게 위임된 셈이었다. 남서지대의 그 많은 세력을 하나하나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해서 늘 그렇듯이 한 세력씩 찍어 공략할 계획이었다. 오문의 철검문에 이어 초휴에게 낙점된 건 팔가 중 하나인 낙풍곡(落楓谷) 유가(劉家)였다.
낙풍곡은 사방 천지가 단풍나무로 둘러싸인 명소로, 매년 가을이 되면 골짜기 전체가 울긋불긋 단풍 빛으로 물드는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한여름인지라 아직 이런 절경은 볼 수 없었다. 이 공공과 방진기를 대동한 채 낙풍곡에 들어선 초휴는 유가 가주를 만나러 왔다고 알렸으나, 정작 본인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입구를 지키던 유가 제자는 처음 보는 초휴 일행을 안으로 들여놓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이들이 천인합일의 기세를 뿜어내자 기겁하여 가주에게 알렸다. 이에 가주가 친히 나와 이들을 맞더니 공손한 태도로 친히 접견실로 안내했다. 현재 남서지대에는 무도종사가 한 명도 없는지라 천인합일이면 최강 고수 대접을 받았다. 한 명도 아니고 무려 두 명의 천인합일이 왔으니 유가 가주가 발 벗고 영접에 나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유가 가주 유길(劉吉)은 팔순이 넘은 노장이다. 이런 고령에 아직 가주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 그의 뒤를 이을 다음 세대가 변변치 못한 탓이 컸다. 해서 잠시라도 가주로 있으면서 자기가 아직 건강할 때 적합한 승계자를 찾아볼 참이었다.
“감히 묻소만, 세 분의 존함이 어찌 되시는지요? 우리 낙풍곡 유가에는 어쩐 일로 오신 건지요?”
유길이 웃는 낯으로 조심스레 묻자, 초휴 역시 미소 띤 얼굴로 이 공공과 방진기를 가리키며 답했다.
“이분은 이황자 전하를 측근에서 모시는 태감 총관 이 공공이시고, 저분은 용기금군 파봉영 참장 직을 맡고 계신 방진기 대인이십니다.”
원래 유길은 세 사람 중 가장 하위 경지인 초휴가 먼저 입을 떼자 이상하다 여겼었다. 하지만 그의 입을 통해 이 공공과 방진기의 신분을 듣자 내심 ‘아뿔싸!’하고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근자에 태자와 이황자 간에 어떤 충돌이 있었는지 잘 아는 마당에 이황자의 수하들이 직접 자신을 찾아왔다? 이건 보나 마나 불길한 일의 조짐일 게 뻔했다.
이윽고 유길이 억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세 분은······.”
하지만 그가 제대로 운을 떼기도 전에 초휴가 끼어들었다.
“가주께선 여러 말씀 하실 필요가 없으시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는 내가 다 알고 있으니.”
말과 함께 초휴가 비전함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물론 이번에도 본인의 주머니에서 나온 게 아니라 이 공공 측이 운반해 온 것이었다.
“이건 육급 무공에 해당하는 도가의 비전, 입니다. 수련의 근간을 공고히 다져줌은 물론이고 환골탈태도 가능케 하지요. 듣자니 가주의 후손들 실력이 다소 기대에 못 미친다던데 이 무공이라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더불어 육급 단약인 온령단(蘊靈丹) 열 병과 자금 오백 냥, 그리고 신병각에서 제조된 오급 보병 열 자루도 드리겠소.”
이 모든 걸 하나하나 유길 앞에 디민 후, 초휴가 그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유 가주, 이건 이황자께서 귀하에게 하사하신 예물입니다. 이걸 받으시는 순간, 유가는 이황자님의 벗이 될 겁니다. 거절한다면 이 예물들의 가치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셔야 할 거요. 제 생각으로는 최소가 멸문이 될 것 같군요. 유가의 모든 목숨을 합친다고 한들, 이 예물들의 값어치에는 미달할 것 같으니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