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44)
444화 굴욕을 자초하다
초휴가 등장하자 이원의 낯빛이 돌변했다. 그러나 정작 그를 경악하게 한 건, 초휴가 나타난 것보다도 그와 함께 방진기와 이 공공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이었다. 이게 무얼 의미하는지는 굳이 생각 안 해도 뻔하지 않은가.
‘초휴가 정말로 이황자 편에 섰다!’
이원이 애써 당혹감을 감추며 차갑게 내뱉었다.
“초휴, 네놈이 이황자 편에 선 줄 진작 알았더라면, 지난번 낙가에서 천 리 길이라도 뒤쫓아 네놈을 끝장내버렸을 텐데!”
“아 그러신가? 그러나 인과관계가 그게 아니지. 내가 이황자 편에 서기로 한 이유는 당신이 낙가에게 내게 시비를 건 덕분이니까 말이지. 내가 어떤 놈인지 모르는 자가 아직도 있는 줄 몰랐군그래. 내가 속이 좁아서 남한테 당한 건 반드시 갚아줘야 하는 성미거든.”
이원이 흘깃 초휴의 뒤쪽을 보니 용기금군과 이 공공 수하의 모습도 보였다.
“흥! 저 정도로 나를 어찌해보겠다고? 잠꼬대도 자리 봐가면서 해야 할 터인데? 초휴, 넌 오늘 단단히 잘못 짚었어!”
이원이 기 싸움에서 질세라 큰소리를 떵떵 쳤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는 초휴가 여기다 무슨 장난질을 쳐놨는지 아직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저 자기 뒤를 밟아 왔겠거니 생각할 뿐이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다른 곳에서 초휴가 습격했다면야 일이 복잡해졌겠지만, 이곳에는 남서 세력이 죄다 집결해 있고 그들 모두가 태자의 편이 아닌가. 이런 마당에 뭐가 두렵겠는가! 그는 좌중을 돌아보며 근엄히 말했다.
“여러분, 기왕지사 태자 전하의 그늘에 들어오기로 했으면 성의 표시를 해야 하지 않겠소이까? 당장 저들을 쓸어버리시오!”
과연 이원은 결단이 빨랐다. 이런 상황이라면 초휴를 비롯해 이황자의 수하들마저 죄다 죽여 입을 막아야만 태자에게 불이익이 미치지 않을 터였다. 물론 이는 대량성 내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설령 기회가 있다 해도 대량성 내에서라면 감히 그럴 수 없었다. 동제 황실이 암투를 금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암투도 도성 안에서는 일정한 규모로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처럼 많은 병력이 일거에 맞붙는 대규모 무력충돌은 도성에선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원의 명령이 떨어지자 적잖은 남서 세력 무사들이 초휴의 진영을 향해 돌진했다. 이원의 수하들이 그간 영입해둔 세력이 비단 철검문 한 곳만이 아닌지라, 태자 편에 서기로 한 세력들은 이번 기회에 공을 세워 태자의 눈에 들려고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패배할 가능성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자신들의 전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태자 측만 따져도 천인합일 무사들이 네 명이고 남서 세력까지 합하면 열 명이 훨씬 넘었다. 반면 초휴 쪽은 어떨까? 고작 이 공공과 방진기 둘 뿐이 아닌가. 저 둘만 해치우면 싸움은 그걸로 끝인 거다. 그런데 이들은 당장 공을 세우기에만 급급해서, 그간 자기들과 사사건건 경쟁해왔던 철검문 등이 공격에 합류하기는커녕, 제자리에서 꿈쩍도 안 하고 관망만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지 못했다.
이때 이원이 자기 뒤에 있던 객경 세 명에게도 명했다.
“그대들도 출수하시게.”
그러자 그중 한 사람이 의문을 제기했다.
“고작 저들을 상대하는데 우리까지 출수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저들은 천인합일 둘에 오기조원 하나 아닙니까. 그냥 남서 세력들에게 공을 세울 기회를 주는 게 낫지 않을까요?”
“흥! 잔말 말고 어서 출수하시오! 당신들이 뭘 안다고 그래? 저놈은 용호방 육 위의 초휴요. 천인합일도 저놈에게 맥을 못 추고 나가떨어진단 말이오. 저런 떨거지들의 실력만으로 용호방 육 위의 고수를 어떻게 죽일 수 있다고!”
비록 이원이 남서 세력을 영입하라는 태자의 명을 받들고 이곳에 와있다지만, 내심 저들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있었다. 이런 촌구석 무사들의 실력이라고 해봤자 대부분이 소속된 바 없이 제대로 된 수련 과정도 못 거친 자들이 아닌가. 아무래도 무공수련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나 큰소리를 친다 한들, 태생적인 열세를 안고 있는 저들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높이 평가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원은 이미 초휴와 겨룬 바 있었다. 말끝마다 태자 전하를 대신해 혼쭐을 내주겠노라 큰소리쳤지만, 자신과 초휴의 실력 차를 모를 정도로 어리석진 않았다. 대충 짐작해도 자기가 직접 초휴와 맞붙는다면 세 초식도 받아내기 어려울 터였다. 그러니 지금이야말로 하늘이 내린 절호의 기회가 아니겠는가. 이쪽의 전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기회를 이용해 초휴를 제거해버리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싸움이 벌어지자 초휴도 눈가에 힘을 주며 말했다.
“이 공공, 방 대인, 우리도 출수합시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제일 선두에서 치고 나갔다. 하지만 남서 무사들은 이 광경에 냉소를 머금었다. 사실 그들 대부분이 아직 초휴가 누군지도 모르고 있었다. 방금 이원이 초휴의 이름을 들먹이는 걸 들었으나, 여전히 초휴가 누구인지가 생각나지 않았다. 이곳이 워낙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변두리다 보니, 중원에서 맹위를 떨쳐도 여기까지는 별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 그러니 초휴와 같은 용호방 준걸도, 부옥산 정마대전마저도 그들에게는 딴 세상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보기에 이황자 측은 제대로 된 실력자라곤 하나도 없는 모양새였다. 저렇듯 오기조원이 선두에서 치고 나가는 꼴이라니!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거와 뭐가 다르겠는가. 그러나 양측이 맞붙자 이들의 표정은 싹 바뀌었다. 남서 세력 측을 대표해 가장 먼저 포문을 열고 나선 자는 팔가 중 하나인 서가(徐家)의 가주였다. 유난히 공명심이 큰 그는 다짜고짜 자신의 절기를 구사하며 초휴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수중에는 만도(彎刀), 즉 보름달처럼 생긴 굽은 칼이 들려 있었는데 표면에 검은 마기가 감도는 모습이 꽤 흉악해 보였다.
“죽어라!”
그가 일갈을 터뜨리자 도신을 휩쌌던 마기가 도망에 실려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가 자신만만하게 일격을 내지르는데도 마주한 청년의 얼굴에서는 비웃음이 가득하지 않은가.
‘감히 오기조원 주제에 피하지도 않고 조소를 머금는 여유를 보이다니, 모자란 놈이 아니고서야 이럴 수가 있나!’
하지만 정말 모자란 자는 상대가 아니라 자신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가 가주가 출도(出刀)함과 동시에 초휴도 외사자인으로 그 흉맹한 마도에 맞섰다. 곧이어 귀를 찢을듯한 불음이 금강역사의 노호성과 함께 작열하였음은 물론이다. 그 가공할 진동 아래 서가 가주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듯했다. 직격탄을 맞은 두개골이 금방이라도 쪼개질 듯 팽창하는가 싶더니 급기야 도세가 마구 흔들렸다.
“저건 구변사자후가 아닌가! 설마 저자는 대광명사의 속가 제자인 건가?”
초휴를 잘 모르는 자들 간에 웅성대는 소리가 커져갔다. 강호에서 대광명사의 구변사자후가 워낙 유명한지라 남서 세력들도 금세 이를 알아보았다. 하긴 외사자인과 구변사자후가 얼핏 비슷해 보이니 오인할 만도 했다. 다만 초휴의 정체를 아는 정천도는 표정이 복잡하게 변했다.
‘초휴가 대광명사의 제자라고? 하지만 정작 대광명사는 초휴를 못 죽여 안달이지 않았던가.’
이때 초휴도 칼을 빼 들었다. 칠흑같이 검은 천마무는 칼집에서 벗어나자 엄청난 마기를 머금었다. 곧이어 핏빛 살기가 도신으로 스며들더니 도망 전체가 섬뜩할 정도로 시뻘겋게 물들었다. 그 일도에 악귀의 울부짖음과 마신의 노호성이 함께 터져 나왔다. 순간 망천동이 통째로 아비지옥으로 옮겨진 듯한 착각에 사람들은 겁에 질려 숨을 죽여야 했다.
초휴의 마도에 비하면 서가 가주의 마도는 애들 장난감처럼 보였다. 초휴가 가소롭다는 비웃음을 머금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졸지에 공자 앞에서 문자 쓴 격이 되어버린 가주는 굴욕을 자초한 셈이었다.
차원이 다른 초휴의 가공할 마도에 공포를 느낀 그는 눈빛이 흐트러지는가 싶더니 도세를 바꿔 수비로 전환했다. 서슬 퍼런 초휴의 칼날을 일단 피하고 볼 생각이었건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초휴는 그에게 위기를 피하게 해 줄 생각이 없었으니까.
초휴가 공세에 변화를 준 순간, 서가 가주는 거대한 그물 안에 갇힌 것처럼 사방 어느 쪽으로도 운신하기가 어려웠다. 피할 여지가 없이 원천 봉쇄되다시피 했으니, 이제 상대의 칼날에 맞서는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두 칼날이 정통으로 마주치기 직전!
아비마도에 맞선 서가 가주의 몸 주위로 혈무가 피어올랐다. 궁지에 몰리자 정혈을 태우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서가 가주를 비롯한 남서 출신 무사들은 무공을 수련하는 방법이 특별히 우수할 게 없었다. 다만 척박하고 잔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남을 밟고 설 수밖에 없는지라 하나같이 싸움 방식이 과감하고도 매서웠다.
해서 위험한 상황인 걸 본능적으로 감지한 즉시 정혈을 태웠고, 이에 짙은 혈기가 도세 속에 유입되니 그의 장도 끝에서 수 장에 달하는 혈망이 솟구쳤다. 이 혈망이 초휴의 아비마도와 부딪히자 충돌음이 작열하는 가운데 마기와 혈기가 교차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결과 제자리를 우뚝 지킨 초휴와 달리, 서가 가주의 몸은 두 동강이 나버렸다. 그것도 거의 일합에 말이다!
서가 가주는 나름 이곳에서 명성이 자자한 고수에 속했다. 그런 인물을 초휴가 닭 잡듯 양단해 버리는 걸 보자 뒤따라 공격하려던 자들의 발이 일제히 얼어붙었다. 굳이 마땅한 말을 찾아내자니 닭 운운한 것일 뿐, 정말로 닭 잡는 일도 이렇듯 쉽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 정천도와 같은 천인합일 고수의 눈에는, 얼핏 단순하게 보였던 그 둘의 교전이 사실상 그게 전부가 아니었음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양측이 최후의 공세로 승부를 가리기 전에 이미 무수한 초식의 변환이 선행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물밑에 가려진 오묘한 변환은 웬만한 경지의 실력자가 아니고서야 쉬이 읽어낼 수가 없었다. 따라서 현장의 무사들 대부분은 초휴가 단칼에 서가 가주를 참살했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그의 실력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젠장, 형편없기는!’
이원이 내심 욕을 퍼부었다. 하지만 일전에 초휴가 낙가 전체를 전율케 했던 당시의 기억도 새삼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호에서는 머릿수가 많다고 해서 무조건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특히 군부에서 그랬다. 고수들이 많기로 유명한 동제 군부의 경우, 상장군 또는 대장군들이 진두에 나서 싸우는 것을 선호했다. 적군의 수가 벌떼처럼 많아도, 수장의 수급을 베어버리면 적군의 사기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초휴가 한 것처럼 말이다.
초휴가 단칼에 전장의 분위기를 휘어잡자 이원이 태자의 객경 세 명을 돌아보며 말했다.
“저들만으로는 턱도 없다는 걸 이제는 아시겠소?”
이에 객경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초휴가 저 정도 실력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남서 세력 무사들이 겁을 먹고 감히 앞으로 나서질 못하자 객경들이 선두에 서는 수밖에 없었다. 정천도 등이 출수할 시늉도 안 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한 이원이 인상을 찌푸리며 그들을 질책했다.
“정 문주, 도대체 뭐 하는 겁니까? 태자 전하 밑에 들어오기로 했으면 한마음 한뜻으로 충성을 다해야지요. 모두 힘을 합쳐 초휴를 처치하면 일이 다 끝난 후 적절한 논공행상이 이루어질 테니 염려하실 것 없소. 전하의 인자하심과 후덕하심을 모르진 않겠지요? 전하를 따르는 이상은 여러분이 손해를 보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외다.”
그러자 정천도가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하지만 뜻밖에도 철검문 정천도, 유가의 유길, 점창검종 한정일, 청풍채 송렴, 이 네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옆에 있던 동료 무사들을 급습하는 게 아닌가!
특히 마침 태자의 객경 뒤에 있던 정천도는 빛의 속도로 철검을 빼서 무방비 상태이던 상대를 단번에 참하고 말았다. 얼핏 별거 아닌 것처럼 보였던 철검이 제대로 진가를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나머지 세 사람도 단번에 하나씩 상대를 처치했다. 그 바람에 모두가 혼비백산했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