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50)
450화 ‘명왕’ 종현
연령대가 다양한 이 화상들은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최약체가 천인합일이고, 진단경 무도종사 두 명이 무리를 이끌고 있었다. 이들은 남불종 수보리선원 화상들로, 대광명사에 비해 훨씬 더 정적(靜的)인 분위기를 풍겼다. 대광명사는 연체 수련에 치중하고 수보리선원은 불법 수련에 정진한다. 그러니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더 제자들에 대한 요구조건이 엄격했다. 불법의 조예가 지극히 높고도 깊은 경지에 이르러야만 수보리선원의 정식제자가 될 수 있는 것도 그중 한 예일 터였다. 그래서인지 오랜 세월 동안 수보리선원 제자의 숫자는 아무리 많아야 천 명을 넘은 적이 없었다.
물론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인물들임은 물론이다. 이번에 수보리선원에서 무도종사 고수를 둘씩이나 보내온 것은 그야말로 현연대사의 체면을 최대한 세워주는 모양새라고 봐도 좋았다. 반면, 대광명사 측에서는 고작 한 명을 보내왔다.
그러나 그 한 명의 존재감이 수보리선원 측 열 명을 합친 것보다도 단연 더 컸다. 왜냐하면 그 한 명은 천년에 한 번 날까 말까 한 준걸이라는 평을 듣는 대광명사의 간판급 제자이자 용호방 이 위인 ‘명왕’ 종현이었기 때문이다.
초휴도 강호에서 귀가 따갑게 소문만 들었을 뿐, 종현을 실제로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옆에서 참새처럼 재잘대며 수다를 떠는 방칠소에 비하면 순위가 단 하나 위일 뿐인데도 그가 훨씬 더 준걸다운 풍모였다.
강호를 전율케 한 종현은 딱 봐도 상당히 젊어 보였다. 외모가 그리 잘생긴 편은 아니지만, 이목구비와 신체의 윤곽이 하나하나 칼과 도끼로 깎아낸 듯 강건한 남성미를 풍겼다. 특히 불광을 머금은 그의 눈동자는 신불(神佛)의 강림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그 신성한 눈동자 너머에 어떤 감정이 숨겨져 있을지는 범인(凡人)이 알 수 있는 게 아닐 터. 그야말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어 다니는 불상이라는 소리가 어울리는 인물이 아닌가.
종현은 옷차림도 범상치 않았다. 상반신은 벌겋게 드러낸 채 승복 바지만 입은 그는 황동 주조물 같은 상체 근육을 과시하고 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단연 눈에 띄는 건 그가 목에 걸고 있는 거대한 염주였다. 염주 한 알의 크기가 갓난아기 머리통만 했고 표면에는 온갖 범어가 쓰여 있는 게 신비로우면서도 기괴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방칠소가 뜻밖에도 진지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정말 괴물이라니까! 내가 장담하는데, 저자는 피도 눈물도 없을 거요. 사람이 어떻게 저렇듯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을 수가 있지? 대광명사가 어쩌다 저런 괴물을 만들어냈는지 모를 일이야. 암튼 난 저자가 정말 마음에 안 들어. 당신이 건드려놓은 화상들이 적지 않은 듯하니, 종현 저자가 십중팔구 그대에게 시비를 걸어올 테지. 부디 이 겁난을 무사히 잘 넘기길 바라겠소. 아, 정말, 아무리 봐도 괴물이라니까! 정상인이라면 날 때부터 몸에 문신이 있을 리가 없잖으냐고!”
말을 마친 그는 슬쩍 좀 더 옆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조금이라도 종현한테서 멀리 떨어지고 싶은 심리인듯했다.
이에 초휴는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칠소와 같이 개방적인 성격의 소유자도 질색하며 꺼리는 존재가 세상에 있을 줄이야.
방칠소는 용호방 삼 위, 종현은 이 위에 올라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실제로 겨뤄본 적이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종현에 대한 방칠소의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둘이 겨뤄본 적이 있는 듯했다. 그리고 분명히 그 싸움은 방칠소의 패배로 끝났을 터였다. 아니라면 그가 이렇게까지 소스라치게 종현을 꺼릴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종현도 방칠소와 초휴가 있는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물론 주로 방칠소를 보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종현의 눈동자는 불광에 덮여 있는 데다 목석같은 얼굴엔 표정의 변화라곤 없으니, 그의 무감각한 얼굴만 봐서는 그 마음에 품은 게 선의인지 악의인지를 분간할 길이 없었다.
“방칠소, 그대도 왔구려.”
종현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 금속 마찰음과 같은 쉰 목소리였다. 희로애락마저 감지할 수 없는 지극히 담담한 어조였다. 이에 방칠소는 콧방귀를 뀌며 받아쳤다.
“그래서 어쨌단 거요? 내가 못 올 곳에라도 왔소!”
종현은 인사말을 끝으로 더 입을 열지 않았다. 여기에는 방칠소와 입씨름하러 온 게 아니라, 엄연히 대광명사를 대표해 현연대사를 영접하러 나온 것이니까.
이처럼 기쁨과 분노, 선의와 악의처럼 단순히 양극화된 감정마저 읽어낼 수 없는 목석같은 그였지만, 그런 그가 방칠소에게 먼저 인사를 건넨 것은 그와 구면인 데다 그의 실력을 인정했기 때문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도 종현으로서는 나름 예의를 갖춘 것이다.
이때 돌연 불종 무사 하나가 초휴를 가리키며 목청을 돋우었다.
“수보리선원에서 오신 대사님들! 그리고 종현 사형! 저 초휴란 자가 우리 불문을 모독했습니다. 불문 제자들은 그저 불경이나 읽을 뿐 선행은 베풀지 않는다면서 위선적이고 가식적이라고 욕을 하더이다. 소승들의 실력이 변변치 않아 감히 저자와 시시비비를 따지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니 대사님들과 종현 사형께서 우리 불문을 대표해 저자를 따끔하게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의 격앙된 음성이 온 해변에 퍼지자 불문 계통 외의 제자들은 미간을 찌푸렸다.
저런 쪼잔한 고자질이라니!
아무래도 불문 제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고자질에만 능한 모양이 아닌가. 사실 불문 계통은 도문 계통과 비교해서, 선종과 밀종이라는 양대 세력이 간혹 부딪히는 것 말고는 대부분의 종문들 간에 단합이 잘 이루어지는 편이었다.
일례로 작은 사찰에서 큰 절의 고승에게 설법을 청하면 부탁에 응하는 게 당연한 상식처럼 되어있었다. 이런 이유로 강호에는 불문 무사들을 섣불리 건드리면 안 된다는 인식이 불문율처럼 되어있었다. 보잘것없는 사찰이라고 우습게 보고 건드렸다가는 자칫 그 거물급 불문 인사가 대신 보복해 올지도 모를 일이니까.
초휴가 대광명사와 원한을 맺게 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그는 임무 수행 과정에서 항선인지 뭔지 하는 선사(禪師) 한 명을 죽였을 뿐이건만, 이로 인해 대광명사까지 끼어들며 연쇄적인 원한을 맺지 않았던가. 이에 비하면 도문은 훨씬 더 상식적이고 개인주의적이었다. 너는 너의 도를 수련하고 나는 나의 도를 깨우치면 그만인 것이다.
이처럼 각자 자신의 수련만 전념하니, 서로 간섭할 일도 없고 연루될 일도 많지 않았다. 도가의 일맥이 영원히 이어지는 한 도통(道統)은 소멸하지 않을 터. 그렇다면 공연히 남의 일에 끼어들 필요가 어디에 있겠는가. 불가와 도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여기에 있었다. 해서 유난히도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비호해 주고 단점마저도 미화해 주는 불가의 행태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강호인들도 적지 않았다.
해서 여기서도 역시 불문 제자의 고자질에 수보리선원 고승들과 종현의 시선이 초휴에게로 향했다. 수보리선원 측 고승들이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고자질한 자의 기대와는 달리, 노강호인 이들은 초휴와 같은 젊은 준걸에게는 별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심오한 수련 덕에, 저런 까마득한 후배 무사와 불필요한 마찰을 빚는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줄도 알았다.
무엇보다도 지금 이들은 현연대사를 맞이하러 온 것이다. 그런 판에 엉뚱한 선동에 휘말려 출수했다가는 자신들의 명성에도 좋을 게 없었다. 해서 이들은 초휴에게 따지려 들지 않고 되레 고자질한 화상을 째려보며 일을 크게 만들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뜻밖에도 줄곧 무심해 보이던 종현이 불쑥 질문을 던지는 게 아닌가.
“그대가 초휴인가? 대광명사 금강원 제자를 죽이고, 부옥산에서 우리 제자들을 연패시켰다던 초휴란 말이지?”
‘또 그놈의 대광명사!’
짜증이 난 초휴가 버럭 소리쳤다.
“그건 새삼 확인해서 뭐 하려고 그러시오? 그대도 복수할 참인가? 대광명사 제자들 간의 의리가 실로 대단하구먼. 하나가 패하면 또 하나가 그 뒤를 잇더니, 종국에는 그 유명한 ‘명왕’ 종현까지 나설 참이신가? 이건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데, 당신 다음 차례는 또 누가 나설 예정이요?”
“시시비비를 따지려면 당사자가 직접 나서야지. 누가 대신 나서 줄 일이 아니지. 나는 저들이 나서 달라 부탁해도 응하지 않을 것이오. 그러나 동문 사형제들이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좌시만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소! 이는 사사로운 시비를 따지자는 게 아니라, 대광명사 차원의 공무 수행 정도로 알아 두시오.”
종현의 말에는 여전히 감정이란 전혀 실려 있지 않았다. 어조의 높낮이도 없었다. 하지만 현장의 사람들이 사태 파악을 하기도 전에 종현이 성큼 한 발 내딛자 광풍이 몰아치며 땅이 푹 꺼졌다. 곧이어 그의 전신에서 불광이 터지더니 명왕(明王, 부처의 명을 받들어 지혜의 광명으로 번뇌에 사로잡혀 있는 중생을 굴복시켜 구제하고 마귀를 몰아낸다는 존(尊). 두려움을 불러일으켜 굴복시키기 위해 대부분 성난 모습을 하고 있음: 역주)의 인(印)이 격출되었다. 명왕의 강림을 방불케 할 위력이 천고만대(千古萬代)는 지속할 것 같은 두려움을 던져주는 순간이었다.
종현이 이렇듯 갑작스레 출수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는 초휴도 예외가 아니었다. 종현의 사고방식과 행동은 과연 일반인과는 판이하지 않는가. 규율이니 체면이니 따위는 그에게 어떤 속박도 가하지 못했다. 전혀 감정이 깃들지 않은 사고방식으로 모든 문제를 대하는 그는 방칠소의 말대로 괴물이 맞았다!
분명 자기 입으로 대광명사 동문의 사사로운 시비를 따지려는 게 아니라고 했다. 단지 자기가 대광명사의 제자이기 때문에, 공적으로 초휴에게 출수를 하는 거라고 했다. 이렇듯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내세워 출수했다가는 자칫 본인의 체면이 손상을 입을 수 있다는 건 전혀 고려하지도 않는 듯했다. 물론 그래서 이처럼 비상식적일 만큼 빠른 결단을 내리는 게 가능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종현이 명왕인(明王印)을 내지르자 무도종사를 방불케 하는 막강한 위력이 덮쳐오는 듯했다. 초휴는 자기가 지금 섭인룡과 싸우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하긴 종현처럼 괴이한 사고방식을 가진 자가 실력까지 약하다면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는 외톨이가 되었을 터였다.
이처럼 차원이 다른 실력을 지닌 종현은 방칠소의 표현처럼 괴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가급적 멀리하는 것 말고는 어찌해 볼 방법조차 없는 괴물 말이다. 하지만 종현이 먼저 출수한 이상, 초휴는 피하려야 피할 수가 없었다. 명왕인에 맞서 초휴의 눈동자 속 일월성신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자망기술을 최대치로 시전해 보려는 노력이었지만 결국 무위로 끝나버렸다. 종현의 힘이 어찌나 강했던지 초휴가 사방팔방 몸을 운신할 공간마저 봉쇄된 탓이었다.
이처럼 가공할 힘이라면 종현이 명왕의 현신이라 해도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도저히 피할 방도가 없으니 유일한 대항책은 그저 맞서 싸우는 것뿐!
초휴가 두 눈에 힘을 주자 질식할 것 같은 마기가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최대치로 아비도삼도의 도의를 끌어내어 휘두르니, 일도 만에 지옥문이 활짝 열리며 상상을 초월할 마력(魔力)이 쏟아져나왔다. 곧이어 무형의 혈련신강을 유형의 것인 양 칼날로 응집시켜 도강에 장착했다.
종현이 명왕인으로 명왕의 현신이 되었다면, 초휴는 이 마도로 자신의 몸을 불살라 마귀가 된 것이다!
초휴의 이런 괴력은 무도종사급에 대적할 때나 폭발되곤 했다. 정혈을 태우는 방법을 빼면 이것이 초휴가 터뜨릴 수 있는 최대치의 역량이었다. 종현이 무도종사는 아니라고는 해도, 공격에 동반되는 압박감은 무도종사와 다를 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