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51)
451화 괴물
명왕인과 마도가 충돌한 순간, 차원이 다른 극강의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그러자 태산도 가를 듯 보였던 마도에 균열이 일기 시작하더니 마기가 사그라지면서 혈련신강도 제압되었다. 명왕이 사악함을 멸하고 마귀를 몰아낸 것이다.
대광명사 내에서 상위급 무공 축에도 못 들던 명왕인이 뛰어난 출수자 덕에 현세를 초월한 입신의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그 인법에 불음마저 동반되었으니, 명왕의 노호성이 폭음(爆音)처럼 귓전을 두들겼다.
충격파를 타고 강력히 몰아치는 강기의 폭풍에 주위 사람들은 연신 뒤로 물러나기에 급급했다. 방칠소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 그의 얼굴에는 장난기 가득하던 표정이 완전히 사라지고 진중함만이 남았다. 종현의 실력은 그도 겪은 바 있다. 생사결은 아니었지만 초휴의 짐작대로 그 대결은 방칠소의 패배로 끝났다. 단순히 기량만을 겨루었던 그 대결과 달리, 다음번에 전력을 다해 싸운다면 그를 이길 수 있을까? 방칠소는 여전히 자신이 없었다.
방칠소의 인과 검도는 천하에 대적할 자가 드물기로 유명하다. 동급 무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강호의 그 많은 무도종사와 심지어 진화련신 고수들조차도 힘들어하는 그 검도를 방칠소는 깨우쳤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과 검도가 천하무적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종현과 맞붙었을 당시, 방칠소는 그에게 완전히 제압당했으니까. 그건 근본적으로 힘에 있어서 도저히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었다.
‘인과 검도’란 원인과 결과가 상응하는 원리다. 당시 방칠소의 검은 확실히 종현의 몸을 찔렀다. 하지만 괴이하게도 분명 찔렀으나 그에게 아무런 상처도 입히지 못했다. 어찌 그런 말도 안 되는 인과관계가 성립될 수가 있단 말인가. 괴이하다 못해 섬뜩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해서 방칠소는 그때부터 종현을 ‘괴물’로 보기 시작했다.
지금 종현을 보니 그의 실력에 뚜렷한 진전은 없는 듯했다. 그렇다 한들 여전히 놀라운 실력이긴 했다. 물론 그다지 새삼스러울 건 없었다.
정작 방칠소를 놀라게 한 건 생각지도 못한 초휴의 괴력이었다. 지난번 부옥산 정마대전에서 둘이 겨뤘을 때, 초휴는 그 나름의 신비로운 인과 무도를 펼쳐 보였었다. 당시는 피차 인과 무도로만 승부를 보다시피 했던지라 지금 같은 극강의 정면 대결을 펼칠 기회는 없었다. 해서 이제서야 초휴의 막강 전투력을 체감하는 셈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지금 초휴의 상대는 방칠소마저 ‘괴물’이라며 꺼리는 불가사의한 존재인 종현이다. 방금의 격렬한 충돌로 인해 초휴의 도세는 파괴되었고 그의 몸은 연신 뒤로 밀려났다. 한 발씩 뒷걸음질 칠 때마다 지면이 움푹 꺼지며 큼지막한 구덩이가 파이곤 했다. 잇달아 열 보 남짓 밀려난 끝에 초휴의 안색은 심하게 창백해졌다. 그의 폐부도 외력의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는 듯했다. 한마디로 종현의 힘은 미쳤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종현의 표정은 여전히 그 어떤 변화도 없었다.
그러나 잠시 멈칫하는가 싶더니 불광이 한층 더 짙어진 눈으로 초휴를 응시할 뿐이었다. 뜻밖에도 초휴가 명왕인을 막아낸 것에 대해 크게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그 놀라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명왕인을 또 한 차례 내리쳤다. 그 일격으로 하늘도 가릴 불광이 법상으로 응집되어 종현의 등 뒤에 떠올랐다. 전신이 불염(佛焰)으로 활활 타오르는 그 법상은 노한 눈을 부릅뜬 명왕의 모습이었다!
불광을 동반한 분노의 화염이 천지도 불사를 기세로 화력을 더해가는 중에 종현이 명왕인을 내리치자, 주변 대기에 층층이 파문이 일더니 그 궤적을 따라 천지 원기마저 소멸하였다.
이 더없이 패도적인 힘은 그 어떤 이물(異物)이 섞여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에 초휴가 분노의 일갈을 터뜨리자, 일신에 강력한 기운이 감돌며 모든 강기가 한데 응집되었다. 난공불락의 독고인과 함께 초휴의 몸 주위로 강기가 응집되더니 방어막이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한껏 노한 명왕인은 그 방어막마저 무력화시키며 숨돌릴 틈 없이 초휴를 몰아붙였다. 방어막이 파괴된 순간, 이번에는 초휴 일신의 모든 살의가 최대치로 응집되었다. 그의 뇌리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실낱같은 이성마저 무진장한 살의에 잠식되었다.
‘천상과 지하를 막론하고 죽이지 못할 게 무어냐!’
살의가 광풍처럼 몰아치며 망아의 경지로 빠져드니, 망아살권이 정식으로 출격할 차례였다. 천절지멸망아살권은 극단적인 면이 강한지라, 터득한 이후로 이처럼 최절정의 수위까지 화력을 끌어올린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종현이 초휴를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으로 몰아가니 결과적으로 망아살권의 완성을 돕는 격이 되고 말았다. 각자의 최강 위력을 실은 망아살권과 명왕인이 극강의 충돌을 시작한 것이다.
양측의 주먹이 맞부딪히자 요란한 폭음과 함께 살기와 불광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곧이어 두 사람의 발밑 지면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쩍쩍 갈라지더니 균열이 수 장 길이나 이어졌다. 얼핏 보면 지하에서 용이 몸을 뒤튼다고 생각할만한 양상이었다. 격한 충돌이 일으킨 강기의 폭풍 속에 이번에도 초휴는 연신 뒤로 밀려났다. 어느덧 광기로 충만한 살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버틸 힘도 얼마 남지 않은 듯 보였다.
초휴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을 생각도 않고 놀란 눈으로 종현을 바라볼 뿐이었다. 과연 종현은 힘에, 그것도 엄청나게 힘에 특화된 자였다. 힘이라면 무도종사조차도 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초휴는 그간 줄곧 힘으로 상대를 압도해왔다. 그리고 드디어 자신을 힘으로 압도하는 자를 만난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종현이 저만치 선 채로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눈동자를 뒤덮었던 불광은 아까보다 다소 옅어져 있었다. 강철로 빚은 듯한 그의 구릿빛 피부에는 칼끝이 베고 지난 것처럼 보이는 열상(裂傷)들이 군데군데 길게 나 있었다. 망아살권이 남기고 간 흔적이었다. 살의가 극치에 이른 망아살권인지라, 그 예리함이 벼린 칼날보다도 더했던 모양이다.
서로 일권씩 주고받은 결과로 초휴는 피를 토했고, 종현은 피부에 외상을 입었다. 얼핏 봐서는 초휴가 패한 듯 보였으나, 체면이 깎일 일은 아니었다. 상대는 자기보다 경지나 순위가 모두 높은 종현이 아닌가.
하지만 예전부터 초휴에게 악감정을 품어왔던 무사들은 이 순간 종현이 느꼈을 낭패감은 눈에 안 보이는 모양이었다. 표면상으로는 두 합 만에 초휴가 피를 토하고 말았으니, 그들은 신이 난 모양새였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하룻강아지처럼 기고만장 날뛰더니 오늘 된통 걸렸구나! 아주 고소하다.’
다들 흐뭇해하는 순간, 소백우가 언짢은 기색을 내비치며 말했다.
“종현, 그만하면 되었네. 대광명사를 대표해서 현연대사를 영접하러 나온 몸으로 싸움판을 벌여야겠는가. 불문에 수치를 안길 짓은 자제하게!”
종현은 여전히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더는 출수하려 들지 않았다.
“명왕인 두 방이면 충분합니다. 저도 제대로 출수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대제주 어르신이라 해도 저를 말리지 못하셨을 겁니다.”
종현이 목석같은 얼굴로 소백우에게 말했다. 말의 내용 자체는 오만불손했다. 그러나 억양도 감정도 없이 무미건조하기만 한 말본새는 그게 객관적인 사실인 양 들리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소백우는 그릇이 큰 인물답게 분노를 표하진 않았다. 물론 종현의 말에 틀린 구석이 없기도 했다. 강호와 조정을 막론하고 소백우가 유명한 건 실력이 독보적으로 막강해서가 아니었다. 그의 유명세는 무도에 대한 탁월한 이해와 직하무원 대제주라는 신분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래도 거물답게 기본 역량이 있으니, 저 둘 싸움에 끼어들었다가 낭패를 당하는 일이야 없겠지만, 종현이 초휴를 계속 공격하려들 경우 막을 방법이 없는 건 확실했다.
종현은 말을 마치자 동해 쪽으로 눈을 돌리며 일행과 함께 가버렸다. 주위의 불문 제자들이 그에게 인사를 건네보려 했으나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초휴는 무심하게 단약 한 알을 입안에 던져 넣더니 절인 콩을 씹듯 대충 씹어댔다. 폐부에 입은 부상은 다행히도 그리 심하진 않았다.
초휴가 엄살을 떠는 게 아니라, 종현의 실력은 확실히 강했다. 지금 그 정도의 실력이라면 무도종사에게 도전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 자에게 두 합 만에 패했다고 해서 우거지상을 지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종현이 전력을 다하지 않았듯이 초휴도 힘을 일부 남겼었다. 그는 단순히 힘에서 종현에게 밀렸을 뿐이다. 무식하게 힘으로만 밀어붙이는 것 말고도 그에게는 얼마든지 다른 재주가 있지 않은가.
물론 종현은 이미 천인합일이라는 사실이 이번 패배에서의 큰 위안거리일 수도 있었다. 두 사람은 불과 경지 하나 차이지만, 오늘 초휴는 그 차이가 상당히 크게 느껴졌다. 일단 천인합일에 오르기만 하면 초휴의 실력은 필연적으로 폭증할 터였다. 그때 가서 다시 종현과 겨룬다면 누가 이길지는 여전히 미지수이겠지만, 적어도 오늘처럼 일방적으로 패하지는 않을 터였다.
그리고 본인이 느끼기에 천인합일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듯했다. 결정적으로 치고 올라갈 계기만 주어진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그 관문을 넘어설 수도 있을 듯했다. 이때 방칠소가 은근슬쩍 초휴 곁에 오더니 소리를 낮춰 말을 걸었다.
“그러게 내가 말했잖소. 저자는 괴물이라니까! 무공도 무식하고 무지막지해서 융통성이라곤 조금도 없더니, 하는 짓도 꽉 막혔다고. 장차 저런 자가 대광명사 방장을 맡으면 어찌 될 것 같나? 나는 늘 그게 궁금하더라고. 물론 상상도 하기 싫지만 말이지.”
초휴는 힐끗 그를 째려봤다. 그의 눈빛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검왕성도 종문의 미래를 방칠소 너 같은 놈한테 맡기는 판에, 종현이 대광명사의 방장이 못 될 이유라도 있나?’
이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다. 방칠소가 종현을 비웃는 걸 보니 그의 자존감이 얼마나 높은지 알만했다.
방칠소는 연신 초휴의 귓전에 대고 촉새처럼 재잘거렸다. 쉴 새 없이 수다가 계속되자, 이것도 일종의 병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저렇게 떠들어대고 싶은데 입을 억지로 닫게 하면 자칫 숨이 막혀 죽을까 겁나서 섣불리 말을 막을 수도 없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자 초휴가 불쑥 끼어들었다.
“종현의 실력은 나도 겪어봤으니 얼마나 두려운 수준인지 잘 아오. 종현이 저 정도니 순위가 하나 위인 장승정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일까 궁금하군. 그대는 장승정과도 겨루어 본 것 같으니 한번 물어보지. 당신이 이겼소, 아니면 졌소?”
초휴의 노골적인 질문에 방칠소가 멈칫하며 기가 죽은 듯 보였으나, 이내 콧방귀로 간만에 진지했던 표정을 날려버렸다.
“둘 다 괴물인 건 마찬가지요. 그래도 장승정이 종현보다는 말 붙이기가 좀 낫다는 장점은 있지. 설마 저런 소통 불가의 답 없는 괴물이 또 있을까 봐서.”
초휴가 더 물어볼 것도 없이 방칠소의 표정만 봐도 답을 들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분명 방칠소는 장승정과 겨뤄본 적이 있고, 결과는 그의 패배로 끝난 것이다. 그것도 아주 참담한 패배였으리라. 그게 아니라 본인이 조금이라도 우위를 점했더라면 저 성격상 제 자랑으로 침이 한 바가지도 더 튀었을 테니까.
장승정을 언급하고서야 초휴는 문득 깨달았다. 어찌 된 영문인지 현연대사를 영접하러 나온 이들 가운데 사대도문(四大道門) 출신은 물론이고, 허울뿐인 도문 잔챙이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 그다지 이상할 게 없긴 했다. 오래전부터 도문과 불문 간에 줄곧 마찰이 있어 온 게 사실이니까. 현연대사의 명성이 온 강호에 자자하다고는 하나, 도문 측에서도 반드시 그를 떠받들어야 한다는 법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