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57)
457화 거센 충돌
장차 종문을 승계할 자가 영웅의 진중함이라곤 조금도 없이 저런 태도로 돌아다니는 걸 알면 검왕성 사람들의 속에서는 얼마나 천불이 날까. 하지만 명기가 모르는 바가 있었으니 검왕성 측은 방칠소의 저런 모습에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해져 있는지라, 저 정도로 열이 뻗칠 리가 없었다.
순간 명기가 자기 이마를 치며 ‘아뿔싸’를 외쳤다. 지금 쓸데없이 다른 종문의 우환거리를 생각하며 흐뭇해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은가. 그는 다급히 종현을 붙잡으며 말했다.
“종현 사질, 어서 가보세. 지금이라도 현연대사를 막아야 할 테니 말이지.”
종현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명기의 손에 이끌려 영룡 해안으로 향했다. 사실 종현은 이 일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인과선당 출신으로 전투력이 자기만 못한 명기의 요청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자기보다 항렬이 위인 사숙이 현연대사의 무공 전수를 막아야겠다고 하니, 그저 시키는 대로 출수하면 그만 아니겠는가.
두 사람이 황망히 발걸음을 옮기는 것을 본 방칠소의 눈빛에 의혹이 서렸다. 입에 물고 있던 황주 한 모금을 쭉 들이킨 그는 술병을 검 끝에 매단 채 그들을 뒤따르기 시작했다. 이는 그저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인과 검도의 종지(宗旨)는 수련이 아닌 순간적인 깨우침에 있다. 해서 장시간 폐관 수련한답시고 처박혀 있어봤자 내력이나 좀 쌓일 뿐이지, 실력을 급상승시키는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해서 방칠소는 평소에도 이렇듯 종문의 수련실이 아닌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길었다. 천인합일에 오르고 시간이 지난 지금 그의 경지는 종현과 마찬가지로 무도종사를 지척에 앞둔 상태다. 한마디로 그 어느 때보다도 깨우침이 중요한 시점인 만큼, 그 깨우침을 구한다는 핑계로 맘껏 강호를 주유하는 중이었다. 해서 급히 검왕성으로 돌아갈 필요도 없던 차에 종현 일행이 서두르는 행동거지로 봐서 뭔가 재미난 일이 벌어질 듯한 예감이 들어 따라붙은 것이다.
이때 마을 객잔 입구는 용천영 및 경천회 소속 천인합일 공봉들에 의해 철통같이 지켜지고 있었다. 용천영이 돈 냄새를 맡고 움직이는 상인이라지만, 적어도 의리가 뭔지는 잘 알았다. 지난날 현연대사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경천회는 진즉 삼악도에 먹히고 말았을 터였다. 하물며 오늘날과 같은 휘황찬란한 모습은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게다가 무도종사도 아닌 용천영이 운영하는 경천회가 무도종사급 객경 및 공봉들을 영입하려다 어려움을 겪을 때, 현연대사가 나서서 해결해주었다. 이로 인해 동해 영역에서는 그 어떤 세력도 경천회를 건드리지 않았고, 지금의 규모까지 순조롭게 성장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경천회가 누리는 모든 영광에는 현연대사의 숨은 공로가 막대했다는 얘기다. 그런 현연대사가 원적을 앞둔 지금, 용천영은 그가 마지막 소원을 원만히 이루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 생각이었다.
이때 구경하려고 몰려와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인파를 가르며 종현과 명기가 총총히 나타났다. 진작 돌아간 줄만 알았던 종현이 다시 나타나자 중인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뭘 하려는 거지?’
‘저 흰옷 입은 화상도 대광명사 사람인가?’
사람들의 의문을 뒤로하며 명기가 용천영에게 다가갔다.
“소승은 대광명사 인과선당의 명기라고 하외다. 현연대사를 급히 뵙고자 하니 길을 열어주셨으면 합니다.”
하지만 용천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지금 대사께서는 무공을 전수하는 중이시오. 잠시 기다리셔야겠소이다.”
“바로 그 일 때문에 급히 대사님을 뵈려는 거외다. 강호에 더러운 악행만 일삼고 다니는 초휴라는 흉악한 자를 후계자로 삼으시다니요. 더욱이 그자는 우리 불문의 철천지원수이기도 하오. 그런 자에게 무공을 전수하시는 건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외다! 나를 들여보내 주시오. 내가 잘 설득하여 현연대사의 생각을 바꾸도록 할 터인즉!
그러나 용천영의 표정에는 가소롭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비록 현연대사의 은혜를 입은 몸이지만 그는 개인적으로 화상들에 대한 감정이 별로였다. 특히 불종의 양대 거두인 대광명사와 수보리선원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했다. 지난날 동해가 혼란과 살육으로 고통받던 때는 관심조차 안 보이더니, 이제 와 현연대사가 강호에 이름을 드높이자 슬쩍 숟가락을 얹어보겠다는 심보가 괘씸하지 않은가.
현연대사는 분명 그 외 화상들과는 구별되어야 할 고귀한 존재다. 용천영은 이 점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명확히 선을 그었다. 해서 단도직입적으로 명기에게 퇴짜를 놓았다.
“송구하오만 대사께서 이미 분부하셨소이다. 무공 전수 시 그 누구도 들이지 말라고 말이오. 게다가 초휴는 대사께서 친히 고르신 후계자이니, 대광명사나 수보리선원을 막론하고 일절 끼어들 자격이 없소!”
이에 명기의 낯빛이 차갑게 가라앉더니 냉랭히 콧방귀를 꼈다.
“흥! 현연대사의 일에 당신이 무슨 상관인가. 내가 직접 대사님과 얘기를 할 것이오!”
종현 앞에서는 선배나 사숙의 권위를 내세우며 위세 같은 걸 부린 적이 없는 온화한 그였다. 하지만 사실 그는 인과선당의 정예 제자로서 종문 차원의 특별한 육성을 받는 몸이다. 대광명사 전체로 봐도 절대 위상이 낮지 않은 그에 비해 용천영은 해외 일개 상회의 회주에 불과하다. 이처럼 화급을 다투는 때에, 평상시 같았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자와 길게 말을 섞을 이유가 있겠는가.
명기의 태도가 돌변한 걸 보자 용천영은 보란 듯이 더 크게 고개를 내저었다.
“송구하오만 거듭 말씀드리겠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요. 현연대사께서 분명 방해하지 말라 이르셨소. 내가 여기에 버티고 있는 한, 그 누구도 일절 객잔 안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소이다!”
“어리석은 자 같으니!”
명기가 다짜고짜 용천영을 향해 일장을 내지르자 더없이 찬란한 일곱 빛깔 불광이 터져 나왔다. 이에 용천영도 몸을 사리는 대신 전신의 강기를 한데 응축시키더니, 질풍노도를 방불케 할 엄청난 기세를 실어 일권(一拳)을 내질렀다. 명색이 세상의 갖은 풍파를 견뎌온 경천회 회주가 전투력이라곤 없이 허울뿐인 경지만 가졌을 리는 없는 것이다.
그는 맨주먹으로 경천회를 일구어냈다. 그 초기의 어렵던 시절에는 무수한 살육전과 쟁탈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해서 지금 그는 명기에 비해서도 전혀 손색없는 전투력을 내보이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용천영의 실력이 대광명사 무사와 자웅을 겨룰 정도로 막강하다는 건 아니다. 다만 명기의 경우가 좀 특수하다고 봐야 했다.
명기는 인과선당 비전무공인 위주로 수련해왔다. 이 무공은 인과 추산 및 심경 수련 쪽에 치중된 터라, 전투력 증강에는 약간의 도움이 있을 뿐이고 무도종사의 경지에 올라야 진정한 역량을 발휘하는 게 가능했다. 따라서 현재 명기의 경지가 턱없이 부족한 탓에 용천영과 비등한 실력으로 초접전을 벌이게 된 것이다.
명기가 아니고 금강원이나 달마원의 무승이 상대였다면 용천영은 맥도 못 추고 나가떨어졌을 터였다. 이렇듯 용천영을 금세 제압하지 못한 데다, 옆의 종현도 조각상처럼 우두커니 구경만 하는 통에 명기는 열불이 터져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쩌면 종현 저놈은 눈치라곤 개미 똥만큼도 없을까. 사숙이 승기를 못 잡고 쩔쩔매고 있으면 자신이 나서서 해결해야 할 게 아니냔 말이다. 더 망신 안 당하도록 도와달라고 소리쳐야 나설 참이란 말인가.
그러나 명기의 생각과는 달리 종현은 여차하면 출수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다만 명기가 아직 위험한 상태는 아닌지라 가만있는 것뿐이었다. 명기는 자신의 사숙이니 피를 토할 정도로 다치게 될 때는 응당 도와야 할 터였다. 하지만 지금처럼 흥미진진하게 팽팽한 공방을 주고받는 와중에, 특히 본인이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섣불리 끼어들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이 종현의 사고방식이었다.
이처럼 종현이 눈치 없이 굴자 결국 명기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종현! 보고 있지만 말고 나를 도와라!”
이 외침과 함께 주위 무사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사숙이 되어서 사질에게 도움을 요청하다니, 제 입으로 ‘나는 쓰레기’라고 말하는 격이 아닌가. 그것도 일개 상인을 상대로 대광명사 무사가 둘씩이나 달려들 생각을 한다고? 이건 너무 격이 떨어지는 행동이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지금 명기는 어떻게든 현연대사의 무공 전수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뿐인지라 이것저것 가릴 여유가 없었다. 종현도 사람들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반사적으로 출수에 들어갔다.
그가 한 발을 내딛기가 무섭게 용천영의 머리 위 하늘이 삽시간에 먹구름으로 뒤덮여서 거센 폭풍이 내습할 듯한 느낌이 가득하지 않은가. 곧이어 질식할 것 같은 짙디짙은 위압감이 그를 사정없이 옥죄어왔다.
용호방 이 위의 존재란 과연 이 정도로 엄청난 것인가. 용천영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두려움에 어찌할 줄 몰랐다. 이 정도 기세라면 무도종사와 별 차이가 없지 않은가. 아니, 그의 경험상 무도종사라고 해서 모두 이런 공포를 자아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건 단순한 명왕인 한 방에 불과했다. 하지만 세상천지 모든 게 그 한 방에 파괴되어 가루도 안 남을 기세였다. 용천영은 긴 심호흡과 함께 노호성을 내질렀다. 순간 무수한 천지 원기가 그의 복중(腹中)으로 빨려들더니 그의 강기와 융합되어 폭발하듯 일시에 터져 나왔다. 그러자 회오리바람처럼 거대한 대기의 소용돌이가 종현을 덮쳤다.
경탄천하(鯨呑天下)!
바야흐로 고래가 천하를 삼키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초식마저 종현 앞에서는 한 호흡도 못 버티고 무너졌다. 명왕인의 가격과 함께 눈 깜작할 새에 소용돌이가 파괴되고 강기가 소멸하자 용천영은 왈칵 피를 토하며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같은 천인합일 경지인 명기와 용천영이 박빙의 승부를 보인 것과 달리, 종현은 이 접전을 일 초식 만에 종결지었으니 숙질간 실력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 셈이었다. 용호방 준걸과 처음 겨뤄본 용천영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다른 준걸들은 차지하고라도 종현 이 자는 무도종사보다 더 두려운 괴물이 아닌가!
“다들 입구를 막아! 절대 저들이 대사님을 방해하게 해선 안 돼!”
용천영의 다급한 외침에 경천회 무사들이 객잔 입구를 향해 과감히 몸을 날렸다. 종현이 단번에 용천영에게 중상을 입힌 고수라지만 이들의 결단까지 막지는 못했다. 용천영이 영입한 객경, 공봉들은 실로 자질이 뛰어난 자들이었다. 하나같이 동해에서 한 이름 날리는 낭인 무사들로, 경천회에 초빙된 후 극진한 대우를 받으며 형제와도 같은 의리를 쌓아왔다. 지금같이 중요한 때라면 그동안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 각오가 되어있었다.
종현은 상대편 지원군의 대거 투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이런저런 변화를 주며 명왕인을 내질렀다. 이에 현장의 천인합일 무사 중 그 누구도 일 초식 이상을 막아내지 못하고 줄줄이 피를 토하며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그의 공세에는 일말의 자비가 깃들어 있었다. 상대가 피를 토할지언정 숨이 끊어지지는 않는 것으로 봐서 그가 치명상에 이르지 않도록 수위조절을 하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하위 실력의 천인합일은 명왕인 한 방에 뼈도 못 추리고 절명할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이때 객잔 안에서는 현연대사가 자신의 모든 힘과 무공을 초휴에게 완전히 넘겨준 상태였다. 관정(灌頂) 전승을 마치고서도 현연대사는 숨이 끊어지지 않았음은 물론, 외관상 큰 변화도 없었다. 하지만 초휴는 그의 숨결이 점차 사그라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생명이 다 되어가는 징후였다. 초휴가 다소곳이 몸을 일으키더니 그에게 큰절을 올렸다.
“대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것은 가식이라고는 일 점도 섞이지 않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감사 인사였다. 엄밀히 말해서 일신의 힘과 무공을 초휴에게 편취당하는 거나 다름없는데도 대사는 모든 정성을 다해서 그것들을 아낌없이 준 것이다. 대사가 힘겹게 손을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
“이로써 내 마지막 염원을 이루었네. 중원으로 돌아온 보람이 있었어. 훌훌 다 털고 갈 수 있게 되었으니 되레 내가 초 소협한테 고맙다고 해야겠지.”
초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람이 더러는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는 거다. 매사에 뭐든지 확실한 사실을 알아서 회한만 남길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때 초휴가 객잔 밖 상황을 감지하고는 말했다.
“대사님, 대광명사 사람들을 어찌하면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