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6)
위군의 풍속은 동제와 별 차이 없어서 남녀 간의 일은 어떤 경우이건 부모의 명과 중매인의 수고로 성사되었다. 적어도 통주부에서 저렇게 연극을 방불케 하는 길거리 구애를 본 적이 없었다. 그때 강호의 말단 무사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가 히죽대며 그의 혼잣말을 받았다.
“형씨는 이곳 산양부 출신이 아닌가 보지? 물론 우리 북연의 분위기가 개방적이긴 하나, 지금 저 상황은 구애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가 일방적으로 매달리는 거요. 그래서 늘 웃음거리가 되곤 하지.”
“나는 방금 이곳에 도착했소이다. 그런데 아가씨의 신분이 고귀해 보이는데, 저 사내가 마음에 안 드는가 보지요?”
초휴가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고 묻자 그 무사가 입을 삐죽대며 대답했다.
“고귀한 신분? 그렇고 그런 작은 가문에 불과하오. 저 여인은 산양부 임씨 가문의 정실소생 임심유라고 하지. 호사가들은 그녀를 산양부 최고의 미인으로 꼽기도 하지만 거기 가주는 응혈경 밖에 안 되는 별로 볼 것도 없는 집안이오. 되레 저 사내의 가문이 여기서 입김 꽤 센 세도가 집안이지. 유독 장백신(張百晨) 저자만 그저 대갓집 도령놀음이나 할 뿐, 가문에는 별 보탬도 안 되는 물건이오.”
“그래도 장씨 가문에 저런 모지리만 있는 건 아니고, 일찍이 강호 경험을 쌓고 칠종팔파 중 하나인 파산검파 문하로 들어간 큰아들이 사람됨도 진중한 게 쓸 만하지. 평소에 집에는 거의 안 오고 거의 서초의 촉(蜀)에서 머물며 수련에만 정진한다고 들었소.”
“일전에 장백신이 임심유에게 홀딱 반해 임씨 가문에 기별을 넣었다오. 임씨 가주는 장씨 가문의 득을 좀 보려고 받아들일 생각이었는데, 정작 임소저가 죽어도 장백신에게 시집 안 가겠다고 뻗대는 모양이더군. 그런데도 저 팔불출은 임소저를 못 잊고 어떻게든 환심을 사보려고 별별 짓을 다 하고 있으니, 매번 구경하는 사람들만 재미있는 거지 뭐.”
저런 모자란 놈에 대한 뒷담화를 계속 듣고 있자니 초휴는 흥이 식어 더 이상 볼 마음이 들지 않았다. 자기 가문에 힘이 없는 것도 아니건만, 청혼을 넣었다가 대놓고 퇴짜를 맞았으면 억지로 보쌈을 해오든지 아니면 포기하든지 양단간(兩端間)에 결정을 내려야 할 것 아닌가.
뜨뜻미지근하게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사람들의 비웃음이나 사고 있으니, 가문의 수치가 따로 없었다.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직시할 줄 모르는 바보들이 많구나. 초휴는 잠시 더 지켜보다가 완전히 흥미를 잃고 그곳을 떠나려 했다.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난 양, 시끌벅적 떠들어대는 군중에 둘러싸인 임심유는 수치심을 못 이겨 얼굴이 새빨개졌다. 임심유는 장백신 이 백치 같은 놈을 죽여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녀는 자기 외모에 자신만만한 나머지 콧대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자신 정도의 미모를 가지고 있다면 시집을 가더라도 이 무능하고 밥만 축내는 쓰레기가 아니라 명문 세가의 젊은 준걸에게 시집을 가고 싶었다.
다 같은 장씨 가문이라도 큰아들 장백도(張百濤)는 자그마치 칠종팔파 가운데 하나인 파산검파(巴山劍派)의 문하로 들어가 내문 제자가 되지 않았나. 그 정도 인물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장백신은 애당초 그녀가 고려하고 자시고 할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정작 장백신은 그런 눈치도 있는지 없는지, 갈수록 도를 더해가며 진드기처럼 달라붙으려 하지 않는가. 장씨 가문의 보복이 두려우니, 감히 함부로 대할 수도 없고, 그저 고육지책으로 최대한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을 자제하는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자기가 좋아하는 연지분이나 살 생각으로 시장에 나왔다가 이처럼 또 장백신과 얽히고 말았다.
구경꾼들이 갈수록 더 많이 몰려들고 있었으나 장백신은 창피한 기색도 없었다. 하지만 장백신과는 처지가 다른 임심유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어, 홧김에 이렇게 말해버리고 말았다.
“장백신! 제발 날 귀찮게 하지 말아요.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단 말이에요.”
그러자 장백신의 낯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게 누구란 말이오?”
임심유는 홧김에 되는대로 내뱉은 말이라, 뭐라 대답할지 말문이 막혔다. 그러다 문득 초휴가 자리를 뜨려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황급히 그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 사람이에요!”
그녀가 다급한 와중에 초휴를 지목한 이유는 간단했다. 이렇게 많은 군중들 가운데 그가 단연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이때 초휴는 선천의 경지에 올랐다는 사실은 숨긴 상태였지만 온몸에서 발산되는 예리하고 강렬한 기운은 감출 수 없었다. 게다가 표정이 다소 어두운 것만 빼면 용모도 단연 수려하고 깔끔하여 군계일학이라 칭할 만했다.
게다가 하필 온몸이 꼬질꼬질하고 세상 풍파에 찌든 얼굴을 한 말단 강호인의 옆에 있어서, 정갈하고 매끈한 검은 무사복 차림에 긴 칼을 찬 초휴는 매우 근사하게 보였다. 하지만 장백신이 아무리 머리가 안 돌아가도 그렇지, 지금 그녀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진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초휴에게로 집중되자 그와 얘기를 나눴던 말단 강호인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빈정댔다.
“알고 보니 형씨가 우리 산양부 최고의 미인과 그렇고 그런 사이였구먼. 그런데도 오늘 여기가 처음이라며 시치미를 떼셨군그래?”
이윽고 임심유가 향내를 솔솔 풍기며 다가오자 초휴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우리가 언제부터 아는 사이였소?”
그러자 그녀가 가련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듯 말했다.
“공자님, 저를 좀 도와주세요. 저를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는 초휴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짜고짜 그의 팔을 잡더니 장백신에게 말했다.
“장 공자, 저는 이렇게 마음에 둔 사람이 있으니 더 이상 성가시게 굴지 마세요. 당신은 체면에 별로 신경 쓰지 않을지 몰라도, 저와 저의 가문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자 장백신은 마치 나라를 잃은 사람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가 일편단심으로 임심유에게 구애해온 건 산양부 전체가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러다 보니 장씨 가문과 사이좋은 명문 세가의 자제들은 그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임심유를 건드리지 않고, 고이 내버려 둘 정도였다. 한낱 여인 때문에 장씨 가문과의 관계가 틀어지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어디서 굴러들어 왔는지도 모르는 돌이 박힌 돌을 빼내려 하고 있으니 속에서 울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장백신이 초휴에게 막 화풀이를 하려는 찰라, 초휴가 돌연 자신의 팔을 잡고 있던 임심유의 손을 뿌리치더니 ‘철썩’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 초휴의 행동이 너무도 갑작스러워서,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초휴에게 욕을 퍼부으려던 장백신마저 하려던 말을 잊고 침만 꿀꺽 삼켰다. 물론 그중에서 가장 당황한 임심유는 자신의 뺨을 손으로 가린 채, 땅바닥에 주저앉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초휴를 바라보았다.
초휴는 때린 손을 한번 매만지더니 담담히 말했다.
“나는 여인은 때리지 않소. 그러나 당신처럼 못돼먹은 마음을 가진 여인만은 예외요. 당신은 그저 바보 같은 장백신을 떼어낼 생각에 충동적으로 나를 방패막이로 삼았겠지. 당신은 그렇게 나를 쓰고 내버리면 그만이겠지만, 나는 그 때문에 이곳의 세도가인 장씨 가문의 표적이 될 거요. 그때 가서 당신이 나 몰라라 하면 내가 당할 곤경은 누가 막아준단 말이오?”
좌중의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모두 감탄했다. 이 낯선 젊은이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무서울 정도로 냉정하지 않는가. 다른 사람 같았으면 빼어난 미인이 제 발로 걸어와 달콤한 말로 애원하면, 그 짧은 시간 안에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었을 터. 되레 누가 말릴세라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흔쾌히 그녀의 방패막이를 자처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이런 놀음의 결말은 누구나 짐작하는 바와 같이 당연히 장백신의 노여움을 사고 더 나아가 장씨 가문의 보복까지 당하면서 슬픈 마무리로 끝나겠지만 말이다. 뒷배가 보통 든든한 경우가 아니거나 정말 바보 멍청이가 아닌 바에야, 이곳 사람도 아니면서 감히 산양부 세도가의 심기를 건드리는 짓을 누가 하려 할까.
다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임심유를 바라보던 눈빛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저 여인은 심보가 독사와도 같은 게 염치도 없구나. 방금 전 그녀의 행동이 미리 계산된 것인지 혹은 무심결에 나온 것인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 무고한 젊은이의 인생을 시궁창에 밀어 넣을 뻔한 건 분명했다.
임심유는 맞은 뺨을 가린 채, 원망스러운 눈으로 초휴를 노려보았다. 사실 방금 전 그녀는 그렇게까지 많은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그저 어떻게든 이 난감한 상황을 모면하고 싶어서 되는 대로 아무나 끌어들였던 것이니까. 나중에 그가 장씨 가문의 표적이 될지도 안될지는 그녀의 안중에 없었다.
그녀는 당장 장백신과 얼굴 붉히는 일만은 피하고, 가급적 마음 상하지 않게 그의 마음을 거절해야겠다는 생각만 앞섰던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따귀를 맞은 것도 모자라 앙큼한 속내까지 들키고 말았으니, 그녀는 부끄러운 나머지 초휴를 당장 죽여 버리고 싶었다. 이때 뒤에 있던 장백신이 배알도 없이 부랴부랴 뛰어나오더니 그녀를 부축해 일으키며 초휴에게 소리쳤다.
“감히 내 여자한테 손을 대! 정녕 죽고 싶은 것이냐?”
그 얼빠진 행동에 사람들은 일제히 말문이 막혔다. 지금 이 지경이 되서도 여전히 임심유를 싸고 돌다니, 일편단심 민들레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천성적으로 고지식한 얼간이라고 해야 할지 분간이 어려웠다.
장백신의 엄포는 말로 끝나지 않았다. 군중 틈에 있던 자기 하인들을 손짓으로 불러내어 초휴를 잡으라 명령했다. 장백신이 유독 사랑에 눈이 멀어 그렇지, 모든 면에서 모지리인 건 아니고 최소한의 눈치는 있었다. 눈앞의 이 낯선 자가 쉬체경인 자신의 실력으로 섣불리 건드릴 만한 상대는 아닌 것 같으니, 대신 하인들을 앞세워 손보게 하고 자기는 뒤에서 구경이나 하자는 심산이었다.
공격에 나선 하인들 가운데는 응혈경에 이른 사십 대의 무사도 있었다. 그는 장씨 가문의 문객으로 장백신의 호위를 맡은 자였다. 장씨 가문의 가주가 아들의 한심한 실력을 알고 특별히 그로 하여금 보호토록 한 것이었다. 그 응혈경 문객이 앞으로 걸어 나오며 초휴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젊은이, 미안하지만 우리 공자께서 자네를 잡아두라 하시니 나도 어쩔 수 없구려. 순순히 우리를 따라나서면 피차 수고도 덜고 좋지 않겠소?”
그러나 초휴는 냉소만 날릴 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런 태도에 응혈경 문객은 심기가 불편해지고 말았다. 사실 이 사건은 초휴에게 아무런 잘못도 없었다. 자기네 공자가 심하다면 심했지 초휴에게 잘못은 없었다. 그래서 상대가 고분고분하게 나오면 좋은 말로 구슬리고 이번 일 끝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젊은 놈이 시건방진 태도로 나오니, 그도 욱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초휴는 선천경의 힘을 숨기고 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응혈경 문객은 초휴의 외견만 보고 기껏해야 쉬체경이나 응혈경 정도이려니 짐작하고, 겁도 없이 그를 향해 한발 다가섰다. 그러고는 일단 무공을 폐하고 볼 작정으로 그의 단전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순간 초휴의 눈빛이 차갑게 번뜩이는가 싶더니, 주먹이 자신의 몸에 이르기도 전에 손을 한 바퀴 돌려 문객의 팔을 움켜잡았다. 근골의 맥문(脈門, 맥박을 짚는 곳)이 순식간에 상대의 손아귀에 들어오자 문객은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거미줄에 걸린 먹잇감처럼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잡힌 손을 빼낼 수 없었다.
드디어 대기자금나수의 위력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초휴가 손을 한번 뒤집어 당기자 강력한 힘을 발출했고 무사가 참담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팔뚝이 꽈배기처럼 뒤틀린 채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끝
ⓒ 봉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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