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65)
465화 풍불평의 근심거리
풍불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과연 멀쩡한 몸이군. 기혈도 강건하고 진기도 심후해. 튼튼하기가 교룡하고도 맞먹겠군그래. 그나저나 누굴 찾아왔는가?”
바로 이때 저 뒤편에서 여봉선이 걸어 나왔다. 생각지도 못하게 초휴를 발견한 그는 만면에 희색을 띠며 반겼다.
“초 형이 아닌가.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이에 풍불평이 흠칫 놀라 초휴에게 다시 눈길을 돌렸다.
“자네가 초휴인가?”
그는 여봉선과 막역지우 사이인 만큼, 당연히 초휴에 대해서도 잘 알았다. 게다가 용호방 십 위권 내에 낭인 출신이 드물다 보니, 초휴의 존재에 관심이 클 수밖에 없었다. 초휴는 정식으로 예를 갖춰 인사를 올렸다.
“맞습니다. 불쑥 찾아와 결례를 범했으니 양해해 주십시오.”
그리고 초휴는 여봉선에게 말했다.
“물론 좋은 일 때문에 자네를 찾아왔지. 그것도 보통 좋은 일이 아니라네.”
두 사람 간에 긴히 할 말이 있으리라 여긴 풍불평이 눈치껏 처신했다.
“들어가서 얘기들 나누게. 나는 지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니 신경 쓰지 말고.”
이에 둘이 후미진 곳 초막집 안으로 들어서자 여봉선이 실실 웃으며 농을 건넸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설마 관중형당을 물려받기라도 하는 거야? 그래서 날 장형관이라도 시켜주려고?”
“에이, 설마! 천하맹 진청제의 영입 제안도 뿌리친 자네한테 관중형당이 눈에나 차겠나? 나와 함께 기연을 찾으러 가세나. 마침 자네한테 안성맞춤인 무공이 있어. 아무래도 하늘이 자네를 위해 준비해둔 것 같다고 할 정도라서 말이지.”
“언제 갈 건데?”
여봉선이 대뜸 물었다. 그가 워낙 남을 잘 믿는 성격이긴 하나, 바보가 아닌 이상 사람에 따라서 그 믿는 정도는 달랐다. 초휴가 아닌 다른 이가 말을 꺼냈어도 거절은 안 했겠지만, 그게 무슨 기연이냐, 어느 정도 위험한 거냐, 어떻게 알게 된 거냐 등등 좀 더 상세히 캐물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초휴만은 예외였다. 그는 절대 자기를 해칠 사람이 아니니, 그저 언제 떠날 건지 물어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어차피 그의 성격상 자세히 캐묻지 않으리라 짐작했던 초휴도 굳이 이러쿵저러쿵 긴 설명은 하지 않았다.
“아직 여유는 있어. 한 달 후 고릉 동가에서 개산제를 열거야. 그때 동가 사람들을 따라 숲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네. 아 참, 여 형! 다친 건 좀 어때?”
여봉선이 온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여 보이며 말했다.
“풍 신의가 달리 신의겠어? 세월아 네월아 길게 잡고 요양해야 나을 것을 신의는 한 달 만에 뚝딱 치료를 끝내버리더라고.”
“응? 다 나았는데 왜 아직도 여기에 머무는 건가?”
“신의를 보호하기 위해서야. 근자에 그분한테 정신 사나울 일이 좀 생겼거든. 행패를 부리려는 놈이 있어서 내가 지켜드리는 중이지.”
“누가 감히 풍 신의를 건드려?”
강호에서 풍불평과 같이 의술이 고명한 의원, 또는 점술대사와 병기 제련사 등은 아무리 무력이 시원찮아도 건드리지 않는 게 상식처럼 되어있다. 이런 존재들이 무사한테 위해를 가할 일도 없는 데다, 언제 어디서 그들의 도움을 받게 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해서 대문파 제자들도 그들에게만은 공손히 대하는 걸 잊지 않았다. 평소 밉보였다가 정작 위급할 때 그들의 도움을 못 받으면 자기만 손해일 테니까.
여봉선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야 그렇지. 하지만 풍 신의의 성격을 자네도 봤잖은가. 사람을 구하긴 해도 태도가 뻣뻣하고 쌀쌀맞기 그지없지. 그래서 실컷 좋은 일 해 놓고서 미움을 사는 경우도 많더라고. 해서 풍 신의 덕에 병이 나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앙금이 남아 구명지은(救命之恩)은 깡그리 잊고 원한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는 말이지.”
풍 신의의 그 까칠한 성깔머리는 초휴도 방금 겪어서 알 만했다. 대뜸 뒤로 꺼지라고 호통치던 그 성격이 어디 가겠는가. 하긴 이것도 타고난 천성 탓이니 뭐라고 할 일도 못 되었다. 물론 재주가 고명한 사람들이 모두 그런 성격인 건 아니니 천성이 면죄부가 되기도 어려웠다. 예컨대 막야자는 괴팍스러운 면이 있긴 해도 밉보일 일을 만들기는커녕, 낙가도 감히 그를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넓은 인맥을 과시하고 있지 않은가.
순간,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여봉선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또 왔군.”
“누가?”
“그 행패 부리는 놈!”
“자네 실력으로 해결 못 할 일도 있어?”
초휴가 의아하여 물었다. 여봉선이 비록 아직 오기조원이기는 하나, 실제 실력에 있어 대부분의 천인합일은 너끈히 상대하고도 남았다. 그 행패를 부리는 자가 무도 종사 급이 아닌 바에야 여봉선도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라니, 대체 누구란 말인가.
“해결이야 할 수 있지. 다만 좀 만만찮은 구석이 있어서 그래.”
“강호 정상급 세력 출신이라도 되는 자야?”
“정상급 세력 축에는 못 들어도 낭인 출신 무도종사를 사부로 두었으니까. 게다가 저자는 그 사부가 가장 최근에 들인 제자란 말이지.”
여기까지 듣자 초휴는 뭐가 문제인지 알 듯했다. 상대가 정상급 세력 출신이라면 각 방면의 인맥이나 여러 방법을 통해 해결하기가 차라리 수월했다. 하지만 낭인 출신 무도종사의 제자라면 얘기가 다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대개 이런 경우 비빌 언덕 없는 자기 체면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제자를 무조건 싸고돌려고 하기 때문이다.
“상대하기 난감해도 풍 신의가 나를 두 번이나 구해줬으니 나 몰라라 할 수가 없더라고.”
여봉선이 마음이 급한 듯 밖으로 나서자 초휴도 그를 뒤따랐다. 이때 풍불평은 금이야 옥이야 정성껏 재배해온 약초들이 온통 짓밟혀 망가진 광경에 분을 못 이겨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 옆에는 서른 살 남짓의 비단 도포 차림 외강경 무사가 다들 들으랍시고 한껏 목청을 높여대는 중이었다.
“신의는 개뿔! 당신은 강호의 협잡꾼에 지나지 않아. 기껏 내 몸속 흐트러진 진기를 다듬어달라고 그리 큰 대가를 지불했건만 결국 어찌 됐지? 별 탈 없이 정상급 시절의 실력으로 되돌려 놓을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잖냔 말이다, 근데 이 망할 영감탱이가 치료도 안 될 암질(暗疾, 성병을 말함)까지 남겼잖아! 풍불평,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서 사인곡을 짓밟아 놓을 테다. 아예 의원 노릇 못하게 여기를 싹 다 불 싸질러 버릴까?”
풍불평이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러게 애당초 내가 뭐라 그랬소? 진기를 다듬고 한 달 내에는 여색을 가까이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잖냔 말일세, 자기 거시기 하나 통제를 못 해서 질펀하게 놀 땐 언제고 인제 와서 나를 원망하다니! 내가 눈이 삐었지. 당신 사부가 보내온 자금과 현삼(玄蔘)에 혹하여 꼬박 이틀을 치료해 주었건만, 되레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좋다, 좋아! 자금이고 현삼이고 죄다 도로 내어줄 테니 어서 갖고 썩 꺼지거라!”
하지만 그자는 콧방귀만 꼈다.
“도로 내놓으시겠다? 그럼 암질은 어쩔 건데? 내 몸을 아무 탈 없던 때로 완전히 돌려놓기 전까지는 일이 끝난 게 아니야!”
“네 이놈! 내 당부를 지키지 않은 건 네놈의 책임이 아니냐! 이미 진기의 교란으로 인해 네놈의 단전은 심하게 손상되었다. 신선이 와도 고치지 못할 일을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
풍불평이 참다못해 화를 퍼부었으나 그자는 태연하기만 했다.
“치료를 못 하겠으면 응당 다른 것으로라도 변상해야지. 풍불평, 당신이 강호의 신의라면서? 그럼 의전(醫典)을 내놓으면 되겠네. 내가 다른 의원더러 그걸 연구하게 해서 치료법을 만들어내면 될 거 아냐! 내 몸을 내가 고치겠다, 이 말이야!”
풍불평이 표정이 극도로 일그러졌다. 이제야 다른 사람들도 그자의 표적이 처음부터 풍불평의 의전이었음을 알아챘다. 강호 신의 수중의 의전이면 그 가치를 가늠하기가 어려울 터였다. 이는 무사로 치면 무공 비급과도 같은 존재이거늘, 어찌 그런 귀하디귀한 것을 함부로 내어줄 수 있겠는가. 이 자는 참으로 교묘한 수법으로 풍불평을 옥죄어 의전을 갈취할 심산인 것이다.
대기 중인 환자 중에는 자신이 나서서 이 사태를 진정시켜보려는 자들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시간이 지체되면 결국 손해 보는 건 진료가 늦어질 그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나설 기미를 보이자마자 다른 이들이 막아섰다. 그리고 그자의 신분에 대해 상세히 들려주었다.
그자는 다름 아닌 서초의 쟁쟁한 낭인 출신 고수인 ‘표혈신도(飄血神刀)’ 교연동(喬蓮東)의 막내 제자, 주백이(周百易)라고 했다. 교연동은 원래 자기 제자 감싸기로 유명한 팔불출이었다. 일찍이 자기 제자가 용호산 천사부 측과 갈등을 빚었을 때도 직접 따지러 행차했을 정도였다. 상황이 이럴진대 지금 상황에서 풍불평을 편 들고 나선다면 그들이 상대해야 할 자는 주백이가 아닌 그 뒤의 무도종사 교연동이 될 게 뻔했다.
주백이는 먹잇감을 앞에 둔 승냥이 같은 눈빛으로 풍불평을 노려보고 있었다. 자기 뜻대로 풍불평이 굴복할 거라고 확신하는 눈치였다. 이 서초 땅에 풍불평을 도울 자는 거의 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질머리가 고약해서 기껏 치료해 주고도 욕먹는 경우가 허다한 풍불평이 아닌가. 해서 진심으로 그에게 은혜를 갚고자 하는 이는 드물었다.
그나마 도우려 했던 낭인 무사들마저 주백이의 뒷배에 대해 듣고는 감히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대문파 제자들도 풍불평으로 인해 교연동과 낯 붉힐 일을 만들고 싶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누가 뭐래도 교연동은 작금의 서초 무림에서 일인자로 군림하는 존재인 데 반해, 풍불평은 결국 일개 의원이었다. 더욱이 강호에 신의가 풍불평 혼자만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여러모로 풍불평을 위해 무도종사의 눈 밖에 나는 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이었다.
이때 여봉선이 인파를 헤치며 나타났다.
“주백이, 작작 좀 하시구려. 풍 신의님이 아니었다면 당신은 지금 암질이 문제가 아니라, 두 다리 멀쩡히 걸어 다니지도 못하고 있을 거요. 자금과 현삼도 돌려주겠노라 하시는 판에 뭘 더 어쩌자는 거요?”
“흥! ‘소온후’ 여봉선? 용호방 십 위 안에 드셨다지? 위풍당당하고 전도유망한 그대에게 충고 하나 하지. 이 일에 끼어들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자칫하면 뜨거운 꼴을 당하는 수가 있다는 말이야!”
주백이가 냉소와 함께 으름장을 놓았다. 워낙 은원이 분명한 여봉선이 줄곧 풍불평의 곁을 지키고 있다는 걸 주백이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그래 봐야 여봉선은 뒷배 하나 없는 낭인, 그것도 북연 취의장에 쫓기는 꼴이지 않은가. 주백이에게 있어서 여봉선은 신경 쓸 가치도 없었다.
주백이의 거친 언사는 여봉선을 분노케 했다. 평소 늘 온화한 모습만 보여온 그였지만, 사실 여봉선도 천성적으로 선하기만 한 인물은 아니었다. 취의장의 추살에 쫓길 때도 여봉선이 단연 손에 피를 많이 묻혔었다. 갈등이 생기면 일단은 좋게 말로 해결해보려고는 하지만, 도저히 상대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이 떨어지면 가차 없이 방천화극을 휘두르는 게 그의 본모습인 것이다.
이번 일은 누가 봐도 말로 좋게 해결될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주백이의 신분이 여봉선의 출수를 막고 있었다. 여봉선 혼자만의 문제라면 진작 주백이를 동강 내고 끝내버렸을 테지만, 이 자리에 풍불평이 있다는 게 문제였다. 만약 여기서 주백이를 죽일 경우, 풍불평도 연루되어 큰 화를 입을지 모르지 않는가. 이런 까닭에 여봉선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속만 끓이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