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7)
“선천경이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경악하며 소리쳤다. 한 수만에 응혈경의 무사를 저 꼴로 만들었으니, 눈앞의 저 청년은 의심할 여지 없이 선천경에 이른 자가 분명했다. 강호에 선천경 무사가 드문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젊은 나이에 선천의 경지에 이른 걸 보면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닌 게 분명했다. 속한 문파도 없이 개별적으로 수련해서는 선천경의 경지에 오르지 못하는 것을 감안할 때, 저자는 분명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가 분명했다.
이때 누구보다도 놀란 건 장백신이었다. 그는 고통을 못 이겨 바닥에서 비명을 질러대는 문객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다짜고짜 임심유의 손을 잡더니 냅다 도망치고 말았다. 그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끌끌 혀를 찼다. 이처럼 급박한 와중에도 자신의 사람을 돌보기는커녕, 여자 챙기기에만 급급한 그의 꼬락서니가 너무도 한심했다. 장씨 가문의 입장에서 그나마 다행인 건, 큰아들이 든든한 기둥 노릇을 하고 있으니 장차 작은아들인 장백신이 가문을 이을 일은 없을 거라는 점이었다.
방금 전 초휴와 잡담을 나누던 말단 무사가 그의 곁에 바짝 붙어 낮은 소리로 말했다.
“형씨의 실력이 명실상부한 선천경인 건 분명하군. 그러나 이곳 산양부에서 홀로 장씨 가문에 맞서서 좋을 건 없으니 빨리 떠나시오.”
“걱정해주는 건 고마우나 여기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어찌 떠날 수 있겠소?”
초휴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런데 장씨 가문이 언급되자 그는 뭔가에 생각이 미친 듯 아직도 바닥에서 신음하고 있는 문객에게 다가가 툭툭 치며 말을 걸었다.
“어이, 형씨. 그만 일어나지 그래? 팔 하나 부러졌다고 죽진 않아.”
그러자 문객이 차라리 우는 게 나아 보일 정도로 흉하게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공자가 대단한 분인 걸 몰라보고 이놈이 함부로 대했으니 그저 목숨만 살려주시오.”
그는 장씨 가문의 문객에 불과할 뿐인 사람이었다. 그러니 굳이 장씨 가문을 위한답시고 목숨까지 걸어가며 젊은 선천경 고수와 척을 질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 깔끔하게 투항하는 게 상책이었다.
“당신 눈에는 내가 살인을 즐기는 사람처럼 보이오? 죽일 생각 없으니 안심하시오. 대신 날 장씨 가문에 데리고 가줘야겠소.”
문객은 어이가 없어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지금 이런 상황을 만들고서는 제 발로 장씨 가문을 찾아가겠다고? 그게 기름통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들겠다는 소리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 지금쯤 장백신이 구원을 요청하러 본가에 도착해 있을 게 분명할 텐데.
“내 말 듣고 있소?”
초휴가 살벌한 표정을 짓자 문객은 기를 쓰며 몸을 일으켰다.
“알겠소. 내가 모시겠소.”
사람들은 초휴가 제 발로 문객을 따라나서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렇게 대놓고 자기 죽을 자리를 찾는 사람도 흔치 않으리라.
장씨 감문의 가주 장송령(張松齡)은 십 년 전 이미 선천경에 들어선 데다, 문중에 실력이 쓸 만한 방계 친족과 무공을 할 줄 아는 하인 수만도 백여 명에 이르렀다. 저 젊은이의 실력이 아무리 강해도 이곳 산양부의 세도가에게 대놓고 도전장을 내밀러 가는 건 무모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그 무렵 장백신은 임심유를 집에 데려다주고 서둘러 자기 집으로 향했다. 마침 정원에서 새 모이를 주고 있던 장송령은 허둥지둥 대문을 들어서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기분이 언짢아졌다.
“어디다 정신을 놓고 다니는 게야? 그 나이 먹도록 제 형을 본받기는커녕 촐싹대고 싸돌아다니기만 하는구나. 좀 점잖게 처신하지 못하겠느냐?”
장씨 가문의 가주로서 장송령은 윤택한 생활을 누리는 편이었다. 산양부를 호령하는 몇몇 실세들 가운데 장씨 가문이 그리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위상을 누리고 있는 것은 온전히 그의 아들 덕분이었다.
비록 장백신은 모지리 중에서도 궤를 달리하는 상모지리일지 몰라도, 그의 형인 장백도는 파산검파의 내문 제자가 되어 장씨 가문에 크나큰 영광을 안겨주었다. 이에 산양부의 세력가들이 모일 때마다 다들 장씨 가문의 큰아들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이에 장송령은 큰아들만으로도 충분히 흡족해서, 작은아들이 모자란 것에 대해선 별로 개의치 않았다. 어쨌거나 아우가 형을 제치고 가주 자리를 승계할 일은 결코 없을 테니 말이다. 장송령은 장백신이 대형사고만 치지 않으면 대충 눈감아주고 넘어갔다. 장백신은 부친의 질책에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고자질을 했다.
“아버지, 좀 전에 점잖게 굴려다가 어떤 놈한테 맞아 죽을 뻔했다고요!”
“아니, 누가 산양부에서 너한테 손을 대? 한위(韓威)더러 너를 보호하라고 했거늘, 대체 어느 놈이야?”
“선천경 무사였어요. 한위도 그놈한테 팔을 잃었어요!”
“선천경 무사? 외지에서 온 놈이더냐?”
장송령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산양부 내에서 선천경의 경지에 오른 자라면 장백신도 눈여겨봤을 것이니 잘 알 것이다. 때문에, 장백신이 그들에게 먼저 대들었을 리는 없다. 게다가 그자가 산양부 사람이라면 장씨 가문의 위신을 세워주기 위해서라도 장백신을 난처하게 했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외지인이 분명했다.
“맞아요. 처음 보는 놈이었어요.”
“걱정하지 마라. 아무리 선천경이라 해도 외지 놈 혼자서 산양부를 휘저어 놓지는 못할 게다.”
장송령은 이 일이 누구의 잘못에서 비롯된 건지 시시비비를 가릴 생각이 없었다. 산양부에서 장씨 가문의 위상을 감안할 때, 설사 장백신이 잘못했기로서니 과연 장송령이 자신의 아들에게 벌을 주고 상대방에게 사과할 필요가 있을까? 바로 그때 대문 밖에서 비아냥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주께서는 참으로 위풍당당하십니다. 보아하니 이곳 산양부에서는 장씨 일가가 손바닥으로 해도 가릴 수 있는 모양이군요.”
초휴가 한위를 앞세우고 정원으로 들어서자 장백신은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고는 초휴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아버지, 바로 저자에요. 좀 전에 저자가 소자를 죽이려 하고 한위의 팔을 부러뜨렸습니다.”
장송령은 초휴가 너무 젊어 보이자 순간 당황했지만 그런 내색 없이 차갑게 말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우리 가문 사람을 건드린 것도 모자라 제 발로 여기까지 찾아오다니,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로군.”
그러자 초휴가 한위를 힐끗 한번 쳐다보더니 대꾸했다.
“그저 팔 한 짝이 부러졌을 뿐이고 접골을 하면 금방 나을 거요. 저와 아드님 간의 일은 가주께서 직접 아드님에게 물어보시면 될 일이오. 오늘 저는 거래를 논의하고자 가주님을 찾아온 겁니다. 규모가 은자 수십만 냥에 달하는 큰 거래이지요. 이렇게 수익이 큰 거래보다 아드님의 체면 세우는 게 더 중요합니까? 그럼 저도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초휴의 말에 장송령은 멈칫했다. 산양부에서 장씨 가문이 작은 가문은 아니지만, 객관적으로 가문의 세력만 놓고 볼 때, 지난날 초씨 가문보다 조금 센 정도에 불과했다. 따라서 수십만 냥의 은자가 걸린 거래라면 예사로운 게 아니었다. 장송령은 한동안 초휴를 눈여겨보다가 입을 열었다.
“들어가서 얘기나 들어봅시다.”
초휴와 장송령이 접견실에 마주 앉았다. 장백신은 이 상황이 못마땅한 표정이 역력했다.
‘방금 전까지 살기등등했던 사람들끼리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어떻게 금세 한자리에 앉아 거래 같은 걸 한단 말인가.’
속에 열불이 난 장백신은 참다못해 뭐라고 볼멘소리를 꺼내려다가 장송령의 눈짓 한 번에 말을 삼켰다. 장송령이 초휴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우리 사람을 건드린 지 얼마나 되었다고, 거래를 원한다 하니. 당최 속내를 모르겠군. 그래 도대체 어떤 거래요?”
“며칠 후면 일 년에 한 번씩 열리는 비전함 경매 대회가 임중군에서 열릴 텐데, 그것들 가운데 몇 가지가 꼭 필요하오. 그러나 나는 임중군 사람이 아니니, 무턱대고 경매에 참가했다가 만약 누군가와 가격을 놓고 경쟁이라도 붙게 되면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될 거요. 어쩌면 원하는 물건을 놓치게 될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산양부의 세력가인 장씨 가문이 나선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요. 귀댁이 나 대신 경매에 나서준다면 일이 끝난 후 사례는 섭섭지 않게 하리다.”
초휴는 열 냥은 되어 보이는 큼직한 자금(紫金) 덩어리를 탁자에 올려놓았다. 그 정도 자금을 백은으로 바꾸면 족히 십만 냥은 되고도 남을 값어치였다.
“이건 계약금이오.”
초휴는 장백신의 패거리와 맞붙었던 순간, 장씨 가문을 내세워 경매에 참가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방금 그가 한 말은 분명히 일리가 있었다. 임중군에서 일 년에 한 번씩 꼬박꼬박 경매가 열리는 것을 감안할 때, 그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일 수밖에 없었다. 본디 경매는 참가자들의 재력과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그런 만큼, 초휴 같은 타지 사람이 수십만 냥이나 내어놓으면 당장 경매장에서 으스댈만할진 몰라도, 남들의 시선을 끌어 안 좋은 결과를 낳게 될 수도 있었다.
재력 문제라면 초휴는 두려울 게 없었다. 어차피 가져온 은자는 아낌없이 써버릴 각오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경매에서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져 자신의 발목을 잡을까 염려될 뿐이었다. 초휴가 아는 바로는 이렇게 수십 개에 달하는 강호세력이 조직한 경매의 경우, 진행 과정이 공정하거나 깨끗하지 않았다. 따라서 타지사람이 어설프게 경매에 덤벼들었다가는 몸도 상하고 돈도 날리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초휴는 장송령의 얼굴을 쳐다보았으나 그 속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장송령 역시 초휴가 내놓은 자금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눈앞에 앉은 이 자가 임중군의 경매에 참가하고자 한다는 것은, 곧 그자의 가문이 든든한 뒷배가 되어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번 경매는 임중군 전역의 수십 개 세력이 참가하는 행사이다. 하나같이 이력 추적이 가능한 비전함만 경매에 나오는 만큼, 그 가격이 최저 수천 냥 최대 수만 냥에 이르기도 하는 터라, 경제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참가는 꿈도 꿀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초휴가 내놓은 자금, 그 자체였다. 이 ‘자금’이라는 물건은 일부 세력가들이 비상용으로 보관하고 있을 뿐, 평범한 강호 무사가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젊은 나이에 이만한 자금을 내놓을 능력이 있다는 것은 곧 그가 그럴 만한 신분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장송령은 초휴의 정체를 좀처럼 가늠할 수가 없었다. 한동안 정적이 흐른 후, 초휴가 침묵을 깼다.
“가주님, 생각은 해보셨습니까? 일이 끝난 후 수고비 명목으로 가주님께 이십 냥의 자금을 더 드리기로 하지요. 가주님은 그저 경매장에서 말만 몇 마디 해주시면 됩니다.”
“좋소. 이번 거래를 받아들이리다. 그런데 공자의 존함이 어찌 되는지 물어도 되겠소?”
장송령이 이렇게 답하자, 초휴는 아까 꺼내둔 자금을 그의 앞으로 밀어주며 웃었다.
“그야 당연하지요. 저는 임엽(林燁)이라고 합니다. 지금 산양부의 열래객잔에 묵고 있으니 경매가 시작되면 다시 오겠습니다.”
말을 마치자 초휴는 성큼 그곳을 나섰다. 영문도 모르고 살해당해 허무하게 전생을 마쳤기에 전생에 대한 좋은 기억은 없었다. 하지만 장송령을 속일 가명을 급하게 만들려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전생의 이름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장송령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임중군에서 임엽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결국 그가 외지인이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초휴가 떠나기만을 기다린 장백신이 황급히 따지듯 물었다.
“아버지, 어째서 그런 자와 손잡으셨어요? 제가 당한 망신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직 네게 물어보질 않았구나. 너는 저 임엽이라는 자와 어쩌다 싸우게 된 게냐?”
장백신이 우물대며 뭐라고 말을 하려 하자 장송령이 그의 말을 막았다.
“됐다. 네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야 하나같이 거짓말일 게 뻔하지.”
끝
ⓒ 봉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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