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76)
476화 마신이 잠들어 있는 곳
솔직히 말해서 초휴의 짙은 살성은 염적소마저도 놀라게 했다.
‘젊은 나이에 저토록 강한 살성을 가졌다니!’
이는 그와 그의 동료들에 비해서도 전혀 손색이 없는 수준이 아닌가. 그 옛날 무소불위의 마력을 휘둘렸던 여온후도 사실 마도라고 못 박을 만큼 마성이 짙었던 건 아니었다. 차라리 ‘사악했다’라는 표현이 좀 더 적절하다고 할까.
어쨌든 그들은 여온후를 따른 뒤로 정도건 마도건 가리지 않고 무수히 많은 이들에게 죄를 지어왔다. 오죽했으면 정마(正魔) 양측은 물론, 민간과 황실까지 가세해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을까. 당시 그들은 자신들이 대체 얼마나 죽였는지조차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횡포가 극에 달했었다. 여온후의 유명세도 이를 계기로 나날이 더해 갔고, 결국 온 세상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 것이다.
지금 초휴는 뼛속 깊이 살성에 젖어있었다. 그 옛날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정작 초휴의 눈빛은 흉악한 면이라고 없이 무심하고 무덤덤하기만 했다. 바로 그랬기 때문에 그 눈빛은 더욱 섬찟하게 느껴졌다. 지금 초휴의 눈에 올바름과 사악함, 그리고 옳고 그름을 구분할 잣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죽일 수 있는 것과 죽일 수 없는 것의 구분만 있을 뿐이다. 감정 하나 실리지 않은 영혼 없는 눈빛으로 아무렇지 않게 인명을 살상하는 지금 상태의 그는 살인을 낙으로 삼는 대마두보다 더 공포스러웠다.
대마두들이 살인을 낙으로 삼는다 해도, 적어도 그들은 자기가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있기 마련이다. 반면 초휴는 어떤가. 지금 망아살경에 빠진 그에게 있어 살인이란 일종의 수단이요,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동상평의 통솔마저 잃은 지금, 동가 무사들은 바람 앞의 종이 인형처럼 속절없이 쓰러져갈 뿐이었다.
이렇게 반 각이나 지났을까. 어느덧 그들은 추풍낙엽처럼 바닥에 즐비하게 쓰러져 있었다. 그중에서 형태가 온전한 시신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 보는 이를 더 소름 끼치게 했다. 이때 낭인 무사들은 너나없이 공황상태에 빠져 있었다. 제아무리 도망치려 해도 염적소가 조종하는 거대한 사슬 두 줄기가 불길을 토해내며 사방을 봉쇄한 탓에, 그들의 실력으로는 애당초 빠져나갈 방도가 없었다.
시뻘겋게 물든 초휴의 두 눈이 이제는 그들을 향하고 있었다. 마지막 뒷정리만 남은 것이다. 이제 곧 자신들에게 닥쳐들 비극에 생존자들은 이성을 잃고 사정하며 매달리기 시작했다.
“초 대인, 우리를 보내주시오. 우리도 어쩔 수 없이 가세할 수밖에 없었음을 대인도 잘 아시지 않소. 맹세컨대, 오늘 일은 절대로 발설하지 않으리다. 평생 입 벙끗 안 할 거요!”
초휴가 그들을 힐긋 보더니 수중의 장도를 거둬들였다. 그 모습에 다들 한숨 돌린 것도 잠시! 초휴는 이내 망아살권을 내질렀다.
원래 비밀이라는 게 말하기는 쉬워도 지키기는 어려운 법이다. 심지어 말 못 하는 벙어리라 해도 비밀을 지켜주리라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비밀을 끝까지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죽은 자뿐이라고 초휴는 믿어 의심치 않아 왔다. 저 무사들이 동가 편을 드는 대신 중립을 지켰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초휴는 혹시나 있을 화근을 제거하기 위해 그들을 모두 죽였을 테니까.
사실 이 모든 걸 목격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으니 바로 염적소였다. 하지만 그는 현재 ‘사람’으로 칠 수 없는지라, 차후에 무슨 말을 지껄이건 간에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터였다. 결국 초휴는 망아살권으로 남은 무사들을 한 명도 남기지 않고 죄다 없애버렸다. 이로써 일각도 지나지 않아 궁전은 시신의 살점과 선혈로 덮여버렸다. 생존자가 한 명도 없음을 확인한 초휴는 그제야 망아살경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별로 힘을 소모한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염적소는 그런 초휴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물론 화염을 내뿜는 해골의 두 구멍에서 눈빛 같은 게 보일 리는 만무했다. 초휴가 상고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여온후는 필시 그에게 대단한 흥미를 느꼈을 것이다. 어쩌면 휘하의 기존 대장군 네 명에 더해 한 명이 추가되었을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말없이 자기를 바라보는 염적소에게 초휴가 말을 걸었다.
“자, 이제 당신 차례야. 내가 당신 뼈다귀를 죄다 분질러 놓을 수 있을지, 아니면 당신이 먼저 날 죽일 수 있을지 한번 해보자고.”
“싸우지 않겠다. 가거라.”
염적소가 말과 함께 정신없이 요동치던 쇠사슬을 내려놓았다.
“싸우지 않겠다고?”
“그렇다. 이 봉인된 땅에 갇힌 이후로 너처럼 강한 젊은이는 처음 보는구나. 그러나 내가 보기에 너는 온후 대인의 환생에 최적화된 몸이 아니다. 너와 싸워서 진만 빼느니, 차라리 몇 놈이라도 더 죽여 기혈을 모으는 게 낫겠다.”
염적소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지금 이 분묘에 들어와 있는 자들이 한둘이 아닌데 굳이 초휴 하나를 붙들고 늘어져서 사생결단을 내봤자 무슨 이득이 남겠는가. 전혀 수지맞는 장사가 아닌 것이다. 어차피 초휴를 죽일 자신이 없을 바에야 빨리 보내주고 다른 이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죽여서 기혈을 빼앗으면 그만이다.
초휴의 눈썹이 한번 꿈틀하더니 못 이기는 척 그곳을 나섰다. 염적소가 그를 죽일 자신이 없듯이, 그 역시 염적소를 끝장낼 자신이 없던지라 피차 잘된 일이었다. 만년이나 이곳에 갇혀 지내는 동안 염적소의 실력은 이미 무도종사 아래까지 미끄러진 상태였다. 해서 단순히 실력만 논할 것 같으면 초휴는 그가 전혀 두렵지 않았다.
다만 그의 골격이 신병에 버금갈 강도로 강하게 단련되어 있다는 게 문제였다. 초휴의 실력으로는 불가 무공으로 잠시 그를 묶어둘 수 있을 뿐, 치명타를 입히기는 어려울 터였다. 공연히 골치 아픈 상대에게 발이 묶여 시간을 허비하느니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 여온후의 전승물을 찾는 게 상책이었다.
초휴가 사라진 지 얼마 안 있어 대전에 흑수가 밀려들며 수무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사방에 널린 시신들을 둘러보더니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자네 이거 너무한 거 아냐?”
“내가 한 게 아니야.”
염적소가 고개를 저어 부인하더니 여기서 벌어진 일을 쭉 설명해주었다. 이에 수무상이 기함을 쳤다.
“또 그 자식이야? 이번에 들어온 젊은것 중 제일 골치 아픈 놈이로세. 아예 확실히 숨통을 끊어버리지 그랬어? 자칫 온후 대인의 부활계획을 망쳐놓으면 어쩌냔 말이네. 그럼 우리 모두 망하는 거잖아.”
“젠장, 내가 놈을 죽이기 싫어서 보내준 줄 알아! 당신도 알다시피 내 육신이 이미 소멸했는데 무슨 수로 죽여? 차라리 기운을 아껴서 다른 놈들을 죽이고 기혈이나 모으는 게 낫지.”
이에 수무상이 고개를 저었다.
“됐어. 이일은 잠시 접어 두자고. 좀 있으면 진단경 무사 셋이 온후 대인의 뼈가 묻힌 곳에 당도할 거야. 일단 현구유(玄九幽)와 손잡고 그놈들을 해치워야겠어. 대인의 뼈가 묻힌 곳에서라면 현구유가 ‘무쌍(無雙)’에 남아있는 대인의 기운을 빌려 놈들을 죽일 수 있을 테니까. 놈들의 기혈을 흡수하면 아마 대인의 부활에 필요할 기혈이 얼추 다 모일 걸세.”
“잠깐! 먼저 이 시신들을 시구령에게 갖다 줘서 기혈을 응축시키게 해.”
염적소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시신의 잔해들을 가리키자 수무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에이, 거 참. 보면 볼수록 참혹하군그래.”
“내가 죽인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그놈 손속이 워낙 악랄해서 이 꼴이 난 걸, 날 탓하면 뭐 할 건데. 암튼 기혈을 응축하는데 시신이건 시신의 쪼가리건 뭔 차이가 있겠어?”
수무상은 여전히 못마땅한 듯했으나 그래도 순순히 흑수로 변해 시신의 잔해들을 품고 사라졌다.
이 무렵 분묘 내 모처의 어느 궁전에 동제곤을 비롯한 무도종사 세 명과 무사 수십 명이 모여 있었다.
그러나 그곳의 분위기는 말을 꺼내기도 어려울 정도로 가라앉아 있었다. 궁전의 대전은 죄다 투박진 청동 주조물로 조성되었고, 바닥에는 부적문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는 게 궁전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비루한 모습이었다.
그 큰 궁전에 제대로 된 장식이라고 할 만한 요소가 전혀 없었다. 그저 한가운데 거대한 청동관 하나가 눌러져 있고, 관 뚜껑에는 못 대신 장검 서른여섯 자루가 박혀있는 게 전부였다.
마치 관 속에서 무언가 나올까 봐 단단히 막은 듯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이런 조치가 무색할 정도로 관 속에서는 연신 흑무(黑霧)가 흘러나오고 있어 더없이 음산하고 섬찟했다.
동제곤 등은 명색이 무도종사로서 다른 무사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견식이 풍부했다. 그 남다른 견식에 의하면 저 서른여섯 자루의 장검은 진무교의 지보(至寶)인 ‘진무주사검(眞武誅邪劍)’이 분명했다.
진무주사검은 보병과 신병 사이의 존재다. 본연의 재질과 위력은 엄연히 보병이지만, 이는 진무교의 무도종사들이 심혈을 기울여 제련해낸 것인지라 사악한 마기를 말살하는 데 있어 더러는 신병에 버금갈 위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심혈을 쏟아가며 보병을 만든다는 건, 그 작업을 하는 무사에게 필연적으로 적잖은 타격이 가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해서 요즘 진무교에서는 진무주사검을 제련하겠다고 흔쾌히 나서는 자들이 드물었다. 그런 귀하디귀한 검이 무려 서른여섯 자루나 관에 박혀있다니, 대체 저 관 속에 얼마나 극악한 존재가 갇혀있다는 말인가.
이 청동관 외에 거대한 방천화극도 한 자루 걸려 있는 게 보였다. 창신 전체가 온통 칠흑처럼 검고 생김새도 흉악한 것이, 표면에는 사나운 흑룡까지 조각되어 있었다. 비록 둥글게 굽은 창날만은 은백색일지라도, 창날 끝이 핏빛을 띠고 있는 모습이 사람의 피 맛을 보고 난 직후를 연상케 했다. 방천화극 전체에서 발하는 사납고 흉흉한 기운이 한층 더 섬찟함을 배가시켰음은 물론이다. 이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한낱 병기가 아니라 꿈틀대는 한 마리 흉수에 가까운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방천화극을 허공에 걸어둔 건 무슨 사슬이나 밧줄이 아닌 불가의 염주였다. 염주 알마다 범문(梵文)이 잔뜩 새겨져 있었는데, 거기서 발산되는 불광이 방천화극의 사악한 기운을 억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듯 보였다. 백팔 개에 달하는 염주 알 중에서 열 알은 이미 훼손되어 범문도 거의 지워지다시피 한 상태였으니까.
과연 이것이 무엇을 암시하는지, 또 이 거대한 분묘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상고시대의 그 유명한 마신 여온후가 아니면 누구겠는가!
뜻밖의 발견에 이들은 전율을 금치 못했다. 아니, 전율을 넘어서 감동을 느낄 정도였다. 이곳이 정확히 뭘 하기 위한 곳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전설 속 존재인 여온후와 함께 보관한 물건이라면 하나같이 지보(至寶)가 아니겠는가!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관에 박힌 진무주사검 서른여섯 자루만 가져도 엄청난 수확일 터였다. 비록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본연의 위력이 적잖이 반감되었을지라도 왕년의 그 막강하던 힘이 완전히 사라졌을 리는 없지 않은가. 물론 제일 진귀한 건 지난날 여온후가 지니고 다녔던 신병급 존재 ‘무쌍’이라는 이름의 방천화극인 것이다. 이야말로 지보중의 지보라 할 만했다.
동제곤 등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하나같이 진의를 파악하기 어려운 눈빛들이었다. 개산제 규칙에 따르면 보물은 찾는 사람이 임자라고 되어있다. 정히 가져가기 어려우면 동가에 양보하는 게 미덕이었다. 그간 동가가 행해온 개산 작업에서 발견된 것이라곤 대부분 광물 종류에 불과했고 유적지는 극히 드물었다. 그나마 발견된 유적일지라도 외부인들이 가져가기에 한계가 있어서 대부분 동가 측에 귀속되었던 터라 동가로서는 애석할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달랐다. 자그마치 마신 여온후가 봉인되어 잠든 곳이라니! 눈에 보이는 족족 보물이 뻔한 것들인데, 이것들이 남의 손에 넘어가는 걸 어찌 방관할 수 있겠는가. 나머지 두 객원 무도종사의 속내도 동제곤과 다를 바 없었다.
이번 작업이 동가 개산제의 일환인 건 맞지만, 엄연히 그들도 이를 도우러 왔다. 게다가 자기들이 두 명인 데 반해 동가 측은 무도종사가 고작 한 명이다. 그렇다면 자기들이 더 많이 챙겨야 공평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