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78)
478화 영백록의 마음
하지만 여온후의 전승물은 원래부터 여봉선의 것으로 운명 지어졌다. 무쌍을 가장 잘 다룰 사람도 바로 여봉선인 것이다. 초휴가 억지로 차지한들, 그의 능력으로 무쌍 본연의 성능을 최대한 끌어내기는 어려울 게 뻔했다. 물론 무쌍을 여봉선에게 양보하기로 한 건 두 사람의 끈끈한 의리 때문이기도 했다. 초휴가 여봉선에게 도와달라고 입만 연다면, 그는 필경 두 팔 걷고 언제든 나설 사람이다. 쓰임에 한계가 뚜렷한 병기와 자기를 위해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들 실력 강한 친구 중 어느 쪽을 택하는 게 더 이득일지, 그 해답은 너무도 명백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초휴는 원작에서의 섭동류와 같은 근시안적인 머저리가 될 생각은 없었다. 그는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거품과도 같은 명성에 목매느라, 훗날 고강한 실력자로 운명지어진 여봉선이라는 벗을 내치는 우를 범했었다. 그런 옥석도 분간 못 하는 어리석은 짓을 할 초휴가 아니었다. 초휴의 군더더기 없는 성격을 잘 아는 여봉선은 번드레한 인사치레 대신 이렇게만 말했다.
“초 형, 고마워. 나가면 내가 술 한잔 사지.”
구급 신병을 넘겨받는 게 술 한 잔 사는 거로 끝날 일이 아닌 줄은 여봉선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봉선은 요식적인 사례보다는 훗날 초휴가 자신의 도움이 필요할 때, 흔쾌히 행동으로 갚을 작정이었다. 설령 그에게 술 한 잔을 못 사주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초휴와 여봉선이 힘을 합쳐 무쌍을 탈취하기로 했으니 이곳의 그 누구도 이들을 저지할 수 없을 듯 보였다. 용호방 십 위권 준걸이 둘씩이나 나섰으니 이번 판의 승자는 정해진 거나 다름없지 않은가. 해서 동가 제자들과 낭인 무사들은 속속 그들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수무상과 시구령도 이미 두 사람과 싸워서 패한 바가 있다. 일대일로도 못 이긴 상대가 연합까지 했으니, 어찌 대적할 엄두가 나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그 둘과 쟁탈전을 벌일 만한 이는 안비연 한 사람뿐이었다. 하지만 여봉선에게 도움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그녀가 그를 난감하게 만들 리 만무했다. 게다가 오대 검파는 검만을 사용한다. 방천화극을 손에 넣어봤자 다른 누군가에게 넘겨야 할 테니, 월녀궁으로서는 큰 의미가 없는 물건인 셈이다.
해서 초휴와 여봉선은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일사천리로 무쌍 앞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초휴가 일도를 내리치자 강렬한 마기가 폭발을 일으키며 염주를 가격했다. 하지만 찬란한 불광이 초휴의 마기를 고스란히 흡수하더니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이번엔 여봉선이 붉은빛 찬란한 강기를 터뜨리며 힘껏 방천화극을 내질렀다. 그러나 한 차례 굉음과 함께 불광이 옅어졌을 뿐, 여전히 염주에는 별 변화를 주지 못했다.
이때 초휴가 무언가 생각이 난 듯, 듯 도를 거두고 강력한 대금강륜인을 잇따라 출수했다. 인법이 거듭됨에 따라 염주의 불광이 육안으로 뚜렷이 보이는 속도로 옅어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염주가 사악한 마기를 누르는 데는 효과가 강력해도, 그 외의 힘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대항력이 떨어진다는 방증이었다.
마지막 일격이 가해진 순간, 하늘이 쪼개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염주 꾸러미가 끊어졌다. 이로써 염주의 통제에서 벗어난 무쌍이 서슬 퍼런 광망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곧이어 동제곤을 비롯한 세 무도종사와 격전을 벌이던 현구유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마치 힘의 원천을 잃기라도 한 듯 출수 속도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지금까지 현구유는 무쌍에 어린 여온후의 마지막 기운을 빌려 쓰고 있었다. 그러나 무쌍이 봉인 해제되자 그 기운은 흩어져 소멸하고 말았다. 현구유는 자기 몸에서 힘 한 덩어리가 쑥 빠져나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출수할 때마다 그 느낌은 반복되었다. 계속 이런 식으로 싸우다가는 그나마 남은 힘마저 고갈되고 말 터였다.
“신병을 잡아!”
초휴는 나지막하게 여봉선에게 외치면서 자신은 허공에 흩어져 떨어지는 염주 알의 태반을 손에 넣었다. 염주에는 아직 어느 정도 불력이 남아 있었다. 다시 염주 꾸러미로 되돌려 놓을 순 없겠지만, 그 힘을 흡수하면 초휴의 불가 무공 능력이 대폭 증강될 게 분명했다. 초휴의 외침에 여봉선도 주저하지 않고 무쌍을 잡으려 들었다. 그러나 무쌍에서 날 선 예기 한 줄기가 터져 나오더니, 여봉선을 한 방에 날려버리고 말았다.
구급 신병이 괜히 구급 신병이겠는가. 일단 봉인이 해제된 무쌍은 원래 그랬던 것처럼, 마신 여온후 외에는 이 신병을 다룰 자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되찾은 것이다. 여봉선이 나가떨어지자 무사들이 이때다 싶어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개떼처럼 무쌍을 향해 달려들었다. 여봉선이 못한 일을 그들이 해낼 가능성은 희박했다. 하지만 전설의 신병이 눈앞에 있는데도 욕심이 동하지 않는다면 이상하지 않겠는가.
그들이 뒤섞여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와중에 외부 통로에서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중에는 영백록도 있었다. 안비연의 모습을 본 그가 달려와서 살갑게 물었다.
“안 소저, 아무 일 없었소?”
그녀가 고개를 젓더니 시구령을 가리키며 말했다.
“좀 놀랐지만 별일 없었어요. 저놈한테 이끌려 밀실로 들어갔는데, 정말 위험한 순간에 다행히도 여봉선이 저를 구해줬거든요.”
영백록이 굳은 표정을 지은 것도 잠시, 이내 미안해하며 절절맸다.
“이게 다 내가 늦게 온 탓이오. 연못으로 가서 그대가 어느 통로로 갔는지 알아보려 했었소. 저들의 속임수에서 벗어나 맑아진 눈으로 다시 보니, 어찌나 통로가 사방팔방 수없이 나 있던지 백 갈래도 넘더군. 해서 그 미로 속에서 한참을 헤맸다오. 당신 혼자 그런 일을 당하게 했으니, 정말 미안하게 되었소.”
이에 안비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영 공자, 정말 이러지 마세요. 우리 관계에 대해서는 제가 진작 말씀드렸죠. 절대 안 될 사이라고 말입니다. 저는 월녀궁에 들어간 그날부로 월녀궁의 차기 궁주로 운명지어진 몸이에요. 당신도 상수 영가를 승계할 몸이고요. 운명적으로 우리 둘 간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가로놓여 있어요. 당신과 나는 아무런 연분이 없습니다.”
안비연이 차갑게 말했으나 영백록은 화내지도 않고 의기소침하지도 않았다. 그저 의연히 뒷짐 지고 서서 웃으며 말했다.
“연분은 하늘이 정하는 거라지만, 나는 하늘을 믿지도 않거니와, 하늘의 명을 무조건 따를 마음은 더더욱 없소. 이 세상에 바꿀 수 없는 운명이 어딨겠소. 다들 내가 길조(吉兆)를 품고 태어난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고들 말하지. 그러나 내가 후천적으로 일궈낸 성과가 그 길조라는 것과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태어날 때 백록이 영지를 물고 오면 길조고, 먹구름이 지붕 위 하늘을 덮으면 평생 평범하게 살 운명이란 말인가? 나 영백록의 오늘은 길조로 인해 만들어진 게 아니오. 내가 바로 영백록이기 때문에 이런 오늘이 있는 것일 뿐!”
무도와 공법, 금기서화(琴棋書畵), 병법과 책략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것 하나 통달하지 않은 게 없는 그였다. 하지만 이 세상 그 어떤 천재도 태어날 때부터 저절로 이 모든 걸 통달할 수는 없었다. 사실 그 모든 건 타고난 자질과는 별개로 영백록 스스로가 노력해서 터득한 결과물이라는 얘기다.
해서 그는 본인의 출생과 관련해 남들이 왈가왈부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겨왔다. 마치 그간 쏟아 부어온 자신의 노력이 ‘천재’라는 말에 가려져 죄다 무시당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막말로 그가 태어날 때 먹구름이 지붕 위 하늘을 뒤덮었어도 그가 영백록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고, 오늘날의 성과는 똑같았을 테니까.
안비연의 한숨이 또 한 차례 이어졌다. 당금 강호에서 영백록 만한 인재는 실로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람이 어찌 저리도 허점 하나 없이 완벽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종현은 너무 강직해서 탈이고, 방칠소는 너무 경망스러워서 탈이라면, 그는 마치 봄바람과도 같이 누구와도 원만하게 어울리는 존재였다. 그 믿음직한 기개 역시 웬만한 선배들에 못지않았다.
좀 더 눈높이를 낮춰서 초휴와 비교하더라도 곳곳에 악명만 흘리고 다니는 그와는 달리, 영백록은 어디서나 찬사를 받는 존재가 아닌가. 섭동류처럼 굳이 가식을 떨어가며 명성을 쌓으려 애쓰지 않아도 워낙 욕먹을 만한 구석이 없는 완벽한 존재니, 그저 숨만 쉬어도 호감 어린 평판이 자연스럽게 쏟아지곤 했다. 물론 그라고 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완벽한 인간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이렇다 할 결점은 없었다. 한 여자만 죽어라 바라보는 게 결점이라면 결점이랄까.
다만 안비연도 말했듯이 이들 둘은 인연이 아니었다. 월녀궁이 그녀를 차기 궁주로 점찍은 이상, 그녀는 다른 젊은 무사들과는 달리 신경 쓰고 삼가야 할 게 너무도 많았다. 이때 영백록도 더는 그녀에게 질척대는 대신 싸움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안비연에게 줄곧 열렬한 구애를 이어오는 와중에도, 그녀의 기분이 상할 것을 염려하여 늘 일정 선을 넘지 않는 배려를 잊지 않았다.
그러나 초휴와 여봉선이 무사들과 뒤섞여 무쌍 쟁탈전을 벌이는 광경을 보자 그의 눈이 예리하게 번뜩였다.
“상고 마신 여온후의 구급 신병 무쌍이 아닌가. 이거 대어가 낚였군!”
안비연이 뭐라고 말을 꺼내려 하자 영백록이 한발 앞서 그녀가 하려던 말을 가로챘다.
“방천화극이 내게는 무용지물이니 저걸 여봉선에게 양보하면 안 되느냐는 말을 하려 했소?”
안비연이 당황하여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냥 제 의견일 뿐이에요. 저들 중 그래도 여봉선이 저 물건의 주인으론 가장 적격이 아닐까 싶어서요. 게다가 초휴가 여봉선의 편을 들고 나선 이상, 건드려서 좋을 건 없겠죠. 여기서 영 공자와 방칠소만이 초휴의 상대가 될 수 있겠지만, 지금 방칠소는 없군요. 하지만 설사 있다 해도 그는 검객이고 초휴와 사이도 좋으니 쟁탈전에 끼어들 리가 없죠. 그럼 남는 건 당신 하나뿐인데, 초휴와 용쟁호투를 벌여봐야 결국 둘 다 몸이 상하기밖에더하겠어요? 공연히 제삼자에게 어부지리를 내어주는 격이 될 테죠.”
안비연은 아까 여봉선이 자기를 구해준 은혜를 이런 식으로라도 갚고 싶었다. 다만 지금도 영백록의 마음을 뿌리치고서는 출수를 자제해달라는 부탁을 하기가 마음에 걸렸다. 해서 에둘러 표현하느라 말이 길어지고 만 것이다. 영백록이 혼전 양상을 지켜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 소저, 이토록 그대만을 사랑하는 나인지라 그대의 말 한마디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줄 수 있소. 그러나 나도 남자요. 내가 아무리 마음을 넓게 가지려 애써도 다른 남자를 위해 기연을 포기하라는 그대의 부탁은 정말 들어주기가 어렵구려. 나 영백록이 개인적으로야 방천화극이 필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가 전체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 상수 영가의 저력은 그대의 상상 이상으로 심후하기 그지없소. 게다가 나 역시 무사요. 내가 명리에 초연한 건 사실이나, 자웅을 겨뤄 이기고자 하는 승부욕마저 없는 건 아니라오. 나는 초휴 때문에 용호방 순위가 하나 밀려났소. 물론 그렇다고 해서 풍만루에 보여주기 위해 초휴와 일전을 치르겠다는 건 아니오. 지금 모처럼의 기회가 생겼으니 초휴와 겨루어 볼까 하오. 해서 나보다 강하다고 풍만루에 인정받은 그가 정말로 그만큼 강한지를 확인해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요. 이해해주길 바라오.”
말을 마친 그가 결연히 한 발을 내디딘 순간, 그의 몸이 승천하는 용처럼 기민하게 움직이더니 순식간에 십여 장을 넘게 도약하여 혼전의 장으로 뛰어들었다. 이를 지켜보는 안비연의 눈빛이 착잡하게 변해갔다.
그녀는 잠시 잊었던 영백록의 위상과 실체를 새삼 피부로 느낀 것이다. 그가 일편단심 자기만을 바라봐온 건 사실이지만, 그는 여전히 당대 수많은 무림 준걸을 발아래 둔 천하무적의 존재, ‘무쌍공자’ 영백록인 것이다!
이때 초휴는 방천화극을 향해 달려드는 낭인 무사들을 향해 일도를 내지르고 있었다. 그러자 마기가 용솟음치는 가운데 섬찟한 표효성이 사방을 진동했다. 아비도삼도의 위력은 그들의 몸과 마음을 제압하기에 충분했다. 그와 동일 경지인 천인합일 무사들은 간신히 버텼으나, 그 외에는 다들 추풍낙엽처럼 맥없이 쓰러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