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83)
483화 부활 진법의 가동
사실 방칠소에게는 영백록과 매우 흡사한 측면이 있었다. 예컨대 그도 용호방에 이름을 올리는 일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풍만루가 그더러 삼 위라고 하면 삼 위인 줄 알 뿐, 한낱 순위 때문에 누구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병기를 휘두르는 건 그가 행동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하지만 흥미가 생기는 상대를 만났을 때는 한번 몸을 풀어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곤 했다.
그간 용호방 준걸들 가운데 종현 및 장승정과 겨뤄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차례 모두 고배를 마신 쪽은 방칠소였고, 다시 그 둘을 상대하고 싶지도 않았다. 용호방 사 위는 워낙 신출귀몰하기로 유명한 자였지만, 방칠소가 강호를 돌아다닐 때가 많은지라 그와도 한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당시 그에게도 비무를 제안했었으나, 단번에 거절당하고 말았다.
물론 그럴 만한 사유가 있긴 했다. 그자의 무도는 살생의 무도였다. 도를 휘두르는 족족 단칼에 피를 보고 숨통을 끊어놓기 일쑤니, 생사결이 아니고 서로의 무도를 겨루는 차원의 승부라면 대결 자체가 불가하지 않겠는가.
초휴의 경우, 그가 오기조원 시절에 한 번 겨뤄본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는 그의 실력이 절정의 기량은 아니었다. 그가 천인합일에 오른 지금 재대결을 해봄직도 하겠지만, 이미 두 사람 사이가 많이 가까워진 터라 이제 와 새삼 도전하겠다는 말을 꺼내는 것도 껄끄러웠다. 방칠소의 순위가 초휴보다 위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이런저런 사정 다 빼면 결과적으로 도전해볼 만한 상대는 영백록이 유일했다. 그간 영백록의 출수 자체가 워낙 드물었던 데다, 그마저도 방칠소는 본 적이 없었다. 얼마 전 초휴와 종현의 격전을 보고 현재 초휴의 실력을 대충이나마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오늘 영백록이 초휴와 막상막하의 격전을 벌였다고 하니, 영백록의 실력이 얼마나 강할지도 짐작이 갔다. 게다가 방칠소는 상수 영가의 저력에 대해 잘 알았다. 아마도 영백록에게는 아직 선보이지 않은 비장의 패들이 남아 있을 것이니, 이래저래 흥미진진한 상대가 아닐 수 없었다.
승부욕이 발동한 방칠소를 바라보며 영백록이 미간을 찌푸렸다.
“방 형, 지금은 우리끼리 주먹질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오. 그대가 저 방천화극에 관심이 있다면야 나와 겨뤄볼 만도 하겠지만, 그것도 아니면서 굳이 여기서 시간을 낭비해야겠소? 내가 기억하기로 그대는 싸움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던 듯하오만?”
이에 방칠소가 두 손을 마구 내저어 보였다.
“에이, 그건 당신이 틀렸소. 내가 싸움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웬만한 상대한테는 붙어 보고픈 흥미가 안 생기는 거뿐이오. 우리 둘이 그래도 알고 지낸 지 오래된 편인데, 왜 초휴와는 싸웠으면서 나와는 싸우지 않겠다는 거요? 이거 나한테만 박정하게 구는 것 아닌가?”
이렇듯 방칠소가 한창 영백록에게 치근덕대고 있을 때, 진기를 어느 정도 회복한 초휴가 교연동의 수급을 들고 중앙 대전에 나타났다. 그 모습을 본 현장의 무사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음은 물론이다.
그들은 너무 놀라서 입도 제대로 다물지 못했다. 미처 초휴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던 이들도, 옆에서 놀라서 외치는 소리에 초휴를 보고는 숨이 멎을 듯 기함하고 말았다.
‘교연동이 죽었다니! 저 당당한 무도종사가 정녕 저 새카만 후배인 초휴의 손에 죽었단 말인가?’
물론 강호 역사상, 천인합일이 무도종사를 죽인 역사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심지어 그런 경우가 적은 것도 아니었다. 당금 강호만 봐도 ‘소천사’ 장승정이 그런 일을 해냈었다. 그리고 비록 종현을 비롯한 용호방 오 위권 준걸들이 공식적인 전적은 없어도, 그들이 무도종사와 붙어볼 만한 실력자들임을 다들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건 강호의 풍문에 불과할 뿐, 그들이 직접 본 건 아니었다. 따라서 교연동의 수급을 든 채 나타난 초휴의 모습은 그들 모두에게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강호 무사들에게 있어 무도종사는 지극히 특별한 존재라고 보면 된다. 무도진단을 응집해내는 순간, 그는 모두의 추앙을 받을 자격을 갖게 됨을 의미했다. 심지어 한 종파를 세울 자격까지 주어지며, 이로부터 진정한 막강 고수로 군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존재가 저런 젖내 나는 젊은이 손에 목이 달아났다니, 그 누가 놀라지 않겠는가.
영백록도 초휴에게서 눈을 못 떼고 있었다. 나름 티를 안 내려 애쓰고 있긴 해도 내심 적잖이 놀란 상태였다. 도대체 초휴가 어떻게 저런 일을 해냈단 말인가. 입장을 바꿔서 자신이 무도종사와 겨룬다면 사생결단의 각오로 싸워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문중에서 밖에 노출하기를 꺼리는 비장의 패를 사용한다면 승산이 얼마간 올라갈지는 몰라도, 여전히 필승을 장담하기는 어려울 터였다.
입을 떡 벌리고 있는 방칠소를 힐끗 쳐다보며 영백록이 담담히 말했다.
“그대가 정녕 붙고 싶으면 내가 아니라, 초휴를 상대해야 할 거요. 아무래도 저자의 실력이 나보다 훨씬 더 매서운 듯싶으니 말이지. 아까 나와 붙었을 때는 전력을 다하지 않았던 게 분명하오.”
넋을 빼놓고 있던 방칠소는 이내 침을 꿀꺽 삼키며 종전의 시시덕대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아까 초휴가 전력을 다하지 않았던 건 사실이오. 하지만 그대도 마찬가지 아니었나? 우리 검왕성 종주께서 말씀하시길, 구대 세가 중 상수 영가가 대단한 걸 깊숙이 숨겨 둔 게 제일 많을 거라 하시더군. 그 오랜 세월 상수 영가가 태산북두의 자리를 놓친 적은 거의 없었지. 물론 다른 가문에 잠시 추월당한 적은 있었지만, 소리소문없이 금세 역전하곤 했으니까. 여태까지도 대단했지만, 영가의 실력이 그게 전부가 아닐 거란 말이지. 일부로덜 대단한 척해왔다고나 할까? 아마 영가가 제대로 실력을 내보이기로 작정하면 아마도 나머지 여덟 세가가 절망감을 맛봐야 할거요. 좌우지간 내가 가만히 보니 당신도 하는 짓이 영가의 풍격과 아주 판박이더군. 그 대단한 실력, 어디 나도 구경 좀 합시다. 그렇게 꼭꼭 숨겨만 놓았다가 대체 언제 쓰려 하오? 곰팡이 슬까 봐 걱정돼서 하는 말이오.”
그렇게 방칠소가 영백록에게서 떨어질 줄 모르고 질척대고 있을 때, 다른 한편에서는 동제곤 등이 승부를 낸 상태였다. 여온후가 남긴 힘을 죄다 소진한 현구유에게는 두 무도종사를 더 이상 상대할 기운이 없었다. 근근이 숨만 붙어 있었으나 그 숨결마저도 두 무도종사의 협공에 산산이 흩어졌다.
하지만 이 분묘 내에서 현구유 무리는 불사의 존재나 다름없었다. 일신의 기운이 파훼 된 것도 잠시. 이내 흩어졌던 몸을 다시 응집해내곤 했다. 다만 원래 상태보다 한층 더 작아지고 약해 보인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현구유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계획에 차질이 생겼어. 저들을 당해낼 수 없으니 어찌하면 좋겠나?”
수무상에게서 대답이 없었다. 해서 현구유가 재차 물으려는데 어느샌가 수무상의 분신이 바닥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그것도 교연동의 머리 잃은 몸뚱이와 함께였다. 수무상이 비장하게 말했다.
“어쩌긴 뭘 어째? 어떻게든 대인의 부활을 강행해야지. 적당한 몸이 있건 없건, 기혈이 충분하건 말건 따지지 말자고. 지금 기회를 놓쳤다가 자칫 밖에서 막강한 고수들이 대거 쳐들어오기라도 하면 어쩔 거야? 특히 도사들과 땡추들이 출수하는 날엔 우린 진령도 못 건지고 소멸하게 될 거라고. 시구령! 가서 진법을 가동시켜. 저놈들의 육신과 기혈을 제련해내야겠어. 전에 비축해둔 기혈까지 합쳐서 진법 한가운데에 놓도록 해. 그동안 현구유와 내가 시간을 끌어볼 테니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무상과 현구유가 동제곤과 한정일을 향해 치고 나갔다. 하지만 이때 수무상 등은 이미 무도종사의 실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진격하기가 무섭게 상대에게 몸이 부서진 그들은 재차 몸체를 만들어 냈지만, 이미 실력이 천인합일만도 못한 수준으로 약해져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시간을 끈 셈이었다. 왜냐하면, 수무상이 이미 진법 설치를 완료해 놓은 상태여서 가동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온후를 진압해둔 이 봉인의 땅에 마땅한 진법 재료가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만년의 세월에 걸쳐 수무상이 자기들을 눌러왔던 진법을 서서히 해체하여, 여온후의 부활에 쓸 진법을 설치하는 용도로 전용(轉用)해 왔던 것이다. 다만 진법은 설치가 완료되었으되, 계획에 차질이 생긴 터라 과연 여온후가 순조롭게 부활할 수 있을지는 예단하기 어려웠다.
시구령이 손을 한번 휘젓자 교연동의 시신이 순식간에 한 구의 미라로 변하더니 알알이 혈주(血珠)가 되어 청동관 아래 설치된 진법에 떨어졌다. 뒤이어 시구령이 혈주 한 무더기를 던지자마자 말라비틀어진 손으로 수인을 결하며 아래 방향으로 눌렀다. 이에 삽시간에 마기가 용암처럼 솟구쳐 오르더니, 소름 끼치도록 처참하고 섬찟한 귀곡성이 메아리치며 대전 전체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시구령이 진법을 가동하자 대전 전체가 마기로 뒤덮이며 음산한 기운이 자욱하게 깔렸다. 이에 동제곤과 허정일이 흠칫 놀라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상고의 마신 여온후가 누구던가. 아까 현구유는 여온후가 남긴 한 줄기 기운만 빌려서는 두 사람을 그토록 거세게 압박했다. 그런데 그 기운의 장본인이 나타난다고 생각해 보라. 이 얼마나 살 떨릴 일인가 말이다.
이윽고 여온후가 들어 있는 관에서 시커먼 마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관 속에 가득 차 있던 마기가 삽시간에 끓어오르는 듯 끊임없이 용솟음쳤다. 동시에 진법 중앙에 놓여 있던 혈주들이 계속 그 속으로 유입되자, 이를 연료 삼은 마기는 갈수록 기세를 더해갔다.
관뚜껑에 꽂혀 있던 진무주사검 서른여섯 자루도 사정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 싶을 무렵. 엄청난 폭음과 함께 그 많은 검이 죄다 튕겨 나가며 관뚜껑이 덜컥 열렸다!
짙은 마기가 쏟아져 나와 사방의 시야를 온통 가렸다. 그러나 그 짙은 흑무 속에서 마신이 나타나리라는 중인의 예상을 깨고, 청동관보다 좀 더 작은 관 하나가 떠올랐다. 엄밀히 말하면 관이라기보다 사람의 전신 형상을 본뜬 청동 주조물에 가까웠다.
그 형상은 우람한 체구에 갑옷 차림을 하고 있었으나 몸통만 있을 뿐, 머리 부위가 없었다. 마치 머리 없는 시신에 청동 쇳물을 부어 굳힌 조형물처럼 보였다.
그리고 몸 전체에 부적문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몸 좌측은 도가의 주문이고, 우측은 불가의 범문임을 알 수 있었다. 도가와 불가는 자고이래로 양립한 적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해서 역사적으로도 도불(道佛)이 연합했던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나마 가장 최근 이루어졌던 연합이라면 천년 전, 곤륜마교를 협공했던 당시였다. 그리고 여온후를 제압하는 데 도불이 손을 잡았다는 건, 정파 쪽이건 사파 쪽이었건 간에 여온후의 정체성이 정말로 극단의 극단을 치달았던 인물이라는 방증이었다.
시구령이 응집해낸 기혈들이 끊임없이 여온후의 몸체로 유입되자 서서히 인영(人影) 하나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직은 실체가 없이 몽롱했지만, 거기서 뿜어 나는 기세만큼은 더없이 강렬했다. 어찌나 위압적이었던지 동제곤과 같은 무도종사마저도 그 기세에 취해 절을 올리고픈 충동이 생길 정도였다!
“다들 물러나!”
동제곤이 일갈하여 동가 사람들을 죄다 뒤로 물러서게 했다. 갈수록 짙어지는 마기에 화들짝 이성을 되찾은 그는 적을 쓰러뜨리고 말겠다며 전의(戰意)를 다졌다. 여온후가 남긴 것 중 진귀하지 않은 건 없을 터였다. 하지만 아무리 진귀한 것도 목숨이 붙어 있어야 의미가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