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84)
484화 그것도 다 자기 운
순간, 여온후의 신영(身影)으로부터 마기로 응집된 실선들이 무수히 터져 나와 무사들을 휘감았다. 창졸간에 허를 찌른 공격에 중인들은 우왕좌왕 혼란에 빠졌다. 속히 진영을 재정비한 동제곤을 필두로 모두가 허겁지겁 그 실선들을 막아 내기 시작했다. 초휴 등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초휴는 그 실선들이 대부분 무도종사 두 명과 자기를 비롯한 젊은 고수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실력이 약하거나 나이가 많은 무사들은 애당초 그 사정권이 아니었다.
이를 막아 내느라 초휴의 체력 소모는 적지 않았지만, 당장은 마기 실선을 파괴하는 게 급선무였다. 방금 통로에 머물며 잠시나마 기운을 회복했으니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실선의 위력을 감당해내지 못했을 터였다.
이렇게 얼마를 싸웠을까. 갑자기 청동관 아래 혈주들에서 심상치 않은 조짐이 일더니 급속도로 그 양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시구령이 당황하여 외쳤다.
“이거 큰일 났어! 기혈의 힘이 부족해!”
처음에 수무상 등은 무도종사 세 명을 해치우면 기혈은 충분하리라 예상했다. 그런데도 다른 이들까지 죽였던 건, 만일에 대비해 예비용으로 비축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무도종사를 한 명밖에 못 죽였으니, 어중이떠중이들의 기혈을 아무리 보탰다 한들 기혈의 힘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대장군들의 힘이 바닥을 드러낸지라 누굴 또 죽이기도 여의치 않았다.
이에 수무상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여러분, 우리의 진령이라도 바치세. 어차피 대인께서 부활하지 못하시면 우리도 되살아나지 못하니까!”
시구령과 현구유가 서로 쳐다보더니 일제히 진법의 한가운데에 섰다. 곧이어 그들 몸에서 회백색 화염이 활활 타오르며 화력이 증강되기 시작했고 여온후의 몸에서 뻗어 나온 실선들은 한층 더 위력이 강해졌다. 이번만큼은 동제곤과 허정일도 자신들의 한계를 느꼈다. 두 사람은 무도종사인지라 어깨에 놓인 부담감 역시 클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두 사람은 결심을 굳힌 듯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자기가 낼 수 있는 최대 역량을 터뜨려 눈앞의 실선들을 쳐내더니 곧장 밖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동제곤도 동가 제자들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갈수록 악화일로로 치닫는 지금의 상황으로는 여기에서 더 버틸 여유가 없었다. 가뜩이나 대장군들이 진령을 바친 데다, 두 무도종사마저 내뺀 덕에 힘이 보강된 마기 실선의 위력은 초휴 등도 막아 내기에 역부족이었다.
지금 초휴의 낯빛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런 전개는 애초에 그가 예상했던 궤적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었다. 만년이나 진법에 눌려 있었던 여온후의 실력이 어떻게 이처럼 막강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게임에서는 여봉선이 그의 전승물을 어떻게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일까.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에 위기감을 느낀 초휴가 여봉선에게 잠시 퇴각을 제안하려는 찰라, 돌연 마기 실선이 여봉선의 몸을 덮치더니 청동관 속으로 끌고 가는 게 아닌가!
기본적으로 여온후가 발출한 마기 실선들에는 거의 균등한 힘이 실려 있었다. 다만 그러면서도 상대적으로 초휴, 방칠소, 영백록, 안비연, 여봉선, 이 다섯 사람에게 힘이 쏠린 면이 있었다. 이들 중 여봉선과 안비연의 실력이 약한 축에 들었다. 그리고 여온후가 부활하려면 남자의 몸이 필요했던지라, 여자인 안비연에게는 그나마 힘이 덜 쏠릴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남자 넷 중 실력이 가장 약한 여봉선이 여온후의 공세에 걸려든 것이다.
초휴가 어떻게든 여봉선을 끌어당기는 마기 실선을 천마도로 끊으려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이에 불가의 무공으로 전환하여 환일대법도 써 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수무상을 위시한 대장군들은 만면에 희색을 띠었다. 애초부터 그들은 여봉선을 최적의 몸으로 낙점했었다. 그리고 여온후의 선택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여봉선이 청동관 안에 갇히자 여온후는 청동으로 주조된 자신의 몸을 그에게 바짝 갖다 붙였다. 이윽고 몽롱한 광채가 번뜩이는 가운데, 여온후의 신형이 어른대며 여봉선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두 몸이 합체된 순간, 여봉선이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다들 여봉선이 여온후에게 완전히 잠식된 줄 알고 넋을 잃고 있는데, 돌연 그의 몸에서 그윽한 빛 한줄기가 터져 나왔다. 알고 보니 그 빛은 여봉선이 가슴에 차고 있던 옥 장식이 발한것이었다.
놀랍게도 하찮게 보이는 그 희미하고 미약한 빛 한 줄기가 여온후의 진령이 여봉선의 몸속으로 파고드는 걸 막고 있는 게 아닌가. 이에 진령이 도로 나오려 했으나, 그 빛은 그마저도 못하게 저지하고 있었다. 이처럼 진령이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못하며 헤매고 있으니, 밑에서 이를 지켜보던 대장군들의 몸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현구유와 수무상의 몸이 갈수록 희미해지더니, 하나는 흑무가 되어 흩어졌고 다른 하나는 수증기가 되어 증발한 것이다. 시구령의 처지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전신의 뼈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으로 봐서 얼마 버티지 못할 성싶었다. 그리고 분묘 전역에 새겨져 있던 부적문이 일제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는 그간 여온후 일당을 가두었던 봉인이 완전히 해제될 징조임이 분명했다.
이때, 통로 안쪽에서 온몸이 화염에 휩싸인 해골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다름 아닌 염적소였다. 봉인이 한결 느슨해짐에 따라 그의 허리를 붙잡아 두었던 마지막 사슬마저 끊어낸 모양이었다. 이를 본 수무상이 외쳤다.
“빨리 와서 도와줘!”
염적소는 즉시 진법 가운데로 뛰어들어 자신의 진령을 불사름으로써 여온후가 옥 장식에 대항할 힘을 보태주었다. 하지만 대관절 무언지도 모를 그 옥 장식은 염적소가 가세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온후의 진령을 붙잡고 늘어졌다. 버티고 버틴 끝에 결국 힘을 잃은 여온후의 진령은 청동관 속에서 표표히 산화되고 말았다!
“안 돼!”
대장군들이 애끓는 비통함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부짖었다. 그간 여온후의 진령은 내내 청동 인형의 모습으로 갇혀 있었다. 애당초 청동관은 여온후를 봉인할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었으나, 수무상이 간계를 꾸며 진령쇄혼 주문을 온령쇄혼 주문으로 바꾸는 바람에 이 진법이 되레 진령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봉인이 해제된 이상 주문도 효력을 잃었으니, 진령이 더는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이번이 부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건만, 결국 진령이 들어갈 몸을 확보하지 못하여 산화되고 만 것이다. 대장군들이 그 오랜 세월 천신만고 끝에 인간들을 이 안에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고 지금까지 나름 순탄하게 일이 진행되었건만, 결과적으로 저 뭔지도 모를 돌덩이 따위가 이 중차대한 거사를 망쳐놓고 말았다. 이처럼 분하고 원통할 일이 또 있을까!
그리고 정말 뜻밖에도 그다음 일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판이하게 전개되었다. 산화된 다음 당연히 소실되었으리라 여겨졌던 여온후의 진령이 여전히 그 옥 장식에 발목이 붙잡혀 있다가 결국 여봉선의 몸으로 유입된 것이다!
이에 여봉선이 두 눈을 감은 채 머리를 매만지며 고통을 내비친 것도 잠시!
얼마 후 그가 다시 번쩍 눈을 떴을 때, 그 눈빛은 결코 종전의 그가 아니었다.
한마디로 적절히 형용할 말을 찾기 어려운 눈빛이었다. 마치 천하를 오시하는 듯한 군림과 초탈의 눈빛이 그러할까. 여하튼 여느 평범한 인간의 눈빛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러나 그 눈빛은 잠시 머물다가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여봉선의 흐릿한 눈빛만이 남았다. 그가 무의식중에 손을 뻗자 줄곧 그를 배척해왔던 무쌍이 그의 손으로 날아들었다. 그가 이를 잡은 순간, 온 세상을 집어삼킬 극강의 광망이 창신에서 번쩍 터져 나왔다!
대장군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들의 계획이 성공한 건지 아니면 실패한 건지 종잡을 수가 없어서였다. 온후 대인의 진령은 보다시피 확실히 산화되었다. 그런데 산화된 진령이 말도 안 되게 여봉선의 몸에 안착했다. 그리고 방천화극 무쌍이 스스로 그에게 날아들어 그가 자신의 주인임을 증명해 주었다. 이 일련의 상황을 대관절 어찌 해석해야 할까. 졸지에 부활이 아닌 전승이 돼버린 셈인 건가?
하지만 지금 대장군들은 수수께끼나 풀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본인들의 진령을 불사른 바람에 그저 한 호흡만 간당간당 남아 있었으니까. 해서 그들은 가까이 있는 약한 무사들을 대충 골라잡아 몸을 차지한 후 환생했다. 이왕이면 자질도 뛰어나고 실력도 강하며 보기에도 근사한 몸체를 갖고 싶었지만, 지금 그들의 실력으로는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못 되었다. 우선 목숨부터 부지해야 할 게 아닌가.
여온후를 가둬두었던 봉인이 해제되면서 무덤 전체가 금방이라도 붕괴할 듯한 조짐을 보였다. 무쌍을 거머쥔 여봉선이 여전히 멍한 상태의 눈빛을 한 채 초휴를 향해 다가왔다. 하지만 초휴는 그를 반기기는커녕, 되레 일신의 기세를 끌어올리며 슬며시 한발 물러났다. 이는 초휴를 탓할 일은 아니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여봉선이 다가오는 것을 보자 자기도 모르게 물러섰으니까.
여온후의 진령이 산화되는 걸 눈앞에서 똑똑히 지켜보긴 했지만, 여온후와 같은 존재라면 그 어떤 불가사의한 일을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을 터였다. 여봉선이 지금 그에게 잠식된 상태인지 아닌지는 하늘이나 알 뿐, 그 누가 겉만 보고 판별할 수 있겠는가.
어느덧 원래의 눈빛을 되찾은 여봉선이 씁쓸히 웃어 보였다.
“초 형, 난 정말 괜찮아. 여온후의 진령은 진작에 소멸했으니까.”
초휴는 은근슬쩍 천자망기술로 그를 살펴본 후 아무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물었다.
“여온후의 무공을 자네가 전승한 건가?”
여봉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할 수 있긴 한데······, 다만 여온후가 나한테 전승하는 걸 탐탁지 않아 하더군. 그래도 모호하게나마 기억에 남은 게 있긴 해. 뭐, 그 기억도 아직 뚜렷이 떠오르진 않지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좌중의 사람들, 심지어 방칠소와 영백록도 눈이 휘둥그레져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세상에, 기연도 이런 엄청난 기연이 다 있나! 자그마치 상고의 마신 여온후의 무공을 전승하다니!’
거기다 신병 무쌍까지 손에 넣었으니, 이번 개산제의 최대 수혜자는 단연 여봉선이 분명하지 않은가 말이다. 오죽하면 남의 일에 무심한 방칠소와 영백록마저도 그의 대단한 운에 부러움을 느꼈을 정도였다.
사실 분묘 안에 들어왔던 이들 중 동제곤 등 무도종사들도 있었음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여봉선은 별로 주목받을 만한 인물이 못 되었다. 무도종사를 참살한 초휴와 간만에 독보적인 실력을 내보인 영백록이라면 또 모를까, 여봉선은 강렬한 인상을 남길 기회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런데 여온후의 전승물을 이런 뜻밖의 인물이 차지하다니, 아무래도 세상사는 실력보다 운발이 더 통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초휴가 사람들을 대표해서 여봉선의 가슴에 달린 옥 장식을 가리키며 물었다.
“대관절 그건 뭔가?”
그 옥 장식이 형세를 바꿔놓지 않았더라면 여봉선은 이미 여온후의 부활에 제물로 바쳐지고도 남았을 터였다. 여봉선이 물끄러미 그것을 내려다보더니 애통한 표정을 지었다. 표면에 금이 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내가 어릴 때, 어머니께서 어느 절에 부탁해서 받아오신 거야. 그곳 고승이 이걸 완성한 후 특별히 불공까지 드렸다더군. 어린 시절 내가 워낙 병약해서 늘 이 옥을 지니고 다니게 하셨어. 이게 나를 평생 지켜줄 거라고 믿으셨거든.”
초휴는 뭐라고 대답하는 대신, 멀뚱히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여봉선은 타고난 신력(神力)의 소유자였다. 딱히 연체공법을 익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힘에 있어 연체공법을 따로 수련한 무사들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었다. 그런 그가 어린 시절 병약했다고 하니 당연히 믿기 어려울 수밖에. 하지만 초휴는 지금 그것보다도 옥 장식의 내력에 더 관심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