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86)
486화 안면몰수(顔面沒收)
이번에 여봉선은 여온후의 전승물을 차지한 것 외에도 여온후의 진령 파편이 체내로 유입되면서 엄청난 괴력까지 생겼다. 아직 그 힘을 완전히 체화시키지는 못했으나, 진작에 천인합일의 경지가 부쩍 가깝게 느껴지던 참이었다. 잠시의 폐관이나 한 차례의 싸움만으로도 그 힘은 충분히 체화될 것으로 짐작되었다.
초휴가 걸어온 길은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그 과정에서 운도 적잖이 따랐지만, 목숨을 건 생사결을 통해 쟁취한 게 더 많았다. 그토록 험난한 역정을 거치고 비로소 지금의 경지와 실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에 비해 여봉선은 본인의 운에 기대어 뭐든 일사천리로 해내었다.
물론 그도 적잖은 풍파를 겪었으나, 초휴만큼 험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처럼 빨리 초휴를 따라잡았으니, 그의 놀라운 발전 속도에 초휴마저 시기심 비슷한 걸 느낄 정도였다. 역시 운이라는 건 말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이 떠나려는 순간, 동가의 무사들이 속속 그들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동가의 의중을 모르는 현장의 무사들은 뜻밖의 광경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초휴는 위기감을 느꼈다. 언젠가부터 이곳 기류가 이상하게 흐르고 있지 않은가.
동제곤이 앞으로 나서더니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여러분이 동가의 개산제에 참여해 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하는 바요. 그러나 규칙에 따라, 개산제에서 획득한 물건들이 동가의 소유임을 알려드리지 않을 수 없소. 청컨대, 동가의 것을 돌려주시기 바라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들 동공이 흔들리더니,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여봉선에게 시선을 돌리며 뒤로 물러섰다. 여온후의 무덤에서 여봉선을 제외한 그 누구도 일절 건진 게 없었으니 말이다. 그들더러 내어놓으라고 한들, 쥐꼬리 하나도 내어놓을 게 없는 현실이었다. 단 한 사람, 여봉선만이 예외였다. 그러나 당사자가 아무 말 없이 미간에 힘만 주고 있자, 동제곤이 속 다르고 겉 다른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여 소협,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잘 알 텐데, 굳이 내가 콕 찍어 말을 해야겠소이까? 어서 내게 돌려주시구려.”
이에 여봉선이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응수했다.
“가주님, 무슨 말씀이신지요? 개산제 규칙에 따르면 본인이 취득한 것은 본인이 가져갈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가져갈 수 없는 것만 주최 측에 넘겨주는 거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아, 그건 그렇지가 않다네. 그렇다면 이러는 건 어떨까? 우리가 자네를 여기에 붙잡아 두면 그것을 가져갈 수 없게 되겠구먼. 그럼 자연히 그걸 여기에 남겨둬야 할 테지. 내 말이 틀렸나?”
이제야 사람들은 동제곤의 의도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규칙을 막무가내로 깔아뭉개면서까지 여봉선의 것을 강탈하려는 것이다. 이에 여봉선을 바라보는 좌중의 시선에는 측은지심이 어렸다.
사실 그들은 이 많은 사람 중 유일하게 한몫 잡은 여봉선의 운발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운이 아무리 좋아도 주먹을 이길 순 없는 법이다. 지금 동가는 대놓고 그의 턱밑에 주먹을 들이댄 상태가 아닌가.
이로써 동가는 여온후의 전승물을 탈취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그렇다면 여봉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동가와 같은 수준의 세력이라면 규칙을 어기고 후배의 소유물을 강탈해도 욕이나 한바탕 먹으면 끝날 일이다. 그리고 그까짓 욕 좀 먹기로서니 가문의 흥망에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옆에 있던 초휴가 여봉선을 대신해서 냉랭하게 대꾸했다.
“동 가주, 이건 엄연히 개산제 규칙 위반입니다. 서초 무림세력의 비난이 쏟아질 게 염려되지도 않으시오?”
이에 동제곤이 그를 힐끗 째려보더니 담담히 응수했다.
“비난이라고 했나? 우리 동가가 그 오랜 세월 강호에 뿌리내리고 살아오면서 그 흔한 비난 한번 안 받아봤을 성싶은가? 초휴, 자네가 여봉선과 막역지우라는 건 나도 잘 아네. 그러나 이 일에서는 빠지는 게 좋을 걸세. 지금 자네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선택은 자네 친구를 잘 타일러서 여온후의 무공과 신병을 순순히 내놓게 하는 거야. 그리하면 손끝 하나 대지 않고 보내 줄 것이나, 그렇지 않을 시엔 자네는 갈 수 있어도 여봉선만은동가에서 객 노릇을 하는 게 불가피할 걸세.”
초휴가 눈썹을 치켜떴다. 보아하니 강호에서 관중형당의 영향력이 그리 대단치는 못한 모양이다. 이처럼 동가에서 눈 한 번 깜짝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물론 탐욕에 눈이 뒤집힌 동가로서는 비단 관중형당만 우습게 보이는 건 아닐 터였다. 동가가 이처럼 도가 지나친 행동을 노골화하자, 줄곧 침묵을 지키고 있던 방칠소마저도 참다못해 한마디 거들었다.
“어이, 이것 보시오! 지금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짓인지 알기는 하는 겁니까? 이런 식으로 나오면 다음번 동가의 개산제에 어느 누가 도우러 오겠소?”
그러나 이번에도 동제곤의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뉘신가 했더니 검왕성 방 공자로군. 동가의 일에 방 공자가 무슨 걱정이 그리 많으신가? 이건 검왕성과도 무관한 일이니 입 닫고 계시게나.”
검왕성이 동가보다 실력 면에서 우위인 건 사실이다. 평상시 같았으면 방칠소는 여기서 극진한 귀빈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방칠소가 그런 대접을 기대할 때가 아니었다.
보기 좋게 면박당한 방칠소가 여간해서는 드러내지 않던 무거운 낯빛이 되었다. 사실 방칠소는 툭하면 검왕성을 들먹이는 여타의 동문 제자들과는 달리, 웬만해서는 종문의 이름을 내세워 타인을 압박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건 상대측에서 먼저 방칠소와 검왕성의 체면을 세워주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처럼 공공연히 방칠소도, 검왕성도 안중에 두지 않는 경우는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다. 옆에 있던 영백록은 묵묵히 지켜만 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상수 영가도 고릉 동가와 더불어 구대 세가의 일원인 건 마찬가지다. 그도 동가의 처사가 한심해 보이긴 했다. 그러나 초록은 동색이고 가재는 게 편이라고, 대놓고 그들을 질책하기엔 입장이 미묘했다.
안비연은 여봉선을 위해 나서고픈 마음이 굴뚝 같았다. 아까도 그의 도움을 받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방칠소마저도 보기 좋게 면박당하자, 그럴 용기가 쑥 들어가 버렸다.
동가는 이번에 어떻게든 여온후의 전승물을 탈취하려고 얼굴에 철판을 깔기로 작정한 상태였다. 검왕성도 대놓고 무시하는 판에 월녀궁이야 말해 무엇하랴. 작금의 월녀궁은 검왕성과 비교 불가인 건 물론이고, 동가보다도 하위에 있는 처지이니 말이다.
도무지 좋은 말로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초휴가 천천히 천마무를 치켜들었다.
“사람이 최소한의 염치라는 게 있어야지. 동가가 이 정도로 사람 구실 못하는 집단인 줄 오늘 처음 알았소. 동제곤, 그동안 당신을 존중했던 건 당신이 무도종사고 동가의 가주이기 때문이었소. 내가 더는 당신의 체면을 봐주지 않더라도 날 원망하진 마시오. 그까짓 무도종사, 내가 안 죽여 본 것도 아니니까!”
여봉선도 말없이 신병 무쌍을 고쳐잡았다. 이에 반응이라도 하듯 무쌍 표면의 흑룡이 묵직한 울림을 내자, 순식간에 흉포한 기운이 터져 나와 동제곤마저도 흠칫 놀라게 했다.
두 사람의 기세를 본 동제곤은 비로소 정신이 번쩍 났다. 아무래도 초휴를 평범한 천인합일 무사와 동급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새삼 경종을 울린 것이다.
초휴가 어떻게 교연동을 죽일 수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없어도, 그가 교연동을 죽였다는 사실은 확실했다. 그런 그가 굳이 이 일에 개입하려 든다면 명실상부한 무도종사급의 위력을 각오해야 할 터였다.
초휴가 방금 했던 말을 다른 이가 했다면 시건방진 허풍으로 치부하고 말았을 것이다. 무도종사가 죽이고 싶다고 해서 쉬이 죽일 수 있는 존재인가 말이다. 대체 자기가 뭐나 되는 줄 알고 그따위 망발을 입에 담는단 말인가.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살아있던 교연동의 목을 날려버린 초휴의 입에서 나온 말을 한낱 농담으로 여길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초휴만 문제인 게 아니었다. 방천화극 무쌍이 주인으로 인정한 여봉선도 있지 않은가.
조금 전 서슬 퍼런 무쌍의 기운을 잠깐 맛본 것만으로도 동제곤은 적잖은 압박감을 느꼈다. 여봉선이 오기조원에 불과해도 엄연히 여온후의 전승물을 차지한 만큼, 오기조원의 실력에 구급 신병 본연의 위력이 더해진 힘을 발휘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미 선전포고를 한 셈이니, 이제 와 물러나기엔 그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이에 동제곤이 옆에 있던 허정일에게 슬그머니 말했다.
“허 형, 함께 출수해서 날 좀 도와주시오. 우리가 저 애송이들을 밟아버립시다. 당신이 우리 동가의 사신옥(舍神玉)을 빌려서 정신력 강화를 도모하고 싶어 하는걸 잘 알고 있소. 오늘 나를 도와주면 까짓것 화통하게 일 년간 빌려주겠소이다.”
허정일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그러고는 어느샌가 동제곤의 곁에 바짝 다가 붙어섰다. 사신옥은 동가에서 전승되어 내려오는 지보로서, 옆에 두고 수련하면 정신력이 크게 증강되는 효과가 있다. 애당초 정신비법 같은 걸 익히지 않았더라도 사신옥만 있으면 마찬가지의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 사신옥의 크기가 쓸수록 작아지는 게 문제였다. 지난날 주먹만 한 크기였던 사신옥이 지금은 메추리알 정도로 줄어든 상태였다. 정신력 면에서 부족한 허정일은 진작부터 사신옥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크기가 줄어들 것을 염려한 동가 사람들도 사용을 자제하는 판에 허정일이 쓰라고 줄 리가 있겠는가. 해서 말도 못 하고 가슴앓이만 앓고 있던 차에 동제곤이 크게 선심 쓰겠다고 하니, 이 기회를 반드시 잡아야 할 터였다.
사람들은 두 무도종사가 하는 짓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들이 보기에 초휴와 여봉선이 패배를 인정하고 무릎 꿇지 않는 한, 다른 탈출구는 없을 성싶었다.
아무리 초휴에게는 무도종사를 죽인 전적이 있고 여봉선도 신병이 생겼다지만, 허정일까지 포함해서 자그마치 세 명의 무도종사가 상대인 싸움이다. 과연 그들에게 승산이 있을까?
이때 사소루가 돌연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세 분 어르신! 여 형은 제 사부님께서 아끼시는 사람입니다. 관중형당과 검왕성의 체면은 봐주지 않더라도, 설마 제 사부님의 체면도 모른 척하지는 않으시겠지요?”
그러자 동제곤 측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객관적으로 천하맹의 실력이 검왕성보다 못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서초 내에서라면 진청제의 실질적인 위세는 검왕성을 능가하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서초에서 발붙이고 살려면 방칠소에게는 끼어들지 말라고 윽박질러도, 진청제의 제자한테까지 그런 망언을 하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구급 무공의 매력은 과연 지대했다. 진청제의 제자마저도 안중에 두지 않을 용기가 솟구쳤으니 말이다.
동제곤이 사소루를 향해 미소지으며 말했다.
“사 공자, 자네가 진 맹주의 제자인 걸 누가 모르겠나. 그러나 매사에 최소한의 도리는 지켜야 하는 법! 진 맹주의 체면을 감히 내가 허술히 다룰 리야 있겠는가마는, 지금 사안의 본질은 진 맹주의 체면을 봐주고 안 봐주고의 문제가 아닐세. 여봉선이 자네 사부가 아끼는 사람이라 해서 오늘만 체면을 봐주고 끝날 일이 아니란 거지. 막말로 번번이 진 맹주가 자기 체면을 봐서라도 누군가를 놔달라고 요구하면 나는 어쩌라는 건가? 진 맹주의 위세가 만만치 않다는 건 잘 아네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 자신이 한번 좋게 본 사람은 절대 건드려선 안 된다니, 세상사가 그런 막무가내식의 패도만으로 돌아간다면 누가 규칙을 지키려 들겠는가. 죄다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고 말겠지.”
동제곤의 이 말은 안하무인의 끝판을 보여주었다. 동가의 가주라는 자가 이처럼 후안무치한 인간이었음을 이제야 모든 사람이 알게 된 셈이다. 지금 자기가 버젓이 규칙을 어기고 있으면서 남들보고는 규칙을 어기면 쓰겠냐는 훈계를 두고 있으니, 이보다 더 자기중심적이기도 어려울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