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91)
491화 방살(方殺)
초휴의 명성이 한창 높아지는 이때, 은백통은 격노하고 있었다.
“초휴, 이런 하늘도 법도도 모르는 놈!”
초휴에게 당해 무공이 폐해지고 다리가 부러진 여덟 명의 부하를 본 은백통은 화가 치솟아 옆에 있던 탁자를 부숴 버렸다.
초휴가 관중에 돌아왔다는 것은 은백통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수하들에게 조심하라고 분부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분탕질하러 갔는데 조심을 왜 하겠는가?
강호에서 초휴의 명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는 관중형당이고, 그나 자신이나 똑같은 장형관이며, 모든 일은 규칙에 따라 처리하게 되어 있었다. 은백통은 평생을 관중형당에서 보냈다. 규칙과 규정에 대해 그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초휴가 규칙을 내세워 싸워 보려 한다면 그건 어림없는 일일 터였다.
그러나 초휴가 규칙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수하 여덟 명을 폐인으로 만들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번 일을 꾹 참아 넘길 거라면 은백통은 관중형당에 더 남아 있을 필요조차 없었다.
“가자. 초휴에게 해명을 들어야겠다!”
은백통은 부하들을 이끌고 곧장 관서지부로 달려갔다.
* * *
당아는 관서지부 대문 안쪽에 의자를 갖다 놓고 늘어지게 기대앉아 문을 지키고 있었다. 그가 문지기 노릇을 할 이유는 없었으나, 초휴의 말로는 은백통이 반드시 찾아와 소란을 피울 것이라고 했다. 해서 당아는 자원해서 문을 지키는 중이었다. 그간 울분을 참느라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귀수왕이 막지만 않았다면 안불귀가 나서기도 전에 진작에 자신이 그 건방진 작자들을 해치워 버렸을 터였다.
바로 그때, 길거리 저 끝에서 은백통이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이끌고 음침한 낯빛으로 다가왔다. 당아를 본 그는 차갑게 말했다.
“초휴를 불러와라!”
당아는 그를 흘깃 봤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분노한 은백통이 거칠게 소리 질렀다.
“초휴를 불러오라고 했다! 네놈은 눈이 먼 것이냐, 아니면 귀가 먹어서 듣지를 못하는 거냐?”
당아는 눈꺼풀도 까딱 않고 비웃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뜬금없이 찾아와서는 제 이름도 안 대다니? 이름을 밝히지 않으니 어디의 어중이떠중이인지 내가 어떻게 안단 말이오? 그리고 귀하가 이름을 대더라도, 초 대인은 공무로 바쁘신 몸이오. 개나 소나 만나 뵐 수 있는 분이 아니란 말이지.”
“건방진 놈, 죽고 싶으냐!”
은백통의 눈에 격노의 빛이 떠올랐다. 그는 앞으로 한 걸음 나서서 당아에게 일장을 휘둘렀다.
그러나 당아는 버들개지처럼 유연하고 하늘거리는 몸놀림으로 은백통의 일장을 가볍게 피했다. 은백통은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그의 별호는 무영비룡(無影飛龍)으로, 작고 뚱뚱한 체구였으나 출수 속도는 매우 빨랐다.
‘이 초휴의 부하 놈은 어떤 자이기에 고작 삼화취정의 경지에 이런 속도를 구사한단 말인가?’
그러나 놀라는 것도 잠시 엄청난 분노가 용솟음쳤다. 다시 당아를 공격하려 할 때 초휴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초휴의 구역에서 내 부하를 건드리다니, 은백통, 죽고 싶어 환장했소?”
대문이 열리더니 초휴가 부하들을 데리고 유유히 걸어 나왔다. 그를 본 은백통은 일순 눈이 붉어지더니 대로해서 고함을 질렀다.
“초휴! 내 수하의 강호 포두 여덟 명을 폐인으로 만들다니 무슨 짓이냐? 관중형당에서는 내부 다툼을 엄금하는바, 너는 형당의 규율을 위반했다. 합당한 해명을 하지 않으면 지금 바로 당주 대인께 가서 공정한 판단을 내려 네놈을 처벌해 달라고 말씀드리겠다!”
초휴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담담히 말했다.
“규율? 공정? 은백통, 당신의 어리석은 수하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본인이 더 잘 알 텐데. 윗사람으로서 자신에게 대든 아랫것들을 살려둔 것만으로도 많이 봐 준 셈이지. 그리고 그들에게 그런 짓을 시킨 게 누구인지 내가 모를 것 같소? 위구단이 죽었을 때, 그간의 은원도 털어 버렸어야 할 거 아닌가. 그런데 당신은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나를 도발하는군. 정말 그렇게 죽고 싶은 거요?”
초휴의 마지막 말과 함께 거대하고 흉포한 기운이 불시에 쏟아져 내렸다. 순간 모골이 송연해진 은백통의 눈빛이 살벌하게 변했다.
은백통도 나름 강호에서 이름난 인물이다. 관남 장형관으로 강호 물정에도 밝았으며, 관중형당에서도 실권을 쥐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초휴에 비하면 은백통의 강호 경력은 우물 안 개구리 수준이라 논할 가치조차 없다는 점이었다.
지금 초휴와 겨룰 만한 자들은 젊은 세대 중 가장 뛰어난 준걸이거나 이미 무도종사의 경지에 도달한 한 세대 위의 무사들이었다. 엄밀히 말해서 은백통은 초휴에게 덤빌 자격조차 없었다.
초휴의 기세에 눌린 은백통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전율을 느꼈다. 두려움과도 같은 그 감각은 너무도 수치스러웠다. 그는 나이도 많았고, 관중형당의 이력도 초휴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그런데 초휴의 기세에 눌려 꼼짝 못 하는 걸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가?
심호흡을 하면서 감정을 추스른 은백통이 코웃음을 쳤다.
“초휴,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워라. 내 수하 여덟 명을 폐인으로 만들었으니 어떻게든 해결하란 말이다.”
초휴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해결? 계속 그 소린가? 그럼 원하는 대로 해결해 주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초휴의 몸은 순식간에 살기로 뒤덮였다. 흉악하기 짝이 없는 기운이 그의 주변을 둘러싸더니 곧바로 주먹이 날아왔다. 신선마저 도륙한다는 천절지멸망아살권이었다.
한없이 흉포한 기세에 휩싸인 은백통은 기겁하고 말았다. 그는 초휴가 이렇게 대놓고 공격해 올 줄은 몰랐다. 심지어 아무 거리낌도 없이 출수하자마자 살초를 쓰지 않는가!
조금 전 초휴를 봤을 때부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데 이제야 원인을 알 것 같았다. 초휴의 태도가 이전과는 천양지차였던 것이다.
초휴는 예전에도 기세가 날카롭기는 했으나, 관중형당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저 걸출한 청년 무사였다. 다른 장형관을 대할 때도 공손한 태도를 유지했다. 심지어 일부러 그를 괴롭히곤 했던 은백통에게도 초휴는 늘 언행에 예의를 갖춰서 반박했었다. 하지만 오늘 초휴의 태도는 강경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니, 오만방자하다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 터였다.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는 자세가 아닌가.
이것은 실력의 격차에서 비롯된 태도의 변화였다. 초휴는 규칙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으나, 동시에 규칙을 무시하고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상대의 실력이 자신과 비슷하다면 규칙 아래에서 어울려 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실력이 자신만 못하다면 규칙에 구애받을 이유가 뭐겠는가? 대놓고 한판 싸우면 그만인데 말이다.
지금 관중형당 전체를 통틀어도 초휴에게 규칙을 운운할 수 있는 자는 몇 명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은백통은 그 몇 명 안에 속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초휴의 일권에 경악한 은백통은 막는 것이 아니라 반사적으로 피해 버리고 말았다. 은백통은 맹렬한 바람 같은 강기로 온몸을 감싼 채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초휴는 이미 왼손으로 지권인을 맺고 있었다. 짧은 찰나에 강기의 범위가 팽창하면서 천라지망이 펼쳐져 모든 것을 옭아맸다.
지권인의 강기 범위에 든 은백통의 속도는 비룡은커녕 꿩보다도 못했다. 그는 눈을 뻔히 뜨고 초휴의 주먹이 자신을 덮쳐오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칼끝처럼 날카로운 살기가 그를 찢어발길 듯했다.
순간, 검은 장포로 둘러싸인 그림자가 홀연히 나타나 은백통을 보호하듯 등지고 섰다. 이어서 다소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천절지멸망아살권이군. 애송이가 사람깨나 죽여 본 모양이군 그래, 어디 내 권법 한 번 받아 볼 텐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검은 옷을 입은 자가 주먹을 내질렀다. 전신에 시뻘건 살기가 맺혀 소용돌이치니 천지가 노호하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듯한 기세였다. 그가 초휴와 똑같은 천절지멸망아살권을 출수한 것이었다.
두 주먹이 맞붙는 순간 초휴의 살기는 상대방의 손에 찢겨 나가고 말았다. 강대한 힘이 뼈까지 뚫고 들어오는 듯하자 초휴의 안색이 변했다. 그의 몸에서 일순간 마기가 솟구쳐 오르더니 구소연마금신 특유의 금빛으로 빛났다.
마기의 폭발음이 연달아 울리고, 초휴는 십여 보를 물러나서야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자를 바라보는 눈에 경계의 빛이 어렸다.
상대는 무도종사였다. 그리고 그가 죽였던 교연동보다 훨씬 강했다.
검은 옷을 입은 자는 초휴를 보며 히죽 웃었다.
“사명(司銘)한테서 자네 이야기를 들었네. 젊은 친구가 제법이군. 하지만 그렇다고 건방지게 굴면 쓰나. 폐물 무도종사 하나 죽였다고 무도종사가 다 같은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네.”
뒤에 있던 은백통은 그가 나서서 출수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은백통은 여기 오면서도 초휴가 정말 살수를 쓰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은백통도 나름대로 강호 물정에 밝은 사람이었고 늘 신중하게 행동하는 편이었다.
초휴가 무도종사를 참살한 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지라, 은백통 역시 자신이 쌓은 인맥을 이용해 뒷배를 모셔온 것이다. 원래는 만의 하나를 대비하자는 생각이었는데 그 뒷배가 정말 나설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초휴는 눈을 가늘게 떴다.
“당신은 누구요?”
검은 옷을 입은 자는 뒷짐을 지더니 담담히 말했다.
“집형사 이수령, 방살(方殺)일세. 엄밀히 따지면 자네의 상사이기도 하지. 자네는 집형사 밀정이기도 하니까.”
은백통은 관중형당에서 일평생을 보낸 만큼 인맥이 매우 넓었다. 방살은 은백통과 함께 관중형당 말단에서 시작해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지금의 자리까지 올랐다. 둘이 막역한 사이는 아니었고 현재는 실력 차도 어마어마했으나, 그래도 어느 정도 교분은 있는 셈이었다.
은백통은 오랫동안 장형관을 지냈지만 방살에게 뭔가를 부탁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줄곧 연락은 이어 왔다. 그런 은백통이 부탁을 해온지라 방살도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초휴 역시 방살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었다. 자신이 관중형당 고참은 아니었으나, 장형관이 된 후로 관중형당의 여러 비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관중형당의 진정한 전투력이 집형사에 있다는 것은 관중형당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삼수령 사명만 봐도 천인합일의 최고 경지에 올라 지극히 강한 전투력을 지녔다. 지금까지의 사대 장형관 중 사명을 상대해서 이길 만한 사람은 관동 장형관 소습 하나뿐이었다. 그런 사명의 실력으로도 고장 삼수령에 머무를 정도니 집형사 이수령과 대수령이 얼마나 강할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겉으로 드러난 관중형당 소속의 무도종사가 관사우 하나뿐인 것은 아니다. 관중형당이 숨기고 있던 실력을 모두 드러낼 때가 온다면, 그건 아마 관중형당의 멸망이 임박할 무렵일 터였다.
초휴는 매경령에게서 방살의 내력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그는 출신부터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원래 동제군의 젊은 교위였는데, 북연과 전투를 치르다 중상을 입어 시쳇더미에 버려졌다.
그리고 초광가가 시쳇더미 속에서 그를 구해 관중형당으로 데려왔고, 부상에서 회복한 방살은 이름을 바꿔 집형사에 들어갔다. 은혜를 갚는 동시에 복수도 하기 위해서였다. 알고 보니 방살이 북연군을 상대로 완패했던 것은 동제 조정의 권력 투쟁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함정에 빠져 죽음의 구렁텅이에 떨어졌던 것이다.
그 후로 방살은 계속 집형사에서 일했는데 수완이 잔혹하고 악랄했다. 사명이 인정사정 두지 않는 정도라면, 방살은 잔인하다고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무도종사의 경계에 들어선 방살은 동제에 홀로 돌아가 복수를 꾀했고 그는 자신의 원수를 찾아가 그 집안을 멸문시켜 버렸다고 했다.
매경령의 말에 의하면 관사우는 그 사건을 다소 불만스럽게 여겼으나, 방살을 막지는 않았다고 했다.
집형사는 관중형당 최후의 보루이자 최강의 전투력을 지닌 비장의 패였다. 관사우가 당주라고는 하나 모든 것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었다. 심지어 방살은 관사우와 항렬도 같았다. 초광가가 관사우를 당주로 지목했을 때, 고분고분 따랐던 것은 초광가에게 입은 은혜 때문이었다. 그는 중요한 일이 터졌을 때 반드시 관사우의 말을 따르는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