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98)
498화 흉악하고 악랄하게
취의장은 표적인 기련채를 절대 과소평가하지 않았다. 그런 태도는 섭동류와 섭인룡 둘 다 마찬가지였다. 옛날 북방 삼십육대도의 유일한 생존자인 만큼 기련채의 실력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이번에 벌인 잔치도 일단 우세를 점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였을 뿐, 기련채 쪽이 스스로 도주할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당황해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앞으로도 지독한 싸움을 계속 치를 준비를 하고 있었건만 너무 수월하게 승리한 게 아닌가. 좌중에 흐르는 정적을 깨고, 제법 준수하게 생긴 검은 비단옷의 중년 무사가 일어나서 웃으며 말했다.
“장주, 그리고 소장주, 기련채가 도망쳤다면 요동군은 이제 우리 것이 된 셈이군요?”
섭동류는 불쾌해져서 슬쩍 눈썹을 찌푸렸다. 정말이지 썩은 진흙 같은 자들이 아닌가. 방금 생긴 콩알만 한 이득을 나눠 먹을 생각부터 하고 있으니 말이다.
취의장이 이번 연맹을 결성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취의장의 명성이었고, 그다음이 이익이었다. 싸워서 기련채의 구역을 차지하면 취의장은 하나도 갖지 않고 연맹에 참가한 세력들에게 나눠주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물론 전제는 연맹에서 탈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섭인룡은 이런 쪽으로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 자였다. 취의장은 강호인들의 편의를 도모하는 곳이라는 평판을 앞으로도 계속 유지해야 했다. 그러나 다른 구역을 침범하고 공격하는 일은 취의장이 아니라 다른 세력이 할 일이었다.
악명을 다른 자가 지게 만들면 취의장의 명성에는 흠이 가지 않는다. 그리고 취의장이 요구하면 연맹은 즉각 소집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체면도 차리고 실익도 얻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지금 말한 무사의 요구에 틀린 곳은 없었으나, 너무 성급하게 나선 것만은 사실이었다. 해서 섭동류는 속이 불편했으나 섭인룡은 미소를 지었다.
“묘 가주, 걱정하지 마시오. 여러분의 몫은 하나도 빠짐없이 여러분께 돌아갈 것이오. 일단 사람을 보내 정탐해 봅시다. 기련채 사람들이 정말 요동군에서 물러난 것이 확인되면, 그 땅을 어떻게 나눌지를 상의해 보십시다.”
묘춘무(苗春茂)가 가주로 있는 묘가는 연동 땅의 오래된 가문은 아니었고 힘이 있는 세가로 꼽힐 만한 집안도 아니었다. 묘가가 떨쳐 일어난 것은 오로지 묘춘무라는 천인합일 고수 덕분이었고, 해서 묘춘무는 하루빨리 땅을 얻어내 묘가의 세력을 키울 생각이었다. 섭인룡이 그렇게 말하자 묘춘무는 웃으며 공수를 올렸다.
“제가 좀 성급했습니다.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괜찮소이다, 인지상정이지요.”
다른 사람들이 모두 물러간 후에야 섭동류가 냉소했다.
“정말 한심한 꼬락서닙니다. 아직 기련채를 완전히 말살한 것도 아닌데, 이득을 차지할 생각에 눈이 벌게져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섭인룡은 담담했다.
“이익은 누구한테나 소중한 법이니까. 아무런 이익을 얻지 못한다면 누가 널 위해 일해주겠느냐? 동류야, 명심하거라. 세상에서 가장 이용하기 쉬운 것이 바로 저렇게 욕망을 지닌 자들이다. 반대로 아무런 욕심이 없는 자는 가장 상대하기 어렵다.”
“예, 소자 명심하겠습니다.”
그러나 잠시 멈칫했던 섭동류는 다시 물었다.
“아버님, 기련채에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갑자기 철수했을까요? 저도 조사해 보았지만, 방호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겁쟁이가 아닙니다. 저는 기련채를 너무 몰아붙이면 우리도 손실이 클 거라는 걱정까지 했는데, 왜 갑자기 물러났는지를 모르겠습니다. 혹시 속임수는 아닐까요?”
섭인룡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사람의 마음이란 늘 변하게 마련이지. 북방 삼십육대도의 멸망을 체험한 방호는 옛날 기련 철기의 주인 방호와는 다를 것이다. 그리고 양측에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도 눈치챘을 터. 방호 자신이야 죽어도 상관없을지 몰라도 기련채의 부하들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 우리 취의장 연맹과 끝까지 맞서 싸워 봐야 몰살당한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물러나는 것도 놀랄 게 없지. 그리고 속임수가 있다 해도 급할 것 없지. 지금까지 얼마를 기다렸는데, 고작 며칠을 더 못 기다릴까? 사람을 보내 요동 숲의 상황을 자세히 알아본 뒤, 확실하게 처리하면 된다.”
섭동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수하에게 지시하겠습니다.”
취의장에서 요동 숲의 기련채를 찾아가 확인한 결과, 기련채는 정말 개미 한 마리 남지 않고 텅텅 비어 있었다. 연동의 무림 세력들은 희색이 만면해졌다. 취의장은 이미 요동군 전체에 손을 대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 그 땅은 연맹에 가담한 세력들의 몫이었다.
이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취의장이 영리한 만큼 이들 역시 어리석지는 않아서, 취의장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취의장 연맹을 유지하면 그들로서도 나쁠 게 없었다. 큰 나무 밑에 있으면 더위를 피하기도 쉬운 법이다. 그들의 세력이 약한 편은 아니라지만 신무문이나 황보씨처럼 강력한 자들과 어울릴 정도는 아니었다. 계속 취의장 연맹에 머물러 있는 한은 그런 세력과 상대하게 되어도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 * *
한편 초휴, 하전, 임목통, 한표와 십여 명의 기련채 정예 무사들은 요동군 주부의 한 주루에 모여 있었다. 한표는 조사해온 정보를 초휴에게 보고하는 중이었다. 방호는 대부분의 기련채 무사들을 데리고 북방으로 숨어들어 취의장의 추격을 피했다. 하전 등의 기련채 정예는 방호가 시킨 대로 초휴의 명령을 따라 움직였다.
한표가 보고를 끝내자 하전이 냉소했다.
“바라시던 대로 됐군요. 우리 기련채는 기반을 다 버리고 상갓집 개처럼 쫓기는 신세가 됐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됩니까?”
초휴는 하전의 어조에 신경 쓰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
“서 있던 곳이 높을수록 쓰러질 때는 처참하기 마련이오. 일단은 그자들이 들떠 있도록 내버려 둡시다. 어차피 얼마 안 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부짖게 될 테니까. 물러나는 데에 성공한 만큼 취의장도 더는 의심하지 않을 거요. 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갈라놓는 것이지요. 취의장 연맹 같은 모임은 겉보기에는 강해 보이나, 어떤 연합체건 갈라질 수 있소이다. 다들 이익이나 모종의 목표 때문에 힘을 합쳤으나 종국에 가서는 전부 이기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들은 결국 자기 자신을 제일 먼저 생각한단 말이오.”
그렇게 말하면서 초휴는 한 뭉텅이 문서를 꺼냈다.
“취의장과 힘을 합친 세력들을 조사한 거요. 많이 볼 필요도 없고, 이 중에 하나만 골라서 이용하면 될 거요.”
임목통이 눈썹을 찡그렸다.
“이득으로 꼬드깁니까? 아니면 다른 것으로?”
초휴는 임목통을 흘깃 보았다.
“지금 기련채 상황에 무얼 갖고 남을 꼬드기겠소? 취의장 편에 서야 한다는 건 멍청이라도 알 만한 사실이니, 당연히 협박을 해야지요. 이들 중 가장 큰 구멍은 연동 묘가요. 묘가는 본래 세력이 크지 않고 기반도 약했으나 묘춘무라는 천인합일 고수가 나온 덕에 굴기한 집안이오. 취의장 연맹 대부분은 섭인룡이 직접 불러온 자들이지만, 묘가만은 자진해서 찾아와 참가했지요. 요동군 땅을 차지해 묘가를 부흥시킬 기반을 닦을 생각으로 달려든 거요. 이런 사람은 상대하기 쉽소. 가문과 친족이 약점이니까. 일족을 손아귀에 쥐고 이용하다가, 말을 안 듣거든 그냥 죽여 버리면 되는 겁니다.”
초휴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일순간 소름이 돋았다. 일가를 멸문시키겠다는 초휴의 말 때문이 아니라, 그 말을 할 때의 어조 때문이었다.
기련채 도적들 역시 선량한 사람은 못 되었고 특히 북방 삼십육대도 시절에는 사람도 적지 않게 죽였다. 그러나 그들이 사람을 죽인 것은 약탈을 위해서였을 뿐, 방금 초휴처럼 평온하고 담담한 어조로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다.
밥이라도 먹자는 것처럼 담담히 멸문을 입에 올리는 초휴의 모습에 모두가 오싹해졌다. 과연 임엽이란 자는 마도 일맥에서 가장 뛰어난 제자답게 지독하고 악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도 문파들이 늘 마도를 제거해야 한다고 떠드는 이유도 좀 알 것 같았다. 배부르게 밥 잘 먹고 할 짓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도 출신 인간들이 정말로 지랄 맞게 끔찍하기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겠는가.
그러나 임목통은 주저하듯 물었다.
“임 공자, 만일 묘춘무가 제 일족을 버리고 취의장에 밀고하면 어찌합니까? 그리고 그런 짓은 강호의 규율을 어기는 일 아닙니까. 원래 가족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는 법인데요.”
초휴는 의아한 기색으로 임목통을 힐끗 보았다. 북방 삼십육대도 출신인 자가 케케묵은 강호 규율을 따지고 들다니?
“가족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말 자체가 우스갯소리에 불과하오. 내가 남의 것을 빼앗으면 내 가족도 함께 그 이득을 누리는 법입니다. 날 찾아온 원수더러 내 가족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고 하면 웃기는 소리밖에 더 되겠소? 나는 마도 출신이오. 은마권이 강호에서 어떤 말을 듣는지는 다들 아시겠지요. 나는 규율에 얽매이지 않소. 만일 여러분의 명성에 해가 될까 걱정이라면 그냥 그만두면 됩니다.”
“아닙니다. 임 공자의 말씀대로 하지요.”
임목통이 얼른 답했다. 대당가는 무슨 일이든 임 공자의 분부대로 따르라고 명했는데, 자신이 트집을 잡아서 문제가 생긴다면 그 책임을 어찌 감당하겠는가.
“결정됐으면 다들 나와 함께 연동 땅으로 가십시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다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초휴를 향하는 그들의 눈빛은 약간 달라져 있었다.
이들은 도적 출신으로, 선량하기는커녕 몹시 흉악한 자들이었다. 처음에는 다들 초휴를 만만히 보았다. 초휴의 일격에 패한 하전만 해도 속으로는 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련채 사람들은 초휴의 계획을 들은 뒤에야 깨달았다.
자신들 같은 도적 떼의 흉악함은 이 임엽이란 자에 비하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 * *
십 년 전, 연동의 묘가는 아주 약한 종문이었다. 다른 세력에게 업신여김을 당했을뿐더러 연동 땅에서 이름을 내세울 처지도 못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묘춘무가 천인합일의 경지에 오르면서 묘가 역시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무도종사 급의 진정한 절정 고수가 보기에 천인합일의 경지는 그 정도면 그럭저럭 쓸 만하다고 말할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연동 땅에서는 고수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로부터 묘가는 우뚝 솟아올랐다.
야심한 시각이었으나 저택에는 등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묘가 전체가 며칠에 걸쳐 연회를 벌이는 중이었다. 자신들의 진정한 굴기를 자축하는 자리였다. 묘춘무에게서 요동으로 옮겨 갈 준비를 하라는 전갈이 온 것이다.
연동의 무림 세력은 하나같이 만만치 않았고, 세력권이 명확하게 나뉘어 있었다. 묘가가 연동 땅에서 힘을 키우려면 반드시 남과 다퉈서 빼앗아야만 했다. 연동은 한 세력이 쇠약해져야만 다른 세력이 떨쳐 일어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묘춘무를 제외한 묘가의 세력은 너무 약해서 누구와 다투지도 못했고 다른 세력의 이익을 빼앗을 능력은 더더욱 없었다. 해서 묘춘무는 다른 방법을 궁리한 끝에 스스로 취의장 연맹을 찾아갔다. 요동 땅에서 기반을 다진 뒤 일족이 그리로 옮겨가면 진정 힘을 키워나갈 수 있지 않겠는가.
하전과 다른 이들을 데리고 묘가 저택 대문에 다다른 초휴는 문지기조차 없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너무 신이 난 것일까, 아니면 너무 들뜬 탓일까. 어떻게 이렇게 경계를 소홀히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물론 경계를 하고 있었어도 별 소용은 없었을 것이다. 천인합일 무사인 그들에게는 다 헛짓일 테니까.
대문을 밀어 열자 길가에 서 있던 자들이 초휴를 보고 막 고함을 지르려 했다. 그러나 초휴가 눈길을 한 번 주자 강대한 정신력이 뻗어 나갔고, 그들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