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
손에 병기를 든 흉악한 도적떼가 백 명도 넘게 몰려와 마차를 에워싸고 있었다. 초휴의 열 명 남짓한 수하들은 하나같이 공포와 절망으로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들은 권법을 익혀 쉬체경에 이른 자들도 있긴 하나, 대부분은 평범한 하인들이었다.
그러니 실전경험이 풍부한 도적과 일대일로 싸우는 것도 내키지 않을 판인데, 백 명이 넘는 떼거리에 포위당했으니 졸도할 지경이었다.
초휴가 마차에서 내리더니 차분히 말했다.
“호걸들께서 재물을 뺏으러 오신 거라면 여기에 은자 수천 냥이 있으니 맘대로 가져가시오. 하지만 여러분도 보다시피 우리는 상단이 아니라서 그 외에는 드릴 만한 게 없소.”
도적떼 두목은 머리를 산발한 거한으로 손에는 험상궂은 호랑이 머리상이 조각된 탈금도를 들고 있었다. 넓적한 도신은 땅에 질질 끌리고 칼자루에 조각된 호랑이 머리 부분에는 핏자국이 낭자한 것이, 그 칼이 많은 사람들의 피를 먹은 것임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수천 냥이 적은 돈은 아니지. 그러나 네놈의 목숨값이 수천 냥보다 더 비싸다는 게 문제지. 애송아, 말해 보거라, 어떻게 죽으면 좋겠느냐?”
초휴는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두목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러나저러나 돈으로 목숨을 흥정하는 것은 매한가지요. 돈을 써서 나를 죽이려는 자가 있다고? 그러면 나 역시 돈을 내고 내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것 아니겠소? 내 신분을 알 테니 흥정을 해봅시다. 은자가 얼마나 필요한지 말만 하시오.”
그러자 두목이 칼을 끌고 다가오면서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다들 초씨 가문 둘째가 쓸모없는 놈이라고 하더니, 이제 보니 담력은 봐줄 만하구나.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발 늦었다. 이 어르신이 비록 도적질로 먹고 산다만 신용은 지키는 몸이시거든. 그러니 그냥 죽어줘야겠다.”
그 말에 초휴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어차피 돈으로 거래되는 목숨인데, 내가 내 목숨을 살 수 없다고? 그러면 대신 네놈들 목숨이라도 가져가야겠군그래.”
순간 두목의 안색이 어두워진다 싶더니 뭐라고 할 겨를도 없이 초휴가 빛의 속도로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모름지기 도적떼를 잡으려면 그 우두머리를 먼저 잡으라고 했다.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두목의 눈빛이 흉악하게 변했다. 분노의 울부짖음과도 같은 바람소리를 내며 손에 든 탈금도를 무서운 기세로 휘둘렀다. 그는 일천한 수준의 외공을 익혀 근골을 단련한 길바닥 출신의 칼잡이일 뿐이어서 제대로 된 검법은 구사할 줄 몰랐다.
그래도 워낙 타고난 힘이 세다 보니, 상당히 둔중한 무기를 마치 어린아이가 장난감 다루듯이 자유자재로 휘둘러댔다. 어찌나 기세가 흉흉한지 그 칼에 맞으면 갑옷을 입은 몸이라도 두 동강이 날 것 같았다.
똑같이 쉬체경의 경지에 이른 무사끼리라도 엄연히 차이가 있었다. 저번의 이통이란 자도 쉬체경을 터득한 몸이었지만, 자기 집안의 내공 수련에 그쳐서 실전경험이 매우 약했다.
반면 눈앞의 이놈은 몸에 내공이라곤 하나도 없으면서 의외로 출수가 과감하고도 악랄해, 만약 상대가 초휴가 아닌 이통이었다면 진작 단칼에 베였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엄연히 초휴였다. 바위에 짓눌리는 듯한 도기를 상대하면서도 그는 결코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다만 그의 힘이 두목만큼 세지 못한 게 문제였다. 무지막지한 탈금도에 정면으로 맞섰다가는 일 합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할 게 뻔했다.
그때 초휴가 돌연 멈춰 서더니 몸속에서 선천공의 진기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아직 미미한 움직임에 불과해 효과는 크지 않지만 적어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수년간 한해심법을 수련해온 것이 요 며칠간 선천공으로 수련한 내공만도 못할 정도로 강력한 진기임은 분명했다.
선천공의 진기로 발출된 초휴의 주먹이 거대한 탈금도를 내리치자 도가 살짝 기울면서 아슬아슬하게 초휴의 몸 옆을 비켜갔다. 두목의 얼굴에 경악의 표정이 역력했다. 이 계집애만도 못한 애송이가 자신의 일격을 피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두목이 손목에 힘을 주더니 칼을 비스듬히 눕혀 초휴의 허리를 노리고 들어왔다. 하지만 초휴도 아까의 기세를 몰아 순간적으로 몸을 굴렸다. 얼핏 낭패스럽게 보일 수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이번 공격도 피한 것이다.
그 후로도 두목의 공격이 살벌하게 이어졌으나 초휴는 번번이 몸을 날려 피했다. 얼핏 보기에는 수세에 몰린 것처럼 보였지만 초휴는 공격을 피하는 동안 별달리 다친 곳도 없었다.
십여 차례가 넘도록 공격하고도 상대를 어찌하지 못하자 두목은 다급해졌다. 초휴를 죽이지 못하는 건 둘째 문제고 자기 체면이 구겨질 판이 아닌가 말이다.
부하들이 이렇게 많이 지켜보고 있는데, 형편없는 애송이 하나를 처리 못하면 자기가 이까짓 시시껄렁한 녀석과 동급이라는 말이 되는 게 아닌가 말이다. 마음이 초조해지자 동작도 흐트러진 두목은 아예 방어는 내팽개치고 미친 듯이 허우적대며 맹공격을 퍼부어댔다.
초휴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칼을 피하자마자 몸을 낮추어 돌연 두목에게 바짝 다가섰다. 이어서 소매 안에서 은빛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곧장 두목의 목을 향해 예리한 선이 그어졌다. 수리청룡의 쾌검이 뽑힌 것이다!
아무리 백전노장이라지만 그 은빛 검광이 번쩍이는 찰나, 두목은 머리가죽의 감각이 마비되면서 죽음이 엄습해 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어 뒤로 물러난 덕에 치명적인 일격을 피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초휴는 갑자기 검세를 바꾸어 용이 꿈틀대는 듯 단검을 비틀더니, 상대의 어깨를 사정없이 내리꽂았다. 이번 일격으로 팔이 끊어질 뻔한 두목은 피가 철철 흐르는 팔을 부여잡고 사색이 되어 뒤로 물러났다. 이번 일격을 피하지 못했더라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초휴는 차분한 얼굴로 단검을 쥔 채 그 자리에 서있었다. 수리청룡을 손에 넣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완전히 터득할 시간이 부족했다.
만약 며칠이라도 시간이 더 주어졌더라면 이번 일격으로 두목을 확실히 끝장낼 수 있었을 텐데. 독이 오를 대로 오른 두목이 광기를 발하며 소리쳤다.
“죽여! 한꺼번에 달려들어 이놈들을 모조리 죽여 버려!”
‘죽이라’는 말이 떨어지지가 무섭게 일제히 함성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런데 함성소리는 도적떼 쪽이 아닌 엉뚱한 방향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이윽고 시커먼 사내들 수십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머릿수는 이쪽 도적떼의 절반에 불과해도 하나같이 어찌나 출수가 매서운지 순식간에 여러 명의 도적이 그들의 공격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들의 두목으로 보이는 건 얼굴이 누렇게 뜬 서른 살 남짓한 사내였다. 큰 키에 다소 마른 체형이었는데, 정작 체구에는 어울리지 않는 둔중한 검을 지니고 있었다. 이때 그들 속에서 고비가 튀어나오더니 초휴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공자님, 소인이 늦은 건 아니죠?”
초휴는 한바탕 혈전이 벌어진 싸움판을 주시하며 대답했다.
“그런대로 괜찮았다. 이 정도면 때를 잘 맞춘 거지.”
초휴는 무공을 제대로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분명히 무림세가의 자손이었고 견식도 어느 정도 있었다. 그래서 누런 얼굴을 한 사내가 검을 끌며 걷는 걸음새만 보고도 막 굴러먹은 흑도 출신들과는 차원이 다른, 제대로 무공을 배운 무인임을 알아차렸다.
두목이 벌게진 눈으로 대노하여 소리쳤다.
“마활, 이 개자식아! 이게 뭐하는 짓거리냐?”
마활이라 불린 누런 얼굴의 사내가 차갑게 웃으며 받아쳤다.
“뭘 하냐고? 당연히 널 끝장내려고 왔지. 연노삼, 네놈이 상망산에서 오래 굴러먹은 것만 믿고 내 장사를 가로챈 게 한두 번이 아니잖아. 오늘 염라대왕 앞으로 보내주마.”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마활의 거대한 검이 온전히 무게를 실어 공격해왔다. 일정하게 걸음을 내딛다가 끌던 검을 들어 내려치기까지 절도 있게 이어진 동작은 하나같이 극강의 위력을 쏟아냈다.
단순히 위에서 아래로 내리쳤을 뿐인데도 일 할의 힘에서 삼 할의 위력을 뿜어내니, 그 기세가 마구잡이로 칼질을 배운 연노삼과는 수준이 달랐다.
연노삼은 초휴와의 일전에서 어깨에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두 손으로 탈금도를 잡을 수가 없었다. 마활의 검을 막다가 그만 손에서 도를 놓치고 말았다. 도망가려 했지만 마활이 재빨리 몸을 날려 단칼에 그의 허리를 두 동강 내 버렸다.
마활은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더니, 초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씩 웃어 보였다. 초휴 곁에 있던 고비는 방금 전 마활의 검에 사람이 두 동강 나는 참극을 본지라, 그의 웃는 낯에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휴는 개의치 않고 마활을 향해 공손히 인사했다.
“이렇게 도와주시니 감사합니다.”
마활이 검을 끌며 다가오더니 교활하게 웃었다.
“애송아, 너는 내 칼에 죽을까 무섭지 않느냐?”
“마 채주는 분명 내 신분을 알 거고 제시한 조건도 들었을 거요. 나 하나 죽여 봤자 고작 수천 냥 손에 넣고 끝나겠지만, 나를 살려두면 적어도 당신 수하들의 이 빠진 무기들을 새것으로 바꿔줄 만한 좋은 광석들을 차지하게 될 겁니다.”
얼마 전 월아가 원보진으로 가자고 부추길 때부터, 초휴는 일찌감치 함정이라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 독사같이 교활한 초씨 가문 둘째 부인이 자신한테 독수를 펼쳐서 집으로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을 말이다.
심하기도 하지, 자신처럼 가주 자리를 승계할 가능성도 없는 서자한테까지 이렇게 악독하게 나오다니. 그래서 둘째 부인이 도적떼를 매수해 자신을 죽이려 할 것을 미리 눈치채고, 자신도 똑같은 수법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른 도적떼로 하여금 자신을 보호하게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고비를 상망산에 먼저 보냈던 것이다.
다만 지금 몸에 지닌 은자가 많질 않으니 우선 급한 대로 마활의 도적떼에게 광석을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남산 광구에서 나오는 광물은 알량하긴 해도 초휴가 그나마 써먹을 수 있는 권력이었다. 그러자 마활이 미심쩍은 얼굴로 떠보듯이 물었다.
“나를 속이는 건 아니겠지? 듣자니 초씨 가문에서 광석을 무한정 캐내는 건 아니라던데, 그렇게 줘버리고 나면 아깝지 않겠느냐?”
산적이든 뭐든 간에 도적질에 나선 이상 필요한 장비는 갖춰야 했다. 수하들이 무장한 병기가 수적으로 모자라진 않지만 대부분 평범한 대장장이들이 만든 도검에 불과해 남산 광구에서 나오는 정련된 광석들로 만든 품질 좋은 것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남산 광구의 광석으로 만든 병기야말로 진정한 상등품인 것이다.
이번에 마활이 나선 것은 초휴를 죽이려 한 상대가 자신의 오랜 적수인 탓도 있었지만, 뭣보다도 초휴가 제시한 조건이 구미가 당겼기 때문이다.
초휴는 태연히 반문했다.
“마 채주, 오늘 저자들이 왜 나를 죽이려 했는지 당신도 잘 알 겁니다. 내가 죽어주길 바라는 자가 집안에 있어요. 그런데 내가 왜 그 망할 집안의 물건을 아껴야 한단 말이오?”
초휴는 종이 한 장을 건네며 말을 이었다.
“내 인장이 찍힌 명령서요. 채주께서 부하들을 남산으로 보내어 그걸 보여주면 정련된 광석을 싼값에 손에 넣을 거요. 하지만 빨리 움직이는 게 좋을 겁니다. 지금이야 내가 그곳 총관이지만 언제 바뀔지 모르니까요.”
종이를 손에 넣은 마활이 그제야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당신들 그 잘난 대갓집의 내부사정은 참으로 복잡하구만. 어쨌건 공자의 일처리가 이리도 시원시원하니 앞으로도 부탁할 게 있으면 나를 찾아오시오. 물론 그래 봤자 누구를 죽여 달라는 거겠지만, 나 기련(祁連)······ 아니, 마활의 밑에 있는 자들은 하나같이 솜씨가 끝내주니까.”
말을 마친 마활은 아직도 흩어져 싸움 중인 수하들을 불러 모아 그곳을 떠났다. 뒤에 남은 초휴는 사라져가는 마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기련? 도적? 정통 무공을 전수 받은 도적이라고?
문득 초휴는 무언가를 떠올려냈다. 상대방의 신분을 알 것 같았다. 고비 이 녀석은 운이 좋기도 하지. 아무 도적이나 데려오랬더니, 뜻밖에 생각지도 못한 거물을 물고 왔다.
마활의 일행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나자 초휴의 시선이 마차로 향했다. 그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감돌았다.
끝
ⓒ 봉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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