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03)
503화 유인과 말살
백한천이 방호를 만나려는 것 자체가 이번 일의 성공을 의미했다.
두 사람은 북지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으나, 극북표설성 안에서 만나지는 않았다. 방호가 백한천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서로 대면한 두 사람 모두 탄식을 금할 수 없었다. 그 옛날 사생결단을 낼 기세로 싸우던 상대와 손을 잡는 날이 올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백한천과 방호는 서로를 안 지 오래되었고 몇 번 겨뤄 본 일도 있었다. 북연 무림 세력 대부분이 손을 잡고 북방 삼십육대도를 말살하려 했을 때, 극북표설성이 그 주력 중 하나였으니 서로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직접 얼굴을 맞댔을 때 방호는 백한천에게 별로 적개심이 들지 않았다. 첫 번째 이유는 옛날 북방 삼십육대도 소탕은 북연 조정이 이끈 일이었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방호 또한 그 시절 북방 삼십육대도의 횡포가 지나쳤다고 생각해서였다. 그가 북연 종문이었다고 해도 참지 못하고 나섰을 것이다.
그러나 옛 원한을 따지지 않고 넘어가는 것과 백한천에게 호의적으로 대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백한천을 보자 방호는 냉소를 금하지 못했다.
“백한천, 옛날에는 도적 떼를 말살하겠답시고 기세등등해서 설치지 않았던가? 인제 와서 우리와 손을 잡아보시겠다?”
백한천 역시 냉소했다.
“손을 잡자고 달려온 것은 기련채 쪽이지. 취의장에게 당해 씨가 마를 꼴인 게 누구인지는 본인이 잘 알 텐데?”
두 사람이 으르렁거리며 기 싸움을 하자 초휴가 얼른 나섰다.
“두 분, 일단 고정하시지요. 이제부터 손을 잡아야 하니 옛 은원은 잠시 내려놓으십시오. 적을 보기도 전에 우리끼리 싸움이 붙는다면 한심하지 않습니까.”
백한천과 방호는 동시에 코웃음을 쳤다. 방호가 초휴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기련채 일은 모두 임엽 공자가 맡아 지휘하고 있으니, 임 공자와 이야기해.”
방호의 말에 백한천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기련채가 마도 애송이에게 전면적인 지휘를 맡겼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는 이 녀석이 그저 세객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는 그제야 뭔가 생각난 듯 초휴를 홱 돌아보았다.
“당신이 임엽이오? 하후씨 하후무강을 죽인 은마권의 그 임엽?”
“그렇습니다.”
방호가 신기한 듯 물었다.
“임 공자는 강호에서 퍽 이름이 있나 보군.”
백한천은 할 말을 잃었다.
‘방호 이 자는 바보인가, 아니면 바보 흉내를 내는 건가?’
자신이 모셔온 사람, 그것도 기련채 전부를 지휘할 권력을 넘겨준 준 사람에 대해 백한천 자신만큼도 모르고 있다니. 설마 농담을 하는 것도 아닐 텐데.
그러나 방호는 정말로 모르고 있었다. 기련채는 도적 무리일 뿐이었고 딱히 무림의 동향에 밝지도 않아서 마도에 얽힌 비밀까지는 몰랐다. 어쨌거나 임엽은 매경령이 보낸 사람이었고, 매경령이 그에게 나쁘게 할 리는 없지 않은가. 방호로서는 그것만 알면 족했다.
반면 백한천은 극북표설성 성주였다. 부옥산 정마대전에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마도가 다시금 떨쳐 일어났다는 소식은 강호에 널리 퍼져 있었다. 덕분에 정도 종문 사람 중 상당수가 임엽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이다. 임엽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지금까지와는 좀 달랐다.
“내가 임 공자를 소홀히 대했구려. 은마권에서 높은 대우를 받는 분인데 말이지. 은마 일맥의 대종인 음마종과 무상마종 또한 호의를 품고 있고, 옛날 마도의 거두였던 ‘옥면천마’ 위서애마저 극찬했다고 들었소. 부옥산 정마대전에서는 하후씨의 가장 뛰어난 제자였던 하후무강을 가볍게 죽였다지. 그대의 실력이면 용호방 십 위 안에는 너끈히 들 거요.”
방호는 말없이 백한천을 힐끗 바라보았다. 매경령은 임엽의 실력이면 용호방 오 위도 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초휴가 웃었다.
“다 허명에 불과하니 과찬은 거두어 주십시오. 두 분에 비하면 저는 어린 후배에 불과합니다.”
백한천은 말이 없었다. 정보가 틀리지 않는다면 이자는 은마 일맥이 심혈을 기울여 키우는 청년 준걸이었다. 지금은 후배지만 훗날 자신과 동급이 될 수도 있는 존재인 것이다. 그는 손을 내저었다.
“기련채 측이 임 공자에게 모두 맡겼다니, 그럼 계획을 들어봅시다.”
“백 성주께서 가세하셨으니 제 계획은 간단합니다. 유인과 말살, 이렇게 둘이지요. 섭인룡 부자가 신중한 만큼, 적을 유혹하려면 반드시 그럴듯한 미끼를 내걸어야 합니다. 이 미끼 역할은 방 채주께서 맡아 주셔야겠습니다. 취의장은 기련채의 주인이 방 채주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들이 가장 죽이고 싶어 하는 인물 역시 방 채주입니다. 방 채주는 저번에 ‘석장군’ 한패선과 싸워 다치셨지요. 물론 지금은 다 나으셨습니다. 그러니 아직 덜 나은 척하고 요양하는 척하십시오. 그렇게 취의장이 전력을 이끌고 나오도록 만든 다음 주변에 매복하고 계시면 됩니다.”
백한천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렇게 간단한 술수를 누가 모르겠는가. 취의장이 정말 이런 수에 걸려들까. 섭인룡과 섭동류 둘 다 요괴처럼 교활한 자들인데, 그리 쉽게 함정에 빠질 것 같지 않았다.
백한천의 생각을 눈치챈 초휴는 담담하게 말했다.
“백 성주, 걱정하지 마십시오. 취의장에 우리 편이 있습니다.”
초휴의 말을 들은 백한천의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명백히 수세에 몰린 상태인데도 취의장에 자기 사람을 심어 놓았다고?’
순간 취의장의 북지 침입 역시 그 ‘우리 편’이라는 자의 소행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백한천은 그 생각을 곧 지워 버렸다. 지금 거기에 의문을 가져봐야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는 이미 이 자리에 와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백한천이 싸우리라 결심하게 만든 것은 취의장 자체의 위협이었다. 설령 섭인룡이 북지를 침범할 것을 지시하지 않았다 한들, 취의장이 극북표설성의 이웃이 되면 쌍방이 평화롭게 공존하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임엽이 말했듯 위험이 닥치기 전에 숨통을 끊어 버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간단하고 명쾌한 방법이 아니겠는가.
* * *
며칠 후, 섭동류는 취의장의 임시 거점에 있던 중 연맹 소속 세력들이 또 명령을 어기고 제멋대로 북지를 침범했다는 보고를 들었다. 거듭된 사태에 섭동류의 인내심은 한계에 달했다. 그는 즉각 섭인룡을 찾아갔다.
“아버님, 이번에는 정말 단단히 혼을 내야겠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연맹의 기강이 땅에 떨어질 것 같습니다.”
섭인룡 역시 어두운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냥 둘 수는 없겠구나. 가서 그자들을 데려와라.”
묘춘무와 다른 자들이 불려왔을 때, 섭인룡이 훈계하기도 전에 묘춘무가 흥분에 들떠 입을 열었다.
“장주, 방호의 행방을 알아냈습니다! 기련채 잔당 대부분도 같이 있답니다!”
섭인룡은 잠시 멈칫했다가 얼른 물었다.
“그 말이 사실이오?”
“물론입니다! 그동안 한참을 뒤졌어도 기련채 잔당을 찾아내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북지에 숨어 있었더군요. 방호는 저번에 한 선배님과 싸워서 중상을 입었지요. 북지에서 진귀한 영약을 구해 상처를 치료하고 있다고 합니다. 먼젓번에 급하게 도망친 것도 방호의 상처가 도져서였다는군요. 장주, 이 틈을 놓치지 말고 놈들을 일망타진해야 합니다!”
섭인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꽁지가 빠져라 물러난 것을 보면 방호의 부상이 심각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방호가 북지에 있다면 아무래도 손을 쓰기 껄끄럽지 않은가. 백한천이 왔다 간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지금 북지에 들어간다? 그것도 이렇게 많은 사람을 이끌고 간다면 아무래도 오해가 생길 터였다. 이에 섭동류가 말했다.
“아버님, 일단 신중하게 처리하셔야 합니다. 사람을 보내 감시하고 있다가 적의 실력이 확실히 가늠되면 그때 움직이시지요.”
섭동류의 말에 묘춘무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임엽의 지시는 자신들이 매복한 곳까지 취의장 연맹을 유인해 오라는 것이었다. 그 일만 성공하면 그와 묘가는 무사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어떤 방법을 써야 할지 자세하게 말하지 않았으니, 일의 성패는 묘춘무 자신에게 달려 있었다. 이번 임무에 실패하면 그간의 잠복은 모두 헛고생이 될뿐더러, 묘가 역시 위험해지게 될 터였다.
순간 묘춘무는 기지가 발동해 이렇게 말했다.
“장주,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가 돌아올 때 무사 몇 명을 남겨 놈들을 지켜보게 했는데, 그 무사들의 실력이 너무 약합니다. 방호에게 언제 발각될지 모르는 일이라는 거죠. 만일 그들이 입 간수를 못 해 정보라도 누설하면 방호 무리는 다시 도주할 겁니다.”
섭인룡이 미간을 찡그렸다.
“기련채인 것을 알았으면 실력이 충분한 무사들을 보내야 했지 않소?”
묘춘무는 부끄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때는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여기 돌아와서야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즉각 사람들을 집결시켜 움직입시다. 동류, 가서 한 형을 모셔오거라. 이번에도 한 형께서 나서 주셔야 할 것 같다. 방호 정도의 실력자는 중상을 입었다 해도 가벼이 볼 수 없는 법이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테니까.”
섭동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패선을 모시러 갔다.
솔직히 말하면 사부 한패선은 그에게 잘 해주는 편이었다. 취의장에서 무슨 일을 부탁하면 한패선은 두말하지 않고 즉각 나서서 도와주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섭동류의 마음속에는 늘 모호한 감정 한 가닥이 안개처럼 남아 있었다. 어쩐지 심사가 편치 않았다.
* * *
취의장과 연맹 소속, 수십여 세력 무사들은 북지의 작은 성인 설련성 밖에 도착해서 성 전체를 포위했다. 설련성은 성 남쪽에서 북쪽까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매우 작고 평범한 토성이었다.
취의장 연맹의 총인원은 만 명이 되지 않았으나, 이, 만 명은 취의장 및 연맹 각 세력의 정예들이었다. 제일 약한 자도 선천경일 정도니 기련채를 말살하기는 어렵지 않을 터였다.
섭인룡 곁에는 훌쩍 큰 키에 검은 갑옷을 걸친 중년인이 서 있었다. 우람한 그의 기백은 웅혼하고 흉포하여 섭인룡보다도 위세가 늠름했다. 그는 섭동류의 사부인 북연 무림의 거두, ‘석장군’ 한패선이었다.
‘석장군’ 한패선이 섭동류를 제자로 받아들이자 북연 무사들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한패선과 섭동류는 성격이 너무도 다른데, 어떻게 사제 관계를 맺었단 말인가.
그러나 한패선이 섭동류를 받아들인 이유는 간단했다. 한패선은 평생의 절반을 조정에서, 나머지 절반을 강호에서 보냈다. 그는 단순하고 직접적인 성격이었으나 남에게 해를 당한 적도 무수히 많았다. 해서 전인으로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 인물을 들이고 싶었던 것이다. 남에게 허무하게 속아서 죽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섭동류는 자질도 썩 괜찮았고 머리도 잘 돌아갔으니 한패선이 생각한 조건에 딱 맞았다. 물론 이 두 가지를 충족할 만한 사람은 강호에 부지기수로 많았다. 한패선이 섭동류를 제자로서 중히 여기는 것은 남에게 굽힐 줄 모르는 독특한 기질이 있기 때문이었다.
초휴 같은 적이 보기에는 섭동류는 음험한 계략을 꾸미기 좋아하는 밉살맞은 놈이며, 무사로서의 날카로운 기질도 별로 없는 자였다. 그러나 섭동류의 심지가 강인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었다.
섭동류는 어려서부터 무수한 패배를 겪었고 초휴의 손에 좌절한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러나 조금도 기죽지 않고 그때마다 다시 일어섰다. 검왕성의 임개운처럼 한 번 타격받은 일로 완전히 무너져 폐인이 되는 일 따위는 절대 없는 것이다.
섭동류의 이런 기질은 한패선과 매우 닮은 것이었다. 한패선 자신도 젊었을 때는 일신의 능력만으로 천하에 이름을 떨치지는 못했다. 수 없는 싸움과 패배를 겪고서야 지금의 실력과 위치를 갖게 된 것이다. 섭동류가 한패선의 제자가 될 수 있었던 주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