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04)
504화 매복
한패선은 주먹을 문지르며 웃었다.
“뭘 더 기다리시오? 바로 움직이지요. 나도 방호 그놈과 다시 붙어 보고 싶소. 옛날 북방 삼십육대도를 소탕할 때, 나도 북연군에 있었지만, 그때는 나설 기회가 없었소. 북방 삼십육대도 중 별 명성도 없던 방호가 그렇게 강할 줄은 몰랐소. 저번에는 방심한 탓에 놓쳤지만, 이번에는 절대 빠져나가게 두지 않을 거요!”
먼젓번 한패선과 방호의 일전은 두 사람 다 방심한 상태였다고 할 수 있었다. 방호는 한패선이 나설 줄 몰랐고, 한패선 역시 방호가 그렇게 강할 줄은 몰랐다. 그러나 방호가 한패선의 전의에 불을 붙였으니, 다시 싸울 일이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섭동류는 미간을 찌푸렸으나 딱히 이상한 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는 섭인룡이 고개를 끄덕인 후에야 입을 열었다.
“갑시다. 기련채에서 우리를 발견하지 못하도록 기척을 숨기십시오. 한 놈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묘춘무가 말한 지점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설련성 안의 큰 저택으로, 수백 명이 머물 수 있는 곳이었다. 기련채의 정예는 그곳에 숨어서 힘을 회복하고 있다는 보고였다.
그러나 저택 앞에 도착했을 때, 돌연 걸음을 멈춘 섭인룡의 낯빛이 험악해졌다. 멈칫했던 섭동류 역시 안색이 변했다. 뭔가 이상한 점을 느낀 것이다.
저택 주변의 길거리가 너무 조용하지 않은가. 너무나 조용한 나머지 텅텅 비어서 인적이 전혀 없으니 참으로 괴이쩍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기련채에서 자신들이 완벽히 몸을 숨기려고 주변의 집을 다 사버렸을 수도 있다. 그러면 그들을 알아보는 자들이 없을 테니까. 그러나 그런 짓을 해 봐야 눈 가리고 아웅 아닌가. 골목 하나를 다 사서 숨는다니, 이보다 더 눈에 띄고 이보다 더 멍청한 짓이 있을까.
기련채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렇게 멍청한 일을 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답은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뿐이었다.
섭인룡과 섭동류는 무의식적으로 묘춘무 쪽을 바라보았다. 제일 처음 여기를 발견한 자가 묘춘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적극적이었던 묘춘무가 지금은 아주 얌전하게 대오의 맨 뒤에서 따라오고 있지 않은가.
섭인룡과 섭동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막 철수 명령을 내리려는 순간, 길에서 얼음처럼 새파란 진법의 빛이 번쩍였다. 천지 원기가 무수히 모여들더니 장창 같은 고드름으로 변해 취의장 연맹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매복이다! 조심해!”
섭인룡이 노호했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장창처럼 쏟아진 고드름은 순식간에 연맹 무사들을 삼할 가까이 꿰뚫었다. 고드름은 진법이 더해져 비할 바 없이 예리했으며 진기를 찢어발기는 효과까지 있었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그대로 죽을 것이 뻔했다. 그리고 진법이 발동되는 순간, 이미 모습을 드러내고 길을 빽빽하게 메웠던 무사들이 취의장 연맹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방호는 거대한 붉은색 장창을 들고 산을 부술 듯한 기세로 한패선을 향해 뛰어내렸다. 시뻘건 강기와 불처럼 뜨거운 기운을 두른 장창의 일격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운석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한패선은 몸에 황금빛 강기를 두르는가 싶더니 두 손을 합쳐 인을 맺었다. 거대한 망치로 짓부수는 듯한 굉음이 들리면서 천지 원기가 단숨에 폭발했다. 전력을 다한 일격에 쌍방 모두 강기가 흩어졌다. 그야말로 백중지세였다.
방호가 나선 그 순간 백한천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무기를 쓰지 않았다. 백한천이 일장을 내지를 때마다 주위에는 눈꽃이 흩날렸고, 가득 모인 눈꽃들이 칼끝처럼 강기를 찢어발기며 기혈을 쇠약해지게 만들었다. 매우 신비한 무공이었다.
섭인룡은 건곤능운으로 천지의 힘을 조종하여 눈꽃을 막아내다가, 백한천을 보고 대로하여 외쳤다.
“백한천, 미쳤소? 기련채 도적 떼와 손을 잡고 취의장과 대적하다니!”
진법이 출현한 순간부터 섭인룡은 극북표설성이 나선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다. 극북표설성의 간판 진법인 빙살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정도 사소한 일로 극북표설성이 취의장에 싸움을 걸 이유가 없지 않은가.
결과적으로는 섭인룡의 추측이 틀렸다. 극북표설성은 이 싸움에 가세했고, 그저 나서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죽일 생각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백한천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미치긴 뭘 미쳐! 제정신이니 나선 거지. 섭인룡, 당신이 연동 땅에서 얌전히 취의장이나 꾸리고 있었으면 나도 귀찮게 이러지 않을 거요. 그러나 우리 북지를 건드렸으니 나도 북지 종문들에게 할 말이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사실 극북표설성이 나선 것은 취의장의 세력 확장을 경계해서였으나, 대놓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인 거지만, 명분으로는 휘하 세력의 억울함을 풀어주려고 나선 것이어야 했다. 명성을 관리하는 일은 취의장만이 아니라 극북표설성한테도 중요했다.
공격을 막는 섭인룡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백한천의 헛소리를 믿지 않았다. 극북표설성이 그렇게까지 헌신적이라고? 제 구역의 무림 세력들을 위해 취의장과 정면으로 맞설 정도로? 어쨌든 가장 중요한 부분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극북표설성은 어쩌다 방호와 결탁한 것일까. 두 세력은 친분이 없을뿐더러 심지어 옛날에는 원수지간이었는데.
섭인룡은 건곤능운수를 극한까지 펼쳐 공격보다 방어에 치중하기 시작했다. 백한천을 대적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정신력으로 전장의 다른 곳을 살피기 위함이었다. 취의장 연맹은 진법에 기습당해 상당수가 죽은 데다가, 극북표설성과 기련채의 연합 공격을 상대하느라 열세에 처해 있었다. 더는 기련채 말살을 고집할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야 할 것은 여기서 살아나가는 방법이었다.
“백한천, 극북표설성은 정말 취의장과 끝까지 싸울 셈이오?”
섭인룡이 으르렁거리자 백한천은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아니지. 그럴 속셈이 내게 있어도 그걸 실행하기는 무리요. 당신을 죽일 수도 없고 취의장을 멸망시키기도 어렵지. 하지만 그리 쉽게 떠날 수는 없을걸.”
만일 취의장을 없애 버릴 수 있다면 더 지독한 수를 써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섭인룡과 죽기 살기로 싸웠을 때 정말 그를 죽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고, 극북표설성 역시 어느 정도 손실을 보는 게 불가피할 터였다. 그러니 지금 가장 안전한 길은 취의장에 중대한 타격을 입혀 십여 년, 어쩌면 수십 년 동안 북진할 엄두를 못 내게 만드는 것이었다.
섭인룡은 길게 탄식했다.
“백한천, 내가 졌소. 그러나 누구 손에 졌는지는 알아야겠소! 기련채가 갑자기 물러났을 때부터 이상했지. 분명 누군가 어둠 속에서 계략을 짠 것인데 그게 대체 누구요? 몰래 계략을 짜는 것은 당신답지 않고, 방호는 일개 무부에 불과하니 그럴 머리가 없지. 도대체 누가 취의장을 함정에 빠뜨린 거요?”
취의장을 함정에 빠뜨린 자의 수법은 간단했으나, 취의장 최대의 급소를 단번에 파고들었다. 그것은 바로 연맹의 취약함이었다. 누군가 취의장을 계략으로 함정에 빠뜨렸음이 분명한데 기련채에는 그럴 만한 사람이 없었다. 있었다면 산채 지부가 몇 개씩 사라지도록 보고만 있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백한천의 눈에 기이한 빛이 떠올랐다. 그는 기련채와 손을 잡기는 했으나 방호에게는 별 호감이 없었다. 섭인룡의 물음에 백한천은 다른 쪽을 바라보며 허허 웃었다.
“저분이지. 마도 은마 일맥의 준걸인 임엽의 이름은 들어 봤을 거요. 방호가 은마권에 도움을 청해서 모셔 왔소. 그간 기련채가 취의장과 겨뤄온 것도 방호가 아니라 저 사람이 지휘한 거요.”
백한천은 취의장에 타격을 입히고 그 야심을 눌러서 덤비지 못하게 만들 생각일 뿐, 나머지는 알 바 아니었다. 오히려 취의장과 기련채가 죽도록 싸워 둘 다 타격을 입는다면 그로서는 더 좋은 일이었다.
“이 죽일 놈의 마도 요물아!”
섭인룡은 검은 옷에 가면을 쓴 초휴를 노려보았다. 백한천이 없다면 초휴를 산 채로 찢어 죽이고 싶을 지경이었다. 방호가 대체 무슨 수로 마도 놈들과 결탁한 것일까? 제삼자가 끼어들었다는 것을 알았으면 백 배는 더 조심해서 움직였을 텐데. 적은 숨어 있고 자신들은 대놓고 움직인 탓에 이렇듯 처참하게 당하고 만 것이다.
초휴는 섭인룡이 쳐다보건 말건 섭동류를 뚫어지도록 보고 있었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섭동류를 공격하려 했으나 백무기에게 선수를 빼앗겨 버렸다.
백무기와 섭동류, 이 둘이 이처럼 겨루는 건 선천경 이전에나 있었던 일이다. 둘은 몇 차례 겨뤄 보았으나 백무기는 한 번도 우세를 점하지 못했다. 그러나 오래도록 폐관 수련을 한 백무기는 자신이 섭동류보다 못할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
백무기가 창을 들고 덮쳐 오는 것을 보면서, 섭동류가 냉정하게 말했다.
“극북표설성의 이번 수는 제법이군. 기련채 같은 도적 떼와 손을 잡고 취의장을 공격하다니. 이번에는 잠시 방심하여 손해를 보았다만 후일 이 빚은 반드시 돌려줄 것이다!”
“섭동류, 잡소리가 많구나. 후일이 어쨌다고? 그런 말은 살아서 이곳을 벗어난 뒤에 해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백무기의 손에 들린 장창이 날카로운 한풍과 함께 굉음을 울리며 내리꽂혔다. 기세 높고 차가운 강기가 뼛속까지 얼릴 듯했으나, 섭동류가 건곤능운수를 펼치자 실처럼 무수한 강기가 빙글 돌며 퍼져 나왔다. 그러자 거대한 힘이 실린 백무기의 창이 공중에 붙들려 털끝만큼도 움직이지 못했다.
백무기의 안색이 확 변했다.
‘섭동류가 이렇게 강했단 말인가.’
그러나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섭동류의 양손에서 눈부신 금빛 강기가 터져 나왔다. 이어서 그가 손을 들어 백무기의 장창을 잡더니 금빛 강기를 폭발시키며 장창을 확 휘둘렀다. 이에 백무기는 그대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섭동류는 백무기가 쉴 틈도 없이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한여름의 햇볕이 작열하듯 사납고 압도적인 기세였다. 그것은 취의장의 무공이 아니라 한패선의 호양구극현공이었다.
이때 백무기의 눈에서 빙백의 한광이 확 퍼져 나왔다. 그는 빙백신목의 힘을 곧장 섭동류의 머리로 흘려보내 원신을 얼어붙게 만들려 했다. 그러나 섭동류의 몸은 호양강기로 둘러싸여 있었다. 빙백신목은 제대로 전개되기도 전에 섭동류의 호양강기에 막혀 사라졌다.
본래 한패선의 호양구극현공은 위력만 놓고 보면 초휴의 구소연마금신은 물론이고 대금강신력보다도 못했다.
호양구극현공의 유일한 장점은 전체적으로 드러나는 약점이 없다는 것이었다. 엄청난 기세로 내질러진 섭동류의 주먹이 백무기를 날려 보내며 주변 가옥까지 무너뜨렸다.
백무기는 노호하며 손에 쥔 장창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혼도 얼게 할듯한 한빙강기가 백무기를 중심으로 수십 장을 퍼져 나오자 유월에 날리는 서리처럼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섭동류는 백무기가 아무리 전력을 다한들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섭동류의 손에서 금빛 강기가 번쩍이더니 호양구극현공이 극한까지 발휘되었다.
백무기도 근접전에 능하기는 했으나 섭동류에게 완전히 압도당하고 말았다.
섭동류의 건곤능운수에는 강인함과 부드러움이 어우러져 있었다. 어떻게 봐도 그의 실력이 백무기보다 한 수 위였다. 백무기는 좌절감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심백의 일격에 패했던 때보다도 더 심했다. 어쨌거나 심백은 낯선 인물이었다. 그러나 섭동류는 어렸을 때부터 안면이 있던 사이인데 어째 갈수록 차이가 더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백무기가 노호하자 손에 들린 장창이 핏빛으로 물들며 광채를 발했다. 싸늘하게 엉긴 핏빛이 거대한 용처럼 꿈틀대며 섭동류를 향해 찔러 들어갔다. 섭동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용없다, 백무기. 너는 어려서부터 승복할 줄을 몰랐지. 네 가장 큰 결점이 뭔지 알아? 너 자신을 모른다는 거다! 나는 지금껏 널 상대로 전력을 다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무의미한 싸움을 하기 싫어서였지. 하지만 제대로 붙어서 나를 이길 수 있으리라고 진심으로 믿었던 거냐?”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섭동류의 손에서 건곤의 힘이 거꾸로 돌더니, 소용돌이치며 조여드는 금빛 강기가 백무기의 장창을 박살 내 버렸다. 백무기가 울컥 선혈을 토하며 물러나자 섭동류의 눈에 살기가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