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05)
505화 반드시 죽일 자
지금까지 섭동류는 백무기와 싸우면서도 어느 정도 힘을 조절해 왔다. 일을 크게 만들기 싫어서였다. 극북표설성과 취의장은 북연의 큰 종문이고, 지금까지는 거리도 멀었으므로 별 충돌도 없었다. 이런 판에 섭동류가 백무기를 죽인다면 극북표설성은 취의장과 불구대천의 원수가 될 게 아닌가.
하지만 지금 극북표설성은 기련채와 손을 잡고 취의장을 함정에 빠뜨렸다. 의기양양했던 취의장 연맹은 이미 심각한 타격을 입은 상태다. 이제 양측은 용납 못할 원수가 된 판이니, 섭동류는 더는 사정을 봐줄 생각이 없었다.
바로 그때, 흉흉한 마기가 섭동류 뒤편에서 용솟음쳤다. 섭동류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오로지 강기로만 만들어진 기이한 법상이 공중에 떠 있었다. 왼쪽은 마의 불꽃이 충천하고 오른쪽은 부처의 빛으로 번쩍이는 법상이 내리치는 일장에는 마와 불의 힘이 섞여 있었다.
섭동류는 그 강대한 힘에 깜짝 놀라 즉각 호양구극현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려서 방어했다. 끝없는 금빛 강기가 섭동유를 감싸면서 작은 태양 같은 형상을 만들었다. 그러나 초휴의 마라금강상 앞에서 섭동류의 금빛 강기는 단번에 부서져 버렸다. 섭동류는 피를 왈칵 토하며 경악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자다!”
그는 상대를 알아보았다. 물론 섭동류가 알아본 ‘그자’의 정체는 초휴가 아니라 임엽이라는 자였다. 부옥산 정마대전에서 하후무강을 죽여 하후진을 격노하게 했던 바로 ‘그자’ 말이다.
순간적으로 섭동류는 전후 사정을 완전히 깨달았다. 기련채는 극북표설성이 아니라 은마를 끌어들인 것이다!
섭동류의 희미한 기억으로는 이 임엽이란 자는 부옥산 정마대전 당시 고작 오기조원의 경지였다. 그런데 지금은 천인합일에 이르러 이렇게 두려운 힘을 발휘하고 있으니 놀랍기 그지없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섭동류는 두말하지 않고 곧장 몸을 돌려 도망쳤다. 지금 실력으로 천인합일인 상대와 싸워서 이길 자신은 전혀 없었다. 임엽은 은마권에서 한껏 공들여 키우는 무사가 아닌가. 천인합일이라면 어쩌면 실력으로는 무도종사의 수준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자와 정면 대결하는 것은 자살 행위였다.
그러나 섭동류는 초휴의 눈에서 싸늘하게 번뜩이는 살기를 보지 못했다. 지금 초휴의 눈은 조금 전 섭동류가 백무기를 보던 것과 똑같았다.
초휴와 섭동류는 일찌감치 원수지간이었다. 그는 옛날 취의장에 쫓기던 때의 처절한 기억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초휴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 아닌지라 원한이 생기면 반드시 갚아 주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간 몇 번이나 시기가 어긋나거나 섭동류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바람에 빈번히 기회를 놓쳤다.
섭인룡과 한패선이 모두 다른 자를 상대하는데 묶인 지금 섭동류는 고립무원이었다. 초휴가 손을 쓸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만일 이번에도 섭동류가 살아남는다면 그야말로 천운을 타고 태어났다고 해야 할 것이니, 여봉선보다도 운이 더 좋다고 해야 할지도 몰랐다.
초휴는 섭동류의 움직임을 보면서 양손으로 인을 맺었다. 정신력이 무수한 실선처럼 겹겹이 얽히며 섭동류에게 쏘아져서 그의 원신을 옭아맸다.
섭혼구대식의 견사혼망이었다!
옛날 정신력이 약했을 때는 견사혼망으로 정보를 알아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지금 초휴가 펼친 견사혼망은 섭동류의 움직임을 완전히 멈춰버렸다.
섭동류는 혼백이 고스란히 몸에서 뽑혀 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가 고함을 지르자 주변에 붉은 기운이 차올랐다. 과감하게 기혈을 태워 견사혼망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초휴는 이미 그의 코앞에 와있었다. 그가 양손으로 인을 맺자 흉악한 기운이 뭉쳐 진옥명왕법상의 형상이 만들어지더니, 명왕인으로 섭동류의 머리를 내리쳤다. 진옥명왕법상의 힘이 어찌나 강했던지 내리치는 순간 천지 원기가 폭발하는 소리가 났다. 그야말로 지옥을 진압하러 온 명왕이 사악한 마귀를 주살하는 듯한 기세였다.
기실 대금강신력의 법상 중 초휴가 가장 잘 흉내 낼 수 있는 것은 마라금강상이었다. 그는 본래부터 불도와 마도의 무공을 함께 수련했으므로 마라금강상을 쓰면 적어도 구할 이상의 위력을 낼 수 있었다. 다른 법상은 모두 남이 만든 것인지라 초휴가 그 기풍을 그대로 구현하기는 힘들었다. 진옥명왕상으로도 구할의 힘과 일할의 기풍이나마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은 종현 덕분이었다.
종현은 오로지 명왕인 하나로 강호에 이름을 떨쳤고, 가장 간단한 명왕인으로 무수한 변형을 만들어 냈는데 그중 하나가 진옥명왕이었다.
종현과 싸웠을 때 체험한 진옥명왕인의 공포는 초휴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방금 펼친 것도 종현의 진옥명왕인을 빌려와 자신의 진옥명왕상을 보충한 결과였다.
섭동류는 진옥명왕상에 맞서 전신의 기혈을 태워 건곤능운수를 전개했다. 금빛 강기와 기혈의 힘이 엉켜 들며 인을 막아내려 했다. 그러나 초휴의 진옥명왕상 앞에서 더는 버티지 못하고 강기가 깨져 나가며 기혈이 흩어졌다.
두 팔이 막강한 힘을 이겨내지 못해 뒤틀리다가 결국 터져 버리자 섭동류는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 * *
사실 섭동류는 초휴와 닮은 점이 많았다. 두 사람 모두 마음이 독하고 수단이 악랄했으며, 심계가 깊었고, 계략을 잘 꾸몄다. 유일한 차이는 힘에 대한 견해였다.
강대한 힘 앞에서는 어떤 책략도 무용지물이다. 해서 초휴는 주먹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면 굳이 머리를 쓰지 않았다.
명왕인 단 하나만을 사용하는, 머리 한 번 굴려 본 적 없는 종현은 꽉 막히고 막무가내인 사람이다. 그런 그라도 힘만 제대로 발휘한다면 어떤 음모나 국면이든 다 부숴 버릴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섭동류는 달랐다. 그는 자신의 자잘한 수완을 너무 믿었고, 한패선을 스승으로 모시면서도 그의 패기는 본받지 못했다. 용호방 오 위권에 드는 사람 중 한 명이라도 음모와 책략에 기대서 이름을 올린 자가 없었다. 섭동류는 그 점을 몰랐다. 그는 정력 대부분을 음모와 책략을 꾸미는 데 쏟아부었고, 그 결과 초휴에게 어떤 반격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물론 고된 수련에 전념했어도 소용없었을 것이다. 섭동류가 타고난 자질은 그리 대단한 것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력이 좀 더 강했다면 발버둥을 쳐 볼 여지라도 있었을 터였다.
지금은 그럴 기회라곤 일 점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어차피 다 소용없는 이야기였다. 섭동류는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으니.
그는 이미 두 팔이 망가졌으니 이미 반쯤은 폐인이 된 격이었다. 빠르게 덮쳐 오는 초휴의 그림자를 바라보는 섭동류의 눈에 절망의 기색이 스쳤다. 자신이 이렇게 죽으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패배가 아닌가. 분명 모든 것이 계산대로였는데 생각지도 못한 매복에 당했고, 난데없이 마도 놈이 나타나서 살기를 마구 드러냈으니 말이다.
섭동류는 상대방의 살기가 자신을 완전히 죽여없애려는 종류임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자신을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보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자와의 사이에 무슨 은원이 있었던지 기억은 전혀 나지 않았다. 왜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자신을 죽이려 드는 것일까?
하지만 이미 그런 문제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지금 섭동류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도망치자!, 도망쳐서 목숨을 부지해야 한다!’
그러나 두 팔이 망가지고 정혈까지 다 타 버린 섭동류가 어디로 도망칠 수 있겠는가? 충천한 마염으로 덮인 그림자가 이미 코앞에 있었다. 섭동류의 눈은 절망으로 가득 찼다. 섭동류의 상황을 모두가 보고 있었으나 아무도 그를 도와줄 수 없었다.
본래는 취의장 연맹 쪽의 인원이 많았지만, 지금은 극북표설성과 합류한 기련채가 연맹의 숫자를 압도했다.
한패선은 방호에게 완전히 묶인 바람에 손을 쓰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다.
섭인룡은 섭동류가 위기에 처한 것을 보고 완전히 광포해졌다. 그는 찢어질 듯 눈을 치켜뜨고 백한천을 노려보았다.
“비켜!”
그에게 자식이라곤 섭동류 하나뿐이었다. 섭인룡은 엄청난 심혈을 기울여 섭동류를 키워왔다. 섭동류는 섭인룡의 아들일뿐더러 취의장을 이어받을 계승자인 동시에 미래의 희망이었다. 온갖 고생을 하며 책략을 꾸며서 취의장의 기반을 닦으려 한 것도 전부 섭동류를 위해서였다.
만일 섭동류가 죽는다면 이 모든 것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 취의장의 무사들에게? 아니, 취의장을 이어받을 자는 오로지 섭가뿐이다.
백한천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담담히 섭인룡에게 응수했다.
“섭 장주, 서두르지 마시구려. 아직 승부가 나지 않았잖소. 후배들의 싸움은 그들끼리 해결하게 놔두는 게 옳은 일이지.”
사실 섭동류가 죽는 건 백한천에게는 달가운 일이었다. 백무기가 섭동류에게 패한 것을 본 뒤로는 더욱 그랬다. 강호의 각 문파는 지금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를 생각하기 마련이고 다음 세대의 승부를 더욱 중시하는 법이다. 지금은 상대보다 못하더라도, 다음 세대에 뛰어난 제자를 배출할 수 있다면 그때 진정한 승부가 결정되지 않겠는가.
백무기의 실력과 능력도 그리 떨어지는 편은 아니었으나 섭동류에 비하면 한참 아래였다. 백한천은 백무기가 자신을 계승해 극북표설성을 책임자가 되어서도 섭동류를 넘어서지 못하는 상황을 걱정하던 참이었다. 그러니 섭동류가 지금 죽어준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겠는가.
“꺼져!”
섭인룡이 노호하며 온몸의 기혈을 불태웠다. 내리꽂는 일장의 기세가 하늘의 해마저 가리는 듯했고, 건곤능운수의 위력에 별자리까지 움직이는 것 같았다. 무궁한 천지 원기와 기혈의 힘이 한데 모여들자 백한천의 안색이 변했다.
‘이자가 미쳤나? 이렇게까지 나오다니!’
그는 섭인룡 같은 위군자가 아들을 위해 이렇게 큰 희생을 무릅쓰려 할 줄은 몰랐다. 이렇게 급속도로 정혈을 불태우면 원기가 심각하게 손상될 터였다.
섭인룡은 목숨을 걸었으나 백한천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해서 섭인룡이 필사의 공격을 가하자, 백한천은 수인을 맺어서 거울처럼 얼어붙어 몸을 보호하는 한빙강기를 일으키며 물러났다. 그러나 별자리마저 떨어뜨릴 듯한 일장의 위력에 백한천의 한빙강기는 가루가 되어 깨져 나갔고, 그는 사정없이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섭인룡은 더는 그에게 신경쓰지 않고 곧장 초휴한테 달려갔다. 양손의 한쪽에는 맑은 기운, 한쪽에는 탁한 기운이 얽히고설켜, 온몸을 둘러싸고 백 장을 넘게 이어져 있었다. 건곤능운수의 힘이 두 마리 거대한 용처럼 구불대며 초휴를 향해 덮쳐들었다.
초휴는 미간을 찡그렸다. 섭동류를 위해 이렇게까지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다니, 아들을 구하지 못할뿐더러, 거기에 더해 본인이 다칠 수 있다는 생각도 안 한단 말인가.
백한천도 별 쓸모없는 자였다. 그가 전력으로 섭인룡을 막아 주었다면, 자신이 섭동류를 죽인 후 뒤에서 기습하여 섭인룡까지 해치울 수 있을 텐데. 그러면 이 싸움으로 취의장은 완전히 멸망하는 셈이 아닌가.
그런 생각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지금의 초휴는 무도종사와 맞설 만한, 다시 말해 무도종사에게 타격을 입힐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섭인룡과 정면으로 싸우면 이길 수 없을지 몰라도 배후에서 기습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백한천이 한심한 탓에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거대한 용을 닮은 두 줄기 강기가 덮쳐 오는 것을 본 초휴의 눈에서 살기가 끓어올랐다.
‘오늘 섭동류는 이 자리에서 죽는다. 이는 그 누구도 막지 못할 것이다!’
순간 초휴의 눈에 떠올랐던 살기가 사라지더니, 심마륜전대법과 천절지멸이혼대법이 극한까지 펼쳐졌다. 초휴의 눈이 동굴 속 심연처럼 어둡게 가라앉으며 무형의 정신력이 눈앞에서 엉기더니 칠현금을 만들어 냈다.
칠현금의 현을 튕기자 기이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금까지는 진혼유명곡을 쓰면서 정신력을 온전히 쏟아부은 적이 없었다. 이렇게까지 온 힘을 다해서 출수를 감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본래는 아무 형상도 없던 진혼유명곡이 모든 사람의 귀를 파고들었다. 평범한 사람이 듣기에는 주정뱅이의 말소리 같았으나, 섭인룡에게는 영혼 깊이 파고들어 온몸의 강기를 무너뜨리는 소리였다. 그의 기세가 점점 약해지더니 용 같던 강기가 쉴 새 없이 벌벌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