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14)
514화 살수 한곡과 송소
섭인룡이 발언한 제자를 차가운 눈으로 보더니 입을 열었다.
“북연 천지를 통틀어 용한 점쟁이가 원길 하나뿐이라더냐? 다른 자를 물색하면 되지 않느냔 말이다! 만약 그만한 자가 없다면 풍만루에 가서 거기 점쟁이라도 달라는 대로 돈을 처발라 데려오란 말이다! 그리고 청룡회 쪽은 네가 그런 것까지 신경 쓸 것 없다. 놈의 목만 딸 수 있다면 액수가 얼마든 간에 줄 의향이 있으니까!”
돌연 ‘쿵’하는 소리와 함께 섭인룡이 발을 구르자 바닥이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힘을 가했더라면 방 전체가 무너져 내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방 안의 제자들은 혼비백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장주가 단단히 미쳐가는 꼴이 아닌가. 그러나 어쩌겠는가. 아까 그가 집어던져 박살 난 물건들 꼴이 되지 않으려면 찍소리 말고 따를 수밖에.
이처럼 강호에 풍파가 가라앉기도 전에 얼추 진기를 회복한 초휴는 다시 여정에 올랐다. 최락 무리의 죽음이 다른 추적자들에게 타산지석의 교훈을 남긴 때문인지, 아니면 섭인룡이 추살을 포기해서인지는 몰라도, 이미 수일이 지나도록 초휴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취의장이 자체적으로 파견한 추격대도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처럼 순조롭게 관중형당으로 돌아가는 길을 밟던 어느 날, 시장기를 느낀 그는 먹거리를 찾기 위해 인근 마을에 들어섰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도 그를 알아보거나 노리는 자가 전혀 없는 것으로 봐서, 이제 추살의 위협에서 벗어났다고 추측해봄직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맘 놓고 발걸음을 늦출 순 없었다. 그는 체력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전력을 다해 앞만 보며 갔다.
날이 저물 무렵, 하늘색을 살펴보니 먹구름이 꾸물꾸물 모여드는 모양새가 한차례 폭우가 쏟아질 모양이었다. 비가 오는 건 상관없지만 배고픔은 참기 어려웠다. 해서 사방을 둘러보니 저쪽 길가에 다 쓰러져가는 도관이 보였다.
배도 채우고 휴식도 취할 생각으로 그곳에 들어서니, 이미 꽤 여러 명이 들어앉아 있었다. 누가 봐도 별개의 무리인 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그들은 확연히 떨어져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쪽은 강호 곳곳을 오가는 표사들이고, 다른 한쪽은 작은 가문의 상단인 듯했다.
표사들은 하나같이 강호 밑바닥을 전전하는 자들답게 거칠고 저속했다. 구운 건량과 술을 먹고 마시며, 욕설을 섞어가며 강호의 이런저런 얘기들을 떠들어대는 꼬락서니는 결코 단정하다 할 수 없었다.
반면, 상단 쪽은 꽤 질서가 잡힌 모습이었다. 하인들은 쉬고 있고, 총관으로 보이는 몇 사람이 젊은 공자 옆에서 뭐라 뭐라 점잖게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이런 광경은 어디서나 흔하게 보는 것이다. 아무리 규모가 작은 가문이어도 웬만해서는 자기 자식을 버릇없고 나약하게 키우려 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해서 자식이 성인이 되면 가업에 참여하게 했고, 자식의 능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동참시키는 게 관례처럼 되어있었다.
그런데 이 집안의 공자는 아무래도 상단을 따라나선 게 이번이 처음인 모양이었다. 뭐가 그리 못마땅한지 연신 불평만 늘어놓고 있었다.
한창 그러던 중에 초휴가 들어서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싸늘한 코웃음부터 터뜨렸다. 이 도관에 사람이 더 들어오는 게 싫어서 그를 쫓아낼 심산이었다. 별로 크지도 않은 도관을 교양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저 표사들과 나눠 써야 한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열이 확 뻗쳤었다.
하지만 저들의 머릿수가 워낙 많은지라 자칫 시비라도 벌어졌다가는 낭패만 볼 게 뻔했다. 승산 없는 싸움을 벌이느니 차라리 눈과 귀를 막고 참는 쪽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달랑 혼자 몸으로 들어온 저자라면 얘기가 다르지 않은가. 후줄근한 명주옷에다 낡아빠진 삿갓을 푹 눌러쓴 행색은 얼핏 봐도 무림의 고인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니 말이다. 저 정도라면 충분히 건드려봄직 하다는 생각에 절로 공자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자 낌새를 눈치챈 총관이 그를 만류했다.
“공자님, 일단 집 밖으로 나오면 아무나 건드려서는 안 됩니다.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고요. 평소 가주님이 신신당부하셨건만, 벌써 잊으신 겁니까?”
총관이 가주를 들먹이자 공자가 찍소리도 못하고 어깨에 줬던 힘을 뺐다. 초휴는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복면을 살짝 젖혀 입만 드러낸 채 건량을 먹기 시작했다. 삿갓을 깊이 눌러쓴지라 아무도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표사들도 힐끗 그를 한번 쳐다봤을 뿐, 이내 관심을 거두고 하던 얘기를 계속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중 한 사람이 침을 튀겨가며 말했다.
“형제들, 그 임엽이라는 마두에 대해 들어봤나? 요즘 그자에 관한 소문으로 온 강호가 들썩거릴 정도라니까. 듣자니 곤륜마교의 적통 승계자라더군. 그 손속이 어찌나 악랄하고 실력은 또 어찌나 고강한 지, 취의장 장주가 자기 자리까지 상으로 걸고 잡으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거 아닌가.”
“그게 정말이야? 곤륜마교가 망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승계자 따위가 남아있단 말인가? 아무래도 자네가 강호의 근거 없는 소문을 너무 많이 주워들은 거로구먼.”
동료 표사가 반박하자 그는 부쩍 더 언성을 높였다.
“참말이라니까! 한번 생각들 해보라고. 곤륜마교의 후예가 아닌 이상, 그처럼 강한 실력이 나올 리가 없잖아. 나와 친한 지인 중에 ‘유화공자’ 최락과 행동을 같이했다가 요행히 살아남은 자가 있어. 그 일전이 엄청나게 처참했다더라고. 묘옥관의 묘현진인은 마공을 맞고 비쩍 말라 죽었고, 대광명사 무승과도 맞짱 뜰 만큼 무쇠 덩어리 같은 몸을 가진 ‘거령장’ 맹강도 온몸의 뼈가 절반이나 으스러져서 숨이 끊어졌다지 뭔가. ‘유화공자’ 최락은 비술을 써가면서까지 사력을 다했지만 지레 지쳐 죽고 말았다지.”
그는 말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는 듯 몸을 오들오들 떠는 시늉을 하면서 말했다.
“임엽 그자는 키가 구 척이나 되는 데다, 얼굴엔 푸른 기운이 돌고 이빨은 승냥이같이 날카로운 게 영락없는 천마의 상이라고 하네. 그자와 눈만 마주쳐도 혼의 절반이 빠져나간다는 거야. 그 정도 실력이면 무도종사도 저리 가라 아니겠나? 나는 상상만으로도 살이 떨린다네!”
이에 그의 말을 들은 표사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양노삼, 꼴같잖은 허풍이 또 시작됐구먼. 툭하면 형제니 친척이 어쨌다고 마구잡이로 떠벌리더니 이번에는 친한 지인인가? 유화공자와 함께 출수할 정도의 고강한 실력자라면 아무리 약해도 오기조원은 돼야 할 텐데, 그런 고수가 선천경도 못 된 자네 따위의 주변에 있을 리가 없잖은가. 오기조원 무사가 자네의 지인이라고? 지나가던 소가 발랑 땅에 누워 배를 드러내고 웃다가 숨이 막혀 죽을 이야기구먼. 말 같잖은 거짓말은 정도껏 하게.”
그러자 양노삼이라 불린 자가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반박했다.
“네깟 놈들이 뭘 안다고 함부로 씨불여? 그 고매한 고수들이 네놈들처럼 보는 눈이 천박한 줄 알아! 나와 그 지인은 어릴 때부터 같이 놀며 자란 사이라고. 내 실력이 자기보다 처진다고 해서 막 무시하고 그럴 인간이 아니라니까! 고향으로 돌아올 때마다 번번이 술도 사주고 꼬박꼬박 날 형님이라고 불러준다고.”
주위의 표사들은 이런 대화를 계속 이어가더니 갑자기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그 바람에 도관 안은 비록 칙칙하긴 해도 나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띠었다. 하지만 그 젊은 공자만은 못내 그들이 못마땅했던지 입을 삐죽대며 옆의 총관에게 속삭였다.
“천박한 놈들 같으니라고! 터진 입이라고 지금 저걸 말이라고 하고 앉았나? 요사스러운 마도 놈을 저렇게까지 치켜세워줄 건 또 뭐람. 천지 분간도 못 하는 것들 같으니.”
순간 도관 내의 사람들은 갑자기 한기가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분명 모닥불을 피어놓았는데도 그 열기를 뚫고 들어온 한기였다. 초휴도 먹던 건량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그 한기는 초휴가 일으킨 게 아니었다. 그가 비록 대인배는 아니어도 무식한 하층 강호인들이 자기 얘기 몇 마디 했다고 해서 손을 볼 정도로 속이 좁진 않았다.
이때 매서우리만치 차가운 한풍이 몰아치며 도관 문이 벌컥 열렸다. 뒤이어 전신에 새카만 복장을 하고 머리에는 용 문양 검은 철삿갓을 썼으며, 얼굴을 검은 철가면으로 가린 두 사내가 저벅저벅 도관 내로 들어섰다. 두 사람은 차림새가 똑같았다.
하나는 얼굴에 천곡성(天哭星) 도안이 그려진 슬프게 우는 표정의 가면을, 다른 하나는 천부성(天富星)이 그려진 쾌활하게 웃는 표정의 가면을 썼다는 점만이 달랐다.
너무도 익숙한 그 차림에 초휴는 자기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청룡회 생활을 그렇게 오래 했는데, 그들이 누군지를 어찌 몰라보겠는가. 그들은 청룡회 두 개 분타의 타주들이 분명했다.
그들의 출현에 혼비백산한 표사들과 상단 사람들은 감히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 이들 같은 말단 강호인들에게 있어 청룡회는 하늘의 별처럼 요원한 존재인 것이다. 특히 타주급 정도라면 전설 속 인물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실내로 들어선 두 사람 중 천부성 타주가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임엽, 임 공자! 간덩이가 크기도 하시오. 그렇게 사람을 많이 죽여놓고 유유자적 여기 나타날 엄두가 나던가? 진정 자기 실력만으로 북연을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대단해, 정말 대단해! 암, 은마의 기대주가 그 정도는 돼야지. 패기 있고, 담력 있고 말이야! 자, 우선 인사부터 나눕시다. 나는 청룡회 북연 천부 분타의 신임 타주인 송소(宋笑)라 하오. 북연으로 부임하자마자 당신 같은 대어를 낚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군. 좋아, 아주 좋아!”
그의 말본새로 봐서 아무래도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버릇이 있는 듯했다.
“천곡 분타의 타주 한곡(韓哭)이오.”
그에 비해 천곡 분타 타주는 훨씬 차분한 모습이었다. 그의 짧디짧은 자기소개는 송소의 수다와는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송소는 이름이 송소라서 그런지 내내 웃고 있었다. 물론 한곡은 울고 있진 않았다.
그러나 먼저 도관에 들어 와있던 이들은 울음을 터뜨리기 일보 전이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그들이 무얼 하고 있었던가. 바로 임엽을 코앞에 놔두고 그를 가리켜 주절주절 잘도 읊어댔지 않은가.
특히 상단의 젊은 공자는 ‘요사스러운 마도 놈’이라는 막말까지 했다. 그는 자기 모가지가 아직도 몸에 붙어있음을 하늘에 감사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들의 식겁한 반응을 지켜보던 송소가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다들 안 나가고 뭣들 하는가. 이제 벌어질 일을 구경이라도 하고 싶어서? 사실 내가 점잖은 사람이라 무고한 살상은 저지르지 않지만, 이 주먹에 눈이 달린 건 아니라서 말이지. 자칫 주먹이 잘못 나가서 죽거나 병신이 되어도 난 책임 안 질 거요.”
송소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들 모두는 꽁지가 빠지도록 도관 밖으로 내빼고 말았다. 얼마나 급했으면 호송 중이던 화물도 나 몰라라 팽개친 채로 말이다. 초휴가 묵묵히 두 사람을 응시하다가 눈에 힘을 주며 물었다.
“청룡회 사대혈살(四大血殺)이 어쩌다 타주로 강등되었소?”
얼핏 기괴해 보이는 이 두 타주는 사실 대단한 인물들이었다. 아직 천인합일의 경지이긴 했으나, 청룡회 총타의 종사급 이하 살수들 가운데 단연 최강자로 꼽히는 살수 넷 중 두 명인 것이다.
그 최강 살수 네 명을 통칭하여 ‘사대혈살’이라 했다. 지금 이 둘을 제외한 나머지 혈살은 ‘득지아행(得之我幸, 그걸 득하면 나의 행운이로다)’에서 따온 송아행(宋我幸), 그리고 ‘부득아명(不得我命, 그걸 놓쳐도 나의 운명이로다)’에서 따온 송아명(宋我命)이라는 자였다.
이 네 사람은 통상 둘씩 짝지어 출수하곤 했다. 이들이 사대혈살로 불리는 이유는 그렇게 둘씩 손잡고 출수할 때, 무도종사도 참살할 실력이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경우 이 대 일의 싸움이 되긴 하지만, 어쨌건 천인합일이 무도종사에 버금갈 위력으로 상대를 죽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