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2)
그 무렵 초휴는 산양부를 벗어나 여양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여양산 근처로 가서 그곳 유적지가 개방될 때까지 기다릴 참이었다. 산양부에서 있었던 일은 뜻밖의 작은 해프닝에 불과한 만큼, 남들이야 뭐라고 떠들어대건 간에 신경 쓸 거 없이 자신의 계획에만 집중했다.
산양부를 떠난 후 비전함을 열어봤더니 무공비급이 하나 나왔는데, 놀랍게도 상고시대 마도의 주요 문파 중 하나였던 혈하파(血河派)의 비전 무공인 일기관일월(一氣貫日月)이었다. 경매대회에서 이 비전함이 가짜일 확률이 삼 할이라고 경매사가 말했었는데, 그건 바꿔 말하면 이 비전함이 혈하파의 진품일 확률이 칠 할이라는 말이었다. 물론 정말로 그 안에 뭐가 들어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지만.
무공비급 종류는 단약보다 더 비싸게 팔리는 게 상식이었다. 만약 칠 할의 확률로 손에 넣을 수 있는 게 비급이라는 확신만 있었어도, 이 비전함이 경매대회를 전전했을 리가 없었다. 설령 경매로 나왔어도 그 금액의 수치는 은자로 매겨지는 수준이 아니라, 금자 내지는 심지어 ‘자금(紫金)’까지도 제시되었을 것이다.
‘일기관일월’은 혈하파 내에서도 매우 기이한 무공에 속했다. 분명히 마도 무공이건만, 그렇다고 해서 전적으로 마도의 성질도 아니었다. 일기관일월은 원래 ‘천지가 어질지 못하니 이 세상 만물을 풀로 만든 개처럼 내다버린다(天地不仁以萬物爲蒭狗: 無爲自然에 내맡겨 두는 것이 얼른 보기에는 사랑도 관심도 없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것이 사랑 이상의 좋은 결과를 나타내게 되는 것을 의미)’라는 어구에서 비롯된 명칭이었다. 어차피 천지간의 모든 삶은 자연사, 사고사, 자살, 타살 등등 어떤 방식이든 결국 죽음으로 귀결될 뿐이다.
무릇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살(殺)’이라 하고 하늘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살(煞)’이라고 했다.
‘일기관일월’은 살기를 응집시켜 위력을 무한하게 폭발시키는 무공이었다. 거기서 좀 더 경지가 올라가면 천지간의 살기(煞氣)도 응집되고 거기에 일월의 기운까지 더해져 초인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살기든 천지간의 살기든 모두 ‘일기관일월’의 힘을 발출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 마도 출신뿐만 아니라 정파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굳세고 올바른 기개를 응집시켜 일기관일월을 운용할 수 있기에 후대로부터 매우 신기하고 기이한 무공이라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일기관일월’은 사급 무공에 속했다. 초휴 자신이 수련하기에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몇몇 무공들이 이곳 북연 쪽에 있는 데다, 아직 강자들 손에 넘어가지 않은 오급, 육급의 무공들도 적잖이 남아 있다. 그러니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그것들을 차지하고 싶고, 실제로도 시도해볼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실력으로는 승산이 오 할도 채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애당초 그가 굳이 산양부로 와서 일기관일월을 손에 넣으려 한 이유는 일단 이 무공이 손에 넣기가 무난했고, 또 지금 그의 실력을 크게 높여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게임의 원래 줄거리에서는 사실 이 무공은 그다지 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저 중등 이하의 무공에 불과하고, 심지어 효능 면에서 무사의 기본기 수련을 도와주는 선천공 같은 무공에도 훨씬 못 미친다고 소개되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초휴에게는 매우 유용한 무공이었다. 물론 선천공이 기본기를 다지는 면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건 확실했다. 초휴가 이처럼 짧은 시간 내에 선천경에 이를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인 셈이었으니까.
하지만 적과 맞붙었을 때, 심후한 내력이 특징인 선천공만으로는 아무래도 실전의 다양성이나 폭발력에서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물론 이것을 익혔다고 해서 실력이 하루아침에 급상승하는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다만, 단점을 보완해 실력의 증강을 가져올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는 여양산으로 향하는 길 틈틈이 이 무공을 익혔다.
초유가 여양산으로 향하며 무공을 수련하고 있을 무렵, 산양부 쪽에서는 백마를 탄 한 사내가 성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 사내는 준수한 용모에 남색 도포를 걸치고 등에는 고풍스러운 청동 장검을 메고 있었다. 그 사내는 다름 아닌 장씨 가문의 큰아들 장백도(張百濤)였다. 그는 일찍이 서초의 파촉 땅에 본거지를 둔 파산검파의 제자로 들어가,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서 수련하며 보낸 탓에 최근 몇 년간 집을 떠나 있었다. 파촉 땅은 북연에서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서한 번 집에 다녀가려면 족히 이삼 개월은 걸리는 바람에 수련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어느덧 눈에 익은 길거리가 시야에 들어오자 장백도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정말 간만의 귀향길이다 보니 부친과 아우에게 줄 선물도 든든히 챙겨왔다. 부친의 무공 자질이 뛰어난 편이 아니다 보니, 이번 생에서는 선천경을 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장수에 좋기로 소문난 단약을 구해왔다. 이 단약은 파산검파를 위해 공을 세운 상으로 받은 진귀한 것이었다.
무도를 익힐 자질 자체가 부족한 아우를 위해서는 특별히 사부의 허락을 얻어 파산검파의 외문 제자가 수련할 수 있는 내공 비법을 전수해줄 생각이었다. 성격상 남들과 부딪히기 쉬운 아우가 강호에서 살아남으려면 조금이라도 빨리 실력을 키우는 게 중요했고, 그러려면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장씨 가문은 장송령이 천신만고 끝에 맨손으로 일궈온 가문인 만큼, 암투가 난무하는 다른 가문들과는 달리 집안 분위기가 상당히 화목했다. 외부 사람들의 눈에는 장송령이 탐욕에 찌든 늙은 능구렁이로 보일지 몰라도, 집안에서는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자애로운 아버지였다. 오늘날 그가 무림의 인재로 대접받는 것도, 이면에는 아들의 수련을 지원하려고 물심양면으로 애써온 부친의 공이 컸다.
그리고 장백신은 고집불통에 비열한 면도 있긴 하나, 어릴 때부터 형의 것을 탐내기는커녕 자신의 몫인 수련 자원마저 형에게 양보하는 착한 아우였다. 늘 아우에게 고마움을 느껴온 그는 부족한 아우일망정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다.
그렇다면 장백도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형만 한 아우는 없다는 말도 있듯이, 그는 간만에 집에 온 김에 장씨 가문을 아우에게 넘겨주십사고 부친께 말할 작정이었다. 자신은 평생 무도에 뜻을 둔 몸이라 가문에 욕심이 없고, 가문을 아우가 맡더라도 자신이 파산검파에서 버티면서 든든히 뒤를 지켜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주루에서 한 젊은 공자가 나오다가 장백도와 눈이 마주쳤다. 장백도가 말에서 내려 인사를 건넸다.
“도(陶)형, 이게 얼마 만입니까. 별래(別來) 무양(無恙)하셨소?”
그러나 상대는 장백도를 마주치자 귀신을 본 듯 화들짝 놀라, 말까지 더듬었다.
“자, 자, 장 공자가 아니시오? 파산검파에서 수련 중이라고 들었는데 여긴 어쩐 일이오?”
그는 산양부에서 가장 큰 명문 세가인 도씨 가문의 아들 도의(陶毅)로, 어려서부터 장백도와 알고 지내온 사이였다. 그런데 장백도를 보자마자 괴이쩍은 반응을 보이니, 인사를 건넨 장백도는 당혹스러웠다.
“집에 다녀간 지 너무 오래되어 부친과 아우를 보러 왔지요. 마침 수련도 여의치 않아 기분전환도 할 겸해서요.”
그러자 도의가 억지로 미소를 쥐어짜다시피 하며 말했다.
“그럼 가보시구려. 길게 붙잡지 않으리다.”
도의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발바닥에 기름칠이라도 한 것처럼 미끄러지듯이 내빼버렸다. 덩그러니 남겨진 장백도는 고개를 갸웃했다. 도의의 표정이며 행동이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도의가 기본적인 예의는 알만한 사람인데, 부드러운 인사말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고향을 떠났다가 몇 년 만에 돌아온 지인한테, 반가움을 표하긴커녕 저리 급하게 도망쳐야 할 이유가 뭘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는 석연치 않은 마음에 서둘러 집으로 내달렸다.
이때 장백도보다 더 빨리 자기 집으로 가야 하는 건 도의였다. 장백도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조속히 부친 도종망과 그 외 산양부 세력가들에게 알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장송령 부자가 죽은 거야 자기들과 별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정작 문제는 요 며칠간 그들이 장씨 가문의 재산을 나눠 먹고 있는 판에 그 집안 장손이 불쑥 돌아왔다는 데에 있었다. 가족이 몰살당한 판국에 이웃들이 자기 집 재산을 뜯어먹고 있는 사실을 장백도가 알게 되면, 눈이 뒤집힐 게 뻔했다.
장백도가 한낱 평범한 인물이라면 괜찮을지 몰랐다. 그러나 그는 선천경의 실력자로 파산검파의 내문 제자였다. 또한, 파산검파가 여기서 멀리 떨어진 파촉 땅에 있다고는 하나, 엄연히 칠종팔파에 속하는 대문파가 아닌가. 자기 동네에서나 목에 힘주는 고만고만한 지방 유지들이 파산검파의 제자를 욕보이는 짓을 하고 있으니, 앙갚음하려고 고수라도 파견하는 날엔 지옥문이 활짝 열릴 판이었다.
장백도가 오래도록 북연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었고, 설령 돌아온다 해도 언제 돌아올지 기약도 없었던 터라, 마음 놓고 나눠 먹기 작업에 착수했었다. 세월이 한참 지나고 나면 아무도 이 일을 기억하지 못할 테니 말이다. 그런데 하필 장백도가 이렇게 갑자기 들이닥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들이 한창 공황상태에 빠져있을 때, 장백도도 정신없이 말을 달려 본가에 도착했다. 그런데 평소 시끌벅적하게 사람들이 드나들던 집이 지금은 대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장백도가 불안한 마음을 안고 대문을 여는 순간, 정원 나무의 가지마다 꽃 모양의 흰색 비단 매듭들이 가득 걸려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뒤이어 그나마 충직한 방계 친족 몇 명이서 소복 차림으로 대청 빈소 앞에 앉아 화로에 지전을 태우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눈앞이 캄캄해진 그는 하마터면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했다. 인기척을 느낀 방계 친족들이 뒤를 돌아보다가 장백도를 발견하고서 깜짝 놀란 것도 잠시, 그들은 일제히 부르짖었다.
“대공자님,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눈앞에 펼쳐진 이 기막힌 상황에 장백도는 차마 깊게 생각할 엄두가 나질 않아 다짜고짜 친족 한 명을 잡아 일으켰다. 그리고는 울부짖으며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그 친족은 놀라고 당황한 나머지 두서없이 버벅거렸다.
“가주님이, 이공자님도 돌아가셨어요. 싸우다 많이 죽었는데, 응혈경 무사도 죽고 다른 무사들도 엄청 많이 죽고······.”
장백도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가 다시금 잡아먹을 듯이 다그쳤다.
“아버님과 아우가 어쩌다 죽었다는 거야?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잖아? 어느 놈의 짓이냔 말이다!”
친족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도종망을 위시한 산양부 실세들이 집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장백도의 귀향 소식을 듣자, 인간적으로 너무 했다 싶어서 나눠 먹으려던 장씨 가문의 사업들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그러나 금전 등의 유동 자산은 이미 대충 나눠 먹기를 끝낸 상태라서 나눠 먹은 자산을 정확히 계산해서 돌려주는 것은 힘들었다. 어쨌거나 일부라도 돌려놓았으니, 당장 체면치레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눈이 시뻘게진 장백도가 거칠게 고개를 돌리더니, 내려놓았던 청동고검을 도로 잡았다. 그러고는 애써 냉정함을 되찾으려는 듯,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여러분, 대체 우리 집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아무나 설명을 해보시오.”
장백도의 생각으로, 이곳 산양부에서 장씨 가문을 멸문시킬만한 실력자라고는 지금 이 자리에 나타난 사람들뿐이었다. 그 말뜻을 짐작한 도종망이 쓴웃음을 지으며 그를 달랬다.
“장 공자, 우선 마음을 가라앉히게. 자네 가문이 이리된 건 정말로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네.”
그러고는 그간의 경위를 모두 다 들려주었다. 물론 자기들이 장씨 가문의 재산을 나눠 먹으려 했던 대목은 쏙 빼놓고 말이다. 도종망이 난감한 표정으로 손바닥을 문지르며 몇 마디 변명의 말을 더 보탰다.
“장 공자, 산양부의 일원인 자네 가문을 그 지경으로 만든 흉수를 우리라고 그냥 보내고 싶었겠나. 그러나 자네 부친도 그에게 패해 유명을 달리하셨네. 나도 놈과 겨뤄 보았으나 실력이 어찌나 강한지 도저히 경망하게 행동할 수는 없었다네. 놈을 살려서 보내줄 수밖에 없었음을 양해해 주게나.”
끝
ⓒ 봉칠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