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23)
523화 생각지도 못한 결과 (2)
방살이 마혈대법의 공세를 끊어내고자 노호성을 내지르자, 무도진단이 미친 듯이 가동되며 천지의 힘을 끌어들여 그 들끓던 기혈을 잠재우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런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혈기와 마기로 한껏 장전된 초휴의 일도였다!
초휴가 도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강호인이라면 다 알았다. 그런데 초휴는 천마무에 무슨 문제라도 있었던 건지 처음부터 병기를 배제한 채 망아살권으로만 승부를 보려 했다.
해서 그에게 아직 천마무가 남았다는 사실을 방살은 거의 잊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가 되어서야 잊고 있었던 그 마도가 여지없이 필살의 살기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방금 방살의 체내에서 빼낸 기혈만으로는 화혈신도를 응집해내기에 부족했다. 차선책으로 이를 칼끝에 응집시키자, 상대의 호체강기를 뚫어 줄 요긴한 칼날로 변했다.
이윽고 도신을 감쌌던 지옥의 마기가 처절한 울부짖음을 동반한 채 모든 걸 쓸어버릴 기세로 방살의 정수리를 덮쳐왔다. 지금까지 초휴가 보여왔던 공세가 결코 약한 건 아니었어도, 방살에게 위협감을 느끼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도세는 차원이 달랐다. 방살은 온몸의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낀 순간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난 데 이어서 어떻게든 퇴로를 마련하려 들었다.
그러나 방살이 어떤 행동을 취하기가 무섭게, 기이한 기운이 그의 몸을 바짝 옭아매는 듯한 느낌이 엄습해오며 소름이 돋았다. 그런 느낌을 받은 후부터는 의도했던 행동을 끝까지 취하기도 전에 번번이 초휴의 도세가 한발 먼저 그의 동선을 따라잡곤 했다.
잠깐 사이에만도 방살은 서른두 차례나 잇따라 몸의 움직임에 변화를 주었지만 초휴는 서른세 차례나 이를 미리 꿰뚫고, 그 움직임을 무위로 돌려놓았다. 심지어 서른세 차례 중 마지막 한 차례는 방살이 미처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경우였다.
웬만한 사람에게 있어 그 잠깐의 시간은 그야말로 잠깐에 불과하겠지만, 무도종사급의 고수에게 있어 잠깐은 얼마든지 긴 시간이 될 수도 있는 거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서른세 차례나 초휴의 도날에 퇴로를 차단당한 그는 이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가만히 앉아서 당하기만을 기다려야 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
방살이 있는 힘껏 전신에서 핏빛 강기를 터뜨려내 보았지만, 초휴의 마도가 이를 무력화시킨 데 이어서 그 여세를 몰아 호체강기를 뚫고 그의 급소를 위협했다.
화혈신도의 특징은 상대한테서 취한 기혈로 상대의 강기 방어막을 쉽사리 뚫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초휴가 시전한 게 비록 완전한 형태의 화혈신도가 아니라 그저 마도 끝에 칼날을 덧입힌 수준에 불과했지만, 앞서 말한 특징만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러나 어느샌가 마도의 칼끝이 보란 듯이 방살의 목을 바짝 겨누자, 그 시리도록 날 선 예기에 그는 온몸의 털이 다 곤두설 지경이었다. 그는 이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을 내비쳤다. 어처구니없게도 자기가 정말로 패한 것이다!
초 휴는 여전히 목에 칼을 겨눈 채, 담담히 그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양보하시지요.”
사실 방금의 그 일도로 충분히 방살을 결딴낼 수 있었고, 마음 같아선 정말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자리에서 그런 초강수까지 두는 것은 자신에게도 절대로 이로울 게 없었다.
도를 넘지 말라던 관사우의 경고도 있었고, 안류년까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정말로 상대를 죽인다면, 이는 그야말로 안하무인을 넘어 두 무도종사에 대한 선전포고가 될 터였다.
초휴의 승리는 이곳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예견된 바였기에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초휴는 이미 무도종사를 참살하지 않았는가. 그의 수중에 또 어떤 엄청난 비장의 패가 숨겨져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방살을 상대로 이토록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둔 건 정말 예상 밖이었다. 초휴의 실력이 이렇게까지 강하다는 사실에 좌중은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초휴의 칼끝은 여전히 방살의 목을 바짝 겨누고 있었다. 여차하면 목에 바람구멍을 낼 기세였다. 그 음산한 냉기에 방살은 참담하기 짝이 없는 현실을 맛봐야만 했다.
이윽고 그가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보였지만, 끝내 입을 열진 못했다.
사실 방살은 이번 대결의 결과에 승복할 수 없었다. 자기가 어쩌다가 패했는지 영문조차 알 수 없는 승부였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에게는 아직 쓰지 않은 비장의 패도 남아있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기도 전에 얼떨결에 패하고 말았다. 귀신에게 홀린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모두가 보는 앞에서 명색이 무도종사이자 관중형당의 고위직이라는 자가 결과를 번복하자니 한심하고, 재대결을 청하자니 치졸해 보일 게 뻔했다.
방살 자신은 왜 졌는지 모를지라도 관사우와 매경령의 눈에는 그 이유가 훤히 보였다. 초휴를 쳐다보는 두 사람의 눈빛이 아까와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영악하게 전세(戰勢)를 장악하고 주도해나간 초휴의 능력은 실로 두려울 정도였다. 이번 일전에서 초휴가 이길 수 있었던 건 비단 그의 괴력이나 화혈신도의 괴이함, 그리고 마지막에 종지부를 찍었던 그 일도 때문만이 아니라, 전세를 자기에게 유리하게 끌어나가는 능력이 크게 주효했다고 봐야 할 터였다.
처음부터 방살은 초휴의 그런 능력에 말려들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내내 초휴의 예상 범위 내에 머물렀고, 그를 이리저리 자기 입맛대로 끌고 가다가 쐐기를 박듯 일도를 내질렀을 때는 승부가 결정 난 뒤였다.
물론 애당초 생사결은 아니었기에 방살이 죽기 살기로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건 초휴도 마찬가지였다. 설사 재대결을 벌인다 해도 방살이 이긴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한테 유리하게 전세를 끌어가는 능력은 누가 가르쳐준다고 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초휴가 싸움의 판세를 파악하는데 천부적으로 뛰어난 감을 타고난 덕분이라고밖에 설명이 안 되는 것이다.
웬만한 사람 같았으면 격전 중 눈앞의 불 끄기만도 바쁜데 큰 그림을 짜내는 여유가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러나 초휴는 영악하게도 한 수 뒤의 두 수, 세 수까지 내다보며 싸움을 주도해 갔다.
방살이 분통이 터질듯한 표정으로 천마무를 밀쳐내더니 그대로 등을 돌리고 가버렸다. 이유가 뭐건 간에 그는 분명히 패했고 재대결을 주장할 명분도 없었다.
한마디로 공연히 뻗대다가 망신살만 단단히 뻗친 것이다.
관사우가 일어나더니 엄숙히 선언했다.
“승부도 가려졌으니 이로써 본 사안은 결정 났다. 소범천이 열리면 나와, 안류년, 초휴가 다녀올 것이다!”
이로써 상황은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일단락되었다.
소습과 초사마는 초휴의 실력에 경탄을 금치 못했고, 은백통은 남들이 안 보는 틈에 슬며시 나가버렸다.
일전에 은백통이 과감히 초휴에게 도발했던 건 일단 관중형당 내에서 본인의 입지가 그보다 높다는 점, 그리고 방살이라는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다. 하지만 방살이 무도종사임에도 초휴에게 패하니, 그는 이 현실을 차마 믿을 수 없었다.
동시에 더럭 위기감이 엄습해왔다.
만약 지난 일로 앙심을 품고 초휴가 보복해온다면 그걸 또 무슨 수로 막아낸단 말인가.
회의가 파한 뒤 관사우가 안류년과 초휴에게 소범천 열쇠 하나씩을 건넸다. 안류년은 여전히 똥 씹은 얼굴로 열쇠를 받아들더니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가버렸다.
하지만 관사우는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닌지라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멀어져가는 안류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초휴가 소리 낮춰 말했다.
“당주님, 집형사는 관중형당을 대표하는 정예 전력으로 형당 내 자원의 대부분을 독식하는 특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수령이라는 자가 당주님께 기본적인 존경마저 보이지 않으니 이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내 집안을 좀먹는 쥐 하나 못 잡으면서 외부의 도적을 어찌 잡겠습니까. 소인이 보기에 현재 관중형당의 문제는 외부보다는 내부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에 관사우가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 점을 내가 왜 모르겠는가. 그러나 지금의 관중형당은 안정이 필요하네. 안류년은 초광가 당주와 같은 연배의 명망 높은 존장인 데다, 집형사 내에도 심복들이 수두룩하지. 본인 스스로가 관중형당을 지탱하는데 중요한 인물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는 게 문제지. 내게 변고가 생기거나 혹은 자리를 비웠을 때 무슨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터지면 단독으로 대처할 수 있을 자가 안류년 밖에 없으니까. 이번 일은 자네도 마음에 둘 필요 없네. 안류년이 자네를 겨냥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자네는 그저 소범천이 개방되었을 때 잘 다녀오기만 하면 될 것이야.”
관사우가 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초휴도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한 번 말해두었으니 그걸로 된 것이다. 여러 번 말했다가 상대의 거부감만 유발하고 안 좋게 끝나는 경우도 많으니까.
초휴는 관사우 앞에서 물러나자 매경령이 은밀히 그를 불러냈다.
형당 후원에 초휴가 들어서자 그녀가 뾰로통한 얼굴로 면박부터 주었다.
“오늘 자신이 쓸데없이 충동적으로 굴었다는 건 알아요? 굳이 방살을 도발하지 않았어도 내 힘으로 충분히 소범천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졌을 텐데 말이죠. 그나마 이겼으니 망정이니, 패했으면 어쩌려고 했죠? 자칫 죽도 밥도 아니게 될 뻔했잖아요. 어쩜 사람이 그렇게 무모할 수가 있어요!”
이에 초휴가 담담히 응수했다.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니 도발했던 겁니다. 다시는 기어오를 생각을 못 하게 확실히 밟아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절대 충동적으로 굴지 않았습니다. 물론 참는 게 능사일 때도 있지만, 그런 와중에도 칼날은 예리하게 갈아둬야 하는 법 아니겠습니까. 성녀 대인, 제가 감히 직언컨대 현재 은마권은 왕년의 예기를 잃은 지 오랩니다. 무상마종 같은 종문이나 여전히 강호에서 활약을 지속하고 있을 뿐, 나머지 은마들은 숨어있은 세월이 너무 길다 보니 자기가 왜 숨어있는지도 잊은 모양입니다. 그저 어떻게 하면 자신을 잘 숨길 수 있을지의 궁리에만 여념이 없는 것처럼 보이니 말입니다.”
다소 상기되어 있던 그녀의 안색이 이내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어서 눈썹을 치켜뜨고 음산한 기운을 흘려내더니 냉랭히 입을 열었다.
“지금 내가 예기를 잃었다고 말하는 건가요?”
“자고로 충언은 귀에 거슬리는 법이지요. 그러나 이게 꼭 본인을 겨냥한 말이라고는 여기지 마십시오. 그저 생각난 김에 건의 드린 것뿐이니까요. 귀에 거슬리셨다면 안 들은 셈 치셔도 무방합니다.”
초휴의 이 말은 매경령을 도발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의 진심이었다. 지금껏 그랬듯이 앞으로도 계속 쥐처럼 어두운 곳에 숨어서만 지낼 것 같으면 은마권은 그야말로 끝났다고 봐야 했다.
오늘 매경령한테 대담하게 이런 말을 꺼낸 것은 그가 올곧고 솔직해서가 아니라, 이쯤 해서 자신의 위상을 바꿔봐야 할 때가 되었다는 계산에서였다.
예전의 그는 관중형당에서 자리 잡기 위해 매경령의 도움이 절실했다. 은마권의 숨은 지원도 요긴하게 활용했다. 하지만 무도종사와도 정면 승부를 볼 만한 실력이 되자, 배은망덕하게 그간의 은덕을 저버리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종전과는 다른 대우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