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34)
534화 여봉선과 종현의 대결 (2)
방천화극을 힘주어 움켜쥔 여봉선의 표정에서는 아무 감정도 읽히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는 불타는 전의와 더불어 일말의 희열마저 느끼고 있었다. 원래 여봉선은 닥치는 대로 아무한테나 덤벼들 정도로 싸움에 환장한 부류는 아니었다.
그의 전의와 살의는 초휴의 발끝에도 못 미쳤다. 그런데도 이처럼 벅찬 싸움을 감당하려는 이유는 첫째는 초휴의 난감함을 해결해주려는 목적이었으나, ‘명왕’ 종현이라는 이 전설 같은 인물과 싸워 볼 금쪽같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천하 최강이라 일컬어지는 종현의 일권에 맞서 여봉선의 몸에서도 칠흑 같은 마기가 흘러나와 그의 전신과 방천화극을 휘감았다. 초휴의 마기만큼 강력하지는 않아도 마성의 순도에 있어서만큼은 단연 최고였다.
산도 쪼갤 극강의 기세를 실어 방천화극을 휘두르자 초승달 모양의 창날에서, 관전 중인 주변 무사들의 시력마저 앗아갈 듯한 매서운 광채가 터져 나왔다. 강철을 담금질해 빚은 듯한 종현의 육신과 보병급 방천화극이 격렬한 충돌을 일으켰다.
이는 순전히 힘과 힘의 대결이었다. 그 결과, 여봉선을 감쌌던 마기가 찬연한 불광에 소멸한 데 이어서 종현의 괴력이 여과 없이 그의 몸을 뒤흔들었다. 그 충격에 여봉선은 수중의 방천화극마저 놓칠 뻔하며 십여 장이나 튕겨 나간 다음에야 가까스로 멈춰 설 수 있었다.
종현을 바라보는 여봉선의 동공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렸다. 난생처음 겪는 괴력에 놀라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봉선 본인도 힘에 있어서만큼은 자부심이 대단했다. 특별히 연체공법을 수련하지 않았는데도 신력을 타고난 덕분이었다.
연체공법에 특화된 상대에 맞서서도 지금까지 한 번도 힘에서 열세에 몰린 일이 없을 정도였다. 거기에 더해 구소연마금신까지 수련하면서 그의 힘은 종전보다 수배는 증강된 상태였다. 그런데 종현과의 대결에서 압도적으로 패하고 만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이해되는 결과였다. 여봉선은 천인합일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구소연마금신을 수련한 기간도 턱없이 짧았으니 말이다.
반면, 종현은 천인합일 경지를 단련해온 지 수년째임은 물론, 근년 들어 대광명사 내에서 유일하게 보월광왕 유리연금신을 성공리에 수련해낸 존재였다. 그러한 존재의 힘이라면 갓 천인합일에 오른 자와 감히 비교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일권 만에 여봉선을 날려버리고 나서도 종현은 전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이때 짙은 불광으로 뒤덮인 그의 눈동자에 잠시나마 실망의 기색이 서렸던 걸 감지한 이는 없었다.
여봉선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약했다. 일전에 그와 전력을 다해 싸웠던 초휴보다도 훨씬 더 말이다. 애석하게도 자격 미달인 상대를 오래 상대해 줄 만한 인내심이 그에게는 없었다. 일합 만에 여봉선에게 급격히 흥미를 잃은 그는 속전속결을 위해 벼락처럼 진옥명왕인(鎭獄明王印)을 내질렀다.
세상의 온갖 사악함을 멸할 진옥명왕인의 기세에 맞서, 여봉선도 질세라 온몸에 마기를 주입했다. 그의 눈동자에 핏빛이 감도는가 싶더니 방천화극이 다시금 위용을 드러냈다.
얼핏 단순하기 그지없는 일격인 듯 보였으나, 실은 자그마치 서른여섯 번의 극법(戟法) 변화가 하나로 응축된 결과였다. 명왕에 맞설 마신이 강림하며 다시 한번 두 사람은 정통으로 맞부딪혔다.
이로 인해 발생한 충격으로 두 사람이 디디고 있는 지면에 균열이 일면서, 그 강력한 파동이 고스란히 그들의 몸에 전달되었다. 종현의 발은 여전히 지면에 붙은 상태였고, 여봉선도 이번만큼은 밀리지 않았으되, 방천화극을 움켜쥔 손의 찢어진 상처에서는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악착같이 버티며 제자리를 지켰다.
마신무쌍극!
그것은 지난날 여온후와 더불어 천하를 종횡했던 그 최강의 극법이었다. 구소연마금신으로 육신의 근간을 다진 후에야 마신무쌍극 본연의 강력함을 십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육신의 강도가 받쳐주지 않는 수련자는 감히 마신무쌍극을 시전할 자격도 얻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신력을 타고난 여봉선은 이 극법에 최적화된 몸을 가진 셈이다.
얕잡아봤던 상대가 의외로 진옥명왕인을 받아내자 이번만큼은 무표정한 종현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약체인 줄만 알았던 상대가 이처럼 막강한 출수를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여봉선이 밀리지 않고 완강히 버텨냈다지만, 누가 봐도 그의 패색은 짙어 보였다. 아니,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여봉선은 무려 종현의 일격을 막아낸 데 이어서 출수까지 감행했다.
수중의 방천화극이 다시금 광포한 마기에 힘입어 날을 세우자, 핏빛 광망이 가닥가닥 유입되며 극법에 변화를 가져왔다. 방천화극을 한 번씩 내리칠 때마다 여봉선은 자신의 힘이 미친 듯이 증폭되는 걸 느꼈다.
이때 그의 두 눈은 검게 마기로 물들었으나 이성만은 온전했다. 하지만 마신을 방불케 할 핏빛 전의(戰意)는 이성 있는 인간의 것으로 보기 어려웠다.
매번 힘껏 마신무쌍극을 시전할 때마다 여봉선의 체력은 심하게 소모되었다. 하지만 체력의 소모가 큰 만큼 위력 또한 막강했으니, 종현을 상대로 무려 열 합을 버텨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열 합을 넘기면서 여봉선은 체력의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신무쌍극의 시전으로 인한 힘의 소모가 너무 큰 탓이었다. 다행히 그의 강건한 몸이 받쳐준 덕분에 여태 버틸 수 있었으나, 한 번씩 이를 시전할 때마다 최강 무공 하나를 송두리째 시전하는 것과 맞먹는 힘의 소모가 따랐다.
천인합일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 몸으로 장시간 버티기는 무리였다. 이처럼 여봉선이 수세에 몰린 것을 감지한 순간, 종현이 기세를 몰아 공격해왔다.
그가 맨주먹으로 일극(一戟)을 막아낸 데 이어서 다짜고짜 두 손으로 방천화극을 움켜잡더니 양 팔뚝에서 금빛 찬란한 불광을 터뜨려냈다. 그러자 그의 양팔이 투명한 유리처럼 변하면서 금강백옥(金剛白玉)과도 같이 단단한 체내 백골까지 다 보였다.
“부서져라!”
종현이 나직이 일갈한 데 이어서 자기 수중에 잡힌 방천화극을 생짜로 조각내버렸다. 이것은 지난날 진청제가 선물한 병기로, 신병까지는 아니라도 엄연히 육급 보병이었다. 물론 초휴의 천마무보다는 못 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런 병기를 종현이 맨손으로 동강 내버린 것이다. 이것만 봐도 그의 육신이 얼마나 가공할 만한 강도를 가졌는지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여봉선은 병기를 잃은 동시에 그 힘과 충격의 여파로 폐부까지 진탕되며 입에서 피를 흘렸다. 그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너나없이 찬탄을 금치 못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종현에게 도전장을 내민 그를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 정도로 치부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인제 보니 여봉선이 믿는 구석도 없이 덤빈 게 아니지 않은가. 종현과 이 정도까지 싸운 것만으로도 그의 실력은 중인들의 찬탄을 자아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지금의 패배는 절대 그의 실력에 손색이 있은 탓이 아니었다. 애석하게도 상대가 천인합일 중에서도 최고 절정에 이른 용호방 이 위의 강자, 종현이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여봉선의 패배는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가 종현의 일격에 나가떨어지는 대신, 열 합도 넘게 버텨냈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자긍심을 가져도 충분한 일인 것이다.
피를 토하는 여봉선을 바라보던 종현이 출수를 거두며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패배를 인정하오?”
애당초 여봉선은 비무 차원의 도전을 한 것이었을 뿐, 생사결을 하려던 게 아니었다. 종현이 굳이 이 싸움을 무자비하게 강행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여봉선이 패배를 인정하기만 하면 종현도 응당 출수를 멈출 생각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여봉선이 단호히 고개를 저어 보이는 게 아닌가. 이에 종현이 이번에야말로 끝장을 내겠다는 듯이 대위덕명왕인(大威德明王印)을 결하자, 그의 등 뒤로 명왕 법상이 응집되며 세상도 쪼갤 기세가 터져 나왔다!
여봉선이 패배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버티니 종현으로서는 그를 무력으로 굴복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이 대위덕명왕인은 초휴와의 대결에서도 선보인 적이 있었다. 당시 초휴의 실력으로도 가까스로 막아내는 데 그쳤으니, 지금 여봉선의 실력으로 어설프게 상대했다가는 심하게 다칠 게 뻔했다.
대위덕명왕인으로 터져 나온 경천동지할 괴력의 위압감에 다들 숨이 갑갑해 옴을 느꼈다.
여봉선한테까지 인법의 파동이 미치기도 전에, 이미 그의 반경 내 수십 장에 이르는 지면이 움푹 팼을 정도였다.
다들 이제야말로 여봉선이 꼼짝없이 패했다고 생각한 순간, 그가 돌연 공간 비전함에서 또 다른 방천화극을 꺼내 들었다. 길이가 일 장에 달하는 검은 창신에 칠흑 같은 마기가 짙게 드리워져 흑룡이 이를 감싸며 포효하니, 그 마성(魔聲)이 듣는 이의 심장까지 오싹하게 했다. 드디어 신병 무쌍이 등장한 것이다!
여봉선이 무쌍을 움켜쥔 순간, 그의 두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동시에 무쌍을 휘감은 흑룡의 두 눈 역시 그와 같은 색으로 바뀌면서 번뜩였다.
뒤이어 위력이 극대화된 일극이 격출되자, 한차례 굉음이 울리며 유리 불광의 원천인 대위덕명왕인의 기세가 파훼 되기 시작했다. 어느덧 찬연히 빛나던 불광은 마기에 잠식되어 빛을 잃더니 결국 와해되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건 급기야 종현마저 충격으로 인해 열 발짝도 넘게 뒤로 밀려났다는 사실이다. 현장의 무사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경악한 눈으로 여봉선을 응시할 뿐이었다.
‘여봉선이 단 일극으로 종현을 격퇴하다니!’
이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중인들은 자기가 헛것을 본 게 아닌지 의심스러워 눈을 비벼댔다. 말로만 듣던 구급 신병의 위력이 이 정도로 대단하다는 말인가.
다들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뿐, 무도의 경험이 많은 이들은 여봉선의 상태 역시 그리 좋지만은 않다는 걸 금세 간파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신병은 강한 위력을 지닌 만큼 이를 사용하는데 막대한 체력 소모와 부담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여봉선은 이제야 꺼낼 게 아니라 진작에 보병급 방천화극대신 무쌍을 사용하지 않았겠는가.
특히 여온후의 유물인 무쌍은 구급 신병 중에서도 단연 시전자의 소모가 극심했다. 방금 단 한 차례 사용한 것만으로도 그의 안색은 이미 창백하게 변했다. 원래 낯빛이 하얗기도 했지만, 지금은 병적으로 보일 만큼 얼굴의 핏기가 옅어진 상태였다.
충격의 여파로 종현이 저린 팔을 주무르며 여봉선을 지켜보더니, 여전히 감정이라고는 전혀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도 승복하지 않을 거요? 어차피 이런 식으로는 얼마 버티지 못할 텐데.”
하지만 여봉선도 무쌍을 쥔 손에 힘을 주며 결연히 응수했다.
“내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고 싶을 따름이오.”
“하지만 본인의 한계를 확인하고 나면 몸이 성할 리가 없지 않겠소? 소범천에서 부상당하면 어찌 되는지 그대가 모를 리도 없을 테고 말이지.”
여봉선은 대답 대신 무쌍을 들어 종현을 겨냥할 뿐이었다. 이에 종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의 도전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였다.
종현이 다시금 일신의 화력을 드높이자 그의 몸 뒤로 불광이 찬연히 터져 나오며 백 장도 넘는 크기의 거대한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 중생의 질병과 번뇌를 치료해주는 부처, ‘약사유리광여래’라고도 불림)의 법상이 응집되었다. 더없이 장엄하고 자비로운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강력한 강기가 빚어낸 법상은 유리처럼 투명하게 빛났다.
동급의 천일합일 무사는 말할 것도 없고 다소 약한 무도종사도 이런 경지까지는 꿈도 못 꿨으니, 종현이 가진 힘의 근간이 얼마나 웅혼하고 심후한지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엄청난 법상의 위력 앞에 여봉선도 전신을 마기로 휘감으며, 지난날 마신의 신병이었던 무쌍을 힘껏 내질렀다.
그러자 순식간에 풍운의 흐름마저 교란되며 온 세상 마기가 끊임없이 그에게로 유입되더니, 광포함 그 자체인 마신의 모습을 빚어냈다. 만약 수무상 등이 지금 여봉선의 이런 모습을 봤더라면 영락없는 온후 대인의 현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한층 더 충성심이 불타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착각이라고만 치부하기도 힘든 게, 지금 그의 모습은 여온후의 젊은 시절 모습과 너무도 흡사했다. 평소 모습이 팔 할정도만 비슷했다고 친다면, 지금 무쌍을 휘두르며 피의 징벌을 준비하는 그의 모습은 생전의 여온후를 빼다 박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이윽고 구급 신병 무쌍으로 무장한 마신 여봉선과 종현 뒤에 응집된 약사여래불 법상이 불꽃 튀는 격전에 돌입했다. 극법을 시전할 때마다 여봉선의 낯빛이 창백함을 더해가는 건 여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