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35)
535화 접전
이처럼 열 합 남짓을 겨루자 두 사람의 발밑 지면은 거북이 등껍질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신의 손에 약사여래불 법상이 산산이 파훼 되고 말았다!
하지만 여봉선은 극심한 체력 소모를 견디다 못해 무쌍을 움켜쥔 손마저 부르르 떨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반면, 종현은 여전히 냉랭하리만치 차분한 눈빛을 유지하고 있었다. 여봉선과는 달리, 방금 격전을 치른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지난번 초휴와의 일전 뒤에도 그는 전혀 지쳐 보이지 않았었다. 이게 바로 종현의 가장 두려운 면모였다. 그가 상대에게 두려움을 자아내는 이유는 금강석 같은 육신도, 입신의 경지에 오른 명왕인도 아니었다. 그 깊이조차 알 수 없는 무궁무진하게 축적된 힘이었다.
나는 기껏 기진맥진하도록 싸웠는데, 정작 상대는 싸울 힘이 얼마든지 남아돈다고 생각해 보라. 무인에게 있어 이처럼 절망적이고 맥빠지는 일이 또 있을까. 그러나 차분한 눈빛과는 달리, 지금 종현은 내심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여봉선이 실력 면에서 자기보다 훨씬 하수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굴복시키려 애써도 그는 부러지지도, 포기하지도 않고 계속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강한 상대를 만날수록 그만큼 더 강해진다고나 할까.
지난번 취의장의 추살에 시달렸을 때만 봐도 갈수록 적의 실력이 증강되었지만, 그는 포위를 뚫고 나가는 데 성공했다. 근간까지 중상을 입은 와중에도 번번이 불사조처럼 소생하곤 하지 않았던가.
바로 그때, 어디선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들려온 바람에 두 사람의 대결은 맥이 끊어지고 말았다. 반사적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소리가 난 방향으로 향했다.
당황스럽게도 굉음과 함께 일층이 통째로 무너져내린 통에, 마탑 전체가 종전보다 더 기울어져 있었다.
여봉선과 종현이 한창 싸우고 있을 때 임엽 쪽도 느긋한 상태는 아니었다.
두 사람은 끊임없이 공방을 주고받다가 어느샌가 마탑 내부로 들어서고 말았다. 싸움이 막 시작되어 수 합째 겨룰 때까지만 해도 임엽이 허행을 당해내지 못하리라 점쳐졌었다. 순간의 깨달음으로 인해 임엽의 실력이 폭증한 뒤였어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임엽은 절대로 이대로 물러나길 원치 않았다. 여봉선이 적시에 종현을 막아주지 않았더라면 임엽도 분명 감춰둔 비술까지 동원해가며 도주했을 것이다.
제아무리 기고만장함이 하늘을 찌르는 그였지만, 무려 종현과 대광명사 상좌의 합공을 쉬이 볼 만큼 이성이 흐려진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고맙게도 여봉선이 사력을 다해 종현을 막아주고 있으니, 그의 노고를 무위로 돌려버린 채 빈손으로 이곳을 떠나고 싶진 않았다.
해서 있는 힘껏 두 합을 버틴 후, 빛의 속도로 마탑 안으로 몸을 날렸다. 아까 사람들은 그저 마탑 입구에서나 진입경쟁을 벌였을 뿐, 정작 그 안에 들어간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해서 임엽이 가장 먼저 탑 안에 들어온 셈이 되었다. 그는 들어서자마자 뭔가 건질 게 있는지 확인부터 할 생각에 사방을 둘러보았다. 다른 건 몰라도 일단, 이 마탑은 어느 마도 종문의 본산지가 분명했다.
대청이 위치한 일층은 얼핏 봐도 훼손 상태가 심각했다. 도처에 썩거나 무너져내린 흔적들만 즐비할 뿐, 가치 있어 보이는 건 일절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마탑 구경을 제대로 하기도 전에 허행에게 따라잡히고 말았다. 임엽의 표정이 신경질적으로 일그러졌다. 이렇게까지 빨리 들킬 줄은 생각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그를 발견한 허행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쥐새끼 같은 놈아! 날 따돌릴 수 있을 줄 알았더냐. 죽여버릴 테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허행이 권인(拳印)을 결하자, 금빛 불염 사이로 만(卍)자형 불인(佛印)이 솟구치며 임엽을 덮쳤다. 하지만 임엽은 허행과 승산도 없는 싸움을 벌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해서 곧장 이층으로 뛰어 올라가며 살생마불상을 응집해냈다. 이것이 상대의 권인을 막아내자 격렬한 파동이 터져 나왔다. 그 폭발의 충격이 마탑 전체를 집어삼키자, 가뜩이나 성한 구석이라곤 없던 마탑의 일층이 결국 무너져 내렸다. 아까 사람들이 들었던 굉음의 실체가 이것이었다.
이미 이층으로 몸을 피한 임엽이 무너진 아래층을 내려다보니, 허행의 몸은 잔해에 파묻혀 보이지도 않았다. 이를 본 그는 미간의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생각보다 마탑이 너무 낡지 않았는가.
이처럼 심각하게 훼손된 건물 안에서 온전한 보물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점점 더 요원해져만 갔다. 내부 물건들도 분명히 훼손되었을 게 아니냔 말이다.
대부분 한가락 한다는 종문들은 예외 없이 종문 건물을 진법으로 보호하기 마련이다. 설령 종문 전체는 불가능해도 대청이나 장경루(藏經樓) 등과 같은 핵심적인 장소만이라도 진법을 공고히 함으로써, 만일의 사태로 인한 훼손을 막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규모가 장대한 마탑에도 당연히 안전장치가 되어있어야 마땅했다. 이렇게 일 합만에 속절없이 한 층이 폭삭 내려앉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상고 대겁난 당시 이 마탑도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게 분명했다. 내부에 설치되었던 진법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하여 더는 마탑을 지켜주지 못하고 있었다.
진법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고스란히 세월의 흐름에 노출되었을 단약과 비급 등이 과연 온전히 남아 있을까. 바로 그때, 아래층에 파묻혀있던 허행이 잔해더미를 박차고 노호성을 지르며 임엽이 있는 이층까지 솟구쳐 올랐다.
물론 순순히 잡힐 임엽이 아니었다. 이층이 별 볼 일 없다는 걸 확인한 그는 냅다 삼층으로 뛰어올랐으나 얼마 못 가 또 허행에게 따라잡히고 말았다. 급한 대로 허행의 출수를 막아낸 그는 계속 도망치기 시작했다.
둘이 움직일 때마다 밖의 사람들의 귀에는 마탑이 층층이 부서지고 무너지는 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 워낙 그들의 움직임이 빠르다 보니 수십 층에 달하던 마탑은 그 짧은 시간에 줄줄이 무너져 어느덧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
줄곧 위층으로 내달리며 피하는 급박한 와중에 건져봤자 얼마나 건지겠는가. 어느덧 다다른 상층부에는 주거 공간과 수련실, 단약방, 장서각 등이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그 안의 물건들은 대부분 훼손된 상태였고, 단약방의 진귀한 영약들도 이미 바스러진 지 오래였다.
단약병들이 여럿 보였지만, 일일이 뚜껑을 열어 훼손 여부를 확인할 시간이 없는지라, 일단 공간 비전함 속에 죄다 쓸어 넣은 후 계속 도망쳤다. 장서각 쪽 상황은 더더욱 실망스러웠다. 이미 누군가가 한바탕 쓸어간 듯 보였으니 말이다.
당시 급하게 책을 옮겼던 모양인지 엉망이 된 서가 곳곳은 대부분 텅 비어있었고 간혹 남겨진 서적들도 훼손 상태가 심각해서 손조차 댈 수 없었다.
임엽이 장서각으로 들어서면서 일으킨 가벼운 기류의 변화에 그 서적들은 먼지가 되어 공기 중에 흩날렸다.
“이 마도 놈아! 당장 목을 내놓지 못할까!”
등 뒤에서 또 지긋지긋한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임엽이 냉소를 머금으며 일신의 마기와 혈기를 일권에 실어 내리치니, 양측의 힘이 엄청난 파동과 함께 충돌하며 또 한 층을 무너뜨렸다. 그 충격에 임엽의 몸도 튕겨 나갔으나, 기지를 발휘한 그는 그 여세를 타고 한 층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그 층에 발을 디디자마자 그는 뭔가를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방금 마기를 터뜨려낸 순간, 위층에서도 무언가가 마기에 반응을 보이며 파동을 일으킨 것이다. 마치 마기의 부름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마탑 내 마기의 파동을 감지한 임엽은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곧장 그 방향으로 내달렸다. 허행 역시 그 파동을 감지하고는 코웃음을 치며 계속 임엽을 추격했다. 수치감을 머금었던 그의 눈은 이제 분노의 빛마저 띠고 있었다.
그는 마도의 애송이 따위는 손바닥 뒤집듯 쉽게 처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상대가 이처럼 발군의 실력을 보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무도종사인 자기를 상대로 수차례나 정면 대결을 감행할 만큼 폭발적인 전투력을 보일 줄이야.
게다가 신법의 구사에 있어서도 여간 빠른 게 아니었다. 속도에서 남보다 뒤처진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허행이었건만, 아직도 쥐새끼처럼 빠져나가는 놈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마탑이 일으킨 파동을 감지한 허행은 그게 무엇이건 간에 마도 애송이의 수중에 떨어지는 것만은 반드시 저지하겠노라며 각오를 다졌다. 지금껏 구긴 체면만도 적지 않건만, 저것마저 순순히 놈의 차지가 되게 내버려 둘 순 없지 않겠는가.
한편, 일신의 강기를 한껏 모은 초휴는 몇 개 층의 바닥을 가볍게 뚫고 곧장 파동의 근원지로 솟구쳐 올랐다. 그곳은 아래층들과는 확연히 달라 보였다.
아래층의 경우, 층마다 단약방이나 밀실 등 특수 용도의 공간이 있거나 무사들의 처소로 쓰였음 직한 방들이 줄줄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이곳의 경우는 언뜻 보기에도 누군가의 처소인 건 분명하되, 규모 면에서 차원이 달랐다.
처소 하나가 한 층 전체를 다 차지한 것으로 봐서 이 층의 주인은 분명 범상치 않은 거물급이었으리라 추정되었다. 십중팔구 마탑의 주인일 듯했다.
맨 안쪽 벽에는 일곱 자루의 칼이 걸려 있었는데, 이 칼들을 줄줄이 이어서 꽂을 수 있게끔 고안된 검은 가죽 칼집은 등에 메고 사용하기에 편리하게 보였다.
방금 마기의 파동이 발신된 진원지는 바로 이 칼집이었다. 그것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파동이 더 강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칼집만도 보통 물건이 아닐진대 거기에 꽂힌 칼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벽 아래 서탁에는 짐승 가죽으로 만든 서책 여러 권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상고시대 무인들은 이런 유형의 서책에 무공의 진수 등을 기록해놓곤 했다.
그 가죽은 대개 영수(靈獸)나 흉수의 것인데, 일정한 가공처리를 하면 천년 아니, 만년이라도 서책이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다. 그는 서슴없이 몸을 날려 일곱 자루 칼과 서탁 위의 서책들을 잡아채려 했다.
하지만 그의 등 뒤에서 작열하는 불염과 함께 허행이 나타났는가 싶더니 태산처럼 무거운 주먹이 임엽의 등 한복판을 가격해왔다. 그 일권이 어찌나 빠르고 매서웠던지, 임엽은 취하려던 물건을 포기하고 급한 대로 응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혈기 섞인 마기를 터뜨린 데 이어서 아까처럼 허행이 내지른 힘의 반동을 이용해서 칼을 확보하려 했다.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노강호 허행이 어찌 아까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겠는가.
허행은 힘을 터뜨려내기가 무섭게 수인을 결했다. 그러자 그의 입에서 엄청난 진동을 동반한 벼락같은 울림이 연신 터져 나와 임엽의 기혈을 들끓게 했다. 해서 임엽은 하려던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대광명사의 비전절기인 구변사자후(九變師子吼)에 제대로 당한 것이다!
이 무공을 이전에도 맛본 적은 있었지만, 그때야 단 한 초식에 불과했다. 지금은 순식간에 네 차례나 변화를 일으키며 임엽의 온몸을 뒤흔들어 놓는 통에, 그는 머리 깊숙이까지 멍해지고 말았다.
“죽어라!”
허행이 허공으로 몸을 날리자 불염이 크게 솟구치며 보리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뒤이어 가없는 천지의 힘이 불염 속에 탄생한 보리수를 향해 모여 주위를 휘돌더니, 이내 임엽을 쓸어버릴 기세로 덮쳐왔다.
바야흐로 불염이 세상을 정화하고 보리(菩提, 수행 결과 얻어지는 깨달음의 지혜 또는 그 지혜를 얻기 위한 수도 과정을 이르는 말)로 마귀를 진압하는 순간이었다.
그때 임엽의 전신 기혈이 타오르기 시작하더니 끊임없이 그 혈기가 살생마불상으로 유입되었다. 그러자 살생마불상의 수중에 들린 마도가 시뻘건 핏빛으로 물들었다. 이는 원래의 살생마불상이 아니라, 화혈신도와 살생마불상이 한데 합쳐지면서 모종의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