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47)
547화 규칙을 버리다
초휴의 낯빛은 약간 창백해졌다. 지금까지는 마혈대법으로 다른 자의 기혈을 흡수한 뒤 살생마라상을 펼쳤으나, 이번에는 그 자신의 기혈을 소모한 것이다. 위력이 좀 더 강하기는 했지만, 자신의 기혈을 소모하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이 심했다.
초휴 곁에 선 육 선생이 하후진과 진양자를 향해 냉소했다.
“이름난 무도종사 둘이서 손을 잡고 후배 하나를 몰아붙이다니, 그러고도 정도의 거물이라 자칭할 낯짝이 있나. 예의도 모르고 체면도 버린 건가? 내가 다 부끄럽군!”
그러자 진양자가 쌀쌀맞게 대꾸했다.
“사마외도에게 예의가 무슨 가당찮은 소린가! 너희가 그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야말로 제멋대로에 벽창호였다. 육 선생이 냉소했다.
“좋소, 좋아. 역시 명문 정파의 파렴치함은 우리 마도가 따라갈 재주가 없군그래.”
그는 고개를 살짝 기울여 초휴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자네도 참 어지간해. 얼마나 됐다고 그새 이 까다로운 인간들을 둘이나 건드려놨나?”
초휴는 별수 없다는 듯 양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하후진 일은 옛 원한이고, 순양도문이야 어떤 자들인지 잘 아시잖습니까. 말버릇이 이만저만 더러워야지요. 다짜고짜 죽여없애겠다고 마구잡이로 덤비는데 그냥 둘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내가 하후진을 잡아두고 있을 테니 기회를 봐서 도망가게. 소범천에 들어온 마도 사람들은 정도에 비하면 수가 적어. 특히 우리 은마권은 각자 일이 있어서 못 온 사람이 많네. 적어도 이 근처에서 자넬 도울 사람은 나 빼고 전무하단 말이네.”
초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바보가 아니었으므로 언제 맞서고 언제 도망쳐야 하는지 잘 알았다. 일부러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는 건 필부의 행동일 터였다. 하후진과 진양자가 함께 공격하는 이상, 육 선생이 끼어들었어도 여전히 상황은 불리했다.
육 선생의 검은 옷이 물결치며 강대한 마기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그는 하후진을 보며 크게 웃었다.
“하후씨의 어신술은 천하무쌍이라던데, 우리 무상마종의 천마무상묘법과 비교해 보면 어떨까? 어린 후배나 공격하는 주제에 그리 대단할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지. 하후 가주, 내가 상대해 주겠소!”
하후진이 냉소했다.
“이제 막 진단경에 든 무명 소졸 주제에 설치기는! 무상마종의 사도가 온다 해도 될까 말까인데 너 따위가 감히?”
“그거야 붙어 보면 알 일이지!”
말이 떨어지자마자 육 선생의 마기가 포효하듯 치솟더니, 칠흑 같은 마기가 마염수라로 변해 육 선생의 뒤에 모습을 드러냈다. 육 선생이 손을 칼처럼 세워 앞으로 휘두르자 등 뒤의 마염수라 역시 똑같이 칼을 휘둘렀다.
삽시간에 마기가 천지를 진동시키며 하후진의 주변도 끝없는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빛이라고는 한 줄기도 보이지 않고 강대한 마기로 가득 찬 도세만이 느껴졌다.
실이 허이며, 허가 곧 실이라. 천마무상묘법의 수련 방식은 저마다 제각각이다. 육 선생이 수련한 천마무상묘법은 허구와 환상을 결합해 육신을 베고 혼백을 부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후진 역시 위명이 드높은 무도종사이니만큼 육 선생에게 쉽게 무너질 리는 없었다. 헛것이든 환상이든 힘으로 깨부수면 그만 아닌가!
금색 빛줄기가 점점이 빛나며 하후진의 몸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원기가 천지를 울리는 바람으로 변하고, 하후진이 내지르는 주먹을 따라 천지를 찢어발길 듯한 원기의 폭풍이 끝없는 어둠마저 찢어버렸다.
하후진과 육 선생으로 말하자면 하나는 기본이 탄탄하고 하나는 재능을 타고난 인물이었다. 두 사람이 겨루기 시작하자 일시적으로 백중지세의 국면이 되었다.
진양자는 더는 말하지 않고 순양검강을 내뿜으며 초휴에게 달려들었다. 초휴의 눈에 사나운 기색이 스쳤다. 그는 물러서기는커녕 마염을 일으키며 앞으로 나아갔다.
마기와 살의가 온몸을 둘러싸고 뭉쳤다. 천절지멸망아살권으로 내지른 주먹에는 전에 없이 강대한 기세와 위력이 담겨 있었다.
살권과 순양검강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뜨겁게 타오르는 순양강기는 살기(煞氣)나 마기 같은 속성의 천적이었고, 가뜩이나 지금 초휴의 힘은 진양자보다 훨씬 못했다.
둘이 부딪치자 초휴의 권의는 깨져나갔고, 순양검강의 기운을 맞아 일순간 선혈을 토했다. 그러나 그가 뱉어낸 피가 격렬하게 타오르더니 순식간에 혈무로 변해 초휴의 몸을 둘러쌌다.
그의 움직임이 돌연 몇 배는 더 빨라졌다. 초휴는 진양자를 피해 순양도문의 마지막 청년 제자 옆에 나타났다.
천절지멸이혼대법을 펼치자 순양도문의 젊은 제자는 저항도 못 하고 초휴의 손아귀에 잡히고 말았다. 마기에 물든 손으로 순양도문 무사의 목을 쥔 초휴는 진양자를 향해 싸늘하게 웃었다.
“늙은이, 날 죽여 없애겠다며? 순양도문의 대를 끊고 싶으면 어디 죽여보시지!”
진양자는 임엽 같은 마도 애송이가 자신과 맞상대하게 되었을 때, 유일하게 할 법한 선택은 머리를 감싸고 쥐새끼처럼 도망치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전력을 다해 퍼붓는 자신의 공세를 피해 살길을 찾아 도망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제법 아니겠는가.
그러나 임엽이 이처럼 간덩이가 부은 행동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감히 순양도문의 제자를 붙잡아 협박한다고?’
그는 너무 화가 치솟아서 손이 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진양자는 이를 갈았다.
“후배의 목숨으로 협박을 하다니, 마도 요물들은 정말로 파렴치하고 비열한 족속이구나! 영진(寧眞)을 놓아줘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 순양도문의 전력을 모조리 쏟아서라도 네놈을 무덤조차 찾지 못하게 만들어 주겠다!”
초휴가 냉소했다.
“후배를 건드린 게 파렴치하고 비열하다고? 좋다, 한번 따져 보지. 나와 이 도사는 같은 배분인데 후배라는 게 무슨 소린가. 그리고 방금 당신들 선배 둘이 나를 협공할 때, 염치와 법도는 어디에 팔아먹었던 건가? 당신들이 떠드는 법도는 나 혼자만 지켜야 하는 거란 소린가?”
진양자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초휴의 실력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를 후배 무사가 아니라 무도종사 급의 존재로 여기고 있던 것이다.
초휴는 젊은 도사 영진의 목을 움켜쥔 채 담담히 말했다.
“됐다, 쓸데없는 말은 그만두자고. 늙은이, 십 리를 물러가면 이 애송이를 살려주겠다. 그렇지 않으면 순양도문의 청년 세대에는 쓸 만한 자가 하나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순양도문은 공들여 키운 제자가 이비렴의 손에 죽은 것만으로도 근골이 상했다고 할 만했다. 순양도문처럼 가혹하게 수련하는 곳에서, 젊은 나이에 천인합일 경지까지 오르는 무사가 나오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제자가 죽는다고 순양도문의 젊은 세대가 씨가 마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소범천에 온 네 사람은 지금 순양도문의 청년 제자 중 비교적 뛰어난 이들이었다. 만일이 넷이 다 죽는다면 쓸 만한 제자가 아예 사라지는 셈인 것이다,
그리되면 도토리 키 재기 하듯, 못난 자들 중에 그나마 괜찮은 제자를 고르는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순양도문으로서는 절대로 좋은 일일 수가 없었다.
진양자의 얼굴에 갈등하는 기색이 비쳤다. 성질 같아서는 사마외도는 전부 주살해야 마땅했다. 그 대의를 위해서라면 제 편을 희생해도 아깝지 않았다. 그러나 종문의 미래를 생각하면 무조건 무정하게 행동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한참 후 진양자는 싸늘하게 말했다.
“만일 내가 물러났는데도 네가 영진을 죽이면? 너희 마도 족속이 하는 말을 내가 어떻게 믿겠느냐?”
“안심하시지. 나 임엽은 언행에 신의를 지킨다. 결코, 속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마도인이라지만 자칭 정도라는 당신들보다 훨씬 믿음직하다는 말이다.”
진양자는 시커메진 얼굴로 냉소했다.
“좋다. 그렇다면 일단 믿어 보지. 만일 영진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네놈을 갈가리 찢어 버릴 테다!”
진양자가 등을 돌려 떠나려 할 때, 초휴의 천절지멸이혼대법에 통제당하고 있던 영진이 갑자기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뜨거운 순양강기가 기혈을 따라 타올랐다. 영진은 잠재의식으로 자신의 정혈을 태워서 천절지멸이혼대법의 통제에 저항하고 있었다!
초휴의 정신력은 이미 대부분의 무도종사보다 훨씬 강한 수준이었다. 영진이 천절지멸이혼대법을 깨려면 목숨을 걸고 덤비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 격렬한 움직임은 초휴조차 예측하지 못한 것이었다. 짧은 순간에 영진은 정말로 정신력의 금제를 뚫어 버렸다. 그는 진양자를 향해 소리높여 외쳤다.
“사백! 이 자의 정신에 살의가 있습니다! 사백을 속이고 저를 죽일 작정인 겁니다!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이 마도 놈을!”
영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초휴의 손에서 마기가 터져 나오더니, 영진의 목을 짓눌러 꺾어 버렸다. 초휴는 영진의 시체를 한쪽에 내던지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이런 짓을 하지? 그냥 정신을 잃은 채로 있는 게 나았을 것을. 적어도 죽을 때 고통은 없었을 텐데.”
영진의 말이 맞았다. 초휴가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는 이미 순양도문의 제자를 셋이나 죽였다. 하나쯤 더 죽이건 덜 죽이건 그리 차이 날 게 뭐겠는가. 풀을 벨 때는 뿌리까지 뽑아야 하는 법이다.
이미 원한을 맺은 이상 미래의 희망을 아예 꺾어 버리는 편이 나았다. 그러나 순양도문 제자가 이렇게까지 격렬하고 불같은 성격일 줄은 몰랐다.
초휴를 바라보던 진양자의 눈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그는 갑자기 피를 왈칵 토했다. 혈무가 허공에서 엉겨들며 부적의 기호로 바뀌더니 손에 들린 도검에 스며들었다.
동시에 극한에 달한 순양강기가 진양자의 몸에서 감돌다가 극도로 압축되어 도검으로 모여들었다. 순간 도검은 태양이 강림한 것처럼 눈 부신 빛을 발했다.
“죽어라!”
진양자의 손에서 빠져나온 도검이 날카로운 살의를 담고 초휴를 향했다.
진양자는 자신의 정혈로 항마도문을 새긴 것이다. 마도의 피를 보기 전에는 절대 칼집에 넣지 않을 각오로!
순간 초휴는 엄청난 위기감을 느꼈다. 도검에 맺힌 순양강기는 극한까지 압축되어 있었다. 두께는 매우 얇았으나 한낮의 태양처럼 뜨거웠고 스치는 것들은 천지 원기까지도 태워 버렸다.
그는 정말로 진양자를 격노하게 만든 것이다. 명성이 드높은 무도종사 선배로서 자신의 정혈을 소모하는 비법까지 사용하며 죽이려 하다니, 그의 분노가 얼마나 격렬한지 알 만했다.
초휴는 천자망기술을 극한까지 전개했다. 진한 마기의 혈무에 둘러싸인 채, 살짝 내박인을 맺자 움직임은 폭발적으로 빨라졌다. 그러나 효과는 너무나 미미했다.
지금 초휴의 정신력은 대부분의 무도종사를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도검의 궤적을 볼 수 있었고, 미리 피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러나 그에게 조준이 고정된 진양자의 도검은 아무리 피해도 파리처럼 끈질기고 빠르게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초휴의 속도가 조금이라도 느려지면 작렬하는 순양강기가 마기를 압도하며 초휴의 힘을 갉아먹어 댔다.
진양자는 무도종사였으나 지금은 임엽이 너무도 증오스러웠다. 자신의 체면이나 앞으로 소범천에서 벌어질 보물 쟁탈전 따위는 이제 안중에도 없었다.
자신의 모든 힘을 여기서 다 쓰더라도 반드시 임엽을 죽여 없앨 생각이었다. 임엽의 폭발력이 어지간한 무도종사와 비견할 수준이라지만, 그래 봐야 아직 무도진단을 응집시킨 건 아니지 않은가.
힘을 뽑아 쓰는 만큼 꼬박꼬박 줄어들게 뻔했다. 그렇게 소모하다 보면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쪽은 임엽이 될 터였다.
초휴는 아직 몸을 돌리지 않았지만, 손은 이미 원한도의 칼자루를 쥐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망설여졌다. 정말로 칠마도를 쓸 것인가, 아니면 아귀도 화신을 써서 목숨을 걸고 싸워 볼 것인가?
진양자는 여전히 늪 같은 얼굴로 그를 노려보며 온몸의 신경을 임엽에게 쏟고 있었다. 그는 임엽에게 비장의 패가 있다는 것도, 계속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도 잘 알았다.
해서 그가 마지막 패를 꺼낼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을 꺼내는 순간, 일격에 짓부숴버려 지옥의 밑바닥까지 떨어지는 절망을 맛보게 해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진양자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았으나 심혈이 올라오는 듯한 육감이 들었다. 그것은 오랜 세월 강호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싸움을 하는 동안 생겨난 일종의 본능과도 같았다.
감각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본능을 믿을 것인가. 순간 진양자는 무의식적으로 후자를 선택했다.
그는 도검을 쓰는 것을 그만두고 순양강기의 힘으로 속도를 극한까지 빠르게 올려 한쪽으로 비켜서는 동시에 인결을 맺어 방어 비법을 펼치려 했다.
그러나 인결을 고작 반밖에 맺지 못했을 때 은빛 비도가 그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비도 앞에서 진양자의 강력한 호체강기는 별다른 방어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은빛을 뿌리며 날아간 비도는 곧장 땅에 박혔다.
강기가 폭발하는 소리 같은 것은 없었으나 비도는 벌써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감각으로 느낄 수조차 없을 정도였으니, 비도는 이미 땅속 수백 장 넘는 깊이까지 파고든 것이 분명했다.
“이비렴, 네놈이!”
진양자는 경악성을 외치며 뒤쪽에서 나타난 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젊지도 늙지도 않은, 서른 전후쯤 되어 보이는 무사였다. 생김새도 매우 평범해서 군중 속에 던져 놓으면 절대 찾아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옷차림도 평범하기 짝이 없는 검은색이었는데, 아무렇게나 두른 가죽 허리띠에는 아홉 자루의 비도가 꽂혀 있었다. 조금 전 던진 한 자루까지 포함해서 모두 열 개의 비도를 지니고 다니는 셈이었다.
허리춤의 비도 역시 그 자신과 마찬가지로 아주 평범해 보였다. 도신은 칠 촌, 자루는 손가락 길이쯤 되었다. 반짝이기는 했으나 평범한 쇠로 주조했는지, 무늬 하나조차 없어 지극히 소박했다.
그러나 조금 전 무도종사 진양자는 이 평범해 보이는 비도에 중상을 입을 뻔한 것이다. 진양자의 외침을 들은 사람들은 시선을 돌려 평범하기 그지없는 비도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이 남자가 과거의 용호방 사 위, 지금은 육 위인 이비렴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진양자가 아니었다면 비도를 지니고 있건 말건, 그 사람이 이비렴이란 것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이비렴은 용호방 십 위에 드는 무사 중 출수한 횟수가 가장 적은 사람이었고, 동시에 가장 기이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가 비도를 하나 던질 때마다 사람이 한 명씩 죽어 나갔다.
유일하게 두 번 던진 것은 순양도문의 천재 제자를 죽였을 때였다. 순양도문 미래의 거물을 죽인 그는 이후 줄곧 순양도문의 추살에 쫓겼다. 그리고 잠적한 이비렴은 이미 몇 년 넘게 강호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눈앞에 있는 그를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어쨌거나 뛰어난 사람은 남과 다른 점이 눈에 띄기 마련이 아닌가. 이비렴처럼 기이한 인물이 이렇게 평범할 리 없다는 생각이 그들의 뇌리를 스쳤다.
정말 저 특색 없는 인물이 이비렴일까?
이비렴과 순양도문 간의 은원은 강호인 모두가 익히 아는 바였다. 그 사건은 이비렴이 아니라 순양도문 측의 잘못이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단지 입 밖으로 내지 않을 뿐이었다.
용호방 육 위인 이비렴의 신분은 신비에 싸여 있었다. 풍만루마저 그에 대해 아주 간단한 정보만 찾아냈을 뿐, 자세한 건 알지 못했다. 풍만루에서 흘러나온 이비렴에 관한 정보는 아주 단순했다.
그의 선조는 상고 대겁난 이전 무림의 고수 중 하나였고, 던지는 비도가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공간과 인과를 다루는 극강 수준의 무도에 도달한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이비렴 일가의 무공은 오직 한 사람에게만 전해지는 일인 전승 무공으로, 정도도 마도도 사도도 아니며, 강호의 시비에 끼어드는 일이 거의 없어서 매우 소극적이었다고 했다. 다만 어쩌다 나설 때면 그 실력이 엄청났다고 한다.
이비렴 역시 그의 까마득한 선조와 비슷하여 아주 얌전했다. 그의 손에 죽은 사람들은 모두 먼저 이비렴을 찾아와 소동을 일으킨 것이었고, 이비렴 자신이 먼저 남을 건드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평범한 무사들도 먼저 건드리는 일이라곤 없는 이비렴이 순양도문의 청년 준걸에게 무엇하러 시비를 걸겠는가. 순양도문의 기질은 온 강호가 다 알고 있었다. 이비렴이 순양도문 제자를 죽인 것도, 분명 순양도문 쪽에서 이비렴에게 시비를 걸어서 벌어진 일이 분명했다.
그러나 강호에서는 옳고 그름만 따질 수 없는 법이었다. 이비렴의 잘못이 없다 한들, 그가 제자를 죽였으니 순양도문은 복수를 위해 나서야 했다. 몇 년 동안 순양도문은 줄곧 이비렴의 행방을 추적했으나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이비렴 역시 순양도문의 추적을 피하느라 줄곧 강호인들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런데 그 이비렴이 여기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등장하자마자 진양자에게 아주 그럴듯한 인사까지 한 것이다.
짧은 사이에 진양자는 순양도문의 원수를 둘이나 상대한 셈이었다. 그러나 진양자가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비렴이 먼저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