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53)
553화 이 쳐 죽일 놈아!
다행히 안류년은 별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한 듯했다. 관사우가 막 당주 지위를 계승했을 무렵에는 안류년도 강호에서 명성이 대단했다. 당시 강호인들 대부분은 관사우가 아니라 안류년이 다음 당주가 될 거로 생각했었다. 그 시절에는 안류년의 명성이 관사우보다도 높았으니 말이다.
물론 이런 이유만으로 그가 눈치채지 못한 건 아니었다. 안류년은 강호에 발을 끊은 지 오래였기 때문에 강호 사람들이 뭐든지 금방 잊는다는 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옛날 관중형당과 긴밀하게 지냈던 세력을 제외하면 강호인들은 그를 새까맣게 잊은 지 오래건만 정작 자신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는 초휴를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유적은 어디 있나?”
“바로 저 앞입니다. 따라오시죠.”
안류년이 코웃음을 쳤다.
“행여나 이상한 수작 부릴 생각은 말게! 관사우의 심복이고 방살을 이겼다고 해서 자네가 나와 맞먹을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면 곤란하지. 나는 옛날 초광가가 당주일 때부터 집형사를 이끌고 강호를 휩쓸었어. 그때는 자네 같은 애송이는 말할 것도 없고, 관사우조차 보잘것없는 일개 강호 포두에 불과했단 말이다.”
초휴는 찝찝한 표정을 지으며, 반박하고 싶지만, 일단은 참고 넘어간다는 태도를 보였다.
안류년은 별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했다. 초휴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그저 굽히고 들어가기만 했으면 그편이 더 수상했을 터였다.
초휴가 자신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초휴가 자신에게 진정으로 복종할 필요는 없었다. 유적까지 자신을 안내하면 그만인 것이다. 은마권의 무도종사가 쫓아올 정도라니, 분명 좋은 물건이 꽤 쌓여있을 게 아닌가.
초휴의 안내로 구석진 산골짜기에 도착했을 때야 안류년은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소범천은 곳곳에 영기가 흘러넘치기는 했으나 그래도 강한 곳과 약한 곳이 달랐고, 유적 대부분은 영기가 강한 곳에 지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 골짜기는 영기가 희박하지 않은가. 이런 곳에 종문을 세우기도 하나? 그러나 초휴가 앞장서서 골짜기로 들어서자 안류년도 깊이 생각하지 않고 곧장 따라 들어갔다. 바로 그때 초휴가 외쳤다.
“큰일이다!”
초휴가 고개를 돌려 안류년을 보고 말을 이었다.
“다른 자들이 한발 앞섰나 봅니다!”
안류년은 즉각 달려갔다.
“무슨 일이지?”
초휴는 골짜기 입구에 쓰러져 있는 검은 옷의 시체들을 가리켰다.
“유적을 지키고 있던 은마권의 무사들입니다. 저들이 죽은 것을 보니 제가 쫓기는 사이 누가 선수를 친 것 같습니다.”
안류년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우연치곤 공교롭지 않은가! 유적이고 뭐고 없었는데 날 속이는 것 아닌가?”
초휴가 다급하게 말했다.
“제가 어찌 감히 수령 대인을 속이겠습니까? 저 시체들은 보시면 알겠지만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요. 조금 전에 살해당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 말을 듣고도 안류년의 의혹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관중형당에서 초휴의 평판은 그리 좋지 못했다. 유적은 이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닌지, 여기는 초휴가 이미 싹 털어간 게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저자들 역시 초휴가 죽여 놓고 다른 자들이 해치웠다고 속이는 것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과연 관중형당 무사다운 사고였다. 강호 포두 노릇을 그만둔 지는 오래였으나 깊이 축적된 직업적 소양 탓으로 순식간에 온갖 경우의 수를 떠올린 것이다.
의심을 품은 안류년은 시체들을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다. 초휴가 죽인 것인지 아닌지 말이다. 그러나 안류년이 막 걸음을 내디뎠을 때, 돌연 ‘펑’하고 괴상한 소리가 나더니 시체들이 일시에 일어섰다. 그리고는 손을 연결한 가느다란 실에서 진법의 빛이 흘러나와 천라지망처럼 안류년을 그 안에 가둬 버렸다.
그제야 안류년은 깨달았다. 이것들은 시체가 아니다. 사람 가죽을 뒤집어쓴 끔찍한 몰골의 괴뢰들이 아닌가!
“꺼져라!”
안류년이 금검(金劍)을 꺼내자 유금의 날카로운 기세가 확 뻗어 나왔다. 천인합일 경지에 불과한 괴뢰들은 그대로 날려가고 말았으나, 가느다란 실들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여전히 안류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때 골짜기 안에서 공수원이 모습을 드러내며 미소지었다.
“쓸데없이 힘 빼지 마라. 설역빙잠(雪域氷蠶), 북해수잠(北海水蠶), 남강금사잠(南疆金絲蠶) 등 무수한 영물 누에들의 실을 엮어서 짜낸 곤신망(捆神網)이다. 신병으로도 끊을 수 없다.”
그러나 지금 안류년의 신경은 공수원이 아니라 자신의 등 뒤에 쏠려 있었다.
매복에 당했다는 걸 깨달은 순간 안류년은 생각했다.
‘이것이 함정이라면, 그를 유인해 온 초휴의 역할은 무엇일까?’
그는 곧장 몸을 돌려 등에 멨던 장검 네 자루를 단번에 빼 들었다.
오행의 힘이 회전하며 폭발하고, 안류년이 검을 찌르자 오색 검강이 천지의 힘을 끌어냈다. 혼자 힘으로 강대한 검진을 만들어낸 것이다.
뒤에 있던 초휴는 아귀도 화신도, 칠마도도 꺼내지 않았다. 그것들은 힘의 소모가 너무 컸고, 공수원도 안류년을 생포하는 게 가장 좋다고 하지 않았는가. 해서 그는 인결을 맺어 불광을 내뿜는 환일대법을 펼쳤다.
가없는 불광 속 대일여래의 상이 해와 달을 가리고 온 하늘을 덮을 듯했다. 대일여래의 일장이 오행검진과 격돌하자 맹렬하고 엄청난 파동이 일어났다. 연신 뒷걸음질하는 안류년의 눈에 경악의 기색이 스쳤다.
‘오판이었다. 초휴의 진짜 실력은 무려 이 정도였다니!’
안류년이 초휴의 실력을 본 것은 그가 방살과 싸우던 때 딱 한 번뿐이었다. 그러나 그때 방살은 가진 패를 다 내보이지 않았고 초휴 역시 전력을 다해 싸우지 않았다.
초휴가 손쉽게 방살을 이긴 것은 첫째 방살이 방심해서였고 둘째는 초휴가 전투의 강약을 완전히 장악하여 그들 같은 무도종사에 비해 전혀 모자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해서 그때 안류년은 초휴의 실력이 제법이라고 생각했을 뿐, 정확히 얼마나 강한지는 알지 못했다. 설마 자신을 위협할 정도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것이다.
그러나 환일대법이 펼쳐지자 거기서 감지되는 힘은 폭발력만 놓고 봐도 충분히 자신과 견줄 만하지 않은가. 초휴의 실력을 정확히 알았더라면 애초에 속지도 않았을 것이다.
초휴를 쫓아오던 무도종사의 실력도 제법이기는 했으나, 특출나게 강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초휴의 진짜 실력이라면 그자에게 쫓기기는커녕 상대를 죽여 버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 소용없는 이야기였다. 안류년은 어떻게든 이 포위를 돌파할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공수원이 안절부절못하며 외쳤다.
“공격할 때 조심해! 내 곤신망을 망가뜨리지 말고!”
말이 끝나자마자 안류년이 인결을 맺더니 순식간에 네 자루 장검이 금검 뒤에 꼿꼿하게 바로 섰다. 그가 검을 휘두르자 금빛의 예리한 검기가 천지를 덮을 듯이 뿜어져 나오며 곤신망이 순식간에 끊어져 나갔다.
오행의 힘은 상생이자 상극이다. 네 자루 검의 힘이 상생과 상극의 힘을 금검에게 모두 전하면서 검의 예기가 극한까지 발휘된 것이었다.
이론상으로는 신병도 끊지 못한다는 곤신망이었다. 그러나 신병의 위력과 그 무기를 쓰는 무사의 기술까지 더해진다면 얼마나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것인지를 계산 못 한 것이었다.
그 광경을 본 공수원은 너무 아까운 나머지 ‘밑졌다, 밑졌어!’하고 투덜거리며 탄식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도와준다고 나서지나 말 것을!”
금검은 날카롭고 수검(水劍)은 부드러웠다. 안류년이 쥔 수검에서 투명한 파문이 폭발하더니 검을 휘두르는 대로 공기에 파동이 일어났다.
안류년의 몸도 그 움직임에 맞추어 마치 물고기처럼 재빠르게 골짜기 밖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금세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들어올 때는 백 장도 안 되는 거리였으니 순식간에 탈출할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마치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처럼 한참을 뛰어도 출구가 여전히 멀지 않는가. 주변을 둘러보자 산골짜기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주위는 온통 칠흑처럼 어두웠고 땅에는 황천수가 흘렀다. 무수한 악귀들이 그를 향해 포효하고, 하늘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요염한 미녀들이 춤추듯 내려와 욕망을 자극했다.
“꺼져라!”
안류년의 주변에서 다섯 자루 검이 빙글빙글 돌더니 붉게 타오르는 화염처럼 변했다. 오검이 모두 뽑혀나가자 불같은 검강이 삿되고 더러운 것들을 모조리 태워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육 선생의 모습이 나타났다.
“무상마종!”
안류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공수원이야 누군지 몰랐지만 무상마종의 천마무상묘법은 강호에 이름난 술법이었다. 안류년은 고개를 확 돌려 초휴를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초휴! 마도와 결탁하고 있었더냐, 죽일 놈! 이 쳐 죽일 놈아!”
그 순간 안류년은 자신의 안위가 아니라 관중형당의 앞날을 생각하고 가슴이 철렁했다.
‘마도와 결탁한 자가 관중형당에 들어와 사대 장형관 중 하나가 되었을 뿐 아니라, 관사우의 심복 자리까지 오르다니.’
이렇게 딴 속셈을 품은 자가 있으니 관중형당의 앞날이 어찌 되겠는가!
정말로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마도와 결탁했다는 안류년의 말에 초휴와 육 선생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이자를 죽이러 온 것이었다. 죽을 자는 많은 것을 알 필요가 없고, 죽기 전에 좋은 말을 들려줘서 긴장된 마음을 풀어 줄 필요도 없다. 해서 그들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곧장 움직였다.
초휴가 천마무를 뽑아 아비도삼도를 펼치자 하늘을 찌를 듯한 마염이 솟구쳤다. 안류년의 오법검에 조금도 밀리지 않는 기세였다. 아비도삼도는 마도(魔刀)였으나, 그 도의의 핵심은 원한이었다.
미치광이 같은 원한을 품은 지옥의 도인 것이다. 초휴가 칠마도 중 원한도를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비도삼도로 기초를 다진 덕분이었다. 탐욕도나 다른 도를 쓸 때보다는 훨씬 힘이 적게 들었다.
다시 아비도삼도를 출수하자 문득 깨달음이 왔다. 칠마도의 부작용이 극심한 것은 미완성품이기 때문이었다. 옛날 흑마탑의 연기대사는 흑마탑 고수들을 모아 칠마도와 융합할 수 있는 무공을 만들려 했으나, 상고 대겁난으로 흑마탑이 무너지자 모두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고 무공 역시 만들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만들지 못했다고 해서 지금의 초휴도 만들지 못하겠는가.
아비도삼도를 통해 원한을 장악할 힘을 얻은 것처럼, 탐욕, 분노, 우둔, 애정, 악의, 욕망 따위의 다른 힘도 시험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칠정의 힘을 완전히 터득해 칠마도와 융합할 수만 있다면 그 부작용도 없애는 게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초휴는 다시 마도를 휘둘렀다. 이미 아비도삼도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도의만이 형상으로 남아 하늘을 덮을 듯한 원한으로 가득 찼다.
옆에 있던 육 선생은 깜짝 놀랐다. 그는 하마터면 초휴가 손에 든 것이 천마무가 아니고 비장의 패인 칠마도를 꺼낸 줄 착각할 뻔했다.
최대한 상대를 생포하도록 노력하자고 사전에 이야기가 되었는데 갑자기 비장의 패를 쓴다면, 앞뒤가 안 맞는 상황이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초휴의 일도가 휘둘러지자 칠흑 같은 마기 속에서 끝없는 원한이 솟구치더니 안류년의 원한까지 끌어냈다. 안류년이 품은 원한은 단순했다. 세상이 자신에게 불공평하다는 것이었다.
초광가와 같은 시대에 태어난 것은 영광이었지만 불운이기도 했다. ‘거협’ 초광가를 만나 강호의 전설이 된 그의 굴기와 죽음까지 볼 수 있었던 것은 영광이었으나, 자신이 그의 들러리가 될 자격조차 없었다는 것은 슬픔이었다.
관사우와 같은 시대에 태어났다는 것 역시 영광이자 불행이었다. 관중형당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관중형당이 풍요롭고 안정된 모습으로 강호에 우뚝 서서 옛 선배들의 시대보다도 확고한 위상을 지니게 된 것은 기쁜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이루어낸 사람이 그가 아니라 그의 적수라는 점은 그를 슬프게 했다.
비록 그가 마음으로는 오직 관중형당을 위했으나, 향후 관중형당의 역사에 안류년은 부정적 인물로 남게 될 터였다. 당주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제 수하를 이용해 권력을 강화했던, 사심이 가득한 집형사 대수령으로 말이다.
그리고 초휴 앞에서는 슬픔도 영광도 다 사라지고 말았다. 그저 원한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