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55)
555화 삼청전에 구름처럼 모인 강자들
초휴는 임엽의 신분을 쓰지 않고 본래의 초휴 행세를 하기로 했다. 소범천에 들어온 지 오래되었으니 초휴의 신분으로도 어느 정도 움직여야 했다.
더군다나 삼청전의 싸움은 격렬하기 이를 데 없을 터였다. 지금이야 도, 불, 마 삼맥이 손을 잡았다지만 일단 싸움이 벌어지면 마도의 세력이 가장 약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자신은 허행에게 중상을 입혔고 진양자까지 죽였으니 도문과 불문 양맥의 눈엣가시이자 걸림돌이 되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초휴 신분으로 가는 편이 안전했다.
초휴는 육 선생과 헤어져 동쪽으로 걸었다. 소범천에는 밤이 없고 오로지 낮뿐이었으나, 하늘에 해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동쪽으로 갈수록 빛이 더 밝아졌다. 꼬박 하루 가까이 걷자 앞쪽에서 힘의 파동이 느껴졌다.
초휴가 힘의 파동이 느껴지는 곳으로 가 보니 이삼백 명쯤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소범천에 들어온 무사들의 절반쯤 되는 인원이 몰려든 것이다.
삼청전 분전의 모습도 이미 드러나 있었다. 만일 육 선생에게 분전이라고 듣지 못했으면 초휴는 이것이 진짜 삼청전인 줄 알았을 것이다. 너무나 웅장한 유적이었기 때문이다.
분전은 전체가 청동으로 지어진 거대한 건물이었다. 문과 창을 제외하면 틈새라곤 조금도 없었다. 게다가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커서 둘레가 족히 십여 리는 될 듯했다.
전각이라기보다는 성이라고 하는 편이 걸맞을 정도였다. 청동 벽에는 여러 가지 오묘한 도문이 새겨져 있었다. 어떤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마모되어 흐릿해져서 보이지 않았는데 예스러우면서도 황량한 느낌을 풍겼다.
분전의 문간에는 족히 삼 장 높이는 되어 보이는 검은색 세 발 솥이 놓여 있었다. 옛날 삼청전이 강성했을 때에는 분명 자욱한 향 연기 속에 도가 가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황량하고 적막한 상태였다.
삼청전 대문 앞에 열 명이 넘어 보이는 무도종사가 모여서 어떻게 진법을 깰 것인가를 의논 중이었다. 개중 초휴가 아는 사람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도문으로는 용호산 천사부의 ‘자소신군(紫霄神君)’ 장희령, 그리고 진무교의 광녕도인이 있었다. 불문은 수보리선원의 고승 정선공도(淨禪空度)였다.
법명도 기이했고 외모도 중원보다는 서역 사람에 가까워 보였다. 정선공도 외에 둥그렇고 거대한 체구의 승려 하나도 진법을 푸는 중이었다. 그는 대광명사나 수보리선원이 아니라 다른 불문 사찰의 고수였다.
그리고 인파 속에 허행도 있었다. 허행은 탐욕도에 입었던 상처를 완전히 회복했으나, 진법을 깨는 데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달마원 상좌인 그는 진법에는 그다지 밝지 않기 때문이다.
마도 쪽에서는 두 명이 있었다. 하나는 당연히 운중군이었고 다른 하나는 초휴가 모르는 인물이었다. 검은색 도철문(饕餮紋) 장포를 입었는데 영준한 얼굴에 두 가닥의 수염을 길렀고, 비범해 보이는 중년인이었다.
초휴는 그와 안면이 없었으나 육 선생에게 설명을 들은 적은 있었다. 은마권의 마도 고수 ‘묘월법존(妙月法尊)’ 저무기(褚無忌)로, 대단한 내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저무기는 북연이나 동제, 서초가 아닌 위국(魏國)의 황족이었다. 위국은 동제에 의지했다가 북연에 멸망해 지금은 북연의 위군이 된 바로 그곳으로, 초휴의 고향이기도 했다.
저무기는 위국의 황자였으나 줄곧 강호를 마음에 두었고 황위에는 뜻이 없었다. 해서 그의 형들도 그를 경계하지 않았고 오히려 각종 지원과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황위를 놓고 다투는 일에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강호를 쏘다니게 해 준 것이다. 위국의 마지막 황제 역시 막내아들을 몹시 아껴서 원하는 건 무엇이든 다 해주었다.
스무 살까지 저무기의 인생은 그야말로 봄날이었고 만사가 순조로웠다. 그는 이십 세에 천인합일이 되었고, 기량이 절정이었을 때는 용호방 오 위까지 올랐었다.
사람됨도 시원시원해서 여러 대문파 제자들과 교분을 맺은 강호의 호걸이었다. 삼교구류에 모두 벗이 있어 인맥이 넓었고 평판도 좋아서 모두 그를 ‘위공자(魏公子)’ 저무기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위국이 북연에 멸망하면서 위국 황족이 모두 참살당하는 비극이 벌어졌고 저무기는 광기에 빠져들어 옛 친구들에게 도움을 구했다. 권력도 있고 위세도 높은 대문파 제자들에게 복수를 도와 달라고 한 것이다.
그나마 괜찮은 축에 속하는 이들은 좋은 말 몇 마디로 위로해 주었고, 어떤 자들은 건성으로 대충 대했으며, 심지어 아예 만나 주지도 않는 자들도 있었다.
강호의 싸움은 조정의 전쟁과 관련이 있기도 하고 또 관련이 없기도 했다. 양측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관계로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이면 최대한 조정과 엮이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저무기와의 알량한 교분 때문에 종문의 이익에 손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 했다. 이에 저무기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세태에 질릴 대로 질리고 말았다.
결국 저무기는 자신과 교분이 깊었던 낭인 무사들을 찾아갔다. 그들은 실력도, 출신도 대문파의 근처에도 못 갔으나 저무기와 함께 목숨을 걸고 나서 주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무도종사 한 명 없는 무리가 북연에 시비를 걸었으니 어떻게 되었겠는가.
북연군은 그들의 소굴을 박멸해 버렸고 중상을 입고 달아난 저무기 외의 모든 사람이 죽었다. 자신 때문에 그 많은 벗이 죽었으니, 그때 저무기의 심경이 어땠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 아닌가.
그 후 십여 년 동안 저무기는 강호에서 종적을 감췄다.
저무기가 다시 나타났을 때는 은마권의 무도종사가 돼 있었고, 복수를 위해 옛날 위국을 무너뜨렸던 북연군 측 고수들을 미치광이처럼 도륙했다.
위군에 주둔했던 북연 상장군 ‘횡산패검(橫山霸劍)’ 방용천(方龍泉)의 팔이 잘린 일이 있었는데, 저무기의 소행이라는 말이 돌았다.
이런 이야기는 모두 강호에 떠도는 소문이었다. 그러나 육 선생은 은마권 내부에서 도는 저무기의 평판은 더 대단하다고 말했다. 동년배 중 진화련신에 오를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이유였다.
물론 마음에 뚫려 버린 구멍을 해결한 뒤의 이야기겠지만.
* * *
도, 불, 마 삼맥이 은원을 내려놓고 화기애애하게 진을 깨기 위해 협력하고, 진법에 정통한 무도종사까지 합세한 것은 정말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그때 초휴가 도착하자 분분히 소란이 일었다.
“또 한 사람 왔어. 관중형당의 초휴다!”
“용호방 오 위권이 거의 다 모였군. 순위가 변할지도 모르겠는걸.”
“당연히 변하겠지. 용호방 칠 위 임엽이 소범천에서 칠마도를 얻었다는 말 못 들었어? 달마원 상좌 허행에게 중상을 입히고 순양도문의 진양자까지 죽였잖아. 무도종사를 죽였으니 너끈히 오 위 안에 들지 않겠나?”
“오랜만에 강호로 돌아온 이비렴을 빼놓으면 곤란하지. 그자가 아홉 자루 비도로 중상을 입히지 않았다면 임엽이 어떻게 무도종사인 진양자를 죽였겠나.”
“소범천에 고수가 이렇게 많으면 소천사 장승정의 순위도 위태롭지 않을까? 용호방 일 위를 그렇게 오래 차지했으니 그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 많을 텐데.”
“그럴 가능성은 적어. 자네들은 소천사를 본 적이 없어서 그가 얼마나 강한지를 모르는 걸세. 용호산 소천사는 인중용봉(人中龍鳳)이란 말이네. 자네들의 상상보다 훨씬 강해. 장승정은 용호산에서 천년에 한 번 나올 만한 기재야. 윗세대 도문의 지존급 인물은 ‘선인’ 영현기였고, 진무교도 그 덕분에 도문의 지존이 되었지. 지금은 천사부가 도문의 우두머리인 만큼 천사부에서 제이의 영현기가 나오지 않겠어?”
“동상기(董相其), 미친 것 아닌가? 저번에 고릉 동가가 진청제에게 호되게 당할 때 천사부가 나서서 몇 마디 좋은 말 좀 해줬다고 천사부에 아첨까지 떠는 건가? 제이의 영현기라니, 아예 제이의 여순양이라고 하지 그러나?”
“헛소리! 아첨은 무슨, 무사끼리 하는 말에 아첨이 어디 있어? 나는 명백한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한쪽에서 소란이 끊이지 않았다. 어쨌거나 초휴가 도착하자 용호방 오 위권이 전부 모인 셈이 되었다. 심지어 십 위권에 드는 사람들까지 대부분 모인 듯했다.
일 위 장승정은 장희령 뒤에 서서 그가 진법을 푸는 것을 보고 있었다. 강호에서 도는 소문대로 그는 진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듯했다. 이 위인 종현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허행 뒤에 서 있었다. 두 눈이 형형히 빛나고 있었으나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방칠소는 검왕성의 백잠, 임개운과 함께 있었으나, 초휴를 보자 느긋하게 장검을 휘두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러나 그는 검을 들어 올리는 것이 시비를 거는 것으로 보이리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검을 내리고는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단정치 못한 행동거지에 백잠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는 전음으로 방칠소에게 ‘행실에 신경을 써라’, ‘차라리 종현처럼 입 꾹 다물고 목석처럼 있으라’ 주의를 주었다.
오 위인 영백록은 안비연 곁에 서 있었다. 그녀를 사모하는 마음은 드러내되, 너무 들러붙는다거나 상대가 귀찮아하지는 않을 정도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면서 말이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이 남자였으나, 사내들이라도 영백록이 완전히 사랑에 빠졌다는 것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월녀궁의 법도에다 안비연의 신분까지 생각하면 두 사람이 맺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물론 다른 경우였다면 한 가닥의 확률은 있었을지도 모른다.
안비연의 자질이 평범하고 월녀궁에 뛰어난 다른 후계자감이 있어 그녀에게 연연할 필요가 없다면, 그리고 상수 영가가 충분한 대가를 치를 능력이 있다면, 월녀궁은 안비연을 보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녀는 영백록과 혼인할 수 있고 월녀궁으로서도 법도를 어길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안비연이 영백록에게 마음이 없는 건 둘째 치고, 있다 해도 월녀궁이 그녀를 놓아줄 리가 없었다.
초휴는 인파 속에서 이비렴도 발견했다. 그는 마도가 아니라 정도 종문 쪽에서 홀로 서 있었다. 얼굴은 딱딱했고 그의 주위는 공터처럼 비어 있었다. 아무도 그에게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이비렴이 오래도록 나타나지 않은 동안, 사람들은 그가 순양도문을 겁내서 숨어 있거나 사고로 죽었으리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는 다시 강호에 나타나자마자 순양도문의 무도종사 진양자를 공격해 아홉 자루 비도로 중상을 입혔다.
비록 마지막에 진양자를 벤 것은 임엽이었지만, 이비렴이 아니었다면 임엽의 칠마도가 아무리 강했어도 진양자의 숨통을 끊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허행의 사례를 보건대 잘 쳐 줘도 중상으로 끝났을 것이다.
수년을 죽은 듯이 숨어 있다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상대를 죽여 버렸으니, 이비렴 역시 지독한 인물이었다.
칼집에서 나오는 순간 피를 보고 목숨을 빼앗는 그의 비도는 설령 무도종사라 해도 완전히 막을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러니 같은 급의 무사 중 그의 비도를 막아낼 수 있는 자는 용호방 십 위 안에 드는 몇 명이 고작이지 않겠는가.
“초 형, 드디어 왔군.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리 늦었어?”
사소루가 다가오며 물었다. 여봉선과 낙비홍도 그 뒤를 따라왔는데, 여봉선은 초휴를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는 상황을 알고 있었으므로 물을 것도 없었다.
초휴는 양손을 펼쳐 보였다.
“어느 유적에서 좀 붙들리는 바람에 말이야. 소범천에는 별 괴상망측한 것이 다 있잖나. 막으려 해도 한계가 있으니까. 하마터면 고생깨나 할 뻔했어.”
사소루는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쨌거나 소범천은 위험한 곳이었다. 초휴가 그들보다 강하긴 했지만, 운이 나쁘면 도리가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