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69)
569화 마도의 깃발
매경령은 손을 내저었다.
“그만둡시다. 뭐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으니 말이죠. 소범천에서 너무 고생하는 바람에 아직 회복이 덜 돼서 그렇겠죠. 폐관 수련도 이만 끝내도록 해요. 위서애 노선배께서 좋은 일을 하나 맡길 테니 찾아오라는 말씀도 하셨구요.”
초휴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좋은 일이라고요? 무슨 일이죠?”
“그거야 가보면 알겠지요.”
그렇게 말하면서 매경령은 초휴를 이끌고 나왔다.
초휴는 머뭇거렸다.
“성녀 대인도 같이 가십니까? 관사우에게는 뭐라고 하시려고요?”
매경령은 손을 휘휘 저었다.
“걱정할 필요 없어요. 관사우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매경령이 그렇게 말하자 초휴도 더는 묻지 않았다. 그는 곧장 기척을 감추고 매경령을 따라 관서지부를 떠났다. 목적지는 관서와 서초의 경계에 있는 구역이었다.
* * *
야심한 시각, 매경령은 초휴를 커다란 저택으로 데려갔다. 기척을 슬쩍 드러내자 대문이 열리더니 육 선생이 나왔다. 초휴와 매경령을 본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 선배님이 기다리신 지 오래입니다. 어서 들어오시죠.”
그 저택은 평범한 상인의 소유로 되어있었고, 기거하는 주인이나 하인들도 모두 보통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초휴 일행을 보고도 마치 공기처럼 대했다. 놀라는 기색도 없이 그들을 완전히 무시했다.
육 선생은 비밀 문을 열더니 초휴와 매경령을 이끌고 지하로 내려갔다. 저택 지하는 하나의 별천지나 다름없었다. 심지어 지상보다도 면적이 넓은 것 같았다.
지하의 거대한 정청에서 위서애가 눈을 가늘게 뜬 채 찻잔을 쥐고 있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잠들어 버릴 듯했다. 그 늙고 굼뜬 모습을 본 사람들이라면 아무도 그가 진화련신 경지의 절정 고수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터였다.
그의 곁에는 저무기가 있었다. 저무기 역시 단정하지 못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서 재빠른 백미앵무(白眉鸚鵡) 한 마리를 데리고 놀고 있었다. 매경령이 온 것을 보자 백미앵무는 즉각 날카로운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미녀다! 엄청난 미녀다!”
저무기도 껄껄 웃었다.
“소령(小怜) 아니냐. 정말 오랜만이구나. 이 오라비는 네가 많이 보고 싶었단다.”
매경령은 버들가지 같은 눈썹을 치켜떴다.
“저무기, 한 번만 더 헛소리를 지껄이면 그 새의 목을 확 분질러 버릴 줄 알아!”
은마권의 사람들은 다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였고 함께 일한 적도 있었다. 저무기도 매경령과 알고 지낸 지 오래인 만큼 그녀의 성격 또한 잘 알았다.
매경령의 말을 들은 저무기는 즉각 백미앵무를 거두어 넣었다. 그렇지 않았다간 정말 그 새를 죽여 버릴 테니까.
초휴는 공수를 올렸다.
“위 선배님, 저 선배님, 강녕하셨습니까.”
저무기는 무의식적으로 입가의 두 갈래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그를 훑어보았다.
“제법이야. 젊었을 적 나보다 훨씬 나아. 용호방 삼 위 중에 무려 두 자리를 차지하다니, 이건 용호방 역사에 없던 일이지.”
초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역사에 없는 일인지는 몰라도, 제 실력을 어찌 감히 저 선배님과 비교하겠습니까.”
초휴는 용호방 일 위가 되기는 했으나 남을 안중에도 두지 않을 정도로 오만해진 것은 아니었다. 젊었을 적의 저무기가 정말로 자신보다 못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옛날 저무기의 순위가 오 위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후 저무기는 아무도 모르게 은마 에 들어왔고, 그 시기에 그의 실력이 어땠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 강호에 나타났을 때는 이미 무도종사가 되어있었으니 더는 용호방에 이름을 올릴 수 없었다.
용호방 오 위에서 곧장 무도종사로 뛰어올랐기 때문이다. 만일 그 십년의 공백기가 없었더라면 저무기가 용호방 일 위로 오르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을 터였다.
위서애는 느릿하게 찻물을 삼키더니 초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초휴, 이 녀석아, 제법 통쾌하게 손을 썼더구나. 순양도문 도사 나부랭이까지 죽이다니, 내 속이 다 시원하다!”
초휴가 용호방 일 위가 됐거나 말거나 위서애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의 경지쯤 되면 용호방은 그저 젊은 애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며 장난치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용호방 순위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에게는 초휴가 진양자를 죽였다는 사실이 훨씬 중요했다. 위서애는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지 않았다. 그는 찻잔을 내려놓고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초휴, 사실 너는 은마권과 연이 깊지 않지. 하지만 강호에서는 이미 네가 은마의 대변자나 마찬가지고, 경험 많은 마도 무사들보다 너의 위세가 당당할 정도다. 매경령 저것과 육진 놈이 추천한 데다 저무기 이 녀석도 너를 높이 평가하고 말이다. 은마권, 나아가 마도 일맥 전체에서도 너보다 더 뛰어난 젊은 녀석은 찾기 어려울 것 같구나. 나는 너의 본래 신분이 무엇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단 한 가지만 묻겠다. 기꺼이 우리 마도에 들어올 생각이 있는지, 무수한 정도 종문에게 눈엣가시 취급을 받는 곤륜마교의 깃발을 짊어질 생각이 있는지! 너에게 그럴 마음이 있다면, 우리 은마는 모든 지원을 다 해서, 네가 원하는 것을 얻도록 도와주마. 그러나 만일 그럴 마음이 없다면, 지난날의 교분이 있는 만큼 나도 굳이 괴롭히지 않겠다. 임엽은 죽은 사람이 되고 강호에는 초휴만 남는 것이지. 네가 들키지만 않는다면 아무도 네 진짜 정체를 알지 못할 테니 문제없을 것이고. 이제 선택은 네 손에 달렸다. 어느 쪽을 고를지 정하거라.”
초휴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곧바로 대답했다.
“이전까지는 저와 은마 사이에 별 연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은마의 임엽이 되었으니 깊이 얽힌 셈이지요. 저는 초휴이고, 임엽이기도 합니다.”
매경령과 다른 사람들은 모두 초휴가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고 생각했다. 사실 초휴는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초휴이고 동시에 임엽이기도 하다고.
처음만 해도 초휴는 마도에 의지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원본 줄거리에서 그가 걸었던 길은 이미 다시 되돌릴 방법이 없었다. 설령 되돌리려 해도 그는 원본 줄거리의 자신이 무슨 일을 겪는지조차 몰랐다.
해서 처음 시작했을 때, 초휴가 추구한 것은 살아남을 자본과 자신이 장악할 수 있는 힘이었다. 마도에 의지할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운명은 사람이 어찌할 수 없었다. 숙명인지 인과인지는 몰라도 결국 초휴는 마도와 얽히게 되었다. 이제는 은마권과 너무 깊게 얽혀서 곤륜마교 부흥의 깃발을 들기 싫어도 들 수밖에 없게 되었다.
초휴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특히 육진과 매경령은 더욱 그랬다. 그들은 초휴와 가까이 지내왔으니까.
만일 초휴가 마도에 들어오는 걸 거부했으면 그들의 안목이 틀렸다는 것은 둘째 문제고, 정체가 드러날 위험마저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 특히 줄곧 어둠 속에서 활동하는 은마권의 사람들에게는 살아서 친구가 되지 못하면 결국 죽은 친구가 되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위서애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이리 앉아라. 초휴, 네가 나서 줬으면 하는 일이 있다. 포상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내가 주는 선물인 셈 치거라. 네가 은마권에서 단시간 내에 엄청난 명성을 쌓을 좋은 기회니까.”
“무슨 기회입니까?”
늙어 흐릿해진 위서애의 두 눈에 섬뜩한 빛이 스쳤다.
“우리 구천산 오대천마를 대표해 복수할 기회!”
그 말에 초휴는 깜짝 놀랐다.
“그럼 은마가 강호 전체를 상대로 움직이는 겁니까?”
구천산의 싸움에서 오대천마가 비록 궤멸당하기는 했으나 당시 떨쳤던 위세는 대단했다. 곤륜마교 이후 정파 종문들이 연합 공격에 나선 것은 구천산 오대천마가 처음이었다.
실력만 놓고 보면 당시 구천산 오대천마와 그 휘하 세력의 힘은 지금의 배월교보다도 약했다. 그러나 정도 무림이 구천산 오대천마를 그토록 경계했던 것은 그들에게서 마도 부흥의 기세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작은 불씨 하나가 온 들판을 태운다는 말이 있다. 그 시절 구천산 오대천마가 바로 그 불씨였다. 그러니 온 들판을 태워 버릴 기세가 되기 전에 반드시 철저하게 짓밟아야 했다.
구천산 오대천마가 패하기는 했으나 그들의 마도 연맹이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적어도 마도가 가장 쇠미했던 당시, 위서애와 오대천마는 강호의 어둠 속에서 기회를 보며 꼼짝도 하지 않고 있던 마도 제자들에게 마도에 이만한 힘이 있다고 알린 셈이었으니까.
바로 그 일전을 통해 곤륜마교의 멸망 후 몰락했던 마도의 중추세력을 다시 형성했던 것이니, 의의가 절대 작지 않았다. 위서애가 진화련신에 들기 전부터도 마도에서 그의 실질적 지위는 진화련신이나 다름없었다.
위서애는 손을 내저었다.
“언젠가는 우리 마도 전체가 정도 무림을 손봐줄 날이 오리라 믿는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지. 내가 그렇게 사리 분별을 못 할 정도로 미치지는 않았다. 지금 그랬다가는 네게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라 개죽음을 시키는 꼴밖에 더 되겠느냐?.”
그렇게 말하면서 위서애는 자조하듯 웃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의 마도는 아직 정도 종문의 상대가 못 된다. 겁을 내는 게 아니냐는 소리를 들어도 할 수 없지. 상대가 못 되는 것을 알면서 부딪치는 쪽이야말로 바보 멍청이들일 테니.”
저무기가 느긋하게 말했다.
“그러나 옛날 구천산에서 다른 선배님 네 분과 계셨을 때는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싸우셨잖습니까.”
위서애는 담담했다.
“그때는 경우가 달라. 세상에 총명한 사람들뿐이라면 어떤 세력이건 결국은 모래알처럼 흩어질 뿐이지. 바보 멍청이들이 나서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그러다 죽더라도 애석해할 일도 아니고.”
그는 적당히 손을 휘둘렀다.
“됐다. 낡아빠진 이야기는 그만두고, 본론으로 돌아가자. 초휴, 너더러 정도의 대문파들을 상대하라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은마는 복수할 힘이 없다. 내가 말하는 복수란 옛날 우리 구천산 포위 공격에 참여했던 군소 세력들에 대한 복수다.”
그렇게 말하는 위서애의 눈에 한 줄기 싸늘한 빛이 스치자, 순식간에 정청 전체의 온도가 내려가는 듯했다.
“정도 종문이 구천산을 공격할 때, 무수한 군소 세력이 그들에게 붙어먹었지. 구천산 마도 연맹이 어려움에 부닥친 때를 노려 공격해서, 우리의 수급을 들고 정도 종문을 찾아가 상을 받고 명성을 얻었지. 그 싸움에서 구천산의 최정상 전력을 죽인 것은 정도 종문들이었지만 직위가 낮았던 마도 제자들은 다 그런 자들의 손에 죽었다. 그자들은 옛날의 그 싸움에서 얻은 자원과 이득, 명성으로 그럴듯하게 세를 불렸더구나. 이제는 대가를 치를 때가 되었지.”
옛날 구천산 오대천마가 마도 연맹을 결성하던 당시의 정경은 얼마나 성대했던가. 그러나 그들은 하룻밤 사이에 전멸당했고, 오대천마 중 제일 약하고 어렸던 그만이 오늘까지 목숨을 이어온 것이다.
그간 위서애의 마음에는 원한이 가득했으나, 그는 참았다. 아직 복수할 때가 되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이제는 바야흐로 마도 일맥이 굴기할 시점이었다.
배월교를 우두머리로 한 명마 일맥은 이미 강호에서 대놓고 제자를 모집하며 정도 종문과 충돌하고 있었다. 은마권은 아직 신중한 태도이긴 했으나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었다.
위서애는 초휴를 바라보았다.
“초휴, 네게 복수할 세력의 명단과 밑에 두고 부릴 수하들을 주마. 명단에 있는 세력들을 하나씩 없애 버리거라. 어떤 방법을 쓸지는 묻지 않겠다. 결과만 나오면 된다. 삼백년 전 이들은 강호에서 이름조차 내세우지 못하던 자들이었다. 물론 삼백년이 지난 지금은 그 싸움에서 얻은 이득 덕분에 옛날과는 판이하게 떵떵거리는 자들도 있지. 하지만 네 실력이라면 이 정도 놈들을 해결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임무를 마치고 나면 내가 은마권을 소집해 너의 공로를 축하하는 자리를 만들 생각이다. 너를 은마권 제일의 청년 제자로 공인시켜 주마!”
초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인사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위 선배님.”
감사해 마땅했다. 위서애가 그에게 준 것은 어마어마한 기회였으니까. 은마권에게 구천산 오대천마의 의의는 특별했다. 지금 초휴가 구천산 오대천마의 복수를 한다면 그가 얻을 명성과 명망은 헤아릴 수 없을 터였다.
더군다나 위서애는 은마권 전체를 소집해 그의 공로를 치하하겠다고까지 했다. 이것은 그야말로 위서애가 초휴의 뒷배가 되어 은마에서의 지위를 확고히 해 주겠다는 말과 같았다. 그렇게 되면 임엽은 추호도 의심할 바 없는, 완전한 곤륜마교의 적통 후계자가 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