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71)
571화 은의를 저버리다
조승평의 태도를 본 도공망은 그와 더 말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다른 자들에게 눈을 돌려 그들과 함께 분란을 일으켜볼 생각이었다.
다들 은마권이라고는 하나 저마다 속셈을 따로 품은 자들이었다. 어떤 자들은 나삼총처럼 성격적인 문제도 있었고 도공망 자신처럼 잡다한 속셈을 품은 자도 적지 않았다.
여럿이서 중구난방 떠들어대느라 시끌벅적한 순간에 문이 열리더니, 저무기가 가면을 쓴 초휴를 데리고 들어왔다. 시장바닥처럼 시끄럽던 장내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은마권에서 저무기의 위명은 상당했다. 진화련신에 가장 근접한 무도종사였으니, 나삼총처럼 포악한 자라도 감히 그 앞에서는 경거망동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저무기는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위 선배님이 자네들을 소집한 이유는 다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네. 이쪽은 임엽으로, 우리 은마의 청년 준걸일세. 지금부터의 일은 내가 나서지 않고 모두 임엽에게 맡겨 처리할 것인즉, 자네들끼리 이야기하게.”
그렇게 말한 저무기는 초휴를 남겨두고 나가 버렸다. 위서애가 명확히 말하지는 않았으나, 저무기는 이것이 초휴에게 주어진 첫 번째 시험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이 정도 무리도 통제할 수 없다면 초휴는 지금의 지위를 가질 자격이 없는 것이다.
저무기가 서슴없이 나가 버리자 사람들은 잠시 얼이 빠졌다가, 저마다 고개를 맞대고 귓속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전음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자들도 있었다.
초휴에게 존경을 표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마도에는 오만불손한 자들이 매우 많았다. 초휴는 무도종사도 아닐뿐더러 별다른 경력도 없지 않은가. 설령 무도종사가 된다 해도 이들이 진심으로 복종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이 저무기를 공경하는 것은 그가 은마권에서 수십 년간 쌓아 온 명성과 위엄 때문이었다. 초휴가 가진 것은 강호의 소문과 용호방 순위 정도였으니, 그 정도로 마도 무사들을 완전히 장악하기는 부족했다.
초휴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마도인들을 둘러보며 담담히 말했다.
“여러분, 임엽이란 이름은 모두 들어보셨겠지요.”
그 말에 몇 명이 작은 소리로 비웃었다. 업신여기는 기색이 뚜렷했다. 물론 그들은 임엽의 이름을 들어보았다. 그러나 임엽 본인이 그런 말을 하면 자만에 찬 태도로 보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나 초휴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들어보지 못했어도 상관은 없소. 어쨌건 방금 들었으니, 앞으로 잊지 마시기를 바라오. 위서애 선배님께서 여러분을 불러모은 이유를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이제부터 할 일은 간단합니다. 여러분은 머리를 쓸 필요는 없고 칼만 쓰면 됩니다. 나와 함께 가서 내가 죽이라고 하는 자들을 죽이면 됩니다. 아주 간단하지요?”
그 말에 대부분은 불만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너무 제멋대로 아닌가. 임엽의 실력이 강한 것은 그들도 인정했다. 순양도문의 무도종사 진양자까지 죽였다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 모인 대부분은 임엽보다 경력이 많고 배분도 높았다. 겸손한 언사 한마디 없이 다짜고짜 명령조로 말하는 것은 건방진 행동이 아닌가 말이다.
임엽의 태도를 본 도공망은 냉소를 머금었다. 그는 임엽이 인재는 인재겠거니 여기고 있었다. 용호방 삼 위까지 올랐으니 머리가 모자란 인물은 아닐 터였다.
그런데 지금 보니 실력은 둘째 치고 저 건방지고 아무 생각 없는 듯한 태도가 한심하기 이를 데 없었다. 도공망은 일어서서 헛기침을 했다.
“임 소협. 내가 배분이 높으니 소협이라 불러도 안 될 건 없겠지요. 위서애 선배님이 우리를 불러모으셨고, 이번 일에서 소협의 지휘를 따르라고 하신 것도 맞소. 하지만 그것이 곧 우리 목숨을 소협에게 일임한다는 뜻은 아니오.”
도공망은 다시 한번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임 소협, 지금 우리 은마의 상황과 형세가 어떤지 알고나 있소? 우리가 무턱대고 정도 종문으로 쳐들어갔다가 정도의 거대 세력이 끼어들면 큰 위험에 빠질 게 명확하지 않소. 은마권은 오래도록 신중하게 처신해 왔소. 위서애 선배님이 정도 종문을 공격하기로 하셨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신중하게 의논한 뒤에나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오. 당신처럼 섣불리 경망스레 나설 일이 아니라는 소리요!.”
도공망은 강호에서 오래 굴러먹은 자답 게 음모와 계략을 꾸미는 데에 능숙했다. 언뜻 보면 위서애의 말을 직접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중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임엽에게 권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신중한 논의가 끝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그거야 모를 일이었다. 임엽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고 위서애한테 벌을 받을 때까지 논의를 끌 수 있다면, 일단 목적을 달성하는 게 되지 않겠는가.
이것은 함정이었다. 임엽이 수긍하면 시간을 끌 수 있다. 만약 수긍하지 않는다면, 지시를 따르면 안 된다고 무사들을 선동할 수 있다.
초휴는 눈을 가늘게 뜨고 도공망을 바라보았다.
“그 말씀은 구천산 싸움에서 희생당한 선배님들의 복수를 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오?”
도공망은 다급히 말했다.
“함부로 말하지 마시오. 이곳 모두가 들었지만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소.”
“말이야 안 했지만 속으로 그리 생각했잖나!”
초휴는 냉소했다.
“도공망, 당신 생각은 뻔하지. 옛날 서초에서 장승정의 오뢰정법을 맞고 죽을 뻔했다가 목숨만 건지지 않았나! 천사부에 쫓겨 갈 곳 없던 당신을 은마권이 받아주지 않았느냐고. 은마 의 비호가 없었다면 당신은, 협의를 행한다는 자들에게 마도랍시고 진작에 제거당했을 거야. 여기서 탁상공론 따위 늘어놓을 기회는 생기지 않았겠지.”
이어서 도공망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은마권에 입은 은혜가 있건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피를 흘릴지 모를 일에는 전혀 나서지 않겠다고? 그야말로 배은망덕한 자가 아닌가! 그러고도 나를 소협이라 부르겠다고? 당신에게 그 말을 쓸 자격이 있나? 주제를 알아야지! 배은망덕하고 주제도 모르는 어리석은 천치 같으니. 쓸모라고는 없으면서 은마에 달라붙어 이익과 비호나 탐하는 당신 같은 버러지를 어디다 쓰겠나?”
초휴는 마지막 말과 함께 경악스러울 정도로 강대한 정신력을 터뜨려 보냈다.
그러나 도공망 역시 강호 밥을 오래 먹은 위인이었다. 초휴가 정신력을 폭발시키는 순간, 그는 위기를 감지하고 독충들을 빽빽하게 내쏘았다. 초휴를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진혼유명곡이 펼쳐지자 정신력의 파동이 물결치기 시작했다. 원신이 충격으로 폭발할 때마다 독충들이 무더기로 추락했다.
아주 짧은 찰나에 도공망의 주변은 텅 비어 버렸다. 그 자신조차 진혼유명곡에 타격을 입어 머리에 격통이 밀려왔다. 영혼이 온통 깨져나가는 듯했다.
도공망이 고통을 못 이겨 비명을 지르려는 순간 초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는 순식간에 도공망의 바로 앞까지 다가가서 한 손으로 그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음산한 마기가 폭발하며 도공망의 경맥을 틀어막았다.
도공망의 눈에 경악의 기색이 스쳤다. 설마 임엽이 말을 끝내자마자 손을 쓸 줄은 다른 사람들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말이 통하지 않는 자가 아닌가!
이에 주변을 둘러싼 무사들이 막 입을 열어 만류하려 하고 도공망 역시 살려달라고 애원하려는 순간, 초휴는 손에서 마기를 폭발시켜 그대로 도공망의 목뼈를 짓부쉈다.
그는 죽은 개를 내던지듯 아무렇게나 땅바닥에 시체를 던져버렸다.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도공망의 시체를 쳐다보았다.
‘도공망이 죽었다! 임엽의 간덩이는 얼마나 큰 것인가? 자신들을 통솔하러 오자마자 사람을 죽이다니!’
도공망이 좀 억울하게 죽긴 했다. 그는 실력이 임엽보다 훨씬 못하긴 했어도 온갖 독충을 몸에 지니고 있었다. 비장의 패인 독충을 모조리 썼더라면 임엽과 대등한 승부는 못해도 몇 합 정도는 받아낼 수 있었을 터였다.
옛날 장승정의 손에서 목숨을 건져 달아났던 것만 봐도 그의 실력은 증명된 것이다. 그러나 도공망은 임엽이 단번에 자신을 죽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같은 은마 사람끼리, 더군다나 중인환시리에 정말로 죽이려 들기야 하겠는가. 좀 싸울 수는 있을지 몰라도 말이다.
도공망은 그런 예측을 했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해서 그는 어이없이 죽고 말았다. 잔뜩 있던 비장의 패는 꺼내 보지도 못한 채로 목이 부러진 것이다.
초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떤 자들은 분노했고, 일부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고, 좋은 구경거리 났다는 듯이 바라보는 자들도 있었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사람이 뿌리를 잊으면 안 되는 법이오. 아무리 마도인이라도 도의가 무엇이고 은혜가 어떤 건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소. 여러분은 지금까지 은마의 보호를 받아 실력과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소. 이제 여러분이 힘을 써서 그 보답을 할 때인데,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미루기만 한다면 배은망덕 아니겠소?”
초휴는 말을 멈추고 주변을 돌아봤다.
“은마에 그런 폐물이나 배은망덕한 벌레는 필요 없소. 도공망의 말로를 다들 잘 보셨겠지요. 배은망덕하고 어리석은 벌레가 되어 쓰레기로 버려질지, 아니면 나와 함께 구천산 마도 연맹의 복수를 하러 갈지,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오.”
일부 무사들은 분노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도공망과 비슷하게 나중에야 마도에 입문한 자들로, 기실 은마권에 특별한 소속감이 없었다.
임엽이 잔혹한 손속으로 도공망을 죽여서 그들을 위협하니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설마 임엽이 그들을 전부 죽이기야 하겠는가?
초휴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을 이었다.
“물론 나도 여러분에게 기회를 줄 생각이오. 복수는 억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다만 도공망처럼 어리석게 굴지만 않으면 됩니다. 은마의 보호를 받았으면서도 헛소리를 늘어놓아 기강을 해치지만 않으면 상관없소. 지금 그만두거나 떠나고 싶은 사람은 마음대로 해도 됩니다. 위서애 선배님께 보고하면 그만이니까. 그런 자는 앞으로 은마권 사람이 아니게 될 거요.”
초휴의 말은 좀 전에 위서애가 그에게 했던 것과 비슷했다. 언뜻 보면 선택지가 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없는 말이었다.
분노에 차 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행동을 취하려던 사람들도 있었으나 결국 아무도 덤비지 않자 그들 역시 입을 다물고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초휴가 말했듯이, 배은망덕한 소인은 마도에서도 혐오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자리를 떠나면 배은망덕하고 우유부단한 소인배라는 낙인이 찍히는 셈이 아니겠는가.
그들은 애초에 정도 무림에서 배척당한 자들이었다. 은마에서조차 떠나야 한다면 갈 곳은 명마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행태가 알려지면 명마에서 그들을 자기 식구로 받아주겠는가.
종문과 제자는 상호적 관계다. 종문이 제자를 보호하고 성장할 공간을 제공해 주는 것은 제자들이 종문의 미래를 책임지고 새로 들어올 제자들을 지켜주기를 바라서였다. 배은망덕한 행동을 한다면 어디에서도 발을 못 붙이게 될 게 뻔했다.
또한, 그들이 스스로 배은망덕한 겁쟁이임을 자인한다 해도, 은마에서 그들을 놓아주리라는 보장조차 없었다. 그들은 이미 은마권의 적잖은 비밀을 알고 있었다.
지금, 이 비밀 기지만 해도 그렇다. 그들이 이곳을 떠나서도 비밀을 지키리라고 은마에서 믿어줄까. 가장 비밀을 잘 지키는 것은 결국 죽은 사람이 아닌가.
좌중을 둘러본 초휴가 담담히 말했다.
“떠나고 싶은 사람이 없는 모양이구려? 감히 또 명령을 어기려 한다면 그때는 기회가 없을 것이오.”
초휴는 말과 함께 땅바닥에 널브러진 도공망을 힐끗 보았다. 항명하려 들었다간 이렇게 될 거라는 뜻이 명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