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72)
572화 결정
“억울하게 생각하실 건 없소. 여러분은 은마에 들어오기는 했으나 무상마종이나 적련마종 같은 종문에 들어가지는 못했지요. 다소 자유롭기는 해도 종문에 몸담은 자들처럼 대우받지는 못했을 거요.”
초휴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사실 여러분 같은 사람은 적지 않소. 방금 오셨던 저무기 선배도 처음에는 여러분과 비슷한 처지였지만, 결국은 무도종사에 올라 은마의 고수가 되셨소. 스스로 생각해 보시오. 여러분 중 저 선배 같은 경지에 오를 자신 있는 사람이 있소? 저 선배님은 무엇에도 기대지 않고 자신의 힘만으로 거기까지 가셨소. 하지만 여러분은 그러기 힘들겠지.”
말을 잠시 멈춘 초휴가 그들의 분위기를 살폈다. 그들은 여전히 화가 조금 누그러진 듯 초휴를 노려보던 시선이 조금은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서 하는 말이오. 위 선배님께서 여러분을 소집한 것은 구천산 마도 연맹의 복수를 위해서지, 헛되이 죽으라고 보내시는 게 아니란 말이오. 이건 여러분의 실력을 보일 기회요. 누가 두각을 드러내는지, 누가 제자리에서 답보 중인지 위에서 다 보고 계신다는 말씀이외다.”
그리고 이어진 초휴의 말에 사람들의 분노도 태반은 줄어들었다.
남은 것은 궁리였다. 은마에 몸담은 이후 보호를 받기는 했으나, 두각을 드러낸 자는 소수였다. 그러나 이제 기회가 온 것이다. 위험하긴 하겠지만 수확도 당연히 있지 않겠는가. 특히 위 선배에게 호감을 얻을 기회였다.
바로 그때, 나삼총이 귀두참수도를 들고 걸어 나오며 크게 웃었다.
“언변이 청산유수로군. 말로는 못 당하겠고, 내가 믿는 건, 이 칼뿐이오! 어디 몇 합 붙어 봅시다. 날 이긴다면 당신이 선배건 후배건 상관없이 무조건 두목으로 모시겠소. 그리고 당신이 져도 함께 가서 싸우긴 할 거요. 어쨌거나 세가의 자제들에게 쫓길 때 은마에서 내 목숨을 구해 주었으니까. 나는 도공망처럼 배은망덕한 자는 아니오.”
거의 순식간에 도공망을 죽이기는 했으나, 사람들은 임엽의 진정한 실력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그의 출수가 너무 느닷없었기 때문이다.
정면에서 공격했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은, 도공망 본인까지 포함해서, 임엽이 이런 자리에서 공공연히 살수를 쓸 줄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니 임엽의 출수는 기습이나 마찬가지였고, 도공망은 절반의 실력도 발휘해 보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그러니 도공망의 죽음에는 억울한 구석이 있었고, 나삼총을 포함한 좌중은 임엽의 진정한 실력을 보고 싶었다. 물론 용호방 자료는 다들 알고 있었다. 임엽의 실력은 대단했고 무도종사를 참살할 정도로 강하다고 했다.
그러나 백문이 불여일견인 법이다.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본 일이 아니니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남아 있는 것이다.
초휴는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좋소. 칼을 드시오.”
나삼총이 되물었다.
“지금 여기서? 만일 출수 중에 이곳이 무너지면 위 선배님이 책망하실 텐데, 난 책임 지기 어렵소.”
“안심하시구려. 몇 합이면 끝날 테니 무너질 일은 없소.”
나삼총이 콧방귀를 뀌었다.
“건방지기는!”
임엽의 명성이 대단하고 실력도 매우 강하다는 것은 그 역시 잘 알았다. 자신이 싸움을 걸기는 했으나 승산은 높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임엽이 고작 몇 합으로 자신을 이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임엽이 이토록 오만하게 나오니 자신도 사정을 안 봐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삼총의 귀두참수도에서 붉은빛이 터져 나오더니, 그의 두 눈도 시뻘건 핏빛으로 변했다. 도를 휘두르자 혈기와 살기가 터져 나오면서 사나운 기운이 맹렬하게 폭발했다. 도의 움직임을 따라 희미하게 마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까지 들려왔다.
나삼총의 실력은 제법이었다. 천인합일 중에서는 당연히 고수에 속할 테고, 동급의 무사 중 그의 일도를 당해낼 사람은 많지 않을 듯했다. 그러나 나삼총이 아무리 강한들 그의 실력은 천인합일의 경계를 넘지 못한 상태였다.
반면 초휴의 경우 그와 상대할 수 있는 동급 무사는 거의 없었다. 그의 적수라 할 만한 자들은 무도종사이기 때문이다.
도세가 닥쳐오는데도 초휴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에서 현묘한 별빛이 빙글 돌고 있었다.
지금 초휴의 정신력으로 천자망기술을 펼치면 나삼총 정도의 무사는 그 어떤 것도 감출 수가 없었다. 일초 일식의 모든 변화가 초휴의 눈앞에 세세하게 드러났다.
도세가 닥쳐오는 순간 임엽은 주먹을 힘차게 내뻗었다. 무궁한 혈살의 기운이 담긴 일권이었다.
거센 혈기가 사방을 휩쓸며 일찍이 없었던 강대한 위력을 끌어냈다. 주먹에서 기괴한 파동이 전해져 왔다.
주먹이 가까워질수록 임엽의 망아살권은 나삼총의 도를 끌어당겼고, 도의 힘이 불안정해지며 이리저리 멋대로 튀더니 나삼총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나삼총은 이렇게 괴이한 상황은 듣도 보도 못했다.
분명 자신이 휘두르는 도인데, 그 도에 공격을 당하다니? 이것이 자신의 힘인지 임엽의 힘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상대방은 그 자신보다도 나삼총의 힘을 환히 꿰고 있는 것 같았다. 힘이 되돌아오자 나삼총은 이미 더는 칼을 휘두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계속 도를 휘둘러 봐야 상대가 다치는 만큼 자신도 다치지 않겠는가.
해서 마지막 순간 그는 아예 도를 거두어들여 몸 앞을 가로막았다.
임엽의 망아살권이 도신에 부딪히며 거대한 폭발음을 냈다. 강대한 힘의 습격에 나삼총의 안색이 변했다.
급격하게 뒤로 밀려나는 그의 발걸음이 멈춘 곳에서 지면이 갈라지며 구덩이가 파였다. 그렇게 몇십 보를 물러나는 바람에 순식간에 대전의 가장 뒤쪽까지 가버렸다.
임엽이 인결을 맺으니 살생마불상(殺生魔佛像)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악하고 기이한 핏빛 부처의 손이 흉측한 혈도를 내리치자 사나운 혈살의 기운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구쳤다. 나삼총이 휘두르는 칼은 임엽의 살생마불상에 비하면 그야말로 어린아이 장난이 아닌가.
살생마불상의 일격 앞에 나삼총은 눈을 부릅떴다. 그는 정혈을 태워서 그 놀라운 힘을 막을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임엽은 칼을 끝까지 내리치지는 않았다. 절반쯤 내려왔던 칼날의 기혈이 흩어지며 살생마불상의 모습 역시 천천히 사라졌다.
나삼총은 도를 내려놓았다. 그는 조금 전의 오만불손한 태도를 버리고 쓴웃음을 지으며 임엽에게 정중하게 공수를 올렸다.
“대인께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제가 졌군요. 정말로 감복했습니다.”
나삼총이 정말 감복했다고 말한 것은 겉치레가 아니라 진심이었다.
방금 살생마불상의 위력은 정말 대단하고 놀라웠다. 그러나 임엽이 초식을 쓰기 직전에 아무렇지도 않게 거두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도를 그대로 내리치는 것보다 열 배, 백 배는 더 어려운 일이었다.
나삼총이 그를 대인이라고 부르며 감복했다고 말하는 것도 당연했다. 임엽이 그보다 훨씬 어린 건 문제가 아니었다. 나삼총 같은 사람에게는 실력이야말로 최고의 원칙이었다.
초휴의 실력이 강하기만 하다면 다른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줄곧 아무 말이 없던 조승평 역시 일어서서 초휴에게 정중하게 공수를 올렸다.
“대인께 인사드립니다.”
조승평의 생각은 아주 단순했다. 위서애가 옛 구천산 마도 연맹의 복수를 하려고 한다. 그건 자기 선조의 원한을 갚는 일이기도 하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조승평의 일가는 본래부터 위서애의 비호를 받아 왔다. 임엽처럼 강력한 자가 아니라 힘이 약한 자가 왔어도 얼마든지 따랐을 것이다. 그는 위서애가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건 받들었다.
그들은 좌중의 무사 중 가장 강한 사람들이었다. 도공망은 죽었고 나삼총과 조승평은 임엽에게 복종하기를 택했으니, 다른 자들도 속이야 어떻건 겉으로는 공손하게 공수를 올리는 수밖에 없었다.
“대인께 인사드립니다!”
* * *
기실 위서애와 저무기는 대전 밖에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초휴가 짧은 시간에 박력이 넘치는 방법으로 무사들을 굴복시키는 것을 본 저무기는 찬탄을 금치 못했다.
“정말 제법이군요. 소령과 육진이 사람을 제대로 봤습니다. 은마권에 부족한 것은 고수가 아니라, 저 녀석처럼 전체적인 국면을 통제하고 일을 처리하는 게 가능한 부류니까요.”
실력과 능력은 다르다. 실력 있는 사람이라고 무슨 일이건 다 잘 해낼 수는 없는 법이다. 예컨대 저무기가 그랬다.
그는 황족 출신이었으나 아랫사람을 다루고 부린다거나 갖은 계책을 꾸미는 권모술수에는 능하지 못했다.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할 수 있었지만, 그런 일은 어려웠다.
매경령 역시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 음마종에는 그녀 혼자뿐이니, 능숙하지 못하더라도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육 선생은 매경령과 저무기에 비하면 실력이 약했으나, 그런 능력은 두 사람보다 훨씬 나았다. 그는 천인합일 때부터 무상마종 사람들을 데리고 갖가지 포석을 놓아 강호에 적잖은 일을 일으켰다. 그 또한 무상마종의 고위층 중 하나였고 수하에 사람이 적지 않았다.
위서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은마에도 일을 할 만한 사람이야 적지 않지. 그러나 연맹은 연맹일 뿐이라, 불안정한 요소가 너무 많아. 옛날 우리 구천산 오대천마가 마도 연맹을 결성하여 강력한 위세를 떨쳤던 것은 우리 다섯의 수하들 역시 강한 실력자라 그들을 중심으로 뭉칠 수 있었기 때문이지. 지금 은마에도 강자는 많아. 하지만 계책이나 꾸미는 자가 더 많단 말이야.”
위서애가 다소 흥분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무상마종이나 적련마종 같은 종문들은 같은 은마라고는 해도 저희 종문의 이익을 먼저 따지지. 다른 늙은이들은 더 심각하고 말이네. 자기 제자들의 이익만 생각하고 한 무더기씩 데리고 다니면서 이익을 챙길 궁리만 해. 그러다 곤란한 문제에 부딪히면 서로 떠넘기느라 바쁘지. 은마권에 강자가 아예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야. 지금 없는 것은 모두를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는 지존의 강자일세!”
저무기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배월교의 야소남 같은 자 말씀입니까?”
명마와 은마가 서로 적대시하며 대립하고 있었으나, 은마를 통틀어도 야소남만 한 강자가 없다는 것은 저무기도 인정하는 바였다. 사실 배월교가 표면에 나서서 압력을 분산시키지 않았더라면, 은마도 지금처럼 편안히 지내지는 못했을 터였다.
위서애는 고개를 저으며 눈을 가늘게 뜨고 어딘지 모를 먼 곳을 바라보는 듯했다.
“그걸로는 모자라! 한참 부족해! 우리 은마에 필요한 것은 야소남 같은 자가 아니라 독고 교주처럼 온 강호를 위압할 수 있는 존재야. 그래야만 은마권이 완전히 떨쳐 일어날 수가 있는 걸세!”
저무기는 쓴웃음을 지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고 시대 이래로 천하에 독고 교주 같은 사람이 몇 명이나 있었던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순양도문의 여순양, 불종의 성승 보리달마, 진무교의 영현기, 그리고 독고 교주 정도일 것이다. 어쩌면 독고 교주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사람이 몇 명쯤은 더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부 다 합쳐도 열 손가락을 넘지 못하는 건 명백했다.
은마에서 독고 교주만 한 강자가 다시 나올 수 있을까. 저무기에게는 전혀 가능성이 없는 희망으로 느껴졌다. 평생토록 실현되지 않을 일일지도 몰랐다.
* * *
초휴는 이번 임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생각하고 있었다. 나삼총 무리는 이미 굴복시켰다. 오만하고 다루기 어려운 자들이었으나 실력은 강한 만큼, 말만 잘 들으면 충분했다. 그러니 그 일은 더 걱정되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욕망을 품는 법이다. 은마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 여기서 초휴의 뒤에는 위서애가 버티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잘 되고 싶다면 초휴에게 잘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