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74)
574화 홍엽산장
초휴는 임엽의 신분으로 나섰으니 공공연히 마혈대법을 펼치기는 불편했고, 살생마불상의 위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효과는 똑같았으나 살생마불상에 가려진 덕에 보통 사람은 그런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초휴가 천천히 다가가서 가볍게 손을 내밀자 왕가 노야는 눈도 감지 못한 채, 그대로 땅에 쓰러졌다. 왕가의 무사들은 온몸을 떨었다.
왕가 제자들에게 노야는 어떤 적이건 막아낼 수 있는 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 노야가 임엽의 일합도 받아내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노야가 도망치라고 외칠 때는 아무도 움직이려 들지 않았던 그들은 이제야 비명을 지르며 뿔뿔이 흩어져서 안채 출구로 달려나갔다. 그러나 채 빠져나가기도 전에 마기로 가득한 장창이 폭포수처럼 반원을 그리며 한 무리의 사람들을 나가떨어지게 했다. 뒤이어 또 다른 일격이 천인합일 무사 하나를 관통해서 집어던졌다.
놀라운 위세를 뽐낸 마창의 주인은 조승평이었다. 그는 침착하고 말수도 적었으나 일단 출수하니 놀라운 솜씨를 보여주었다. 창법이 정묘하고 사나워 기세가 대단했다.
“도망치겠다고? 그럼 목숨을 내놓고 가라!”
조승평의 손짓에 그가 데려온 이십여 명이 즉각 뛰쳐나와 왕가의 무사들을 쫓았다. 은마 측의 사람 수는 고작 이십여 명이었으나 실력이 뛰어난 자들을 추린지라, 혼자서 여러 명을 상대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거기다 초휴와 조승평 두 고수까지 있으니 왕가는 순식간에 전멸하고 말았다. 그러나 아무래도 인원이 적었던 탓에, 왕가 사람 일부는 바깥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상황이 끝난 뒤 조승평이 마창을 들고 다가왔다.
“대인, 여기 있던 자들은 전부 죽였습니다. 다만 일부는 놓친 것 같은데, 쫓아갈까요?”
초휴는 손을 내저었다.
“그럴 건 없으니 내버려 두시오. 좀 쉬었다가 다음 목표로 갑시다. 다음에도 이십여 명만 데려가면 족하오.”
조승평은 공손하게 알겠다고 대답했으나, 속으로는 의혹이 일었다.
임엽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번 왕가 습격에 수하들을 전부 데려왔다면, 단 한 명도 놓치지 않고 없앴을 거라는 것을 장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십여 명을 놓쳤다. 게다가 임엽의 공격은 아무래도 건성이었다. 마치 일부러 그자들을 놓아주려는 것 같지 않은가.
그러나 조승평은 늘 신중하고 처신이 조심스러운 사람이었다. 임엽에게 의혹이 들기는 했으나 굳이 캐묻지 않았다. 임엽을 믿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그는 일순간도 입엽을 믿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상대가 위서애가 뽑아서 보낸 사람이기에 공경하고 있을 뿐이었다. 위서애가 보낸 자가 바보 멍청이일 리는 없다고 믿었으니까. 일부러 호랑이를 풀어주고 화근을 남겨두는 일을 할 리야 없지 않겠는가.
초휴는 왕가뿐 아니라 명단에 올라 있던 서초의 다른 세력들도 습격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늘 이십여 명만 데리고 다닐 뿐, 한 번도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매번 습격할 때마다 몇 명 정도는 살아서 도망쳤다. 결국, 도망친 자들이 많아지자, 은마가 옛날의 원한을 복수하려고 칼을 휘두른다는 소식이 서초를 넘어 강호 전역에 퍼지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듣고도 사람들은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당금 강호에 멸문은 부지기수로 벌어지는 일이었다. 은마가 죽인 사람 수는 강호에서 날마다 원한으로 죽어 나가는 수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으니 대수로운 일이라 할 수도 없었다.
옛날 구천산 마도 연맹 박멸에 참여했던 무사들이 적지는 않았으나, 삼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경우는 많지 않았다. 초휴의 명단에 오른 수십 개의 군소 세력은 강호 전체와 비교하면 바다에 던진 돌멩이나 마찬가지였다.
은마가 강호에 나와 일을 벌인 것도 사실 이미 여러 번이었다. 전의 신병대회에서는 오대 검파 중 하나인 장검산장도 목표로 삼지 않았던가. 지금은 군소 세력을 상대로 화풀이나 하는 정도로 보였으니, 강호 전체로 놓고 보면 별 것 아니었다.
군소 세력만 습격할 뿐 대문파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위서애의 계산은 정확했다. 다 익어 무른 감만 골라 터뜨리는 것이 겁쟁이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훨씬 안전했다.
대문파들도 이런 상황을 전해 들었으나 행동에 나서지는 않았다. 어차피 자신들의 이익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고, 은마의 움직임도 그리 크지 않았으니까. 대광명사 같은 부류의 정도 종문조차도 그렇게 빨리 반응할 수는 없었다.
조승평이 이십여 명을 데리고 멸문 임무를 띠고 떠날 무렵, 초휴는 서초에 있는 은마의 비밀 거점에서 편안하게 수련 중이었다. 이번 목표는 천인합일 무사가 하나뿐일 정도로 실력이 약한 가문이라 직접 나실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조승평 한 사람에게 맡겨도 충분한 일에 그가 나서면 도살밖에 더 되겠는가. 수하들을 이끌고 돌아온 조승평은 초휴의 한가로운 모습을 보자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대인, 이렇게 해서야 어느 세월에 명단의 세력들을 전부 정리하겠습니까? 지금은 가문 하나를 칠 때마다 절반 가까운 인원을 놓치는 상황입니다. 이러다가는 서초의 목표들을 정리하기도 전에 다른 세력들이 경계하고 대책을 마련할 겁니다.”
그 말에 초휴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대책을 준비하니 문제가 아니냔 거요? 나는 오히려 그들이 아무 준비도 안 할까 봐 걱정이오. 수십 개 세력이 서초, 북연, 동제 세 곳에 흩어져 있소. 그들이 전력으로 도주하면 우리가 순간이동을 한들, 단시간에 그 많은 수를 죽일 수는 없소. 내 계획은 아주 단순하오. 그들이 준비하게 만드는 거요. 우리가 하나하나 돌아다니며 정리하느니 그들이 알아서 한곳에 뭉치는 편이 훨씬 낫다는 말이오. 그러면 우리가 손을 쓰기에 훨씬 편해지는 거지. 가만히 앉아서 기다렸다가 일망타진을 한다는 계획이란 말이오.”
조승평은 임엽에게 예상치 못한 계획이 있는 걸 알게 되자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하지만 대인, 온 강호에 흩어져 있는 자들이 우리 생각대로 움직여줄까요?”
초휴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것도 간단하오. 그들이 말을 들으려고 할만한 사람을 찾으면 되지. 우리는 많은 사람을 일부러 놓아 보냈소. 그러니 그들은 우리의 ‘실력’을 잘 알 것이고, 그 소식과 공황에 빠진 분위기를 널리 퍼뜨리겠지. 이럴 때 누군가 명망 있는 자가 팔을 걷고 나서서 명단의 세력들을 불러모으면 일은 쉽게 풀리는 거요.”
초휴는 위서애가 준 자료에서 이름자를 하나 가리켜 보였다.
“계속 수하들을 이끌고 서초에서 움직이시오. 약한 세력만 치고, 우리보다 강한 세력은 건드리면 안 됩니다. 조금이라도 낌새가 이상하면 즉각 철수토록 하고. 나는 나삼총 부대를 데리고 동제에 가서 우리 대신 팔을 걷고 나서 줄 자를 만나보겠소. 임안군(臨安郡) 홍엽산장(紅葉山莊) 장주, ‘풍무검협(楓舞劍俠)’ 류점홍(柳漸鴻)이란 자요!”
초휴가 선택한 것은 명단에서 가장 강한 세력 중 하나였다. 장주인 류점홍은 일년 전 무도종사 경지에 올랐고, 홍엽산장 역시 동제 임안군에서 가장 강한 세력이라 할 만했다.
삼백 년 전 구천산 마도 연맹 박멸을 통해 굴기한 자 중 일부는 무난하게 살아왔고, 어떤 자들은 꽤 세력을 키웠다. 홍엽산장은 후자에 속했다.
홍엽산장과 장주 류점홍, 둘 다 동제 무림에서 명성이 높았다. 류점홍의 별호는 풍무검협이었으니 이 ‘협’ 자는 아무나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류점홍이 그런 별호를 얻은 것은 오랜 세월 동제 무림의 어려운 자들을 돕고 마도의 악한들을 제거하며 쌓은 명성 덕분이었다. 홍엽산장 또한 대가를 따지지 않고 형편이 어려운 낭인 무사들을 도왔으니 동제 무림에서 평판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초휴가 보기에는 류점홍이나 홍엽산장이나 무언가와 아주 닮아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섭인룡과 취의장이었다. 류점홍은 섭인룡이 걸어온 길을 그대로 걷고 있었다. 어쩌면 섭인룡을 모방해 왔던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려운 자를 돕건, 마도 악한을 제거하건, 홍엽산장이 어려운 무사들의 쉼터가 되건, 모두 실리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류점홍은 그릇이 작은 탓인지 섭인룡만큼 대범하지는 못한 듯했다.
섭인룡 역시 명성을 위해 일을 벌였으나, 그에 따르는 큰 위험을 무릅쓰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해서 취의장은 강호에서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반면 류점홍은 너무 소심하고 조심스러웠다. 어려운 자들을 도와서 명성을 쌓으려 했으나 돕는다고 해 봐야 간단한 일이었고 베푸는 것도 사소한 은혜였다. 도움을 받는 사람들도 바보가 아니었으므로, 그런 작은 은덕을 입었다고 류점홍에게 정말로 감격하는 자는 거의 없었다.
류점홍이 죽인 마도 악한이라는 자들도 대부분 실력이 떨어지는지라 위험할 것도 없었고, 그런 자들을 죽여서 얻는 명성에는 한계가 뚜렷했다. 자존심은 하늘보다 높은 주제에 가진 수단이나 능력은 별 것 없는 자. 초휴의 눈에 비친 류점홍은 그런 인물이었다.
* * *
동제 임안군의 홍엽산장, 류점홍은 정청의 상석에 앉아 있었다. 주위에는 홍엽산장 류가의 십여 명 고수들과 후계자들이 모였는데 다들 안색이 침중했다.
류점홍은 비범한 기질의 중년인으로 용모가 반듯하고 강건했다. 곁에는 붉은 단풍잎으로 칼집을 장식한 장검이 놓여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고, 분위기는 몹시 무거웠다.
은마권이 삼백 년 전 구천산의 원한을 갚으려 한다는 소식은 이미 서초에서 동제까지 쫙 퍼졌다. 옛날 그 사건과 연관된 세력들은 모두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류점홍도 자신의 선조가 어떻게 가문을 일으켰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홍엽산장 전체가 심각한 분위기에 휩싸일 수밖에.
류점홍보다 좀 젊어 보이는 중년 무사 하나가 참지 못하고 일어섰다.
“형님, 이렇게 앉아서 죽기를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은마권은 복수하겠다는 주제에 대문파는 겁나 못 덤비겠으니 우리를 찾아온다지 않습니까. 우리 홍엽산장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 이번에 은마 무리를 이끄는 자는 이제 막 용호방에 오른 임엽이고, 나머지는 평범한 실력의 무사 이십여 명뿐입니다. 무도종사는 한 명도 없단 말입니다. 임엽의 실력이 무도종사에 필적한다지만 다른 자들도 그럴 리는 없습니다. 그러니 함정을 파 놓았다가 그자들이 오면 일망타진해 버립시다. 놈들의 기세를 짓뭉갤 수 있고 우리 홍엽산장의 위명도 떨칠 수 있을 겁니다.”
류점홍이 그를 힐끗 바라보았다.
“너무 생각이 단순하구나. 임엽이 아무리 강한들 젊은이일 뿐이야. 혼자 힘으로 홍엽산장을 멸문시킬 수 있을 리가 없지. 하지만 임엽을 막아낸들, 심지어 죽인들 무슨 소용일까. 이번 일은 은마 전체의 결정이란 걸 알아야지. 임엽 하나를 죽였다가 은마의 고수들이 대거 몰려오기라도 하면 그때는 무슨 수로 막을 테냐?”
무사는 말문이 막혔다. 막을 수도 없고 죽일 수도 없다니, 그럼 홍엽산장은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류점홍 곁에 앉아 있던 젊은이가 일어서서 공수를 올렸다.
“아버님, 차라리 대문파에 도움을 청하는 건 어떨까요? 아버님은 장검산장, 진무교, 남창 하후세가와 모두 교분이 있으시잖습니까. 마도 무리가 이렇게 설치는 상황에 아버님이 나서서 도움을 요청하시면 은마권이 감히 그들을 대적이야 하겠습니까?”
류점홍이 탄식했다.
“나라고 왜 그걸 생각하지 않았겠느냐? 심지어 그들에게 이미 전갈도 보냈다. 하지만 아직 아무런 답이 없어. 임아(臨兒)야, 명심하거라. 인맥도 중요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의지할 것은 자신뿐이다. 특히 그런 대문파 사람 중, 이 아비가 친분이 있는 자들은 문파의 장문이나 가주도 아니다만, 혹여 장문이나 가주라 해도 이런 큰일에 나설 때는 이득과 손해를 상세히 따져 본 뒤에야 결정을 내리게 마련이다. 그런 논의는 결과가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데 우리 목숨을 남의 손에 맡길 수는 없지 않으냐.”
류가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맞설 수도 없고, 구원을 청해도 뚜렷한 반응이 없고, 그렇다면 이번 위기를 대체 어떻게 넘겨야 한단 말인가.
그때 바깥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가지 방법을 가르쳐 드릴까? 홍엽산장과 류 대협은 명성이면 명성, 실력이면 실력, 다 갖추고 있소이다. 남에게 부탁하느니 본인이 나서는 게 훨씬 낫다는 말이오. 다들 위험에 처한 판이니 류 대협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삼백 년 전 구천산 싸움에 참여했던 세력을 불러모으는 거요. 그렇게 해서 위세를 과시하면 은마와 맞설 수 있을 거요. 그리되면 위기도 넘길 수 있고, 강호의 대문파들도 그렇게 강력한 세력을 외면하기는 어렵소. 류 대협이 연맹의 발기인이 되면 명성과 이득을 전부 챙기게 되는 거란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