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75)
575화 ‘탐욕’스러운 협객
난데없는 불청객이 들려준 내용은 아주 훌륭했다. 류점홍은 머릿속이 탁 트이는 느낌마저 들었다.
수동적으로 몰린 상황을 내가 주도할 수 있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것이다. 정말 그렇게 해낼 수만 있다면 홍엽산장의 위세는 취의장만큼이나 커지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 말을 듣고 기뻐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모두 가슴이 철렁하여 무기를 쥐고 일어섰다.
여기는 홍엽산장이고, 류가가 장악한 지역이다. 하지만 누군가 홍엽산장의 방어선을 뚫고 들어와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죄다 엿듣고 충고를 한 것이다. 모골이 송연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장난은 집어치우고 모습을 보여라!”
류점홍이 코웃음을 치며 한 손을 휘두르자 장검이 칼집에서 빠져나왔다. 진한 붉은색 검기가 춤추듯 휘날리며 한 줄기 검강이 날아갔으나, 순식간에 위세를 잃더니 몇 갈래로 나뉘고 말았다.
대문 밖에 있던 초휴가 살기를 담은 주먹을 날려 검강을 부숴 버리고 정청으로 들어선 것이다.
그 뒤를 따라 나삼총과 은마의 정예 무사 이백여 명이 대문을 통해 홍엽산장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순식간에 홍엽산장 전체가 마기로 가득 찼다.
임엽을 본 류점홍의 낯빛이 확 변했다.
“임엽! 여긴 어떻게 온 것이냐?”
‘정보에 따르면 임엽은 서초에 있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동제에 나타나다니?’
그를 따르는 수하들은 천인합일 무사가 스물셋이고 제일 약한 자도 삼화취정의 경지라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강한 세력이라면 홍엽산장 정도가 아니라 파산검파 같은 곳을 공격하기에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초휴는 차갑게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으로 인결을 맺자 살생마불상의 형상에 시뻘건 혈인이 나타났다. 강대하기 이를 데 없는 위세였다.
그 도의의 위압감에 류점홍마저 큰 압력을 느꼈다. 경지에 오른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류점홍 역시 무도종사였다. 그런데도 입엽에게서 이렇듯 무거운 압박감을 느낀다면 웃음거리 아닌가?
류점홍은 이를 악물었다.
그가 빼든 장검을 둘러싸고 무수한 꽃잎이 맴돌았다. 화려해 보이지만 살기를 가득 담은 꽃송이들이 검의와 강기를 품고 하늘을 덮을 듯 쏟아져 내렸다. 무수한 검기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류점홍의 공격을 본 초휴는 입가에 냉소를 띄웠다. 류점홍의 실력은 그가 생각한 것보다 더 약했다. 초휴는 천인합일이지만 사실상 대부분의 무도종사와 겨룰 만한 능력이 있었다.
초휴와 겨뤘던 무도종사 중 교연동은 약했지만, 나머지는 누구 하나 실력이 떨어지는 자가 없었다. 심지어 진양자처럼 무도종사 중에서도 고수에 속하는 사람도 있었다.
실력이 강한 무도종사들은 공통의 특징이 있었다. 남과 겨룰 때 무도종사 특유의 강점을 이용하기보다 자기 자신의 힘을 쓰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무도종사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강점이란 무엇인가. 바로 무도진단을 응집하여 천지 원기를 빠르게 흡수해서 자신의 힘으로 바꾸는 능력이다. 그것은 아무리 써도 고갈되지 않는 끝없는 힘인 것이다!
이론적으로만 말한다면 천인합일 무사는 사람 수로 밀어붙여 죽이는 게 가능했다. 종현처럼 엄청난 힘을 가진 무사라도 내력이 무한정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진단경에 든 무사라면 낮은 등급의 무사들이 아무리 많이 달려들어도 이길 수 없었다. 그것이 무도종사의 결정적인 강점이었다.
그러나 이런 강점은 실력이 한참 떨어지는 자를 상대할 때나 빛을 발하는 거지, 같은 무도종사끼리 싸운다면 의미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해서 대부분의 무도종사들은 자신의 실력을 개발하고 더 강한 전투력을 쌓으려고 노력했다.
지금 류점홍의 공격을 보면 폭발력은 초휴보다도 강한 수준이었고, 유려한 검세는 끊길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류점홍이 자신의 끝없는 진기를 이용해 입엽을 말려 죽이려는 계산이었다.
다른 천인합일에게는 그런 방법이 통했을 것이다. 그러나 입엽이 상대인 바에야 부질없는 망상일 뿐이었다.
살생마불상의 칼날이 아름다운 꽃송이들을 일격에 베어 버렸다. 핏빛 기운이 솟구치면서 충천한 마염이 부처의 법상과 어우러지자 칼날은 더욱 사악한 빛을 띠었다.
도와 검이 격돌하는 순간 류점홍은 강대한 힘을 견디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심지어 그 일도는 류점홍의 체내를 온통 뒤흔들어 마치 기혈이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을 주기까지 했다.
류점홍은 동제 무림에서 명성이 높아서 적잖은 무사들과 겨뤘으나, 용호방 십 위 안에 드는 준걸과 싸운 적은 없었다.
무도종사인 자신 앞에서 천인합일이 강해 봐야 얼마나 강하겠는가? 용호방의 평가라는 게 너무 과장된 것이겠거니 여겼다.
그러나 지금 겪어보니 용호방에 오른 청년 준걸의 전투력은 전혀 과장이 아니잖은가. 그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강했다.
후퇴하던 그가 노호성을 지르자 검이 불꽃처럼 튀어 나갔다. 진홍색 검강 속에서 적멸(寂滅)의 화염이 뛰어놀았다. 류점홍의 검은 육급 보병이었으나 그가 실은 힘을 감당하지 못해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것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류점홍은 낭인 출신은 아니었다. 그러나 류가의 옛 선조들은 구천산 정마대전을 계기로 세력을 키웠으나, 본래부터 기반이 튼실한 건 아니었다.
그러니 류점홍이 계승한 무공도 그렇게 강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무도종사의 경지라지만 그가 계승한 무공은 초휴는커녕 다른 대문파의 평범한 제자보다 못했다.
그 검법은 가문에서 전승된 것이 아니라 비전함에서 우연히 찾아낸 초식이었다. 위력이 대단했으나 초식이 일부만 남아 있어 부작용이 따를 위험이 있었다. 해서 결정적인 순간이 아니고서는 거의 쓴 적이 없었다.
그는 무도종사인 자신이 애송이 임엽한테, 고작 일합만에 이토록 일방적으로 몰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무도종사가 천인합일에게 밀리다니 우습고도 서글픈 일이 아닌가.
하지만 일검에 담긴 작렬하는 불빛과 적멸의 힘을 느낀 초휴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과연 아무리 약하다 한들 무도종사는 무도종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 경지에 다다랐으면 비장의 패 하나 정도는 지니고 있기 마련이다. 그 일검은 위세가 비범하여, 완전한 검초였다면 상고 시대에는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아무리 강해도 지금은 파편뿐이었으니 중요한 것은 그것을 쓰는 사람이었다.
살생마불상이 흩어지더니, 초휴의 손이 등 뒤로 뻗어 탐욕도를 쥐었다.
칠마도는 남도 상하고 나도 다치는 무기다.
사실 초휴는 이렇게 빨리 칠마도를 쓸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속전속결로 류점홍을 무너뜨려야 했으니 칠마도 같은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칠마도는 인간의 칠정 육욕을 겨냥한다. 지금 초휴의 실력으로는 칠마도 중 어느 칼이건 단 한 번밖에 휘두를 수 없었다.
그러니 류점홍의 감정을 제대로 공략할 수 있는 칼을 꺼내야만 했다. 그렇지 못하면 기회만 낭비하는 셈이다. 탐욕, 분노, 우둔, 원한, 애정, 악의, 욕망!
사람들 대부분은 칠정 중 탐욕을 피해가지 못한다. 누군가는 재물을 탐하고, 누군가는 색을 탐하고, 또 누군가는 권력과 힘을 탐한다.
류점홍은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니 탐욕도를 피할 수 없을 게 분명했다. 탐욕도가 칼집에서 빠져나온 순간, 사악한 마기가 포효하며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힘이 류점홍의 심마를 끌어냈다.
순간 류점홍의 눈에 붉은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탐욕이 얼굴에까지 드러나자 반듯하던 용모가 추악하고 끔찍하게 일그러졌다.
류점홍의 탐욕은 아주 깊었다. 초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깊었다. 그는 탐욕스러운 자였다. 명성, 지위, 권세를 강렬하게 탐하는 자였다.
북쪽에는 취의장이 있었다. 강호의 밑바닥에서 굴기한 섭인룡은 천하의 낭인 고수들을 끌어모아 취의장의 이름을 온 강호에 떨치게 했다.
류점홍은 자신이 섭인룡보다 모자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홍엽산장을 동제의 취의장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품어왔다.
오랜 세월 동안 계획을 세웠고, 무도종사 경지에 들어선 이후로는 더더욱 맹렬하게 그 계획을 이루려고 온갖 계책을 꾸몄다. 그러니 여기서 죽을 수는 없었다. 절대로 죽고 싶지 않았다.
류점홍의 강기는 이미 탐욕도의 일격을 따라 변하기 시작했다. 원래 그의 강기는 진한 붉은색이었다. 초휴는 그것이 어떤 종류인지는 몰라도, 절대로 마도의 강기가 아니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류점홍의 강기는 검붉은 빛깔로 변해 사악한 기운을 한껏 내뿜고 있었다. 이미 마에 물들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탐욕도가 휘둘러지자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강기는 일격에 삼켜지고, 검에서 뿜어져 나오던 적멸의 불꽃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으나, 탐욕도의 궤적을 따라 무한한 마염이 검을 둘러쌌다.
뒤틀린 채 류점홍을 둘러싸고 있던 강기마저 탐욕도로 흘러들어, 탐욕도가 그의 검초를 제압하는 것을 돕기 시작했다. 마기가 약해지며 도강이 흩어지자 류점홍의 장검은 그대로 깨져나갔다. 그는 선혈을 울컥 토하더니 뒤쪽에 놓여 있던 탁자와 의자를 부수며 나가떨어졌다.
초휴의 눈에도 미미하게 붉은 기운이 돌았다. 하지만 그는 강대한 정신력으로 탐욕도의 반작용을 억제하고, 가벼운 손길로 탐욕도를 칼집에 꽂아 넣었다.
칠마도는 옛날 상고 시대의 지존도법인 칠대한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비록 칠대한처럼 천지와 같은 위세를 떨칠 수는 없었으나 칠정의 힘은 역시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마음이 맑고 욕심이 전혀 없는 성인이 아니라면 반드시 칠마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영향이 큰가 작은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류점홍의 별호 풍무검협의 ‘협’ 자를 남들이 붙여준 것인지, 자신이 지어낸 것인지는 몰라도, 지금 탐욕도 앞에서 본모습이 완전히 드러낸 셈이었다. 물론 그는 협객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주 탐욕스러운 ‘협’객이라고 해야 할 터였다.
류점홍은 쑤셔오는 가슴을 누르며 절망적인 눈으로 초휴를 바라보았다. 무도종사 경지에 든 지 일 년이 된 그는 한창 득의양양한 참이었다.
어떻게 하면 홍엽산장을 동제의 취의장 수준까지 완성해서 강호에 우뚝 솟게 할지, 강호에 노래로 떠도는 대문파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만들 수 있을지 계획을 세우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될 줄이야!
그는 심지어 얼굴도 모르는 선조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왜 구천산 오대천마 박멸 따위에 참가했단 말인가. 그의 실력과 잠재력이라면 선조가 남겨준 유산이 없었어도 자력으로 무도종사의 경지에 올랐을 텐데.
초휴는 천천히 다가갔다. 류점홍의 장검은 부서졌으나, 무도종사인 만큼 마지막으로 덤빌 한 가닥 힘은 남아 있었다.
무사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의 기개는 있기 마련이다. 막다른 곳까지 몰렸을 때 무릎을 꿇고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자들은 아주 적었고, 대부분은 목숨을 걸고 싸우려 하는 법이다.
류점홍 역시 결사의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초휴는 그의 앞에서 멈추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류 대협, 그렇게 오래도록 고생해서 이만한 실력과 지위를 손에 넣었는데 여기서 죽는다면 아깝지 않겠소?
류점홍은 임엽의 말에 내심 놀랐다.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무슨 소리요? 뭘 어쩌려는 거요!”
임엽이 오로지 복수를 위해 온 것이라면 이런저런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칼을 한 번 휘둘러 류점홍의 목을 취하면 그만이니까. 그러니 저 말은 아직 돌이킬 여지가 남아 있다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