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76)
576화 입마
“좀 전에 이미 말씀드렸을 텐데? 류 대협은 명성이면 명성, 실력이면 실력 다 갖추고 있으니, 은마권의 표적이 된 세력들을 모아 연맹을 결성하면 대항할 수 있을 거라고.”
류점홍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대체 무슨 속셈이오?”
임엽이 말해준 방법은 훌륭했다. 전세를 만회할 수 있는 절묘한 수라 할 만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계획이 왜 임엽의 입에서 나온단 말인가.
‘이 자는 대체 누구 편인가?’
차츰 한가지 추측이 떠오르기 시작했으나, 차마 입 밖으로 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초휴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류점홍을 응시했다. 목소리가 몹시 낮았다.
“무슨 속셈이냐고? 류 대협 정도로 총명하고 수완 좋은 사람이 그게 짐작이 안 간단 말이오? 옛날 구천산 싸움에 참여했던 세력들은 전 강호에 흩어져 있소. 하나씩 찾아가려면 힘도 들고 시간도 많이 허비되지. 그러니 전부 한곳에 모으면 없애기도 쉽지 않겠소?”
“말도 안 되는 소리!”
류점홍은 분노하여 외쳤다.
“나를 죽인다 해도 너희 마도의 개 노릇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비열하고 간교한 짓을 하면 나는 완전히 파멸하게 된단 말이다. 온 강호인들이 이 류점홍에게 침을 뱉고 욕을 할 거란 사실을 왜 모르는가!”
류점홍은 자신이 그 제안을 승낙하면 어떻게 될지 훤히 알고 있었다. 동제 무림에서 누렸던 호협의 지위와 명예는 땅에 떨어질 거고, 강호 전체에서 버림받을 터였다.
마도의 개가 되어 그렇게 많은 무림동도를 죽이게 돕는다니, 목숨을 부지한들 강호 어디에 발을 붙이고 살 수 있겠는가. 아무리 그가 탐욕스럽고 이익을 좇는 인간이라 한들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선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수십 세력의 정예들만 모여도 천 명은 넘는다. 임엽이 천 명 넘는 사람을 단번에 죽여 없애는 걸 도우라고? 그가 지금까지 평생 죽였던 사람 숫자도 그보다는 적을 터였다.
초휴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류 대협’은 완전히 실패한 인간이 아닌가. 진짜 대협은 물론 아니고, 그렇다고 위군자라 할 수도 없었다.
만일 섭인룡에게 남의 죽음과 자신이 죽는 것 사이에서 선택하라고 하면 무조건 남의 죽음을 고를 것이다. 그러나 류점홍은 자기 마음속의 그 관문을 끝내 넘지 못하고 있었다.
초휴는 그를 응시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류 장주, 아직도 상황을 잘 모르시는군. 좀 이기적으로 사는 편이 낫지. 그자들의 목숨을 지켜줘서 당신이 얻을 게 뭐요? 의를 위해 희생한 의협이라는 명성이라도 얻을 것 같소? 꿈 깨시오. 아무것도 얻을 게 없으니!”
초휴가 마지막 한마디를 노호하듯 외치며 천절지멸이혼대법과 심마륜전대법이 소리 없이 펼쳐졌다. 미세한 정신력이 류점홍의 의사를 억지로 조종하려 하지 않으면서도 일종의 분위기를 형성해 그의 사념을 끌어내려 했다.
“내가 홍엽산장에 온 목적은 당신과 나 외에는 아무도 모르오. 내 제안을 거부하면 나는 당신을 죽일 거요. 세상 사람들은 당신이 마도한테 공격받고 죽은 줄로만 알겠지. 지금 죽어봐야 개죽음이고, 허망한 멸문일뿐이라는 얘기요. 심지어 당신의 불행을 즐기는 자들도 있을 거요. 삼백 년 전 얻었던 이득으로 잘난 척을 하더니, 드디어 그 운도 다했다고 비아냥거리면서 말이지. 류 장주, 아시겠지만 강호인들의 악의는 만만치 않소. 내 장담하지만, 당신이 죽고 홍엽산장이 멸망한다면 손뼉 치며 좋아할 자들이 동정하는 사람보다 훨씬 많을 거외다.”
초휴의 말은 사람의 마음을 찌르는 데가 있었다.
류점홍은 그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할 만큼 경험이 부족한 자는 아니었다.
강호에 가장 흔한 것은 어려운 사람을 돕는 협객도 아니요, 사람을 초개처럼 죽이는 마두도 아니었다. 겉으로는 점잖은 척하며 뒤로는 온갖 호박씨를 까는 위군자들, 그리고 남이 잘되는 꼴과 남이 잘난 꼴을 봐주지 못하는 진짜 소인배들이었다.
초휴는 류점홍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류 장주, 정도 쪽인지 마도 편인지가 정말 그렇게 중요하오? 홍엽산장을 취의장처럼 만들고 싶지 않소? 명성과 이익이 필요하면 마도에 들어와도 똑같이 누릴 수 있소. 위명이란 실력으로 얻어내는 것이지 잔꾀를 부려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오.”
류점홍은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마도에 들면 위명이 아니라 악명을 얻게 될 텐데?”
초휴는 손을 내젓더니 콧방귀를 뀌었다.
“악명이라고? 천만에! 정도건 마도건, 실력만 충분히 강하다면 그건 위명이오.”
그는 손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류가의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나삼총과 그 부하들에게 제압당해 있었다.
이백여 명의 마도 정예 앞에서는 반격해 볼 여지조차 없었다.
초휴가 미리 나삼총더러 이들을 죽이지 말라고 지시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진작에 남김없이 도륙당했을 것이다.
“류 장주, 잘 보시오. 저 사람들, 당신네 류가 사람들을 보란 말이오. 저들의 몸에는 류가의 피가 흐르고 있소. 저쪽이 당신 동생인가? 좋은 아우를 두셨구려.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데 어려서부터 형을 잘 따랐고, 당신과 가주 자리를 놓고 다툴 생각이라곤 한 번도 하지 않은 착한 동생이라고 들었소. 그런 동생이 눈앞에서 죽는 것을 볼 수 있겠소?”
이어서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가르키며 말을 이었다.
“저 젊은이는 아들이겠군. 아드님은 자질이 퍽 뛰어나시구려. 갓 스무 살 나이로 내강경에 들다니, 시간을 두고 잘 가르치면 용호방에도 오를 수도 있을 것 같소. 홍엽산장을 발전시키려는 것은 당신의 아들, 당신의 후계자를 위한 거 아니었소? 아들이 여기서 죽으면 큰 이익과 명성을 얻은들, 도대체 그걸 누구에게 물려준단 말이오?”
초휴는 두려움 가득한 표정의 류가 사람들을 계속 가리킨 채 낮은 소리로 말했다.
“류 장주, 선택할 기회를 드리겠소. 단 한 번뿐이오. 생각 잘하고 답하시오. 나를 위해, 우리 은마를 위해 일할 것인가, 말 것인가? 남들이 피 흘리고 울부짖게 할 것인가, 자신의 가족들을 그렇게 만들 것인가, 선택은 당신에게 달렸소. 저 사람들을 보시오. 다 당신의 가까운 친족들이 아니오. 안 하겠다는 말을 하면 저승에서 다시 함께 지내도록 보내드리리다.”
그리고는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물론 가면을 쓰고 있어 류점홍에게는 보이지 않았을 테지만.
“그러나 안심해도 됩니다. 나는 손속이 빠르니까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숨이 끊어질 거요. 우리 마도인들은 수단이 잔혹해서 남을 괴롭히길 즐긴다고 모함하는 자들도 있더이다. 그러나 남이 길게 고통받는 것을 즐기는 자는 마도가 아니라 변태라고 해야 하지 않겠소? 풍무검협이라, 하하. 당신은 협이라는 한 글자를 위해 지금까지 많은 대가를 치렀겠지. 하지만 잘 생각해 보시구려. 협 자를 마 자로 바꿔도 그리 나쁠 게 없을 것 같지 않소?”
류점홍의 얼굴이 뒤틀리더니 저항하려는 기색이 비쳤다. 두 눈은 시뻘게졌고 진홍색이던 강기가 불안정해지더니 검붉은 빛을 토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입마했다는 징조였다.
초휴는 탐욕도를 쓰지 않았으나, 정신력이 부지불식간에 류점홍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악의를 끄집어낸 것이다. 그것은 심마였다. 류점홍 자신의 마!
잠시 후 류점홍은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초휴를 바라보는 벌건 두 눈에 뭐라 할 수 없는 표정이 어려 있었다. 그는 쉰 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마귀인가?”
초휴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마도 귀도 아니오. 마는 당신 마음속에 있는 것이지. 류 장주, 이미 결정을 내린 것 아니오?”
류점홍은 무참한 표정이 되었다. 그는 자기 사람들을 힐끗 보고, 그들에게 들리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나에게 선택권을 주었다고? 말은 그럴듯하군. 하지만 이런 건 애초에 선택이라 할 수도 없는 게 아닌가! 좋소. 당신 말대로 판을 짜서 사람들을 모으도록 하지. 하지만 나도 죽은 척을 해야겠소. 일이 끝나면 나를 죽이는 척하시오. 그 순간부터 강호에 류점홍이라는 사람은 없게 되는 거요.”
초휴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뭐지? 당신이 죽으면 욕을 할 사람이 없을 것 같소?”
류점홍은 무표정하게 말했다.
“죽으면 잠깐 욕을 먹고, 끝이잖소. 선조들의 얼굴에 지나치게 먹칠하는 건 피하고 싶단 말이오.”
“때를 아는 자가 준걸이라고 하지. 류 장주의 작은 부탁이야 얼마든지 들어드릴 수 있소. 물론 전제는 류 장주가 이번 일을 잘 해내야 한다는 것이오. 만일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모두에게 달갑지 않은 결과를 보게 될 거외다.”
류점홍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안심하시오. 일가 남녀노소의 목숨이 모조리 당신 손에 달렸는데 내가 어디로 도망치겠소?”
초휴는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할 것 없소. 어디로 옮겨가도 홍엽산장은 여전히 홍엽산장일 테니까. 은마에 들어오면 더 많은 길이 열릴지도 모르잖소? 사실 류 장주는 운이 아주 좋은 겁니다. 선택할 기회가 있었으니 말이오. 우리가 제거할 세력 중 홍엽산장이 최강은 아니었으나, 당신의 명성이 가장 대단했소. 해서 당신을 목표로 삼고 기회를 드린 거요. 다른 자들을 생각해 보시구려. 그들의 운명은 당신이 고개를 끄덕인 순간 정해진 거요. 선택할 기회조차 없이 말이오.”
마도로 떨어진 이상, 자의이건, 타의이건 간에 류점홍에게는 돌아갈 길이나 달리 선택할 방법은 없었다. 계획대로 일이 끝나기 전에는 홍엽산장 사람들은 그곳을 떠날 수 없었다.
초휴는 수하를 몇 사람 남겨 홍엽산장을 감시토록 했다. 그런 뒤 동제에서 인적이 없는 곳을 골라 연맹이 모일 장소로 삼았다. 그리고 은마에서 가장 진법에 능한 자들에게 커다란 진을 만들게 했다. 거대한 죽음의 진을!
류점홍 역시 자신의 이름으로 소식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과거 구천산 마도 연맹 싸움과 관련이 있는 세력들이 모두 동제에 모여 대책을 의논하자는 것이었다.
사실 류점홍이 연락하기 전부터 그들은 이미 공황에 빠져 어쩔 줄 몰라 했다. 인맥도 동원하려 하고 대책도 궁리해 보았다. 그러나 어떻게 해도 은마권을 막아낼 방법이 없지 않은가.
류점홍의 등장은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하나의 세력, 한 사람의 인맥으로는 은마권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세력이 힘을 합친다면? 임엽과 그 휘하 이십여 명 정도가 어떻게 천여 명을 죽일 수 있겠는가. 오히려 몰살을 당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렇게 일을 키워 놓으면 대문파들도 움직일 거라는 사실이었다. 모두 모여 연맹이 결성되면 강호의 유명한 세력 중, 창란검종이나 파산검파처럼 비교적 약한 종문과 비슷한 규모가 된다.
속으로야 무슨 생각을 하고 있건, 류점홍의 연락이 왔을 때 부정적인 의사를 보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여러 세력의 정예들이 동제로 와서 류점홍을 만났다. 그 정도로 움직임이 커지자 대문파들도 소식을 들었다.
* * *
움직이려는 자들도 있었고 꼼짝 않는 자들도 있었다. 움직이려는 자들은 대부분 류점홍이 조직한 연맹과 접촉하려고 사람을 보내려 했다. 꼼짝 않는 자들은 별 관심이 없거나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 쪽이었다.
대광명사 망염선당의 작은 뜰, 흰 승복을 입은 두 승려가 보리수나무 아래서 바둑을 두고 있었다. 사납고 위엄 있는 얼굴의 중년 승려는 육대 무원 중 금강원의 상좌인 ‘위타존자’ 허언이었다.
맞은편의 승려는 아주 기이했다. 그의 얼굴은 언뜻 보면 이십여 세로 보일 정도로 젊었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삼사십 대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을 응시하면 기이하게 노쇠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미 몇백 살은 된 것 같다는 의심이 들 정도로 말이다.
이 기이한 승려는 대광명사 삼대 선당의 으뜸인 망염선당의 상좌 ‘구묘용수’ 허운이었다. 바깥사람들은 허운이 대광명사 방장인 ‘석가존자’ 허자 다음가는 강자라고 여겼으나, 대광명사 내에서는 방장 허자보다도 허운을 두려워하는 이가 더 많았다.
이유는 전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바깥사람들이야 당연히 허운의 속을 알 턱이 없었으나 정작 대광명사 사람들도 그의 속을 몰랐다. 심지어 허운의 사형들, 대광명사 윗세대의 불종 대사들조차 그랬다.
결국 허자보다 명성이 훨씬 높았던 허운은 망염선당 상좌가 되었고, 허자가 방장이 되었다. 그러나 대광명사에서 허운의 지위는 결코 허자에 뒤지지 않았다. 지금 허언이 허운을 대하는 태도 역시 방장을 대할 때와 비슷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