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585)
585화 분노!
불가에서는 탐욕, 분노, 우둔을 삼독(三毒) 또는 삼구(三垢)라고 해서, 사람의 마음을 더럽혀 속세의 번뇌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만악의 근원으로 규정지었다.
따라서 이 세 가지 번뇌야말로 칠정 육욕을 통틀어 불가에서 가장 꺼리고 삼가는 것이다. 다만 애석하게도 역대 불가 고승들 가운데 이 번뇌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불가가 탐욕스럽지 않다면 대웅전마다 전신이 금에 덮인 채 앉아있는 불상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눈 씻고 봐도 흙이나 나무로 된 불상은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불가가 분노하지 않는다고? 그러면 조금이라도 자기들과는 다른 신앙을 이단시하여 절대 용납지 않는 것도 모자라, 이를 박멸하겠노라 맹세하는 행태는 어찌 설명되겠는가.
또한, 불가가 우둔하지 않다면 어째서 그 많은 업장(業障, 언행이나 마음으로 지은 악행에 의한 장애)을 제대로 참회하지 않고 독선적인 태도로만 일관한다는 것인가.
불가에서 그나마 이 세 번뇌를 철저히 떨쳐냈던 몇 안 되는 고승 중, 초휴가 직접 만나본 이는 담연대사가 유일했다.
지금의 허행은 명성을 탐하지도 않고 우둔한 생각은 없을지도 모르나, 유독 분노만은 깊고도 짙었다.
허행은 임엽이 칠마도를 출수하려는 기미가 보이자 더럭 경계의 눈빛을 띠었다. 소범천에서 바로 저 칠마도에 당하지 않았던가.
당시 사악하기 그지없는 탐욕도가 그의 마음속 탐심을 자극하며 진기마저 집어삼켰었다. 다시는 같은 방법에 당하지 않으리라!
당시 허행은 소범천에서 나오기가 무섭게 대광명사로 돌아가 공집선당(空執禪堂)의 상좌 허도에게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을 얻어 수련에 정진했다. 그래서 탐욕도가 한바탕 헤집어 놓았던 마음을 정갈히 다듬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나름대로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온 셈이다.
이윽고 그 무엇과도 필적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이 칼끝에서 쏟아져 나오며 마기가 하늘까지 솟구쳤다. 칠마도 중 가장 큰 위력이라고 자신하는 분노도였다!
분노가 집착을 일으켜 또 다른 격분을 낳고 이것은 곧 업장으로 이어지는 법이다. 분노도가 허행의 마음속 분노를 자극한 순간, 그의 온몸을 휘감았던 불염이 찬연히 빛나던 금색을 잃고 순식간에 시뻘겋게 변했다.
분노의 불길이 머리까지 솟구치자 눈빛마저 핏빛으로 물들었다. 심중에서 미친 듯이 일기 시작한 집착에 이성이 흐려지더니, 그 무엇도 아깝지 않고 세상 모든 걸 희생시켜도 좋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심지어 다른 이의 목숨마저도 말이다.
‘그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눈앞의 저 사악한 마귀를 처단하고야 말리라!’
하지만 이도 잠시. 허행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직감하고 독하게 혀끝을 깨물었다. 한입 가득 피가 솟구치자 광기에 젖은 분노를 잠재울 수 있었다.
허행의 본성이 난폭하고 편집적인 건 사실이었다. 늘 마음 한구석에서 용암처럼 분노가 들끓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반평생 불경을 읽어온 대광명사 출신의 무도종사로서, 대단히 심오한 경지까지 불교의 이치를 통달하진 않았어도, 사람 하나 죽이자고 무수한 살상을 자행할 리는 없었다.
그는 어떻게든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분노를 잠재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도액공선경을 연신 읊어댔다. 하지만 분노도의 도세가 가까이 닥쳐들자, 그의 심중 분노는 가라앉기는커녕 활활 타올랐다.
사실 허행의 대처법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확실히 불종의 비전인 도액공선경은 사람 마음속의 악감정을 자극하는 칠마도를 억제하는 효과가 탁월했다.
하지만 일전에 초휴는 칠마도를 미처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탐욕도를 썼을 때와는 달리, 지금은 칠마도의 용도를 정확히 알고 허행에 딱 걸맞은 분노도를 출수했다. 이는 그에게 직격타를 날린 셈이었다.
사람마다 누구나 심중에 이런저런 마귀 하나씩은 품고 살기 마련이다. 평소에는 이를 잘 억제하지만, 이것이 제대로 분출될 기회가 생기면 수습 불가의 상황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분노도의 일격과 함께 허행의 심중 마귀가 소생하더니 도액공선경도 효력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허행의 일신을 시뻘겋게 달구었던 불염에 검은 기운이 섞여들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시커멓게 물든 불염은 물밀 듯이 분노도로 유입되었다. 근원이 같은 힘이 피아 식별을 못 하며 너무도 쉽사리 허행의 호체강기를 뚫고 그를 일거에 날려버렸다.
늘 동급 적수들보다 압도적 우위를 보여왔던 달마원 상좌의 강건한 육신도 이번 일격만은 막지 못하고 가슴팍에 커다란 상처가 나고 말았다. 어찌나 큰 상처였던지 뼈까지 허옇게 들여다보이는 상태에서 선혈이 콸콸 흘러나왔다.
지난번 탐욕도에 중상을 입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치명상이었다. 이것이 칠마도의 놀라운 점이었다. 즉, 출수 시 시전자의 기량도 중요하지만, 상대편 심중의 칠정 육욕이 얼마나 강한지도 공격의 효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만약 상대가 아무런 감정과 욕망에도 물들지 않은 성인급 존재라면 칠마도는 일반 보병만도 못한 위력에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초휴의 상태도 썩 좋지만은 않았다.
칠마도는 적을 해치는 동시에 자신에게도 타격을 입힌다. 몸이 절정의 상태일 때야 출도 즉시 반작용을 억누를 수 있었다.
하지만 잇따라 두 차례나 칠마도를 출수하지 않았는가. 공격 사이에 다소의 시간이 있었다고는 하나 두 번째 출수는 전력을 다할 수도 없었을 만큼,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았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허행을 끝장낼 절호의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초휴는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있었다. 피가 흐를 것 같이 두 눈이 시뻘겋게 물든 채, 거친 숨만 간신히 몰아쉬고 있었다.
마지막 실낱같은 의지력까지 모조리 짜낸 끝에 마침내 분노도를 잠재워 칼집 속에 거둘 수 있었다. 그나마 분노도였으니 망정이지, 다른 마도였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초휴는 기실 심중의 분노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는 워낙 냉철하고 사리 분별이 뛰어난 터라 감정에 쉬이 좌우되지를 않았다. 덕분에 모든 힘을 짜내어 분노도의 힘에 휩쓸리지 않고 제어하는 게 가능했다. 만약 방금 이것이 탐욕도나 악의도였다면 지금쯤 심마가 날뛰고 있었을 것이다.
이때 멀찍이서 그의 상태를 지켜보던 진검공의 두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누가 봐도 허행을 죽일 절호의 기회인데도 우두커니 선 채 후속 동작을 취하지 않는다는 건, 분명 임엽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 아닌가. 이 기회를 틈타 임엽을 죽이고 허행을 구한다면 파산검파는 명성과 체면을 챙기는 건 물론, 더 나아가 대광명사한테 적지 않은 빚을 지우게 되는 것이다.
힐끗 나삼총 무리의 동태를 살핀 그의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잠부자 등이 잠시라도 저들을 막아주면 자기가 임엽을 해치울 수 있을지의 계산에 들어간 것이다.
바로 그때, 머리를 굴리느라 정신없는 그의 귓전에 뜬금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원숭아!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권하고 싶은걸.”
원숭이를 닮은 체형 탓에 파산검파 장문인이 되기 전에는 늘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었던 그였다. 당시 다들 그를 ‘원숭이’라고 불렀었다.
그러나 장문인이 되어 ‘팔비신원’ 진검공의 위엄이 서초 무림을 호령하자 아무도 감히 그 앞에서 지난날의 별명을 들먹이지 못했다.
하지만 이때 진검공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을 뿐, 분노하지는 않았다. 화를 내는 것조차 지금의 그로서는 사치였기 때문이다.
분노는커녕, 자신이 전혀 눈치 못 채고 있는데, 상대가 기척도 없이 곁에 바짝 다가와 있었으니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얼마나 가공할 수준의 실력이란 말인가.
바짝 겁을 먹은 그가 뒤돌아보니 남루한 차림새의 도사 하나가 서 있었다. 회색 도복을 입은 자였다. 사실 원래는 천사부의 상징과도 같은 새하얀 도복이었겠으나, 너무 오래도록 빨아 입지 않아서 온갖 먼지와 오물이 켜켜이 묻어 회색처럼 보인 것이다.
차림새와는 달리 생김새는 멀쩡하게 영준한 중년인이었다. 다만 봉두난발에 수염도 잔뜩 엉켜있고 손에 든 꾀죄죄한 술 호로병을 시도 때도 없이 입에 갖다 대는 모습이 영락없는 상거지가 아닌가.
그의 정체를 깨달은 순간 진검공은 너무 놀라 오만상이 다 일그러졌다. 경악에 찬 눈으로 그가 비명을 지르다시피 소리쳤다.
“현룡자! 당신이 여길 어찌!”
현룡자라 불린 사내가 호로병을 내려놓더니, 때가 꼬질꼬질한 손을 뻗어 진검공의 얼굴을 번갈아 찰싹찰싹 때리며 실실 웃음을 터뜨렸다.
“자네가 천사부에 도와달라고 했잖아. 마침 내가 풀려나서 옛 친구도 만날 겸 이렇게 왔다. 어때? 내가 와서 놀라긴 했어도 엄청 반갑지?”
진검공은 갑자기 목석이라도 된 양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이 판국에 놀랍고 반가운 게 다 뭐란 말인가. 놀라서 까무러칠 뻔했으니 말이다.
‘뇌신군(雷神君)’ 현룡자(玄龍子)는 천사부 내, 장년의 무도종사 가운데서 가장 이름난 자였다.
심지어 당대 천사부에서 장승정의 부친이자, 정식 천사는 아니지만 연로한 천사를 대신해 종문의 사무 처리를 잠시 맡은 ‘어소진인(御霄眞人)’ 장도령(張道靈) 보다도 유명했을 정도였다.
그는 천사부 제자이긴 해도 장가의 일족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려서 노천사에게 입양되어 키워진 터라 장가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지난날 그가 한창 멀쩡하던 시절에는 천사부 내에서 손꼽히는 고수로 풍운방 십칠 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미쳤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뼛속까지 제대로 미친 것이다!
현룡자는 매사에 극단적이고 즉흥적이며 분별없이 오만방자하기가 하늘을 찔렀다. 한번 눈이 돌아갔다 하면 아무것도 눈에 뵈는 게 없었다. 그런 현룡자를 유일하게 제어할 수 있는 존재는 노천사가 유일했다.
그는 같은 연배인 진검공이 만만하다는 이유로 모욕도 많이 안겼다. 이것이 두고두고 정신적인 상흔으로 남아 진검공을 괴롭히고 있었으니,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어찌 질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이런저런 일들은 사소한 일이었으나 대형사건이 십 년 전에 터졌다. 당시 누군가가 상고시대 유적지를 개방하려다가 본의 아니게 상고 마도 고수의 진령(眞靈)을 방출하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만년이나 잠들어 있었던 그 고수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어떻게든 진령이 훼손되는 것만은 면했지만, 만년 전과는 달리 허약하기 그지없었다. 여온후와 그의 대장군들도 그러했었으니, 다른 존재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또 다른 얼빠진 자가 진령을 손에 넣은 후, 말살하기는커녕 제사까지 지내며 그 안의 기억을 되살리려고 시도했다.
결국, 진령과 합체된 그는 기억마저 온통 뒤섞이며 실력은 강력하되 광기가 다분한 미치광이가 되어 강호에 심각한 위협을 가했다.
당시 천사부를 위시한 정도 종문들이 연합하여 그자에 대한 추살을 단행했고, 그때 천사부를 대표해 나섰던 이가 현룡자였다. 상고 고수의 진령은 부단하게 산 자의 목숨을 앗아 실력의 복원을 꾀했다.
그처럼 극악한 존재를 제거하자니 보통 난감하고 어려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현룡자는 대담하게도 동료 무사들의 목숨을 미끼 삼아 필살의 덫을 놓았다.
그렇게 해서 진령은 처단할 수 있었으나 그 과정에서 정도 종사 여러 명의 목숨이 희생된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현룡자의 계책 덕분에 소수의 희생으로 다수를 구한 셈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천사부가 책임을 피해갈 순 없었다.
무도종사를 잃은 정도 대문파들이 천사부를 압박한 것이다.
그들은 풍만루에 가서 현룡자를 풍운방에서 제명토록 조치하고, 그를 천사부 내 지하 감옥에 십 년 동안 처넣어 반성토록 했다. 그걸로도 부족해서 노천사가 직접 해당 세력들을 찾아가 백배사죄하고서야 그 사달은 가라앉을 수 있었다.
십년이면 많은 것들을 망각하고도 남을 긴 세월이다. 그렇게 현룡자가 사라진 뒤로 진검공은 그의 존재 자체를 거의 잊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으로 그가 눈앞에 나타나자, 지금까지 잊고 지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최근에 그가 형기를 마치고 감옥에서 나왔다는 사실, 그리고 지난날 그로 인해 감당해야 했던 공포심과 모멸감까지 말이다.